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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72화 (472/916)

472화. 융합

대전 방안의 물거울에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강수수는 그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곧바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강능풍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물거울 속의 이 청년은 용모와 풍기는 기운이 석목과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에서 파동이 일었다.

“오라버니, 이 사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혹시 석목이 모습을 바꾼 것일까요?”

강수수가 강능풍의 표정을 보더니 물었다.

“아니, 이 사람은 아마 석목이 아닐 거야. 하지만 느낌이 조금 이상해.”

강능풍이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오라버니,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가 의심스럽다면 오라버니는 이곳에서 계속 지켜보세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강수수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좋아. 너는 석목과 잘 아는 사이니 그의 기운이 익숙할 거다. 내려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강능풍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수수는 밖으로 나가더니 곧바로 석목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석목의 앞으로 다가와서 마치 칼 같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도우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석목은 의아한 듯 강수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석목은 강수수가 갑자기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환마도에서 철저하게 단련된 그는 심신의 기운을 잘 통제할 수 있었다. 거의 혼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에서 풍기는 기운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고, 표정이나 행동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강수수는 석목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 했지만, 그의 눈빛은 호수처럼 평온했다. 오히려 의아한 기색을 풍기고 있었다.

강수수는 속으로 깊은 숨을 내뱉었다. 갑자기 석목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녀 나름의 전략이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치켜떴다. 그리고 마치 무엇인가 생각난 듯, 소매 속에서 투명한 구슬을 한 개 꺼내들었다.

강수수가 구슬을 살살 문지르자 구슬에서 옅은 파동이 일렁이며 소리 없이 석목의 몸을 감쌌다.

구슬이 반짝이더니 하얀빛을 줄줄이 뿜어냈다. 그것은 극도로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차가운 음의 기운…….’

강수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석목을 바라보고 웃었다.

“죄송합니다. 도우님이 제가 찾고 있는 친구인 줄 알았습니다. 잘못 본 것 같네요.”

강수수가 말했다.

“네, 그러셨군요.”

석목이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강수수는 머리를 끄덕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잠깐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앞쪽 대오를 향해 돌렸다. 그는 얼굴에서 초조한 기색을 떠올리며 다른 사람들처럼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강수수는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강능풍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그 사람이 아닙니다. 석목은 야만족 토템 비술 외에도 양의 기운을 풍기는 불 속성 공법을 수련했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이 풍기는 기운은 순수한 음의 기운이었습니다. 조신주(照神珠)로 탐색해봤는데 틀림없습니다.”

강능풍은 물거울을 통해 조금 전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양의 힘과 음의 힘을 몸속에서 융합하여 평형을 이루고, 언제 어느 쪽으로든 전환할 수 있는 공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에 강수수의 안색이 변했다.

“오라버니, 혹시 구전현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강능풍이 머리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했다.

“음양의 힘을 수시로 전환할 정도가 되려면 최소 세 번째 단계 이상을 수련해야 한다. 내가 이전에 석목의 이력을 알아본 적이 있는데, 그는 천지 영기가 매우 부족한 외진 행성에서 왔다. 거기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육신의 힘과 실력이 평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야. 다만 구전현공의 세 번째 단계와는 거리가 먼 것 같구나.”

“그런데 그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시간이 더 지나서 그가 성지로 도망가면 어떻게 하죠?”

강수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렇다 해도 그는 천년 제자에 불과해. 아무런 증거도 없이 파동을 일으킬 리 없다. 다만 일이 좀 복잡해지겠지. 이 일은 오늘로 일단 마무리하고, 그보다 백원왕의 후예를 찾는 것이야말로 다급한 일이야.”

강능풍이 말했다.

강수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줄이 짧아질수록 석목은 서서히 긴장이 풀렸다. 반 시진이 지난 후 그는 드디어 전송 법진에 올라탔다.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눈앞에 눈부신 빛이 번졌다.

이어서 눈앞의 광경이 바뀌었고, 그는 다시 커다란 법진에 놓여 있었다. 그곳은 현영탑 안의 대전이었다.

* * *

진법의 빛이 여기저기서 번쩍이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곳도 시끌벅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전의 가장 오른쪽 진법에서 푸른 옷을 입은 건장한 청년이 나타났다. 청엽성에서 돌아온 석목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자 멀지 않은 커다란 진법 앞에 사람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그들은 전부 천년 제자의 옷을 입고 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다들 진법에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듯했는데,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석목은 그 모습이 조금 의아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대전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곧바로 동부로 돌아가지 않고 만법각과 통류방에 들렀다. 그리고 임무를 수행하며 획득한 영재 등의 물건을 팔아버린 후, 이천여 점의 현영점을 얻었다.

천년 제자의 임무는 난이도가 높았지만 그만큼 보상도 컸다. 백년 제자가 받는 보상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백진곡과 선약재에 한 번 다녀온 후, 석목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간 어렵게 모은 만 점 가까이 되는 현영점과 많은 최상급 영석이 반나절 만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단약 몇 병을 얻었다.

선약재에서 나온 석목은 다시 성전각으로 향했다.

잠시 후, 성전각에서 나온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구전현공의 세 번째 단계 구결은 이미 갖고 있었지만, 네 번째 단계는 성전각에서 얻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번째 단계보다 두 배나 많은 현영점이 필요했다.

다행히 그는 세 번째 단계를 이제 막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대성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현영점 때문에 골치가 아플 필요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현영탑에서 나왔다.

* * *

잠시 후, 석목의 동부 상공에서 빛이 내려왔다.

“부주님, 돌아오셨습니까!”

정원을 청소하고 있던 몇몇 시종이 석목을 보자 인사를 올렸다.

석목은 머리를 살짝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두어 걸음을 걷다가 멈춰 서서 말했다.

“제풍에게 주실로 오라고 전해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석목이 있는 주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주님, 인사드립니다.”

제풍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내가 없는 동안 동부에 무슨 일이 있었나?”

석목이 물었다.

“부주님,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서원 부주님이 관사를 여러 번 보내서 연회에 초대했지만, 부주님이 돌아오시지 않아서 사실대로 말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각 영폭의 수익인데…….”

석목은 손을 흔들어 제풍의 말을 끊고 다시 물었다.

“그래, 작은 일들은 굳이 보고할 필요 없다. 참, 이번에 성지로 돌아와 보니 이 층의 분위기가 여전히 심상치 않더구나. 그리고 천년 제자들이 다급하게 진법을 통해 외부로 나가던데, 무슨 일인지 알아보았느냐?”

“성지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능 관사가 말하기를, 제자들이 외부 출입을 빈번하게 하는 것은 성지의 당직 임무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제풍이 말했다.

“능 관사?”

석목이 물었다.

“아, 서원 부주님의 동부에 있는 관사입니다. 우리 동부를 몇 번 다녀가서 조금 가까워졌지요. 그와 잘 지내면 부주님을 위해 더 많은 소식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풍이 머리에 얹은 모자를 만지며 말했다.

“잘했다. 채아가 없으니 그런 일들은 조금 더 신경을 써다오.”

석목이 그를 칭찬했다.

“부주님, 감사합니다.”

제풍의 안색은 희열로 가득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말한 당직 임무는 무엇이냐?”

석목이 물었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미양성역의 변두리에 봉인된 결계 입구가 있다고 합니다. 청란, 이진, 축운(逐云) 삼대 성지에서 제자를 보내 그곳을 함께 지키면서 고대 흑마 일족의 침입을 막아왔죠. 하지만 최근에 그 결계에 무슨 이변이 생겨서 제자들을 더 많이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흑마 일족? 결계에 무슨 일이 생긴 거냐?”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제풍이 대답했다.

“그건……. 저도 능 관사에게 물어봤지만 그 사람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석목은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알았다. 이만 내려가 보아라. 그 결계와 관련된 일에는 조금 더 귀를 기울이도록 해라. 하지만 따로 알아볼 필요는 없다.”

석목으로서는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아마도 그가 아직 천위 경지에 들어서지 못했기 때문인 듯했다. 그가 오는 길에 전송진을 드나드는 제자들을 보니 전부 천위의 경지였다.

제풍이 떠나자 석목은 주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곧바로 비밀 석실로 들어갔다.

석목은 비밀 석실의 방석에 앉아서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떠올렸다. 청엽성에서 겪은 일들이 다시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그날 밤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성지로 돌아오면 강가가 조극을 죽이려 했다는 일을 종문에 알리고, 종문 집법당에서 이 일을 해결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극과 강가가 같은 편에 서는 바람에 오히려 보고할 구실이 없어졌다. 더구나 그에게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또 강가는 덫을 놓아서 백년 제자 여러 명을 죽여 버렸고, 또 야가와 손을 잡고 전송 대전을 며칠이나 폐쇄했다. 하지만 성지와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그러니 보고를 한다 해도 주의를 끌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불리한 쪽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석목은 한참을 고민한 후 이 일은 우선 묻어두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빨리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서 이 성역을 벗어나서 종수를 구해야 했다.

석목은 머리를 흔들며 잡생각을 뿌리쳤다. 그는 긴 숨을 내뱉고 저장 반지에서 어렵게 구한 영영과를 꺼냈다.

영영과를 꺼내자 비밀 석실에 특별한 향이 풍겼다. 짙은 향은 아니었지만 마음속까지 스며드는 냄새였다.

석목은 영영과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작은 아기가 자신의 손바닥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향을 맡은 석목은 무엇인가 생각난 듯 또 다른 물건을 꺼내들었다. 푸른 나뭇가지 한 가닥이었다. 이것은 그가 입문 시험 때 수령왕에게서 가져온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뭇가지는 여전히 처음처럼 청아한 푸른빛을 뿜었고, 옅은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또한 그 속에 있는 나무 속성의 영기도 흘러나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석목은 영영과와 푸른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그의 손바닥에 있던 영영과가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일으켰다.

영영과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석목의 눈앞이 희미해졌다. 눈을 감고 곤히 자고 있던 아기의 손이 갑자기 움직이며 깨어나려 하는 것 같았다.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니 꽉 감고 있던 두 눈에 한줄기 틈이 생겨 있었다. 이어서 아기의 입도 벌어졌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손에 든 나뭇가지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오며 희미해졌다.

푸른 나뭇가지는 순식간에 반딧불 같은 푸른 점들로 변했고, 그 점들은 작은 은하수를 이루더니 아기의 입으로 조금씩 흘러들었다.

수많은 빛이 영영과의 입속으로 흘러들어가자 몸에서 푸른빛이 반짝였다. 과일 전체가 비취처럼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것이 실로 아름다웠다.

빛들이 전부 흘러들어가자 석목의 손바닥에서 번지던 빛은 오히려 점점 어두워졌다.

그가 다시 자세히 영영과를 들여다보니, 표면에 투명한 빛만 더해졌을 뿐 모양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그의 손에 있던 나뭇가지는 사라졌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다시 영영과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야 천천히 손바닥을 거둔 그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가득했다.

영영과는 자체적인 영력 기운이 몇 배나 늘어났고, 순수한 나무 속성의 영기도 한줄기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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