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화. 단번에 마를 물리치다
핏빛 해골은 빛의 속도로 석목의 앞까지 다가왔고, 손에서 짙은 핏빛을 뿜어내며 그를 잡으려 했다.
순간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몸을 비틀어서 빠르게 옆으로 몇 장 물러나 공격을 피했다. 이어 몸에서 파란빛을 뿜어내자 물통 굵기만 한 파란 빛기둥이 그의 오른손에서 뿜어져 나가서 핏빛 해골에게 향했다.
파란빛은 차가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고, 속도가 매우 빨랐다.
핏빛 해골은 눈언저리에서 영혼의 화염을 번쩍이며 몸을 날려 피했지만, 오른발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파란빛의 공격을 받았다.
카칵!
순간 핏빛 해골의 오른발에서부터 하얀 얼음이 생기더니, 빠르게 퍼져나가서 순식간에 몸의 반 이상을 덮었다.
이어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검은 곤봉의 그림자가 날아왔다.
빛에 둘러싸인 곤봉은 핏빛 해골이 얼음에 덮여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 그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쿵!
핏빛 해골의 머리가 부서졌다. 그의 영혼의 화염마저 곤봉에 박살이 나서 사라졌다. 천위 해골이 눈 깜박할 사이에 죽은 것이다.
자색 여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물론, 웃통을 벗은 흑마일족 남자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석목이 파란 그림자로 변신하더니 흑마일족 남자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죽어라!”
흑마일족 남자는 큰소리를 지르며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구렁이가 순식간에 석목을 덮치려 했다.
이어서 흑마일족 남자의 입에서 복잡한 주문이 울려 퍼졌다. 그의 벗은 상체에 새겨진 마문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와서 기이한 핏빛으로 변했다.
흑마일족 남자가 주문을 외우자 검은 구렁이의 몸이 커졌다. 마기가 그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순식간에 이삼십 장까지 커진 구렁이 마수는 시뻘건 입을 크게 벌리며 석목에게 향했고, 구렁이의 몸이 다가오기도 전에 구역질나는 비린내가 먼저 풍겨왔다.
석목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몸에 파란빛을 뿜어냈고, 몇 장 크기의 파란 거인 법상을 만들어냈다. 거인 법상의 상반신은 사람 모양이었고 하반신은 커다란 물고기 꼬리 모양이었다. 거인의 두 발은 구름을 딛고 있었고, 손에는 바리 같은 물건을 들고 있었다.
파란 법상은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석목의 몸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손에 든 바리를 치켜들자 그 속에서 파란 물빛이 뿜어져 나와서 검은 구렁이를 감쌌다.
물빛은 한참 동안 반짝이더니 파란빛의 공으로 변하여 구렁이를 그 속에 가두었다.
구렁이가 소리를 지르자 입에서 검은빛이 줄줄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마기를 두르고 있는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파란빛 공을 내리쳤다.
빛의 공은 미세하게 흔들렸고 표면에서 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물빛이 돌고 있어서 곧바로 터질 것 같지는 않았다.
파란색 법상이 손에 든 바리를 돌리자 공이 빠르게 축소되었다. 그 속에 갇힌 구렁이의 몸통도 짓눌려서 줄어들더니 순식간에 사람 머리만 하게 변해 법상의 바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뭐야!”
흑마일족 남자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석목은 파란 법상을 한번 바라보더니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역시 명수결로 수련한 법상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런 금제는 법상의 능력 중 한 가지에 불과했다. 당분간 적을 붙잡아둘 수 있는 수단이었는데, 이것 말고도 엄청난 신통이 더 있었지만 지금 시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석목은 법상을 뛰어넘더니 흑마일족 남자를 덮쳤다.
그때 흑마일족 남자가 다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몸에 새겨진 마문에서 핏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의 모습이 희미하게 변했다. 남자는 순간 네다섯 개의 핏빛 그림자로 분리되어 석목에게 달려들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핏빛 그림자는 매우 기이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영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몸을 멈춰 세우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파란빛이 번쩍였고. 한 장 길이의 파란 얼음창이 수십 개 나타났다.
퍽! 퍽!
그러나 핏빛 그림자는 전혀 피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얼음창들이 날아와서 그림자의 몸을 뚫고 여러 개의 구멍을 냈지만, 그것은 마치 환영처럼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석목이 멈칫하는 순간 핏빛 그림자가 그의 앞까지 날아왔다.
그가 뒤로 몸을 피하며 손을 흔들자 십여 장의 부적이 나타났다. 부적은 순간 불의 공으로 변했다가 다시 커다란 불의 벽이 되어 그의 몸 앞을 막았다.
흑마일족 남자는 차갑게 웃더니 손가락을 앞으로 향했고, 그의 손끝에서 핏빛이 뿜어져 나왔다.
핏빛 그림자의 몸이 몇 번 일렁이더니 곧바로 불의 벽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반짝거리다가 벽의 다른 한쪽으로 튀어나왔다.
조금 작아진 그림자의 몸통이 번개처럼 빠르게 석목의 몸을 감쌌고, 이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핏빛 그림자가 몸에 스며들자 마치 어두운 힘이 들어온 것 같았다.
석목은 몸이 순식간에 굳어져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어두운 힘이 몸속의 정기를 빠르게 삼키기 시작했다.
석목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다행히 몸은 굳어졌어도 경맥의 진기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미친 듯이 진기를 시전하여 어두운 힘을 없애려 했다.
그때 그의 두 팔에 내재되어 있는 음양의 힘이 뿜어져 나와서 순식간에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어두운 기운은 음의 힘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양의 힘에 닿자 타오르는 태양 아래의 눈처럼 빠르게 녹아서 사라져버렸다.
처절하게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석목의 몸속에서 흘러나왔고, 마침내 어두운 힘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석목의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이 차가운 빛을 뿜어냈고, 몸에서는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이어날개 한 쌍이 넓게 펼쳐졌는데, 그 속에서는 하얀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양의 힘을 사용한 것이었다.
석목의 몸은 붉은 잔영만 남긴 채 날개를 움직이며 흑마일족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말도 안 돼!”
흑마일족 남자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의 특기인 적신자(赤神子)는 말로만 전해듣던 양의 힘 외에는 천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석목이 귀신같이 그의 앞에 나타났고, 여의빈철곤이 빛을 뿜어내며 산처럼 날아가서 그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흑마일족 남자는 미처 놀랄 겨를도 없었다. 그는 공기를 잔뜩 불어 넣은 것처럼 몸을 부풀리더니 순식간에 몇 배나 큰 검은 거인으로 변했다.
그의 손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구환귀두대도(九环鬼头大刀) 한 자루가 나타나서 머리 위를 막았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산봉우리 같은 곤봉 그림자가 그의 귀두대도와 부딪쳤다.
흑마일족 남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막아낼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몰려왔고, 그의 두 다리가 땅 속으로 푹 꺼졌다. 어느새 그는 무릎 바로 위까지 땅에 묻혀버렸다.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귀두대도의 표면에서 액체 같이 진득한 검은 빛이 나타나 여의빈철곤을 빠르게 감쌌다. 그 빛은 곤봉 안으로 스며들려 했다.
하지만 그때 곤봉에서 뜨거운 빛이 나왔고, 그 빛에 닿은 진득한 검은빛은 빠르게 사라졌다.
“이것은 양의 힘…….”
흑마일족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말을 전부 내뱉기도 전에 석목이 큰소리를 질렀고, 여의빈철곤에서 하얗고 검은 두 갈래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방금 전보다 더 강력한 힘이었다.
흑마일족의 몸이 튕겨 날아가더니 커다란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석목의 몸에서도 하얗고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손에 든 여의빈철곤이 함께 흔들리며 수많은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하얗고 검은 빛은 커다란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십 장 이내의 범위를 하얗고 검은빛으로 감싸버렸다.
주변 사람들도 하늘을 뒤흔드는 기세에 모두 놀라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하얗고 검은 태양을 본 흑마일족 남자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더니 혀를 깨물어 붉은 피를 귀두대도에 뿌렸다.
피가 빠르게 스며들자 귀두대도에서 요망한 빛이 번쩍였다.
그러자 머리에 뿔이 두 개 자라난 도깨비가 튀어나왔다. 도깨비는 푸른색 눈을 가진 흉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몸집은 이삼십 장 정도였다.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기는 도깨비는 흑마일족 남자보다도 강해보였다. 성계 경지와 겨우 한 끗 정도의 차이었다.
흑마일족 남자가 손가락을 앞으로 향하자 도깨비가 울부짖더니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몸 주위로 검은 도깨비 기운을 크게 뿜어내며 허공에 걸려 있는 검은빛을 덮쳤다.
흑마일족 남자는 귀두대도를 잡고 몸에서 빛을 번쩍이며 어디론가 날아가려 했다.
그때 석목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도망가려고? 늦었어!”
허공에 걸려 있던 하얗고 검은 빛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고, 순간 두 갈래 빛으로 갈라져서 하얀빛은 위로, 검은빛은 아래로 향했다. 그것은 마치 천지가 개벽하여 혼탁한 기운을 분리하는 것처럼 세상을 휩쓰는 기운으로 퍼져나갔다.
두 갈래 빛 사이의 허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바닥의 중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흑마일족 남자가 이제 막 몸을 날려 날아가려고 하는 찰나, 그의 몸은 무형의 힘에 붙잡혀서 서서히 떠올랐다.
커다란 도깨비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힘에 허공에 묶여버려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도깨비는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냈고, 검은 기운으로 계속해서 주변의 힘을 찢어버리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또 뭐야!”
흑마일족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알 필요 없어. 너는 곧 죽을 테니까.”
석목이 차갑게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얗고 검은 두 갈래 빛이 격하게 움직였고, 각각 검은색과 하얀색의 맷돌로 변하여 가운데를 향해 돌기 시작했다.
흑마일족 남자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검은빛을 미친 듯이 번쩍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얗고 검은 맷돌이 어느새 천천히 합쳐졌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남자의 몸을 압박했다.
퍽!
흑마일족의 이목구비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그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
이어 그의 눈에서 다시 흉악한 빛이 한 줄기 스치더니, 표면에 핏빛이 나타났다. 곧이어 그의 힘줄이 터지더니 몸이 공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빠르게 부풀었다.
“흥!”
허공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얗고 검은 맷돌은 더 빠르게 합쳐져서 흑마일족 남자와 도깨비는 그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퍽!
하얗고 검은 맷돌이 짓누르자 흑마일족 남자의 몸이 터지면서 핏덩이가 흩날렸다. 심지어 마혼마저 그대로 부서져버렸다.
도깨비의 몸도 곧이어 터져버리더니 검은 안개로 변해 사라졌다.
커다란 맷돌은 계속해서 몇 바퀴 더 돌더니 남자의 피와 살덩이가 전부 사라지자 천천히 멈추었다.
허공에서 물결이 일렁이더니 한참 뒤에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어 빛을 반짝이며 나타난 석목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수련 경지가 높아진 이후 멸선곤법을 써도 예전처럼 많은 진기가 소모되지는 않았기에, 아직은 여력이 있었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더니 검은 대도를 손에 들었다. 방금 전에 흑마일족 남자가 사용하던 귀두대도였다. 칼 역시 크게 손상을 입어 균열이 생겨 있었다.
망가지긴 했지만 꽤 가치가 있어 보였기에, 석목은 그것을 챙겼다.
다만 흑마일족 남자의 법기 등은 그의 몸과 함께 짓눌려 부서지는 바람에, 아쉽게도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흑마일족 남자가 죽자 그가 소환했던 사령 생물들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도 흩어져 전부 허공으로 스며들었고, 사령생물들은 다시 사령계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이제 경외의 기색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