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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76화 (476/916)

476화. 성역 전쟁

반 시진 후, 석목은 백진곡에서 나왔다. 그의 표정은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기색도 섞여 있었다.

그는 많은 영석과 현영점을 써버렸지만, 분신을 제련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대부분 사들였다. 이제 네 가지 재료가 남아 있었다.

석목은 백진곡을 떠나서 통류방으로 날아갔다.

그는 통류방 천보각의 안쪽 방에서 뚱뚱한 관사와 마주앉아 차를 마셨다.

“몇 년 못 뵈었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수련 경지가 대폭 상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위 경지까지 뚫어버렸네요. 축하드립니다!”

뚱뚱한 관사가 손을 모으고 웃으며 말했다.

“과찬입니다. 운이 좋아서 결단에 성공했을 뿐이지요.”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사소한 대화를 몇 마디 더 주고받고, 석목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몇 가지 희귀한 물건이 필요합니다.”

“허허, 천보각이야말로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석 도우, 어떤 재료가 필요하신지요?”

뚱뚱한 관사가 물었다.

“마노목(玛瑙木), 선천혈옥(先天血玉), 자형타나과(紫荆陀羅果), 요산선지초(瑶山仙芝草)입니다.”

석목의 말에 뚱뚱한 관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석 형, 그 네 가지 물건은 전부 천재지보입니다. 백 년에 한 번 눈에 띌까말까 한 것들이지요.”

“찾기 어려운 물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인장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석 도우,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얼마 전 천보각의 다른 분점에서 우연히 마노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아직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뚱뚱한 관사가 말했다.

“정말입니까? 그럼 번거롭더라도 한번 알아봐주세요.”

석목이 다급하게 말했다.

뚱뚱한 관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석목은 방에 조용히 앉아서 눈썹을 치켜뜨고, 소식을 전하는 하얀 옥부를 꺼내들었다. 예전에 서원이 그에게 준 것이었다.

통류방에서 상점을 경영하는 서원은 서가라는 대가족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이 물건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석목은 법결을 시전하여 서원에게 연락을 취했다.

서원 역시 때마침 통류방에 있었다. 그는 석목이 찾고 있는 물건을 곧바로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때 뚱뚱한 관사가 손에 정교한 자색 나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하하, 좋은 소식입니다. 마노목은 아직 상점에 있다고 합니다.”

석목은 그 나무 상자를 보더니 매우 기뻐했다.

* * *

일각 후, 석목은 천보각에서 나왔다.

자색 나무 상자는 그의 저장 반지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다만 가지고 있던 영석은 크게 줄었다.

아쉽게도 천보각에는 마노목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나머지 세 가지 물건은 앞으로 더 찾아봐야 했다.

그때 그의 몸에서 하얀빛이 반짝였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하얀 옥부를 꺼내 들었다.

“석 형, 좋은 소식입니다!”

서원의 목소리가 옥부에서 흘러나왔다.

석목은 밝은 표정으로 곧바로 서원의 상점으로 향했다.

서원은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석목이 오는 것을 보자 반갑게 맞았다.

“석 형, 벌써 천위 경지에 들어섰군요. 얼마 전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믿기지 않았지요. 실력이 이렇게 빨리 늘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석목이 천위에 도달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석목은 의아해서 눈썹을 치켜뜨다가 이내 깨달았다. 그가 천위에 들어섰을 때 일어난 기이한 현상들은 종문의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그러니 소식이 퍼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서 형, 과찬입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곧바로 상점으로 들어갔다.

“운이 좋게도 석 형이 말한 네 가지 재료 중 한 가지를 찾았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서원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매우 기뻐했다.

서원은 옥합 한 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어 그가 소매를 흔들자 옥합의 뚜껑이 열렸고, 그 속에서 옅은 자작나무향이 풍겨왔다.

석목은 코끝을 벌렁거리며 정신을 가다듬고 옥합을 보았다. 그 안에는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띠는 선초 한줄기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대나무 한 토막처럼 생겼는데, 그 위에는 두툼한 연두색 잎이 자라 있었고 표면에는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았다.

“요산선지초!”

석목의 표정이 활짝 폈다.

요산선지초가 생겼으니 이제 필요한 재료는 두 가지가 남았다.

“이건 제가 사겠습니다. 서 형, 가격은 얼마나 될까요?”

석목이 말했다.

일 각 후, 석목은 서원의 상점에서 나와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상점에서는 서원과 관사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가 석목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련님, 어째서 요산선지초를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넘기셨습니까? 그 물건은 구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라 연말 경매에 내놓아도 돈이 됩니다. 최소 세 배는 더 받을 수 있지요.”

중년 관사가 말했다.

그러자 서원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처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늘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장사는 결국 인맥 싸움이야. 석목 저 자는 잠재력이 어마어마해서 나중에 크게 될 사람이다. 아직은 도움이 필요한 단계인 만큼, 필요할 때 도와주면서 관계를 잘 다져야 한다. 급할 때 도움을 주는 거지.”

“그렇군요. 도련님 말씀이 맞습니다.”

중년 관사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더 말을 하지 않고 머리를 끄덕였다.

서원은 석목이 떠나간 쪽을 한번 보고 다시 상점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통류방 안쪽으로 들어가서 나머지 두 가지 재료를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규모가 꽤 큰 영재 상점을 거의 다 둘러보았는데도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석목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동부로 돌아왔다.

한 시진 후 석목이 막 동부에 도착할 즈음, 동부의 문 앞에서 뚱뚱한 사람 한 명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제풍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게 뭔가 매우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제풍은 석목이 오는 소리가 들리자 다급하게 머리를 들었고, 매우 기뻐하며 맞이했다.

“부주님, 드디어 오셨군요!”

“제풍, 무슨 일이냐?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지?”

석목이 물었다.

“방금 전에 들어온 소식인데, 지금 빨리 의사대전(议事大殿)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풍이 푸른색 전신부(传讯符)를 석목에게 건네었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그 전신부를 받아서 신식으로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성지의 현계 구역에 내린 소집령이었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어 제풍을 보낸 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성지 이 층에서는 수련에 방해가 될까봐 웬만하면 천년 제자들에게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히 소집령까지 내리다니,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석목은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일단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제풍을 불러 몇 가지 분부를 하고는 빠르게 현영탑 방향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현영탑 내에 있는 커다란 궁전의 문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석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오륙십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보아하니 그들은 전부 천년 제자였다.

그중에는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고, 서 있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 혼자 있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주변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해서 혼자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기운을 숨기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천위 무인 외에 일계술사도 여러 명 있었다.

석목은 입구에서 잠깐 멈칫하면서 재빨리 훑어본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현계 구역에 들어온 뒤로 계속 폐관 수련을 하거나 임무 수행을 위해 외출했던 터라, 천년 제자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 지금 대전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혼자 구석에 서 있었다.

청란성지는 원래 요족과 이족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고, 이 층 현계 구역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도 인족은 대여섯 명밖에 없었다.

석목은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다들 한두 번 보고는 다시 눈길을 돌렸다.

석목은 한쪽에 조용히 서서 대전 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이렇게 많은 천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처음 보았다.

천위 경지에 들어선 후 석목의 신식은 더욱 강력해져서 사람들의 실력을 훤히 꿰뚫을 수 있었다. 대부분 천위 초중기의 경지였고, 후기에 도달한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석목은 그 사람들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한 사람은 머리에 사슴뿔 한 쌍이 자라 있는 요족 청년이었고, 스무 살 정도로 보였다. 그는 네모난 얼굴에 굵직한 근육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유독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다. 키는 훤칠했고 두 눈은 희미했으며, 기이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풍기고 있었다. 일종의 영목신통을 수련한 것 같았다.

소년의 주위에는 여러 명의 천년 제자가 모여서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소년을 고 사제라고 부르는 걸 보니 그가 무리의 우두머리인 모양이었다.

마지막 한 명은 얼굴이 누런 청년이었다. 그는 등 뒤에 커다란 전도를 매고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검의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주변 삼 장 내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그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그들을 보는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경험으로 보아 이 세 사람은 엄청난 실력자였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서 눈 깜박할 사이에 반 시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대전으로 들어왔고, 석목이 도착했을 때보다 스무 명 정도는 늘어난 것 같았다.

그때 발소리가 들리더니 파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그러자 시끌벅적하던 대전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석목은 일전의 대결에서 그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청란성지 팔대 성계 호법 중 한 명인 악 호법이었다. 몇 년 만에 다시 보는 것이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고, 두 눈에서 맴도는 빛이 훨씬 짙어진 듯 보였다.

“좋아. 다 모인 것 같군.”

파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악 호법, 인사드립니다!”

사람들이 남자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됐다.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희를 소집하게 됐다.”

악 호법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아마 성역의 변방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공성(浮空城) 요새(要塞) 근처의 공간 결계가 누군가에 의해 파손됐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흑마성역의 흑마일족이 대거 침입하여 우리 미양성역을 쓸어버리려 하고 있다.”

악 호법의 목소리는 심각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안색이 다양하게 변했다. 대부분 낯빛이 어두워졌으며,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다.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몇 년 전 제풍이 그에게 흑마성역과 관련된 일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 역시 통류방과 성전각에서 그 일에 대해 알아봤던 기억이 났다.

흑마성역은 또 다른 성역이었다. 미양성역은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는 반면 흑마성역에는 단일 종족만 존재했는데, 그들을 흑마일족이라 했다.

흑마일족은 성격이 포악하고 전쟁을 좋아하며, 개개인의 실력도 상당했다. 그래서 요족이나 이족보다 훨씬 강한 종족이었다.

흑마성은 자원이 빈약한 곳이라, 흑마일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양성역을 넘보고 있었다.

그러나 흑마성역과 미양성역 사이에는 드넓은 성해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를 가로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일하게 두 성역을 연결하는 것은 불안정한 공간통로 한 개뿐이었다.

수만 년 전 두 성역이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삼대 성지의 강자들이 연합하여 두 성역을 연결하는 공간 통로를 절대 법력으로 봉인하면서 전쟁을 끝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그 봉인이 파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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