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80화 (480/916)

480화. 전쟁 준비

시간이 흘러 석목은 커다란 산봉우리 앞에 도착했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 밑에는 커다란 금색 부문 고리가 빛을 뿜고 있었는데, 마치 무형의 힘이 받쳐 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위에는 나무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임시로 만들어진 동부는 바로 그 안에 흩어져 있었다.

산봉우리 밖은 물결 같은 부드러운 빛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위에서는 영력의 파동이 간간이 밀려왔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방어성 금제 법진이었다.

부공성 요새는 외부에 있는 빛의 막 외에도, 중요한 곳에는 전부 이런 종류의 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석목은 손에 신분을 나타내는 금색 영패를 쥐고 있었는데,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서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았다.

영패 위에서는 빛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는데, 곧 작은 부문 진법 하나가 나타났다.

석목은 빛의 막 앞에 다가가서 손에 든 영패를 가져다 대고, 빛의 막을 뚫고 산봉우리 위로 내려갔다.

산중턱까지 내려온 석목은 동부의 번호를 확인했다. 그가 있는 곳은 일만팔천 호 근처였고, 위로 갈수록 번호가 높아졌다. 그의 동부는 중턱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석목은 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허공으로 올라갔고, 산봉우리 방향으로 날아가려 했다.

그때 밑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석 사형.”

석목이 아래를 바라보니 청장천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그와 비슷하게 마른 몸에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허공에서 내려와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하하, 석 사형은 너무 빠르십니다. 조금 전 광장에서부터 부르려고 했는데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졌지 뭡니까.”

청장천이 말했다.

“청 사형, 무슨 일이라도?”

석목이 물었다.

“이 사람은 우리 가문의 형님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깝게 지냈고, 부공성 요새에서 십 칠년 동안 있었습니다. 제가 성지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니 소개시켜달라고 해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청장천이 옆에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남자는 청장천과 매우 닮아 있었다. 똑같이 매부리코에 광대가 높았고, 얼굴이 흰 편이었다. 다만 그가 풍기는 기운은 청장천보다 더 차분했으며, 천위 경지의 무인이었다.

“저는 청훤(青煊)이라고 합니다. 성지에서 제 아우를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가 공손하게 말했다.

석목은 상대방의 말투에서 자신과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석목도 이 부공성 요새는 처음이라 궁금한 점도 많았기에 마침 잘됐다 싶어서, 손을 모으며 인사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제가 잘 부탁합니다.”

세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산길을 따라 걸으며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청훤 사형, 방금 전 전함을 타고 이곳으로 오면서 치열한 전투 현장을 봤습니다. 우리처럼 처음 온 제자들은 보통 어떤 임무를 맡게 되나요?”

석목이 물었다.

“최근 흑마일족은 확실히 빈번하게 공격을 취하고 있습니다. 보름 사이에 이미 세 차례나 대규모 전투를 치렀죠. 다만 제 경험상 오늘 전투가 끝나면 서로 회복하는 시기를 가질 것입니다. 짧은 시일 내에 대대적인 전투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청훤이 말했다.

“이 산에 임시 동부가 십만 개는 넘는 것 같은데, 혹시 전부 이곳에 머무르는 제자들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만 삼대 성지와 기타 부속 행성 세력의 제자입니다. 총 이만 명 정도 되지요. 그중 천위 무인이나 일계술사는 이 할 정도이고, 나머지는 전부 중소 세력인데 대부분 지계 무인이나 월계술사입니다. 그밖에 성지 연합군은 전부 요족과 이족이 주를 이루고 있고, 석 사제 같은 인족은 많지 않습니다.”

청훤이 말했다.

“성역에는 다양한 종족이 즐비하지만 선천적으로 인족은 열세에 있는 만큼, 그 수가 적은 것은 예상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인족은 그 수는 적지만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모두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만 해도 전부 소대장이거나,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지요. 그들 모두 대단한 공을 세웠습니다.”

청훤이 계속 설명했다.

“소대장이요?”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허허, 내일 자세한 임무를 받게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부공성 요새에는 성계의 존재가 소수 주둔하고 있고, 기타 지계 제자들은 전부 작은 소대로 구성되어 움직입니다. 서너 명에서 십여 명까지 다양한 인원으로 조를 이루고, 천위 또는 일계술사가 소대장을 맡아서 성지 연합에서 지시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임무의 위험 여부를 떠나 그 임무를 맡은 소대는 반드시 철저하게 수행해야 하며, 어떠한 이유로든 회피할 수 없습니다. 제멋대로 임무를 포기하거나 거부하면 탈영병으로 처리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탈영병은 수련 경지를 박탈당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청훤이 말했다.

“그런 엄격한 규정에 대해서는 저도 전에 조금 전해 들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성지의 윗분이 포상이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혹시 그것에 대해서도 아시는지요?”

석목이 물었다,

“위험과 기회는 공존하는 법이지요. 이곳에서 잘 버티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포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풍부한 실전 경험과 임무의 난이도에 따라, 그리고 흑마족을 죽인 수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공훈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것으로 각종 보물을 얻을 수도 있지요.

물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현영점도 포함됩니다. 예를 들면 지계 흑마족 한 명을 죽일 때마다 일 점의 공훈을 받게 되는데, 그걸 현영점 십 점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천위 초기를 죽이게 되면 십 점의 공훈을 받고, 천위 후기의 경우 백 점까지 받게 됩니다.”

청훤이 말했다.

“그렇게나 많습니까?”

석목과 청장천은 동시에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눈을 반짝였다.

“허허, 너무 좋아하지는 마십시오. 흑마족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초반에는 최대한 이곳 환경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청훤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공훈 점수를 바꿀 수 있는 삼성전, 각종 임무를 발표하는 구봉전, 그리고 거래하는 시장 등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자신의 동부로 돌아갔다.

석목은 몇 걸음 걷다가 이내 몸을 돌려 영우비차를 불러냈다. 그리고 요새의 중심을 향해 날아갔다.

얼마 날지 않아서 그의 눈앞이 밝아지더니 아래에 밀첨탑(密檐塔)식 건물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반짝이는 금색 빛의 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빛의 막 위에는 수십 갈래의 고리형 금색 부문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건물은 성지 연합 전체의 총본부였다. 그 속에서는 강한 영력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금빛 찬란한 이 건물의 양쪽에는 똑같이 생긴 대전이 하나씩 있었다. 왼쪽 대전 밖에는 자색 빛의 막이 드리워져 있었고, 오른쪽 대전에는 푸른빛의 막이 있었다.

석목은 비차를 타고 아래로 향했다. 그의 손에 든 영패에서 금빛이 반짝였고,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색 빛의 막 안으로 들어와 대전 앞에 내려섰다.

석목은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검은색 편액이 걸려 있었고 성성전이라는 금색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영우비차를 거두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대전은 매우 넓었고 아무런 장식도 없었으며, 중앙과 양쪽에 하얀 백옥 비석이 각각 세워져 있었다. 비석 위에서는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촘촘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대전의 깊은 곳에는 탁자 한 개가 놓여 있었고, 그 뒤에는 인족처럼 생긴 노인이 하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아마도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장로 같았다.

그 사람은 석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을 지켜 떴다. 그러다니 다시 눈을 감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대전에는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드넓은 대전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석목은 노인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따로 인사를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왼쪽의 비석으로 다가가서 내용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중간 비석으로 가서 한참을 바라보았고, 그러고 난 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비석으로 갔다.

한참을 읽어내려가던 석목은 이 백옥 비석에 기록된 것은 전부 공법과 비술, 영기, 영단, 영재 등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만 희소한 영재의 교환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적었다.

하지만 공법이나 비술, 영기와 단약을 바꾸려면 백 점이 넘는 공훈점이 필요했다. 심지어 천 점 이상이 필요한 것도 있었다.

청훤이 말한 포상에 따르면 이 가격은 매우 비싼 편이었다. 그러니 대전이 텅텅 비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석의 끝까지 읽었을 때, 석목의 눈이 빛났다. 그의 미간 사이에 기쁨의 기색이 잔뜩 어려 있었다.

‘자경타나과!’

분신을 수련하기 위해 필요한 사대 영재 중 하나가 교환 명부에 있었다.

그러나 기쁨이 가득했던 석목의 얼굴은 곧 어두워졌다.

‘공훈점 육백칠십 점…….’

이 자경타나과를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산해보니 최소 여섯 명의 천위 후기 무인을 죽여야 했다.

석목은 기쁨 반 걱정 반의 마음을 안고 대전에서 나왔다. 이어 총전의 다른 한쪽에 있는 푸른 대전을 바라보았지만, 그곳까지는 가보지 않기로 했다. 그는 영우비차를 불러 주영산맥 방향으로 날아갔다.

반 각 후, 석목은 주영산 봉우리를 지나서 그 뒤에 있는 광장에 내려섰다.

그가 막 착지했을 때 시끌벅적한 소리와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삼성전의 휑한 분위기와 달리, 이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드넓은 광장에는 노점들이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모포를 하나씩 깔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석목은 노점 사이의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며 자신이 필요한 게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반 시진 정도 걷고 나자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쟁 중이라 그런지 이곳에는 매우 많은 물건이 있었다. 그러나 품질은 제각각이었고 매우 조잡했다. 섣불리 물건을 샀다가는 사기를 당할 게 뻔했다.

방금 전만 해도 누군가가 질이 나빠서 거의 사용할 수 없는 유명의 기운을 두 병 샀는데, 최상급 영석을 수백 개나 지불했다.

“사형, 처음 보는 분 같은데 혹시 최근에 요새에 오신건가요? 들러보십시오. 이곳에 좋은 방어 영기인 은린흉갑(银鳞胸甲)이 있습니다. 최상급 영석 오백 개에 드립니다.”

쥐처럼 생긴 푸른 피부의 남자가 석목을 보더니 친절하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석목은 그를 보지도 않고 계속 걸어갔다.

“아이고……. 가격은 흥정할 수 있습니다. 사형…….”

푸른 피부의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그의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때 석목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늘 조용히 있던 그의 의식 속의 번천곤이 갑자기 흔들렸다. 보이지 않는 영력의 파동이 곤봉에서 흘러나왔다.

석목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서 노점을 바라보았다. 누추한 모포 위에 은색의 갑옷 여러 벌, 그리고 사람 머리 크기만 한 어두운 금색 돌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번천곤이 파동을 일으킨 이유는 흔하디흔해 보이는 그 돌덩어리 때문이었다.

석목은 그곳으로 다가가서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돌을 만져보았다.

초록 피부의 남자는 석목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며 말했다.

“사형, 이 은린흉갑은 상급 영기입니다. 술법에 대항하는 다양한 수단이 봉인되어 있지요. 한 벌 사시겠습니까? 싸게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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