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73화 (473/916)

473화. 명수를 수련하다

석목은 아무 생각 없이 꺼낸 두 영물이 이렇게 합쳐질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이 영영과를 삼키면 결단의 확률은 몇 배나 높아질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짙은 나무 속성의 영기가 또 생각지 못했던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영과를 먹을 때는 아니었기에, 그는 그것을 다시 조심스럽게 거두어들였다. 석목의 손바닥에서 다시 한 번 빛이 반짝이더니 정교한 나무 상자 한 개가 나타났다.

그는 나무상자를 열고 그 안에 있는 검은 옥간을 꺼내들었다. 방가 가주에게서 받은 명수결이었다.

석목은 옥간을 한참 바라보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그것을 미간에 가져다 댔다.

윙!

진동음과 함께 그의 미간에서 파란빛이 반짝였다. 물결 같은 영력의 파문이 옥간에서부터 퍼져 나왔다.

석목의 신식은 청량함으로 가득했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서서히 올라오면서 그는 심신이 매우 편안해졌다.

파란빛은 잠깐 동안 지속되다가 이내 사라졌고, 푸르스름한 글자가 그의 머릿속에 나타났다.

‘나는 이 공법을 얻은 후부터 육백이십일 년을 수련했다. 수련 초반에는 물 흐르듯 순조로웠지만, 중반부터는 큰 강을 가로지르듯 우여곡절이 생겼고, 막바지에는 떨어지는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해 끝내 대성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유감스럽고 한스럽구나. 이제 그 관문을 뚫기 위해 비경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유일한 탁본을 남겨서 후세에게 전하려 한다. 만약 내가 그것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명수결을 수련한 후배가 꼭 성공하길 바란다. 유명 유필.’

그 글을 본 석목은 깜짝 놀랐다. 바로 유명상인이 남긴 글이었다.

유명상인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이유는 명수결을 수련하기 위해 생사의 관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 년이 지난 지금, 세간에는 여전히 유명상인의 전설이 떠돌긴 해도 그와 관련된 새로운 소식은 전혀 없었다. 그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수련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인즉 명수결을 수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석목이 더 생각하기도 전에 파란 글자는 사라졌고, 이어 새로운 글자가 그의 머릿속에 나타났다.

그렇게 그가 글을 외우고 나면 전부 사라지고, 또 새로운 글자가 나타나는 게 반 시진 동안 반복됐다.

석목은 머리를 조여 드는 통증을 느꼈다. 어느새 글자도 전부 사라졌다. 새로운 글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석목은 시큰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며 옥간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명수결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신 정교했다. 총 십 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앞의 세 단계는 각각 지계 초기와 중기, 후기가 대상이라 수련의 장벽이 높지 않았다. 단약과 영재와 관련된 조건도 까다롭지 않았다. 순수한 물 속성의 영기가 조금 내재되어 있는 영재만 있으면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네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두 단계마다 경지 하나가 올라가야 했다. 수련자의 경지가 천위 후기에 달하면 명수결의 아홉 번째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명수결의 수련 난이도도 한층 높아졌다. 게다가 모든 보조적인 영재과 단약부터 수련 환경까지 매우 가혹해졌다.

명수결의 수련은 옅은 층부터 깊은 층으로 향했다. 간단한 것부터 어려운 것으로 층층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후기에 이르면 난이도가 더 높아져서, 등급이 낮은 영재로 강행할 경우 경지가 높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심할 경우 평생 경지를 높이지 못하고 멈춰버리게 되기도 했다.

유명상인의 경험으로 해석한 바에 따르면, 명수결의 마지막 단계, 즉 십 단계에 도달하면 난이도가 매우 높아졌다. 그리하여 유명상인조차 진성 경지에 오랜 기간 머물렀지만 끝내 그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그밖에 공법 수련이 한 단계 깊어질수록 수련자의 육신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천지에 있는 물 속성 원소에 대한 감응력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물 속성의 무기 위력도 대폭 늘어났다.

또한 물은 음의 속성에 가장 가까우며 가장 부드러운 물질로, 포용과 숨김, 변화에 매우 능했다. 명수결을 어느 정도까지 수련하게 되면 수련자는 자신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고,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를 액체로 변형시킬 수도 있었다.

석목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다시 세 번째 단계까지의 수련에 필요한 영재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의 저장 반지 속에 이미 있는 물건이었다. 지금 부족한 것은 수원초(水元草), 액령정(液灵晶), 현수귀갑(玄水龟甲)과 응음단(凝阴丹) 등 성지의 통류방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그는 곧바로 비밀 석실을 나가서 현영탑으로 향했다.

* * *

며칠 뒤, 한줄기 빛이 멀리서부터 날아와서 천성전 밖에 떨어졌다. 석목이었다.

그가 대전 안에 들어서자 검 모양의 눈썹을 가진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천성전에 들어가서 수련을 하려 합니다.”

석목은 현영벽을 꺼내들고 중년 남자를 향해 손을 모으며 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수련할 것인가?”

중년 남자가 그를 한번 바라보더니 물었다.

석목은 고개를 숙이고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일 년 동안 필요한 현영점을 지불하겠습니다.”

중년 남자는 그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말했다.

“좋다. 현영점을 내면 조용한 석실로 안내하겠다.”

이어 석목이 물었다.

“혹시 물 속성의 영기가 가득한 석실이 있나요?”

“칠 번 석실이다. 천년 제자 신분이니 마침 그곳을 사용할 수 있지.”

“감사합니다.”

중년 남자가 대답하자 석목이 손을 모으며 말했다.

칠 번 석실에 들어선 석목은 순간 멍해졌다. 석실의 벽에 별빛이 가득했다. 심지어 천장에는 천천히 돌고 있는 화려한 성운이 걸려 있었다.

내부는 그가 전에 갔던 석실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바닥의 중앙에 푸른 방석만 하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천지 영기는 천지차이였다.

이곳의 영기는 단순히 짙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영기로 뭉쳐진 파란 안개 덩어리가 석실의 곳곳에 걸려 있었다.

석목은 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각종 영단이 들어 있는 도자기를 꺼냈다. 이어 수련에 필요한 다른 보조 재료들도 꺼내서 바닥에 줄을 세워놓았다.

석목은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손으로 법결을 부리며 명수결을 천천히 시전하였다.

잠시 후, 영기의 파동이 그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파도처럼 흩어졌다.

석목이 손바닥을 흔들자 앞에 놓인 하얀 옥 도자기의 뚜껑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 안에서 푸르스름한 응음단이 천천히 떠오르더니 그의 입가로 날아갔다.

그는 단약을 삼키고 다시 손을 흔들어 명수결에 기록된 방법대로 수련을 시작했다.

주위의 공간이 순식간에 고요해지면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석목은 찌푸렸던 미간을 천천히 풀고 자세를 편안하게 잡으며 공령(空靈) 상태에 빠졌다.

잠시 후 그에게서 푸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와서 몸을 감쌌다. 마치 빛의 막을 한층 덮은 듯했다.

공기 속의 파란색 안개 덩어리가 어떤 힘에 이끌리듯 파란 줄기로 갈라지더니 석목을 향해 뻗어갔다.

줄기들은 석목의 몸에 닿자 이내 파란 빛의 막에 스며들었고, 조금씩 몸으로 들어가서 경맥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영력이 경맥에서 흐르자 석목의 몸에서 파란빛 점이 나타났다. 석목은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이 뼛속까지 스며들자 쾌감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란 줄기들이 흐르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 * *

눈 깜박할 사이에 삼 년이 지났다.

석목이 있는 석실의 파란 안개 덩어리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벽에 붙어 있던 별빛마저 어두워졌다.

석실에 석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타원형의 커다란 알 하나가 방석 위에 무겁게 놓여 있었는데, 그 표면에서는 파란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쩍!

갑자기 커다란 알에서 소리가 나더니 껍질에 균열이 생겼다.

퍽!

또다시 알에서 소리가 나면서 균열이 더 길어지고 굵어졌고, 알은 곧 두 덩어리로 갈라져 버렸다. 그 안에서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삼 년 전과 똑같은 자세였다. 눈을 지그시 감은 그의 뺨에는 수정 같은 파란빛이 흐르고 있었다.

석목은 눈썹을 두어 번 움직이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보이지 않는 영력의 파동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파동이 비밀 석실의 문에 부딪히자 강력한 진동이 일어났다.

석목의 안색은 매우 좋아 보였다. 그는 삼 년간 어렵게 수련하여 명수결 세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했다. 몸속의 진기는 더욱 순수해졌고, 물 속성에 대한 감응력도 전보다 몇 배는 강해졌다.

그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법결을 하나 시전하였다. 순간 그의 몸에서 파란빛이 반짝이면서 수정 갑옷이 나타나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쌌다.

석목은 화염이 타오르는 왼쪽 주먹으로 자신의 복부를 강하게 내리쳤다.

펑!

복부를 감싸고 있던 갑옷에서 물결이 일렁이더니 주먹의 힘을 분산시켰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파란 갑옷을 거두고는 계속해서 법결을 하나 더 시전했다. 형태가 없는 물의 막이 나타나서 그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영력의 파동은 조금도 흘러나가지 않고 기운을 완벽하게 숨겨버렸다.

이 수단은 현공의 역골결과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가 평범한 일반인으로 둔갑하여 시끌벅적한 거리로 나간다 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석목의 눈에 만족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순간 단전 기부의 용 눈알만 한 가단 속에서 진기가 빠르게 흐르며 응결하려는 기미를 보였다.

석목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는 재빨리 아기 모습을 한 과일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 표면에서는 투명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석목은 곧바로 검은 도자기와 하얀 도자기를 꺼내 앞에 늘어놓았다. 그 안에는 금단으로 응결되어 천위를 뚫을 영액과 단약들이 들어 있었다.

석목은 손에 든 영영과를 입에 갖다 댔다.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싱그러운 향기가 풍겨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석목은 입을 벌리고 영영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석목이 영영과의 껍질을 깨물자 달콤한 과육이 터져 나와서 입안을 가득 채웠다.

순수하고 그윽한 기운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폐부에 주입되어 단전까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다시 사지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영력이 몸속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은 매우 묘하고 상쾌해서,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신식을 밖으로 날려 보냈다.

천지에 퍼진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 붉은 빛,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투명하고 맑은 파란 물의 기운, 그리고 변화무쌍한 투명한 줄기들이 보였다.

이것은 그가 감지할 수 있는 불의 원소와 물의 원소, 공간의 원소였다.

그때 석목의 신식 범위 안에 갑자기 짙은 푸른색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가슴 설레는 생명력이 분출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희미했지만 매우 친근한 느낌이었다.

이 푸른색은 느린 속도로 점점 불어나면서 차츰 주변을 채워갔다.

‘이건…… 나무 속성 영기!’

석목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공기 중에서 나무 속성 영기를 느낀 것이었다.

그는 마치 숲이나 초원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풀들이 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심지어 식물에서만 풍기는 특유의 청량한 기운도 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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