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화. 전쟁에 나가다
악 호법이 말했다.
“흑마일족이 반역자와 연합하여 봉인을 파괴하고 대거 침입해서, 전방에서는 지금 전쟁의 불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매우 긴급한 상황이다. 흑마일족은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왔고, 최근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우리가 밀리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두 성지에서도 이미 종문의 제자와 각 세력을 소집하여 전방으로 가고 있다. 우리 청란성지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며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쳤다.
미양성역과 흑마성역의 전쟁은 사사로운 다툼이 아니었다. 두 성역, 그리고 종족간의 전쟁이었다.
삼대 성지가 패하게 되면 미양성역의 모든 종파와 가문은 파멸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었다. 심지어 일반인이라 해도 봉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즉, 살아남으려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다만 전쟁에 나가는 것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는 달랐다. 예측할 수 없는 곳인 만큼, 천위의 실력자라 해도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번에 너희를 소집한 이유는 전방으로 가서 부공성 요새에서 주둔하며 흑마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다. 이것은 종문이 너희에게 내리는 임무다. 그러니 전원이 나가야 한다!”
악 호법이 두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말했다.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누군가 말을 꺼내려다 악 호법의 위엄 있는 표정을 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악 호법은 종문의 형벌을 집행하며, 매우 공정한 사람으로 제자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석목은 등에 검을 매고 있는 노란 얼굴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반짝이는 눈빛에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욕구가 숨어 있었다.
“이 임무의 위험성을 고려해서, 성지는 참전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포상을 내리기로 했다. 너희는 전방에서 단 십 년만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 그 뒤에 종문으로 돌아오면 한 사람당 일만 점의 현영점을 포상으로 지급하겠다. 그리고 전쟁에서 흑마일족을 격살할 경우에는 부공성 요새에서도 적지 않은 포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너희에게 단련을 위한 매우 좋은 기회도 될 것이다.”
악 호법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일만 점의 현영점이라는 포상은 굉장한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구전현공의 네 번째 단계 공법을 얻으려면 현영점이 이만 점은 필요했다. 이는 석목이 계속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십 년 동안 전방을 지키고 흑마일족을 죽이면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 공법을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그에게는 전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금 석목의 실력으로는 성계 경지의 존재와 맞닥뜨리지만 않는다면 문제는 없을 듯했다.
포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안색이 다시 바뀌었고, 대부분은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등 뒤에 장검을 매고 있는 청년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전방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너희는 내일 아침 일찍 그곳으로 향할 것이니 다들 이곳에 모이면 된다. 만약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자가 있다면, 수련 경지를 전부 박탈하고 성지에서 추방할 것이다!”
악 호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서 뼈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몰려와서 골수까지 시렸다.
“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도망가려던 사람들도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 것 같았다.
말을 마친 악 호법은 자리를 떠났다. 대전에 모였던 사람들도 다급하게 돌아갔다.
석목은 눈을 반짝였고, 그는 급할 것이 없었다. 영지의 일은 제풍 등 사람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전쟁에 나가기 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바로 등 뒤에 검을 매고 있는 노란 얼굴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걸음걸이가 매우 빨라서 그가 다가오자 사람들이 전부 길을 터주었다. 그러나 석목은 생각에 잠겨 있느라 뒤에서 사람이 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청년은 석목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속도를 줄이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두 사람이 몸이 스치면서 청년의 등 뒤에 있던 칼자루가 석목의 어깨와 부딪혔다.
툭!
가벼운 소리가 울리며 석목이 비틀거렸고, 노란 얼굴 청년의 몸도 휘청거렸다.
석목은 차가운 얼굴로 몸을 돌려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자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래, 천년 제자 중에 이런 사람도 있었군. 너는 나한테 찍혔다.”
청년이 석목을 바라보며 힘을 잔뜩 주고 말했다.
석목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노란 청년을 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청년의 눈에 분노가 번졌고, 옷자락이 펄럭이면서 살기 가득한 기운이 폭발했다. 그 바람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급하게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앞에서 걷고 있던 석목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청년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천천히 살기를 거두었다.
“그래, 좋아!”
그가 낮은 소리로 차갑게 웃더니 멀어져가는 석목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청년은 눈에서 살기를 뿜어내더니 이내 그 자리를 떠났다. 현영탑 안에서는 싸울 수 없기에, 그도 이곳에서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또 석목이 그의 살기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청년 역시 석목을 가볍게 보지 못했다. 그는 싸움을 좋아하긴 해도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대전에 모인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노란 얼굴의 청년은 천년 제자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물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석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석목이 누구인지에 대해 서로 물어보기 시작했고, 곧 석목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천년 제자 사이에서 떠돌았다.
“몇 년 전 백년 제자 한 명이 환마도를 통과해 천년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자였군.”
천위 후기 경지에 있는 고 씨 소년이 중얼거렸다.
“웅도(熊屠)는 앙심을 잘 품기로 유명해서, 사사로운 일에도 반드시 복수를 하는 사람입니다. 석목이라는 사람이 주제 파악을 못하고 그의 미움을 산 거죠. 전쟁에 나가면 웅도는 어떻게 해서든 보복하려고 할 것입니다.”
고씨 소년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그래…….”
고 씨 소년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그는 입 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한쪽에 있는 사슴뿔 청년도 멀어져가는 석목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도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 * *
석목은 대전을 떠나면서 방금 전의 충돌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노란 얼굴의 청년은 실력이 상당했지만, 석목 역시 천위에 들어선 후 실력이 크게 상승했기에 별다른 두려움이 없었다.
대전을 나온 석목은 성전각으로 들어가서 어느 석대를 찾았다.
그곳에 있는 책들은 전부 흑마일족에 관한 것이었다. 예전에도 가끔 읽어본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크게 집중해서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장 내일 전쟁에 나가야 하니 벼락치기로 공부를 할 필요가 있었다.
석목은 책 한 권을 꺼내들고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책을 읽었고, 그 결과 흑마일족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흑마족의 이름에 마(魔) 자가 들어가는 것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흑마일족은 마공(魔功)을 수련하여 음궤사술(阴诡邪术)에 능통했다.
그렇다고 흑마일족을 이길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책에는 흑마일족의 마공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해서도 나열되어 있었다.
석목은 책을 내려놓고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통류방으로 가서 많은 물건을 구입했다.
특히 그는 단약 외에도 빈 부적을 잔뜩 사들였다. 부적은 이미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에 나가야 하니 많을수록 좋았다.
한 시진 후, 석목은 동부로 돌아와서 제풍 등 사람들을 불렀다. 그리고 곧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영지의 일들을 맡겼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공손하게 명을 받들었다.
석목은 사람들을 물린 뒤 비밀 석실로 들어가서 빈 부적과 법묵(法墨) 등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움직이지 않고 먼 산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부공성 요새, 그곳에서는 또 무슨 일들이 생길까……”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마음은 기대로 충만해 있었다.
이어서 석목은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버렸고, 부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 * *
하룻밤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튿날 떠나기 전, 석목은 제풍에게 조극과 능풍 등을 몰래 주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혼자 현영탑으로 날아갔다.
대전에 들어선 석목은 깜짝 놀랐다.
대전 안에는 수백 명이 있었는데, 어제 만났던 천년 제자들 외에도 오륙백 명은 더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지계의 경지였다.
석목이 자세히 관찰해보니 일부는 성지의 백년 제자들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성지 부속 행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도 전쟁에 나가는 건가?’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대전 한쪽에 서 있었다.
그때 반가움에 가득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 사형!”
석목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매부리코의 남자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청장천이었다.
“청 사형.”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청장천은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부러워하는 말투로 말했다.
“석 사형, 정말 천위 경지에 진입했군요. 너무나 부럽습니다.”
“청 사형의 수련 경지도 빠르게 늘고 있지 않습니까. 참, 여기 계신 걸 보니 혹시 종문의 소집에 의해 온 것인가요?”
석목이 화두를 돌리며 물었다.
“허허, 그건 아닙니다. 백년 제자의 참전은 강제는 아닙니다. 다만 전쟁에 나가면 적잖은 포상을 받을 수 있고, 그간의 대결과 다른 임무도 면제해주는 한편 순위는 그대로 유지시켜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도 이번 기회에 전쟁에 나가 단련을 좀 하려고 합니다. 종문에서 조용히 수련만 하다가는 오십 년이 지나도 천위 경지에 들어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속으로 청장천의 말에 공감했다.
그 역시 위험을 겪으며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순조롭게 수련 경지를 높일 수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일 각이 지나자 대전에 모인 사람은 천 명 가까이 되었다.
곧이어 악 호법이 대전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러자 좌중은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악 호법은 대전 안을 빠르게 훑어보았고, 그 순간 석목은 깜짝 놀랐다,
그는 그저 대충 훑어보는 것 같았지만, 번개처럼 천년 제자들을 일일이 살폈다. 가장 구석에 있었던 석목마저 그의 시선에 포착됐다.
악 호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내뱉었다.
“좋아.”
석목은 악 호법의 신통에 경외감을 느꼈다. 아무렇지 않게 둘러보았을 뿐이지만 천 명 중 백 명은 살펴본 듯했다.
“가자. 다들 나를 따라오거라.”
악 호법은 그렇게 말하며 대전 밖으로 나가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천년 제자들을 필두로 그 뒤를 따라갔다.
반 시진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세등등하게 종문의 전송 대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악 호법은 주 전송진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편전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사람들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편전 중앙의 바닥에는 커다란 전송 법진이 있었는데, 크기가 이백 장 정도는 되어보였다. 그것에는 금색 줄로 수많은 진법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그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송 법진을 보았지만 이렇게 커다란 진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