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부하들
“이제 지계 제자들은 각자의 대장을 찾는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앞으로 십 년 동안 이대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니 서로 잘 지내길 바란다.”
독고천이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날아다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천여 명이 넘는 지계 제자가 각자의 대장 뒤에 섰다.
석목의 등 뒤에도 십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전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는데 그중 다섯 명은 청란성지 소속이었고, 네 명은 이진종 출신이었다. 나머지 네 명은 축운검파였다.
모든 조가 나누어지자 독고천은 머리를 끄덕이며 얼굴에 만족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가 손을 흔들자 등 뒤에 서 있던 몇몇 사람이 나와서 광장의 사람들에게 검은 법기 주머니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석목은 손 위에 놓인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풍기는 기운은 영수 주머니와 흡사했는데, 품질은 영수 주머니보다 더 좋았다.
“이 주머니는 마혼 주머니라고 한다. 앞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만약 흑마일족을 죽이게 된다면 거기에 원신을 담으면 된다. 그것은 성지 연합에서 공훈점으로 바꿀 수 있다.”
독고천의 말을 듣고, 석목은 그제야 이 물건이 영수 주머니와 기운이 비슷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조를 정했으니 서로 인사를 나누거라. 이제 곧 대장의 영패에 임무를 보낼 것이니 받은 후 곧바로 수행해라.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만 해산하도록.”
독고천은 이 말을 남긴 뒤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광장을 떠났다.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도 무리를 이루어 그곳을 떠났다.
“여러분, 우리도 자리를 찾아서 서로 인사를 나눕시다.”
석목은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을 향해 한마디 하고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날아갔다.
석목은 자신의 부하 열세 명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각자 다른 성지의 세력 소속이라 각자 따로 서 있었는데, 서로 견제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한 조로 묶여 앞으로 십 년 동안 동고동락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색하게 있지 말고 먼저 각자를 소개하도록 하지요. 나는 청란성지의 천년 제자 석목입니다. 앞으로 경(庚)465 조의 대장을 맡을 것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 보았다. 처음에는 다들 머뭇거렸지만 한 사람이 입을 열자 줄줄이 이름과 소속을 밝혔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도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았다.
“석목 대장, 앞으로 대장을 필두로 성지 연합이 내린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대장은 어떤 신통 공법에 능하신지요? 저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진종에서 온 자색 옷을 입은 청년이 말했다. 그의 말투나 표정은 꽤나 껄렁했으며, 조금의 존중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석목은 그를 한번 훑어보았다. 청년의 이름은 곽참(郭参)이었다. 마른 체형에 키가 훤칠하고, 생김새는 평범했지만 수련 경지는 이미 지계 정상에 도달해 있었다. 나머지 세 명의 제자 무리에서도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석목의 수련 경지는 천위 초기였고, 이곳의 대장들 사이에서도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그렇기에 경외심이 생기지 않을 만도 했다. 어찌됐든 대장의 실력은 앞으로 수행할 임무의 성공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조원의 생사와도 직결되는 것이었다.
“내 공법은 육체 수련과 비슷합니다. 육체의 단련을 중요시하지요. 몇 개의 곤법을 수련했고, 그밖에 물과 불 속성의 두 가지 술법에 능합니다. 부적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터득하고 있습니다.”
석목은 곽참의 태도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석 대장님은 무와 법 두 가지를 다 수련하셨군요. 실례했습니다.”
곽참은 그 말을 듣더니 손을 모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멸시하는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끄덕였다. 다들 크게 놀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석목은 그들의 반응이 의외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와 법 두 가지를 수련하는 것은 그가 태어난 남해성에서나 특이한 일이었지, 미양성역에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한 무인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원소에 대한 감응력으로 술법을 수련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방식은 두 가지 이유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첫째, 무인의 길 자체의 수련도 버거워서 술법까지 수련하는 것은 조건상 어려웠다. 무도의 수련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천재적인 능력이나 엄청난 배경이 뒷받침되는 것이 아닌 이상은 술법의 보조는 무도의 길에 집중하는 것보다 못했다.
둘째, 술법은 외부의 힘으로 입문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수련 경지가 높아질수록 천재적인 재능과 많은 자원 등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하여 술법 위력이 강하고 추가로 부적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무인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방식을 취하면 이도 저도 아닌 처지에 놓이기 십상이었다.
“신통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그럼 각자 간단하게 소개를 합시다. 서로 알고 있으면 앞으로 힘을 합쳐 싸우기도 좋을 것입니다.”
석목이 천천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청란성지의 다섯 사람이 가장 먼저 입을 열어서 자신의 신통을 소개하였다.
이 다섯 사람은 전부 성지의 부속 행성이나 세력에서 왔다. 그중 네 명은 지계 무인이였고 한 명은 월계술사였다. 수련한 신통에도 크게 특별한 점은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들은 곽참의 얼굴에 경멸하는 기색이 더 짙어졌다. 그가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저는 이진종 내원에서 왔습니다. 수련한 공법은 우리 이진종의 천뢰정법진공(天雷正法真功)입니다. 구품뢰법(九品雷法)은 이미 오 품까지 터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진종 제자들은 입문 때부터 각종 합격진법(合击阵法)을 수련합니다.
저와 세 명의 사제는 함께 사방진뢰대진(四方真雷大阵)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천위 수련 경지의 무인 한 명쯤을 죽이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곽참은 석목을 한 차례 흘겨보았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진종은 청란성지와 달리 제자들은 전부 종문이 물려준 정교한 도법을 수련했다. 천뢰정법진공은 그중에서 매우 유명하여 그도 들은 바가 있었는데, 뇌계(雷系)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비전이었다. 이 공법을 깊게 수련할수록 뇌계 신통을 더욱 잘 쓸 수 있게 된다.
도문에는 뇌법을 총 구 품으로 나누었다. 곽참이 지계 정상의 경지로 오 품을 터득한 것은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
곽참의 말이 끝나자 나머지 세 명의 이진종 제자도 각자 수련한 공법을 말했다. 세 사람은 전부 지계 중기 경지였고 특별한 점은 없었다.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축운검파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저는 원옥경(元玉京)입니다. 우리 축운검파 제자들은 별다른 특기가 없습니다. 다만 검도 신통에 능할 뿐이지요. 저희 네 명도 때마침 검진 하나를 설치할 수 있고, 천위 존재 한두 명을 처리하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네 사람 중 얼굴이 살짝 창백한 청년이 말했다.
원옥경이라는 사람은 축운검파 네 명 중에서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수련 경지는 지계 후기였고 곽참보다는 조금 약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마찬가지로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원 도우의 말은 귀 종문의 검진이 우리 사방진뢰대진보다 강하다는 뜻인가요?”
축운검파의 나머지 세 명이 말하기도 전에 곽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강한지 아닌지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지요.”
원옥경의 대답에 곽참이 차갑게 말했다.
“큰소리치기는……. 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요?”
두 사람의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두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석목이 차갑게 말했다.
“성지 연합의 규정에는 내부의 다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위반한 자에게는 엄한 처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독고천 장로님이 다시 직접 말씀드리게 할까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멈칫하더니 전부 입을 다물었다.
“계속하십시오.”
석목은 원옥경과 곽참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 *
일 주향의 시간이 흘렀다.
“자, 다들 서로의 신통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임무를 수행할 때 참고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합시다. 우선 주거지로 돌아가고, 임무가 내려지면 다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청란성지 사람들은 수긍하는 듯했지만, 이진종과 축운검파 사람들은 무엇인가 내키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신임 대장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했는데, 석목 역시 그것을 느꼈다.
하지만 석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아무리 설명을 한다 해도, 임무를 수행할 때 직접 보여주는 것만 못할 터였다.
사람들은 석목의 말대로 각자 주거지로 돌아갔다. 석목도 더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동부로 날아갔다.
동부에 도착하자마자 석목은 곧바로 대문을 닫고 탁자 옆에 앉았다. 그는 부적 종이를 잔뜩 꺼내서 부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부적 종이들은 그가 전에 산 것들인데, 아직 부적으로 만들지 못했다. 임무가 내려오기 전에 빨리 만들어야 임무 수행 때 쓸 수 있었다.
석목이 이제 막 부적 두 장을 그렸을 때, 그가 몸에 지니고 있던 금색 영패가 반짝였다.
영패에는 작은 글자가 한 줄 나타났는데, 성지 연합에서 공지한 임무였다.
“이렇게 빨리?”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했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동시에 부하들에게 집합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주영산 앞 광장에는 석목과 청란성지 제자 다섯 명, 축운검파 네 명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곽참 등 이진종 제자 네 명은 일각이 지나서야 느긋하게 걸어왔다.
“너희 네 명은 왜 이렇게 늦었지?”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석 대장, 일이 생겨서 잠깐 지체했습니다.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곽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모으며 말했다.
석목은 차가운 안색으로 실눈을 뜨고 곽참을 바라보았다.
그가 노려보자 곽참은 순간적으로 흉악한 야수가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무언가 하려던 말이 속으로 꿀꺽 삼켜졌다. 나머지 세 사람도 입을 뻐끔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 사람이 동시에 일이 생겼다고?”
석목은 천천히 말하며 몸서리가 쳐지는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
곽참은 석목이 내뿜는 위압감을 느끼고 안색이 살짝 변했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했다. 그의 얼굴에는 웃는 듯 아닌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석목의 수련 경지는 곽참보다 크게 높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천뢰정법진공과 여러 뇌계 비술을 수련한 데다 천위의 존재를 이겨 본 적도 있기에, 석목에 대해 큰 두려움이 없었다.
“그래, 너는 내가 대장 자리에 있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지?”
석목은 차갑게 웃으며 곽참에게 다가갔다.
그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태도를 보니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요. 당신이 대장이라 내키지 않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기회를 봐서 둘이 한 판 붙도록 하죠. 만약 내가 이기게 된다면, 대장 자리에 계속 있어도 되지만 앞으로 임무를 수행할 때 내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어떻습니까?”
곽참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뭘 그렇게까지 일을 번거롭게 만드나? 지금 여기서 하지. 만약 내 공격을 단 한 번이라도 받아내면 앞으로 네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석목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곽참은 멈칫하더니 이내 화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한 수 받겠습니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받아봐라!”
석목이 차갑게 소리를 지르더니 곽참의 앞에 귀신같이 나타나서 주먹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