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화. 삼대 성지
“이 돌은 재질이 좋아 보이는군. 망치 따위를 만드는 데도 적합할 것 같고.”
석목은 일부러 초록색 남자를 거들떠보지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이 아무런 영기도 없는 돌덩어리에 관심을 가지자 남자는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초록 피부의 남자는 다시 친절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
“망치 따위를 만든다고요? 사형, 이 돌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
석목이 모르는 척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초록 피부 남자의 얼굴에 교활한 기색이 스쳤다.
“이것은 오령금석(乌灵金石)입니다. 상급 또는 최상급 영기를 제련하는 데 쓰이는 고급 영재이지요. 사형, 아주 잘 보셨습니다. 단번에 이 오령금석을 알아보다니요. 이것도 인연이니 좋은 가격에 드리지요. 그러니까…… 최상급 영석 백 개만 받겠습니다.”
물론 석목은 그 말에 속지 않았다. 오령금석은 광택이 선명하고 물결 모양의 무늬가 분포되어 있었다. 이렇게 촌스러운 모양의 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초록 피부 남자의 말을 들은 석목은 그 역시 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머릿속으로 계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돌은 확실히 오령금석 같네요. 다만 색이 너무 좋지 못합니다. 순수하지 않고 어두운데, 이걸로 높은 경지의 영기를 만든다고? 거짓말도 적당히 하셔야지요.”
석목은 안색이 굳어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오령금석은 원래 이렇게 생겼습니다. 사형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석목이 그 돌을 정말 오령금석으로 여긴다고 생각한 남자는 기분이 좋아져서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보는 눈이 없다고 해도 속이려 하면 안 됩니다. 오령금석은 광택으로 등급을 나누지요. 색이 선명할수록 순수한 것이고 가격도 그만큼 비싸집니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최상급 영석 백 개를 달라니요?”
석목이 못마땅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이 돌은 초록 피부의 남자가 유람하다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평범한 돌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것 같아서 주워왔다. 그는 잘 알고 지내는 연기대사들을 찾아가서 감정해보았지만, 이것이 무슨 돌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이 돌은 영기도 없어서 가게에 내버려두었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물건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남자는 석목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사형이 보시기에는 얼마 정도면 될 것 같습니까?”
석목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최상급 영석 오십 개요? 너무 많이 깎으셨습니다.”
푸른 피부를 한 남자가 중얼거리며 머리를 굴렸다. 그는 적당히 가격을 올리는 척하다가 눈앞의 멍청이에게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그때 석목이 덤덤하게 말했다.
“오십 개가 아니고 다섯 개입니다.”
“네?”
초록 피부 남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최상급 영석 다섯 개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됐습니다. 팔기 싫으면 그만이지요. 저도 살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래 봐야 먼지나 몇 달 더 쌓이겠죠.”
석목은 손끝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고 입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초록 피부 남자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사형, 성급하게 굴지 마시죠. 정 그러시면 최상급 영석 열 개만 주시고 친분이나 맺읍시다.”
초록 피부 남자가 이를 악물더니 말했다.
“음……. 그럽시다. 망치나 하나 만들 참이었죠.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돌덩이 따위를 거들떠보기나 했겠습니까?”
석목은 내키지 않는 척 영석을 건네주고 돌을 들었다.
돌을 들자마자 석목의 손이 밑으로 처졌다. 돌은 그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번천곤의 묘한 반응과 무게를 봤을 때 절대 평범한 돌이 아니었다.
돌을 챙긴 후 석목은 곧바로 영우비차를 불러 주영산으로 날아갔다.
반 시진 후, 석목은 산 중턱 위의 절벽에서 임시 동부를 찾았다.
그의 동부는 다른 동부들과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동부의 안쪽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평범한 집 크기 정도였고, 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물건들만 놓여 있었다.
석목은 의자에 앉아서 저장 반지에서 돌덩어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어 그의 두 눈에서 금빛이 반짝이며 돌을 훑었다.
그러나 잠시 후, 석목은 의기소침해져서 영목신통을 거두었다. 돌에서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돌을 두드려보거나, 손에서 빛을 뿜어서 영력 한줄기를 넣어보기도 했다. 또 두 눈을 감고 신식을 의식의 세계로 보내서 금색 곤봉을 탐색해보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번천곤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영력의 파동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석목은 마지못해 다시 돌덩어리를 저장 반지에 넣어 놓고는 침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
이튿날 석목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잠깐 앉아 있는 사이에 그가 몸에 지니고 있는 금색 영패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작은 글자들이 나타났다.
‘주영산 앞 광장으로 서둘러 오기 바랍니다.’
그것을 본 석목은 곧바로 영패를 거두고 동부를 나갔고, 순식간에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사방에서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석목이 훑어보니 대부분은 어제 그와 함께 이곳에 온 사람들이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지계 제자와 월계술사들이 광장의 왼쪽에, 천위 무인과 일계술사들은 오른쪽에 서 있었다.
석목은 조용히 광장의 오른쪽으로 다가가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위치를 찾아 섰다.
그때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석 형.”
석목이 돌아보니, 훤칠한 키의 젊은이가 있었다. 그와 함께 이곳으로 온 천위 후기 무인 중 한 명인 고 씨 소년이었다.
석목은 조금 놀랐다. 그가 왜 먼저 인사를 건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를 했다.
석목은 고 씨 소년을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젊은 나이에 수련 경지가 꽤 높으며 천년 제자 중에서도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석 형, 저는 고예라고 합니다. 종문에서 이미 석형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지만 계속 뵙지 못해 유감스러워하던 중이었지요. 이 부공성 요새에서 십 년 동안 함께 할 것인데,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고 씨 소년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황송합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석목이 겸손하게 답했다.
고예라는 소년은 의도적으로 석목에게 접근한 듯, 이것저것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는 말투가 우아했고 부공성 요새에 대해 아는 게 꽤 많은 것 같았다. 석목은 그에게서 이곳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게 되어 조금씩 호감이 생겼다.
“석 형, 저희가 지금 서 있는 이 구역 곳곳에는 별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부석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부석 별바다라고 하지요. 심지어 흑마성역의 공간 통로도 별바다의 깊은 곳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흑마일족의 대군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고예가 말했다.
“그렇군요. 이곳에 그런 이름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고 형, 이곳에 대해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 있다니, 정말 견식이 넓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아닙니다. 다만 몇몇 친구가 이곳에서 수년간 주둔하고 있어서, 어제 그들을 만나 전해 들은 것입니다. 저도 이제 막 들어서 알려드리는 것이지요.”
고예가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광장은 사람들로 꽉 찼다.
그때 수십 갈래의 빛이 방대한 기운을 뿜어내며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이어 광장에 자색 옷을 입은 사람이 몇 명 나타났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색 옷을 두른 청년이었는데,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었고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용모가 매우 준수했다. 그는 일행 중 가장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이미 천위 정상에 이르러서 고예보다 더 강해 보였다.
그들이 도착한 뒤에도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다.
고예가 그들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들은 이진종에서 모집한 사람들입니다. 최근에 충원됐지요. 축운성전의 사람들도 아마 도착했을 것입니다.”
석목은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오래 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미양성역에는 청란성지 외에 성지가 두 개 더 있었는데 각각 이진종과 축운검파라는 이름이었다.
이진종은 속세를 떠난 자연스러운 도법을 추구하며, 자칭 도가의 정통이라고 한다. 종문의 핵심 제자들은 인족 위주인 게 청란성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축운검파는 말 그대로 미양성역에서 검도 신통으로 유명했다. 종문 제자들의 자부심이 대단해서 다른 두 성지 사람들을 업신여기곤 했다.
이 삼대 성지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기반이 탄탄하고 성주들 모두 수련 경지가 통현(通玄)에 다다랐기에, 청란성지처럼 부속 행성과 실력 있는 중소 세력이 꽤 많이 있었다.
이번에 참전한 이진종의 제자들은 천위 무인과 일계술사뿐이었다. 나머지 지계 무인이나 월계술사들은 부속 행성이나 기타 중소 세력에서 보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석목은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부터 그들을 봤지만,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사람들의 복장이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했을 뿐 자세히 훑어보지는 않았다.
고예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멀지 않은 곳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칼을 차고 광장으로 날아왔다.
그들은 전부 하얀 옷을 두르고 등에 보검을 매고 있었는데, 옷에는 하얀 검 모양이나 구름 표시가 있었다. 바로 축운검파의 표시였다.
한참이 지나자 광장에는 이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였다.
“이번에 각 삼대 성지에서 보낸 사람들의 수는 비슷한 것 같네요.”
석목이 말했다.
“네, 삼대 성지 모두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많이 보내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이곳은 전쟁터라 제자를 잃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니까요. 다만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여러 이유가 있는 만큼 이런 방식을 택한 것 같습니다.”
고예가 말했다.
“참, 고 형. 혹시 오늘 우리를 이곳으로 소집한 이유를 알고 있나요?”
석목이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아마 임무 분배에 관한 일이 아닐까요? 시간도 다 됐으니 이제 곧 알게 되겠네요.”
고예가 말했다.
* * *
시간이 한참 흐르고 광장의 하늘에서 울리던 소리가 점점 작아질 즈음이 되자, 사람들은 더 오지 않았다.
삼대 성지의 제자들이 전부 모인 것 같았다.
그때 허공에서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몇 사람이 날아와서 광장 앞부분에 자리한 석대로 내려왔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어제 만났던 백발의 요족 노인 독고천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시끌벅적하던 현장이 순식간에 물 부은 듯 조용해졌다.
수천 명이 사람이 전부 독고천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오늘 이곳으로 소집한 이유는 소속을 정하기 위해서다. 알다시피 우리 성지 연합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는 전부 작은 조 단위로 움직인다. 오늘은 너희의 조를 정해주겠다.”
독고천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광장의 사람들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독고천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한줄기 은빛이 소매에서 나왔다. 그것은 은색의 두루마리였다.
두루마리는 허공에서 펼쳐지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몇 장 크기로 커졌다. 그 위에는 글자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전부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그중에는 금색 글자도 있었고 은색 글자도 있었다.
금색 이름 뒤에는 은색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그걸 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했다.
금색 이름은 천위 무인 또는 일계술사였고, 그 뒤의 은색 이름은 지계 무인과 월계술사였다. 천위 무인과 일계술사는 어제 들었던 것처럼 이곳의 소대장이 되고, 지계 무인과 월계술사를 거느린다.
아니나 다를까, 석목의 이름도 그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열세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각 조의 구성은 전부 여기에 있다. 이제 대장들은 앞으로 나와서 순서대로 서도록 한다.”
독고천의 말에 석목 등 이삼백 명의 천위 제자가 앞으로 나와서 두루마리 위에 적힌 순서대로 섰다.
자리에 선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의 왼쪽에 바로 성지에서 부딪쳤던 노란 얼굴의 청년 웅도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웅도도 석목이 옆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려 힐끔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음흉함이 스쳤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그의 도발을 거들떠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