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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79화 (479/916)

479화. 흑마일족 (2)

시간이 조금씩 흘러서 눈 깜박할 사이에 이틀이나 지나갔다.

석목은 전함의 갑판으로 나가서 앞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함의 앞쪽과 주변에 커다란 운석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체가 앞으로 가면 갈수록 운석들은 점점 커졌다. 어떤 것은 수십 리는 되는 크기였고, 마치 별의 조각들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이 별의 조각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움직이기라도 했다면 전함은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부공성 요새 근처에 와 있습니다. 머지 않아 도착합니다.”

수염 남자가 말했다.

전함 위의 사람들은 수련을 멈추고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팽 사형, 이곳의 환경은 정말 특별한 것 같습니다. 하늘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고 씨 소년이 말했다.

“이곳은 지난번 우리 미양성역과 흑마성역이 전쟁을 치렀던 곳입니다. 원래 커다란 행성이 몇 개 있었는데, 격전 도중에 산산이 부서졌지요. 그 뒤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수염 남자가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서 찬바람만 들이켰다.

전함이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자 앞쪽에서 갑자기 살벌한 고함소리와 굉음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표정이 굳어지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커다란 별의 조각이 있었는데, 크기가 수백 리나 되어서 작은 육지 같았다.

그 위에서 양측 사람들이 격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양쪽이 각자 수천 명씩은 되는 것 같았다.

둘 중 한쪽은 삼대 성지 연합이었는데, 수십 척의 거대한 전함이 있었다. 대부분은 석목 일행이 타고 있는 것과 같은 은월전함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는 금색 전함도 두 척 있었다. 금색 전함은 선체의 앞부분에 금색 태양의 표시가 있었고 은월 전함보다 훨씬 컸다.

다른 한쪽은 검은 옷을 입은 이족이었다. 전부 체격이 떡 벌어지고 키가 컸는데, 검은 빛과 기운을 짙게 뿜어내며 먹구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염 남자는 그 광경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아직 연합의 후방인데, 흑마일족이 벌써 이곳까지 밀고 들어오다니!”

석목은 그의 말을 듣고는 눈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먼 곳에 있는 전쟁터를 바라보았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흑마일족이구나…….’

전함과 전쟁터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석목은 영목신통으로 그들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흑마일족의 겉모습은 인족이나 요족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체구가 상당히 컸고 노출된 피부에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일종의 마문(魔纹) 같았다. 그들이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주변에 검은 빛과 검은 기운이 번졌다.

양측의 싸움은 치열했으며 사상자가 난무하고 있었다. 수많은 법력의 빛이 교차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고,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격전지의 최전선에서는 사람이 빛에 관통되어 몸통이 터지며 피안개로 변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여러 토막으로 잘린 사지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성지 연합 쪽에서는 전함 십여 척이 한 줄로 서서 금색과 은색의 두 가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전선의 앞쪽과 양측의 구멍에서는 수시로 커다란 빛기둥이 뿜어져 나와서 흑마일족의 먹구름 위를 가로질렀다.

빛기둥의 위력은 엄청나서, 한 번 나타날 때마다 흑마일족 사람들이 연기로 변하며 사라졌다. 특히 두 척의 금색 전함은 굵은 금빛을 뿜어내서 흑마일족의 먹구름에 구멍을 뚫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흑마일족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용돌이치는 검은 구름이 검은 화염을 만들어냈고, 하늘을 뒤덮으며 성지 연합세력을 공격했다.

검은 화염은 매우 기이했다. 그것에 닿게 되면 영기와 법보들의 빛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무인이나 술사가 두르고 있는 보호막도 잠깐 사이에 먼지로 변해 사라져버렸다.

다만 검은 화염을 수십 번 연속으로 뿜어내고 나자, 먹구름은 크기가 줄어들면서 화염의 발사를 멈추었다.

하지만 성지 연합의 전함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굵은 빛기둥을 뿜어냈다. 승리의 여신은 점차 성지 연합의 손을 들어주려 하는 듯했다.

석목 일행은 피비린내가 풍기는 전투의 현장을 목격하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팽 사형, 저희가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고 씨 소년이 물었다.

양측은 전력은 엇비슷했다. 성지 연합의 인원수가 많기는 했지만 대부분 지계 경지였고, 천위는 이백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백 명 가까이 되는 천위의 무인이 가세한다면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었다.

“허! 고 사제, 정말 용맹하군요. 하지만 이곳은 당신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됩니다. 흐름을 보니 이미 승리를 눈앞에 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부공성 요새에 진입해야 합니다.”

수염 사나이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그러자 고 씨 소년은 입을 다물고 더 말하지 않았다.

은색 전함은 격전지를 우회해서 계속 앞으로 날아갔다. 전투 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곧 완전히 사라졌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별 하늘의 육지 조각은 점점 커졌다. 어떤 것은 수십 리나 되었고, 개중에는 수만 리나 되는 것도 있었다.

또 녹색 식목이 자라 있는 곳이 나타나는가 하면, 산천과 하천이 나오기도 했다. 꽃과 풀, 짐승도 있었는데, 평범한 육지와 별다를 바가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반나절이 지나자 웅장한 기세의 부공성 요새가 드디어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요새는 면적이 매우 넓은 육지 조각 위에 서 있었는데, 눈대중으로 봐도 크기가 수천 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전함처럼 허공에 누워 있었고, 조각 전체는 무형의 타원형 빛의 막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빛의 막을 통해 요새 속의 각종 건물이 보였다. 비차의 빛들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녔고, 진법의 빛도 가득해서 매우 정신이 없어 보였다. 요새에는 각종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고, 곳곳에서 전함들이 오르내렸다.

모든 것은 매우 산만해 보이면서도 질서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석목도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흑마일족에 맞서 싸우기 위해 삼대 성지가 연합, 이 정도 규모의 주거지를 설립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 수염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자 여러분, 이곳이 부공성 요새입니다.”

잠시 후, 전함은 커다란 항구에 멈추었다.

전함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은색 갑옷을 입은 남자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부채형 광장에 모였다.

광장에는 이미 이백 명 가까이 되는 각 종족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지런하게 줄을 선 채 대열의 가장 앞쪽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푸른 옷을 입고 머리에 은색 외뿔이 있는 백발의 요족 노인이었다. 그는 뒷짐을 지고 서서 석목 등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목 일행이 대오에 합류하자 은색 갑옷을 입은 청년이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백발 노인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매우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말했다.

“독고 장로님께 보고 드립니다. 마지막 제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청란성지에서 왔으며 총 구백이십일 명이고, 그중 천위 무인이 구십칠 명, 지계 무인이 팔백이십사 명입니다.”

백발 노인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리고 담백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순간 노인에게서 무형의 기운이 퍼져 나왔다. 엄청나게 강한 기운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조금도 거역할 수 없는 힘이었다.

‘성계의 존재!’

석목의 동공이 축소되면서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한순간에 현장은 엄숙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바늘이 떨어져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백발노인은 흡족해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독고천(独孤川)이다. 이곳의 당직 장로로 요새의 모든 사무를 총괄한다. 아마도 다들 오기 전에 들었을 테지만, 흑마일족이 기세등등하게 침공해서 우리 성역의 생명을 학살하고 자원을 갈취하려 한다. 우리는 미양성역 삼대 성지에서 모인 걸출한 인재들인 만큼, 당연히 적을 막아서 성역을 수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중에는 분명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서 종문에서 대접받으며 자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교만한 마음을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주의 후예라 해도 이곳에서는 성지 연합의 명령을 엄격하게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벌에 처해지게 될 것이고, 도망가는 자에게는 죽음뿐이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독고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갑자기 변했다. 강렬한 살기와 피비린내가 제자들을 향해 휘몰아쳤다. 사람들은 갑자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적잖은 제자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석목은 이미 오랜 세월 산전수전 다 겪어왔고, 환마도에서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는 피바다도 경험했다. 그래서 이런 매서운 기운이라 해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요새에 들어오면 종문의 영패는 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지 연합에서 일괄적으로 발급하는 전맹령(战盟令)이 하나씩 주어진다. 이 영패는 너희가 앞으로 요새에서 사용하게 될 신분 증명이다. 앞으로 임무가 생길 때마다 이 물건을 통해 소식을 전할 것이며, 임무를 완수했을 시 공훈 또한 이곳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우선 등록부터 해야 한다.”

독고천은 계속해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곧이어 은색 갑옷을 입은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저마다 긴 줄무늬 옥간으로 엮은 옥책 한 권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옥필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사람들의 신상을 등록하는 동안, 독고천은 뒷짐을 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석목은 자신에게 주어진 옥책을 보더니 손에서 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손끝에서 피 한 방울을 짜내 옥책에 떨구었다.

그러자 옥책 속의 옥간 한 개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그 위에 석목의 이름과 수련 경지가 나타났다.

은색 갑옷을 입은 남자는 손바닥만 한 영패를 꺼내 석목에게 건넸다. 지계 제자들이 받은 은색의 영패와 달리, 석목을 포함한 천위 제자들은 금색 영패를 들고 있었다.

석목은 손에 들린 영패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금색이었지만 금속은 아니었고, 재질이 돌 같기도 했고 옥 같기도 한 것이 매우 부드러웠다. 그 속에는 영력이 감돌고 있었다.

영패의 정면은 세 개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 한 개는 청란성지를 대표하는 푸른 잎이었다. 뒷면에는 숫자와 함께 석목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317021이 석목의 번호였다.

사람들 사이를 오가던 은색 갑옷 남자들이 물러나자 독고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영패 위의 숫자는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곳의 번호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이제 광장 서쪽의 주영산(驻营山)에 가서 자신의 임시 동부로 가면 된다. 오늘 하루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터라 궁금한 게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몰라서 한동안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독고천은 명을 내려서 모두 흩어지게 했다.

광장에는 순식간에 빛이 밝혀졌고, 수천 개의 비행 영기들이 모여 하늘을 오색으로 수놓았다.

석목은 하늘을 한참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어 영우비차를 불렀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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