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얼음과 불에 시달리다
석목은 다시 눈을 뜨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에서 화려한 빛이 반짝이더니 도자기 한 개가 손으로 날아갔다.
그는 뚜껑을 열어 입에 대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붉은 액체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 액체는 영영과와는 달리 목구멍에 닿자 뜨거운 용암을 마시는 듯 불타오르는 느낌을 선사했다.
이어서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지나서 단전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손을 내밀어서 또 다른 도자기를 들었다.
뚜껑을 열자 차가운 음의 기운이 풍겼다. 석목이 오른쪽 볼에 갖다 대자 눈썹이 순식간에 서리로 변했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도자기 속의 파란 액체를 마셔버렸다.
뼈까지 시린 느낌은 조금 전의 뜨거운 느낌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고, 석목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앞에 놓인 도자기를 들었다. 그리고 노란 단약을 꺼내 입으로 집어넣었다. 단약은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황금색 영기로 녹아서 폐부에 스며들었다.
석목은 자세를 바로잡고 손으로 법결을 시전했고, 두 눈을 감고 입으로 구결을 외웠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구전현공 세 번째 공법 구결을 시전하였다.
구결을 외우는 소리와 함께 석목의 왼손과 오른손에서 각각 검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바닥에는 음양의 금붕어 두 마리가 나타나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헤엄치고 있었다.
잠시 후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번쩍 떴다.
바닥의 하얀 물고기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그리고 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기운이 순식간에 단전에서 부딪히며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같은 자세로 앉아서 자신의 몸속을 바라보았다. 단전의 붉은 가단에서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태양처럼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아악!”
석목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질렀다. 그의 이마에서는 핏줄이 튀어나왔고, 콩알만 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맹렬한 불꽃이 갑자기 그의 이목구비에서 뿜어져 나왔다. 불꽃은 전신을 감싸더니 순식간에 옷을 전부 태워버렸다. 그의 눈썹까지도 전부 타버렸다.
예전과 달리 석목은 이 화염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바깥뿐만 아니라 안쪽으로도 스며들어 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석실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천장을 찔렀고, 걸려 있던 성운마저 터져버렸다. 수많은 별빛이 떨어져서 전부 화염에 삼켜졌다.
석목은 온몸을 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그의 피부가 검게 타들어갔다. 화염은 그를 한줌의 재로 만들어버릴 기세였다.
석목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천위 경지를 뚫는데 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이런 시련을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예전이었다면 이 정도의 뜨거운 열기를 절대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의 심신이 견디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졌을 게 뻔했다.
환마도를 거친 그의 정신력은 엄청나게 강해져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태가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붕괴 직전에 이르러 있었다.
석목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코에서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놀라운 의지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다시 법결을 변경하여 몸속에 있는 음의 힘을 천천히 시전하였다. 어떻게든 화염을 눌러버려야 했다.
그의 단전이 반짝이더니 붉은 화염의 중심에 파란빛이 나타났다.
윙!
석목의 몸 아래에서 검은 금붕어의 허영이 나타났다. 금붕어는 빛을 뿜어내며 미친 듯이 빠르게 움직여서 앞에 있는 하얀 금붕어를 따라잡았다.
그러자 석목의 몸에서 타오르던 화염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음의 힘은 가볍게 양의 힘을 대체했다.
석실 속에서 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검게 타버려서 수축된 석목의 근육에서는 마치 숯불에 물을 부은 것처럼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석목은 코로 찬바람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치료 단약을 꺼내려고 팔을 뻗었다. 그런데 그의 팔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느새 투명한 얼음이 그의 몸에 번지더니 점점 위로 퍼지면서 전신을 얼려버렸다.
단전의 화염은 사라지고 붉은 가단의 표면이 얼음으로 덮였다. 뼈를 찌르는 듯한 추위가 느껴졌다.
석실은 순식간에 차가운 얼음동굴로 변했다. 차가운 음의 기운이 석실의 문틈 사이로 흘러나갔고, 석실의 외벽까지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다.
석목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방금 전 양의 힘과 지금 자신을 둘러싼 음의 힘은 전부 통제 불능 상태로 나타났다. 그는 두 가지의 힘을 전혀 장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차가운 얼음을 녹이지도 못했다. 그가 아무리 양의 힘으로 녹여버리려고 해도 얼음은 끄떡도 없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만, 그의 몸에서는 땀 한 방울조차 솟아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석목의 몸속에 있는 혈액은 이미 전부 얼어붙었다. 그의 의식 세계는 차가운 안개로 가득차 희미해졌다.
그가 그대로 잠들어버리려는 순간, 단전에서 붉은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화염이 다시 타오르더니 붉은 가단을 감쌌고, 뜨거운 기운이 다시 흘러나왔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석목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얼음들이 전부 녹아버렸고, 또다시 화염이 몸을 뒤덮었다. 불구덩이에서 타오르는 듯한 감각이 다시 치밀어 올랐지만, 석목은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얼어붙게 했던 얼음이 몸과 함께 화염에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음의 힘과 양의 힘은 이렇게 번갈아 나타나며 계속해서 석목의 육신을 괴롭혔다. 이런 현상을 멈추고 싶어도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석목의 눈에서 결연한 빛이 스쳤다. 그는 화염에 둘러싸인 두 손을 앞으로 뻗어서 도자기 속의 영액과 단약을 단번에 전부 삼켜버렸다.
쿵!
대량의 영력이 미친 듯이 그의 몸속에서 소용돌이치면서 기름을 퍼부은 듯 활활 불타올랐다.
그의 단전 속 가단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위에서 번지던 불빛도 두 배나 커져서 더욱 격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
석목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석실에 울려 퍼졌다.
* * *
격렬한 불빛이 미친 듯이 타오르더니 또다시 극도로 차가운 얼음이 나타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얼마 동안 지속됐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투명한 얼음에 둘러싸인 석목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땅을 바라보았다.
검은색과 흰색의 금붕어 허영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다만 빛은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검은 금붕어가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는 있었지만, 힘이 다 빠져버렸는지 전과는 많이 달랐다.
석목은 이번에 자신이 몇 번째로 얼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또 몸이 몇 번 불타올랐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몸이 얼어붙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벌써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그의 몸속에서는 아무런 영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석목은 여전히 한줄기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버티고 또 버티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이 끝없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금단을 응결시키는 길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 석목의 단전 속에서 가벼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쩍!
그는 깜짝 놀라서 단전을 들여다보았다. 동시에 그의 마음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며 무력감이 치밀어 올랐다.
단전 속의 용 눈알만 한 붉은 가단에 균열이 생겨 있었다. 금단을 응결시키는 것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가단에 금까지 간 것이다.
석목은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무력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제 모든 수련 경지가 전부 사라지는 것일까?’
그의 몽롱한 머릿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났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 맨발로 그에게 달려오는 서문설, 밝게 웃고 있는 종수,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는 연나, 찬란한 빛을 뿜고 있는 거대해진 채아…….
“안 돼…….”
석목은 천천히 눈을 감고 애처롭게 소리를 질렀다.
퍽!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구슬이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고, 돌이 부서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또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와도 비슷했고, 달걀이 깨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석목의 단전에 있던 붉은 구슬은 그렇게 깨지고 말았다.
세상 모든 것이 죽음에 이른 듯 고요해졌다.
석목의 정신이 흐려질 즈음, 무언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석실 안에 흩어져 있던 남은 영력들이 어찌된 일인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력들은 무형의 힘에 의해 얇은 줄기로 변해 석목의 단전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이어서 깨져버린 가단에서 주먹만 한 회색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소용돌이는 주변의 영력을 빨아들이며 특정한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그때 석목의 몸 밑에 있던 음양의 금붕어 허영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흑백이 섞인 희미한 그림자가 되었다.
쿵!
천성전 밖의 맑게 개인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 번개가 울려 퍼졌다.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먹구름이 몰려와 끊임없이 소용돌이쳤고, 순식간에 하늘을 어둡게 덮어버렸다.
검은 구름은 얽히고설키더니 한 장으로 변하여 계속 소용돌이쳤다. 그 속에서 엄청난 흡입력이 만들어졌다.
사방팔방의 천지 영기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천성전을 중심으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늘에 일 리 정도 되는 커다란 영력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하늘에 떠다니던 구름은 영력의 소용돌이의 힘에 의해 함께 맴돌았다. 순식간에 하늘이 반은 회백색, 반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원래부터 영기가 짙던 천성전 주변은 굵고 튼튼한 영기의 기둥으로 응결되어 커다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에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자 천성전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전부 놀란 표정으로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음……. 누군가 결단을 하려는 건가? 혹시…… 칠 번 석실!”
대전 밖에 서 있던 중년 남자는 눈썹을 치켜뜨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이어 사 년 동안 대전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청년 제자를 떠올렸다.
석실 속에서는 석목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점으로 변한 불빛과 유유히 흐르고 있는 물의 기운이 끊임없이 응결되며 그의 단전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그의 단전 속 소용돌이는 끊임없이 모여드는 천지 영기를 맹수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벅차오르는 기분을 억누르며 다급하게 공법을 시전했다.
* * *
하루 밤낮이 지났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던 소용돌이가 멈추면서 드디어 고요가 찾아왔다.
영력은 계속 응결되고 있었지만 석목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사지의 근육은 수축해서 비쩍 말라 있었고, 온몸은 타버린 흔적으로 가득해서 마치 불에 탄 시체 한 구 같았다.
석목의 입술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복잡한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움직임을 멈춰버린 바닥의 음양 금붕어 두 마리가 갑자기 동시에 밝은 빛을 냈다.
“응결!”
석목이 소리를 지르자 멈추었던 회색 소용돌이에서 방대한 영기가 들끓었다. 이어 그 중심에서 하얀 번개가 터졌다.
순간 영기를 품고 있는 소용돌이가 두 덩어리로 갈라져 버렸다. 반쪽은 눈처럼 하얗고 투명한 색이었고, 다른 한쪽은 먹물 같은 까만색을 띠고 있었다.
두 덩어리로 갈라진 소용돌이는 각각 응결되더니 점점 작아지며 단단해졌고, 결국 검은색과 하얀색의 구슬 두 개로 변해버렸다.
석목은 그걸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금단 두 개?’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검은 번개가 나타나더니 구슬 두 개를 하나로 합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