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78화 (478/916)

478화. 흑마일족 (1)

커다란 법진에서는 금빛이 뿜어져 나와서 금색 빛기둥이 되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법진 주변에는 영문이 새겨진 법복을 입은 아홉 명의 일계술사가 있었다. 바로 진법대사였다.

그들은 전부 강력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며 입으로 무엇인가를 외우고 있었다. 동시에 손을 흔들어서 커다란 대진 안으로 법결을 보내며 진법을 운행하는 중이었다.

그곳에는 아홉 명의 진법대사 말고도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있었고, 그는 방대한 기운을 풍기는 성계의 존재였다.

“악 호법, 왔구나.”

노인은 악 호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殷) 장로님, 준비는 잘 됐는지요?”

악 호법이 금색의 전송 법진을 보며 물었다.

“이미 다 준비되었다.”

은 장로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악 호법은 머리를 끄덕이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모두 진법의 범위 안으로 들어가라. 잠시 후 이 진법이 너희를 전방 근처로 보낼 것이다.”

석목 등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전부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

진법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석목은 가슴이 뜨끔했다. 주변의 공기가 끈적끈적하게 변한 게 마치 액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전송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도중에 공간의 충격이 꽤 클 것이다.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해라”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자 악 호법이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은 장로가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진법 주위에 서 있던 아홉 명의 진법대사도 두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금색 진법이 뿜어내고 있던 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진법의 부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액체처럼 부문을 따라 흘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법의 모든 부문이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전송 법진이 윙윙거리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묵직한 소리가 점점 퍼지더니 대전 주위의 허공에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큰 진동을 만들어냈다.

진법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전부 하얗게 질렸다.

주변의 허공에서 강한 압력이 몰려왔고, 공력이 약한 사람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온 힘을 다해 그걸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석목은 몸이 매우 단단했기에 이 정도의 압력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금색 법진은 점점 빠르게 움직였고, 마치 대전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손을 흔들자 투명한 빛이 뻗어나와 진법으로 스며들었다.

윙!

진법 속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더니 석목 등 사람들의 몸을 감쌌다.

곧 빛이 반짝이더니 수백 명의 사람이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몇 년 사이에 제자들을 보낸 게 여덟 번째로군.”

은 장로가 팔을 거두더니 말했다.

악 호법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눈앞이 캄캄해지고 발밑이 텅 빈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그는 칠흑 같은 공간에 놓여 있었다.

이곳은 하늘도 보이지 않고 땅도 없었다.

허공에서 무형의 힘이 그의 몸을 당기는 게 느껴졌다. 몸이 매우 단단한 석목도 간신히 그 힘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공법을 시전해서 그 힘을 막아냈다.

검은 공간에서 기류가 흐르면서, 석목은 엄청난 무력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거센 바람 속에 놓인 나뭇잎 한 장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을 맡겨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한순간인 것 같기도 했고, 며칠이나 지난 것 같기도 했다.

문득 눈앞의 캄캄한 공간에 한줄기 틈이 생겼다. 이어 눈부신 빛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고, 틈이 순식간에 양쪽으로 찢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도 하기 전에 석목의 몸이 갑자기 가벼워졌고, 칠흑 같은 공간에서 벗어나 끝없는 세계로 던져졌다.

쿵!

그의 몸이 황량한 땅 위에 무겁게 떨어졌다.

다행히 그의 반응은 빨랐고, 몸을 돌려서 마지막 순간에 두 발로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뒤로 몇 걸음 밀려가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아서 넘어지는 걸 면할 수 있었다.

쿵! 쿵!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석목이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니 수백 명이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석목과는 달리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땅에 떨어졌다. 간신히 서 있는 사람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고, 석목처럼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은 천위 후기 경지의 세 사람뿐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어서 석목을 힐끗 보았다.

고 씨 소년은 석목을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 표정이 퍽 온화했기에 석목도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슴뿔 청년은 석목을 바라보더니 이내 눈길을 돌렸다. 그의 표정은 매우 차가웠다.

노란 머리의 청년은 석목을 어두운 눈빛으로 보았는데, 적의와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석목을 보고 도발이라도 하는 듯 입술을 혀로 훑었다.

석목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만약 전장에서 그 청년이 자신을 해치려는 마음을 보인다면, 절대로 가볍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석목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커다란 법진 위에 놓여 있었는데, 편전의 금색 법진보다 큰 것 같았다.

법진 주위에는 굵직한 검은 돌기둥이 십여 개 있었는데, 그 위에는 현묘한 진법 부문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땅 위에도 부문이 빼곡했다. 그 편전의 금색 법진 보다 더 커보였다.

돌기둥 위에는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몸에서 풍기는 법력의 파동과 옷차림을 보니 청란성지의 진법대사 같았다.

커다란 진법 근처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곳이 거점인 것 같았다.

‘이곳이 전방이라고?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

석목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주변의 땅은 온통 누런색이라 사람들은 황토색 별 위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전쟁의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제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 즈음 땅 위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도 점점 깨어나기 시작했다. 수염 사나이는 재촉하지 않고 사람들이 전부 일어서자 그제야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이 거점을 책임지고 있는 팽창(彭仓)입니다. 성역의 경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팽 사형, 이곳은 전방인가요? 악 호법이 말씀하신 부공성 요새는 어디에 있습니까?”

고 씨 소년이 앞으로 나서서 손을 모으며 물었다.

“이곳은 아직 최전선이 아닙니다. 부공성 요새로 가려면 며칠 더 가야 합니다. 이곳은 전쟁터 후방의 한 거점이지요. 곧 전함을 마련하여 제자들을 부공성으로 보낼 것입니다. 모두 저를 따라오십시오.”

수염 사나이가 말하며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급하게 뒤를 따라갔다.

“팽 사형, 종문은 왜 우리를 직접 부공성 요새로 보내지 않았나요?”

고 씨 소년이 남자의 뒤에서 물었다.

수염 사나이는 겉보기에는 평범해보였지만, 청란성지의 천년 제자 옷을 입고 수련 경지는 천위 정상에 이르러 있었다. 고 씨 소년보다 몇 단계 더 높은 경지였다.

“부공성 요새는 공간의 통로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곳은 공간 진동이 너무 강해서 온전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전송진을 그곳에 설치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수염 남자의 말에 고 씨 소년은 머리를 끄덕였다.

석목은 무리의 뒤편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선천적으로 공간의 힘에 대한 감응력이 높았다. 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공간의 힘을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 공간의 통로는 두 성역을 연결하고 있었는데, 그 주변의 파동은 공간의 힘에 의해 전송되는 전송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잠시 후 일행은 거점의 드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백 장 정도 되는 배가 한 척 놓여 있었는데, 선체는 은색을 띠고 있는 커다란 비행선이었다.

하지만 이 배는 평범한 비행선과는 확연히 달랐다. 앙상한 유선형에 선체에는 수없이 많은 현묘한 영문이 새겨져 있었고, 뱃머리에는 커다란 반달 모양의 그림이 있었다. 양쪽과 앞쪽에는 거무칙칙한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석목이 눈앞의 배를 자세히 바라보다가 그곳에서 풍기는 법력의 파동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이 배는 마치 흉수가 누워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흉수가 깨어나면 무서운 살육의 괴수가 될 것 같았다.

석목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백원왕의 꿈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꿈에서 금색의 커다란 원숭이는 다른 수많은 원숭이와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전함들과 싸웠다.

눈앞에 있는 이 비행선은 그 전함들과 상당히 비슷했다. 다만 기세와 규모는 꿈속에서 본 전함에 미치지 못했다.

“팽 사형, 이 배가 전함이라는 말씀입니까? 전함이라는 건 또 무엇인가요?”

한 천위 제자가 수염 남자를 향해 물었다.

“전함이라는 것은 천위 경지 이상인 삼대 성지의 연기대사가 설계한 전투용 법물입니다. 주로 전쟁에서 사용되며, 삼대 성지가 연합하여 흑마일족과 싸우기 위한 주요 무기지요. 이것은 은월전함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전방에서 흑마일족과 싸우다 보면 이 배를 자주 보게 될 것입니다.”

수염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거대한 전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는 동경의 기색이 어렸다.

“그럼 저쪽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갑시다. 다들 올라타십시오.”

수염 남자가 말하며 먼저 날아가서 배에 올라탔다. 사람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모든 사람이 배에 올라타자 은색 전함의 표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선체가 천천히 날아올라서 허공에 도달했다.

선체는 빛을 뿜어내더니 은색 무지개가 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서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갔고, 모든 것이 곧 희미해졌다.

석목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전함은 천 명의 인원을 싣고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영우비차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잠시 후 은색 전함은 심하게 흔들리더니, 황토 행성의 중력에서 벗어나서 끝없이 넓은 칠흑의 하늘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배는 가속을 시작했고, 은색의 빛줄기로 변하여 날아갔다.

선체에는 은색 빛의 막이 드리워졌는데, 사람들은 그 속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빛의 막 바깥은 끝없이 펼쳐진 별의 바다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황토색 별은 노란 공으로 변하며 천천히 작아졌다.

전함에 탄 사람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신기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넋 놓고 감상하고 있었다.

석목도 빛의 막 바깥에 펼쳐진 끝없는 별의 바다를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잠시 뒤 구석으로 가서 선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수염 남자가 며칠은 가야 한다고 했으니 도착까지는 아직 멀었다. 방금 전의 전송으로 인해 몸속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생겼으니, 이 틈에 회복을 해야 했다. 전정터에서 싸우려면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은색 전함은 별의 바다에서 묵직하게 앞으로 향했고, 조금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비밀 석실에 있는 것처럼 수련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