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83화 (483/916)

483화. 떠보다

곽참은 석목의 속도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가 큰소리를 지르자 몸에서 촘촘한 자색 번개가 나타나서 번개의 갑옷으로 변하였다.

이어 그의 손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자색 망치가 하나 나타났는데, 최상급 영석으로 만든 것 같았다.

곽참이 번개가 감도는 망치를 휘둘러 석목의 주먹을 내리쳤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팔을 움직이자 주먹 주위에 커다란 물빛이 나타났고, 그 물빛은 빙글빙글 돌더니 파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곽참의 망치는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단번에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거센 힘이 소용돌이에서 흘러나오면서 망치가 짓눌려 일그러졌다.

곽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때 석목의 주먹이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마치 독사가 동굴에서 나오는 것처럼 뻗더니 곽참의 가슴을 내리쳤다. 그의 주먹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얇은 금색 비늘이 나타났다.

곽참의 몸에 감싸고 있던 번개 갑옷이 종잇장처럼 터져버렸고, 석목의 주먹이 그의 가슴을 강하게 내리쳤다.

“푸웃!”

곽참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멀리 날아가더니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석목은 천천히 주먹을 거두어들였고, 주먹을 감싸고 있던 금색 비늘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전부 놀란 기색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원옥경 등 축운검파 사람들은 서로 한 번씩 마주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곽참은 일어서서 석목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에 전과는 다른 빛이 떠올랐다.

그는 석목의 주먹이 자신의 몸에 닿았을 때, 엄청난 힘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느꼈다.

만약 그 힘이 폭발했다면 피 한 모금 뱉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몸은 이미 터져버렸을 것이다.

“곽참, 이제 만족하나?”

석목이 덤덤하게 말했다.

“소인, 진심으로 패배를 인정합니다. 앞으로 석 대장의 모든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겠습니다.”

곽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가자.”

석목은 한마디를 던지고 몸에서 파란빛을 뿜어내며 어디론가 날아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다급하게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부공성 요새에서 몇몇 사람이 나타나서 부석 성해의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하루 밤낮이 지나 일행은 지름이 수천 리나 되는 별조각 위에 도착했다.

이 별조각의 지세는 평탄했고,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서 곳곳에 울창하게 숲이 우거져 있었다.

숲속에는 안개가 자욱해서 매우 기이한 기운을 풍겼다.

일행은 숲의 변두리에 내려섰고, 일단은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석목은 금색 영패를 꺼내 천천히 흔들었다. 그러자 한줄기 금빛이 튀어나와서 숲에 드리워진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한참 후 숲속에서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나타났다. 그의 수련 경지는 천위 초기였는데,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465 소대입니까? 신분을 증명할 것을 보여주십시오.”

청년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금색 영패를 꺼냈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신분 영패를 꺼냈다.

푸른 청년은 영패를 확인하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가 숲속으로 날아가자 석목 등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한 시진 뒤, 사람들은 숲속 깊은 곳에 있는 산봉우리 근처에 도착했다.

청년은 빛을 만들어서 산봉우리 쪽으로 날려 보냈다.

산봉우리가 한참 흔들리더니 푸른색 빛의 막이 한 층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에 한줄기 틈이 생기면서 천천히 벌어졌다.

그걸 보는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산봉우리는 환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는데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니, 상당히 수준 높은 환술이었다.

“갑시다.”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앞장서자 사람들이 그를 따라 들어갔다.

빛의 막 속은 큰 면적을 차지하는 보루(堡垒)였다.

이곳은 성지 연합이 부석 성해의 깊은 곳에 설립한 거점이었고, 전투가 벌어지는 곳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석목 소대의 이번 임무는 이 거점을 지키는 것이었다.

보루는 총 오 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각 층의 면적이 꽤 컸다. 층마다 방이 여러 개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오세요. 이 거점의 수령을 뵈러 갈 것입니다.”

청년은 석목 등 사람들을 데리고 보루의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자색 갑옷을 입은 남자가 벽을 마주한 채 지도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그의 두 눈이 눈부신 번개를 뿜어냈다.

석목의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마치 벼락에 맞아 몸이 마비된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석목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곧이어 석목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갑옷을 입은 남자는 천위 정상의 경지인데다 풍기는 기운에 살기가 가득했다. 보아하니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상인 듯했다.

“온 수령님, 이 사람들은 성지 연합에서 파견된 지원 소대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말했다.

갑옷 남자는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전부 풋내기들만 보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다른 놈들은 모르겠고 소대장은 실력이 좀 있는 것 같군. 이름이 뭐냐?”

남자가 물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석목이라 합니다.”

석목이 담담하게 답했다.

갑옷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

곽참은 뒤에서 그런 갑옷 남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종문에서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져 온 귀한 존재였다. 그래서 전쟁터에 오고 나서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곽참은 석목의 주먹 한 방에 이미 기가 많이 꺾여 있었다.

“그럼 쓸데없는 말은 빼고, 우리 거점은 전쟁터의 전방에 자리하고 있다. 주로 탐색과 순찰을 하고, 흑마일족의 정찰대가 우리 진영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 임무다. 거점에는 총 열 개의 소대가 주둔하며 교대로 순찰할 것이다. 매월 부공성 요새에서 이곳으로 소대를 하나씩 보내고, 임무 기한이 끝난 소대는 복귀한다. 너희는 이곳에서 총 십 개월을 주둔하고 다시 부공성 요새로 돌아갈 것이다.”

자색 갑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석목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는 임무에 적혀 있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내 지휘를 따른다. 독단적으로 행동하면 즉시 죽는다!”

남자는 엄격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곽참 등 사람들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다급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석목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해서 아직 익숙하지 않을 테니, 우선 제 구 구역을 담당하도록 해라. 위문(魏文), 이들이 묵을 곳을 정해주고, 이곳의 상황도 설명해주거라.”

자색 갑옷을 입은 남자가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 말했다.

청년은 곧바로 석목 일행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점에는 방이 여러 개 있었고, 석목 일행의 숙소도 정해졌다. 위문이라는 청년은 푸른 옥간을 꺼내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석목은 신식을 보내서 옥간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거점 주변 구역의 지도였는데, 총 아홉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총 열 개 소대 중 아홉 개의 소대가 밖에서 순찰을 돌고, 나머지 한 개 소대는 보루 내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이 일정은 한 달에 한 번씩 모든 소대에게 교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제 구 구역은 가장 후방에 있는 곳이라 어느 곳보다도 안전합니다. 우선 9 구역을 한 달간 경비해주십시오.”

청년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곽참 등 사람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하루 푹 쉬시고, 내일 아침 일찍 담당 구역으로 가면 됩니다.”

위문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럼 오늘은 다들 휴식을 취하자. 이곳은 아군 세력의 변두리이니 언제든 적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다들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

위문이 떠나자 석목이 몸을 돌려 사람들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룻밤이 조용히 흘러갔고, 석목의 소대는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집합했다. 그들은 거점에서 제 구 구역 쪽으로 향했다.

거점 근처의 아홉 개 구역에는 이 행성의 육지 조각뿐만 아니라 조각 근처의 성역 공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석목 소대가 담당하는 제 구 구역은 육지의 조각 위에 있었다.

반 시진 후, 사람들이 제 구 구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온통 진흙탕이 펼쳐져 있는 초지였다. 크고 작은 연못들이 즐비해 있었고 수면 위에는 물풀들이 자라 있었으며, 나무도 드물게 있었다.

물속에서는 이따금 거품이 솟아올랐고, 공기 중에서는 초지 특유의 썩은 냄새가 풍겨왔다.

석목은 구역을 대충 훑어보더니 푸른색 삼각 영패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이 거점 주변의 환술 진법을 여는 물건이고, 또 다른 용도로도 쓰였다.

석목이 진기를 불어넣자 영패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어 한 개 소대가 멀리 하늘에서 나타나더니 석목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그 소대의 인원수는 석목의 소대보다 적었다. 대장을 포함해 총 아홉 명이었고, 대장은 천위 경지에 있는 이진종 소속의 제자였다.

그 소대는 석목에게 간단한 인계를 마친 후 떠나갔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한 달간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고 했다.

“좋아, 그럼 이제 순찰을 시작한다.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룬다. 그리고 조와 조 사이에 각각 십 리 이내의 거리를 두고 한 줄로 선다.”

석목이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 흩어져서 신식을 보내 앞을 향해 날아갔다. 곧이어 소대원들은 전부 초지 안으로 들어갔다.

눈 깜박할 사이에 며칠이 흘렀다. 석목 소대는 제 구 구역 순찰을 한 차례 마쳤고, 환경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제 구 구역은 면적이 매우 넓었다. 이 별 조각의 삼 분의 일이 제 구 구역이었다. 구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지 외에 다른 곳도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이곳에는 식물이 무성하게 자란 탓에 기이한 독충과 요수들이 있어서 조금 번거로울 뿐이었다.

하지만 대원들의 수련 경지도 낮은 편은 아니라서 그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 구 구역의 상황을 보니 소대 전체가 함께 순찰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면적이 너무 넓어서 함께 도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석목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전부 흩어져서 곳곳을 순찰하기로 했다. 거점에 있는 갑옷 남자도 그렇게 지시했다. 이렇게 하면 매우 위험해지지만, 전쟁 중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 * *

제 구 구역의 초지 속, 옅은 그림자 하나가 허공에서 천천히 날고 있었다.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바로 석목이었다. 그는 투명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대장인 그는 가장 위험한 곳을 직접 순찰하기로 했다.

한참을 날던 석목은 초지에서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곳에 내려서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는 망토를 벗고 성해의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에는 검은 먹구름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곳은 흑마 구역과 연결되는 공간 통로가 있는 곳이었다.

한참 후 석목은 한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이곳에 온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상황 파악을 대략 끝낸 참이었다.

삼대 성지 연합에서는 큰 움직임이 없는 것 같았고, 또 흑마일족과의 싸움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흑마일족도 마찬가지였다. 서둘러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양측 모두 장기전을 벌일 태세인 만큼,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석목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고, 계속해서 순찰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석목은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는 다시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여 어디론가 조용히 날아갔다.

수십 리 밖의 초지에서 짐승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짐승은 몸 전체가 검은색이었고, 호랑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얼굴은 평범한 호랑이보다 훨씬 흉악했다. 목에는 검은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고, 빨간 두 눈에서 검은빛을 뿜으며 기민하게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괴수는 기이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주변의 독충들이 전부 이 짐승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달아나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할 정도였다.

짐승은 극도로 조심스럽게 걸었고, 천천히 사지를 움직이며 작은 개울을 한 개 넘었다.

그때 파란 물줄기로 만들어진 긴 창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창은 번개 같은 속도로 검은 괴수의 목을 찔렀다.

이 물의 창은 철보다 더 단단했고, 매우 날카로웠다.

퍽!

창은 검은 짐승의 목을 뒤쪽에서부터 꿰뚫어서 그대로 땅에 박혀버렸다.

검은 짐승의 입에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짐승은 사지를 미친 듯이 흔들어서 땅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파란 물의 창은 짐승을 놓아줄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짐승의 상처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는데, 괴수의 피 같았다.

짐승은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멈추어버렸다.

물줄기로 만들어진 긴 창이 흩어지자 짐승의 옆에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석목이었다.

“이건…… 마수(魔兽)…….”

그는 땅 위에 있는 검은 괴수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