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87화 (487/916)

487화. 기습을 당하다

한참 후에 한 여자가 날아와서 손을 모으며 말했다.

“석 도우, 역시 대단하시군요. 천위 정상의 흑마일족도 도우의 상대가 되지 못하다니요.”

“과찬입니다. 이 흑마일족 혼사는 이곳에서 어떤 비술을 수련한 것 같습니다. 그가 죽었다 해도 혹시 모를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이곳을 한번 탐색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석목이 손을 흔들더니 화두를 돌렸다.

주변에 드리워졌던 커다란 새장도 흑마일족 남자가 죽어버리자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이어 일행은 산봉우리 밑에서 동굴을 하나 발견했다. 동굴은 땅속 깊이까지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속에서 옅은 마기가 풍겨왔다. 보아하니 흑마일족 혼사가 숨어서 수련하던 곳 같았다.

석목은 몸을 날려 그 안으로 앞서 들어갔고, 여자와 중년 남자가 뒤를 따랐다. 나머지 부하들은 전부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지 않아서 세 사람은 잠깐 사이에 끝자락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꽤 큰 석실이 하나 있었다.

석실에 들어선 세 사람은 그곳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석실 중앙에는 몇 장 정도 되는 늪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속은 붉은 피로 가득했고,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몰려왔다.

피의 늪 옆에는 말라비틀어진 사체가 이삼십 구 정도 널브러져 있었다. 사체의 옷을 보니 얼마 전 사라진 소대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몇 장 정도 되는 석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부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법 종류인 것 같았다.

법진 위에는 검은 진기가 십여 개 꽂혀 있었다. 검은빛이 아직 남아 있는 걸 보니 이제 막 운용을 멈춘 것 같았다.

‘이 진법이 아까 그 검은 새장을 만들어낸 것인가…….’

석목은 그들을 가뒀던 검은 새장의 위력을 되새기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손을 흔들어서 파란빛을 뿜어내 진기들을 전부 거두어들였다. 이어 신식으로 훑어보며 석대 위의 진법 부문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자색 눈을 한 여자와 중년 남자는 석목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흑마일족 혼사는 석목이 혼자 격살한 것이기에, 두 사람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계속해서 한참 동안 석실 내부를 수색했다. 하지만 별다른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다. 그들은 실종됐던 대원들의 시체를 수습하고는 동굴을 떠났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그 구역을 더 수색했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고, 그들은 그곳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거점의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에게 보고했다.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는 위험을 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우 기뻐했고, 세 소대에게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하라고 일렀다.

임무를 마친 석목은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날 습득한 검은색 진기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기를 반나절이나 만져보았지만 시간낭비였다. 이 진기는 마기를 이용해야만 쓸 수 있었다.

석목은 조금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목합을 찾아 진기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다시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번에는 귀두대도를 꺼내들었다.

이 칼은 많이 손상됐지만, 여전히 매서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법보급의 무기가 분명했다.

석목은 눈을 깜빡이더니 여의빈철곤을 꺼냈다.

일반 무인은 천위 경지에 들어선 뒤에는 단화(丹火)로 자신의 법보를 정련할 수 있었다.

석목은 막 천위 경지에 들어섰을 때 곧바로 이곳으로 소집되었기에, 아직 법보 정련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는 기본적으로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라 여의빈철곤으로 대처하고 있었지만, 법보를 정련하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석목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면서 귀두대도와 여의빈철곤을 거두어들였다.

이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에 각각 영석 한 개씩을 들고 진기를 회복했다. 하루를 휴식한 후에 순찰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석목의 유명세는 점차 거점에서 퍼져나갔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상당히 공손해졌다.

그러나 석목은 이런 일들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눈 깜박할 사이 십 개월이 흘렀고, 석목의 소대는 다시 부공성으로 돌아갔다.

* * *

반 년 뒤, 은월전함 한 척이 부석 성해를 천천히 날고 있었다.

그 위에서 성지 연합의 제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사방을 경계하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흑마일족에 대비하는 중이었다.

석목은 소대원들과 전함의 오른쪽에 한 줄로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주위의 운석 조각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대장, 우리가 너무 몸 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곳은 전방중에서도 뒤쪽에 속해 있으니 흑마일족이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곽참이 말했다.

“이번 운송 임무는 매우 중요하다. 절대 방심해서는 안 돼. 전함에 실린 수많은 영석, 그리고 전함을 수리하는데 쓰이는 영재를 거점으로 제때 실어 나르지 못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석목은 전방의 운석들을 자세히 훑어보며 말했다.

곽참이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할 때, 석목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몸에서 빛을 뿜어냈다.

“조심해라. 상황이 발생했다!”

석목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앞쪽의 커다란 운석 뒤편에서 마기가 용솟음쳤고, 검은 먹구름이 한 장 날아왔다.

먹구름 속에서 안개가 소용돌이치더니 굵고 붉은 빛기둥이 그 속에서 튀어나왔다. 이어 빛기둥은 은월전함을 보호하고 있는 빛의 막과 강하게 부딪혔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치며 선체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함이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비틀거렸다.

“적의 습격이다. 준비하라!”

곧 은월전함 위에서 은빛이 흘렀고, 선수(船首) 부분의 날카로운 금속 기둥 꼭대기에서 은색의 빛이 뿜어져 날아갔다.

그 은빛은 커다란 창처럼 순식간에 먹구름을 찔러버렸다.

검은색 먹구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몇 번 울려 퍼졌다.

이어 키가 훤칠한 흑마일족 사람이 백 명이 넘게 나타났고, 그들은 먹구름 속에서 튀어나와서 그대로 은월전함을 향해 돌격했다.

“막아라! 흑마일족이 전함 가까이 다가오게 하면 안 된다!”

석목은 명령을 내린 뒤 몸에서 불빛을 뿜어내며 날개를 펼쳤고, 흑마일족을 향해 날아갔다.

곽참과 원옥경 등 소대원들도 곧바로 그의 뒤를 따르며 몸에서 빛을 뿜어냈다.

석목이 손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앞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커다란 화염 주먹 그림자가 허공에 나타나서 가장 앞쪽에 서 있는 흑마일족에게 향했다.

그 흑마일족은 검은 갑옷을 입고 머리와 오른쪽 어깨에는 외뿔이 자라 있었는데, 얼굴은 투구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에 든 장검을 흔들자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인 조각달이 나와서 화염의 주먹과 부딪쳤다.

허공에서 불꽃이 튕겼다.

검은 조각달은 화염 주먹 그림자에 닿는 순간, 열 갈래가 넘는 칼의 그림자로 분리되어 주먹을 부숴버렸고, 그중 절반 이상은 기세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 석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석목은 이미 여의빈철곤을 손에 들고 있었고, 그가 곤봉을 휘두르자 검은 곤봉의 그림자가 벽을 이루었다.

흑마일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안개가 엄청난 속도로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은 곤봉을 들고 두 날개를 펄럭이며 그의 공격에 맞섰다.

한편 전함의 다른 한쪽에서는 몸을 꼿꼿이 세운 소년이 몸에서 빛을 내뿜으며 부석 안으로 날아갔다.

그는 가볍게 까치발로 한 장 정도 되는 운석 조각 위에 서 있었고, 소년이 몸에 두른 검은 피풍이 펄럭이더니 강한 영력의 파동이 그의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는 석목과 함께 청란성지에서 온 소년 고예였다.

고예의 깊은 두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동공이 혼탁하고 마치 깊은 못 같아서 조금의 빛도 없었다.

고예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서 손가락 끝으로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어서 몸 앞에서 손을 빠르게 움직이자 복잡한 법결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에서 영력이 빠르게 소용돌이치더니 어두운 두 눈에서 회백색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얼핏 보았을 때는 얇은 연기 같았는데, 잠깐 사이 눈에 띄게 두터워졌다.

회백색 안개 두 갈래가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더니 그의 동공에서 튀어나와 천천히 퍼져나갔다.

이때 앞쪽에서 검은 긴 창을 들고 달려오던 흑마일족이 한 제자의 가슴을 찌르려던 찰나, 회백색 안개 한줄기가 그의 콧구멍으로 들어가자 흑마일족의 눈이 순식간에 희미해졌고, 동공에 안개가 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긴 창에 죽을 뻔했던 제자는 곧바로 금빛으로 둘러싸인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흑마일족의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한 개 생겼다.

그즈음 또 다른 곳에서는 달려오던 흑마일족 두 명 중 뒤편에 있던 사람의 두 눈에서 갑자기 회백색이 감돌았고, 그는 손에 든 검은 도끼를 아래로 휘둘러서 앞에서 달려가던 동료를 두 동강이 내버렸다.

잠깐 사이에 여섯 명이나 되는 흑마일족 사람이 같은 동족의 손에 죽어버렸다.

그러자 천위 경지의 흑마일족 우두머리는 비로소 상황이 꼬여버린 것을 감지했고, 운석 위에 서 있는 고예를 발견했다.

이어 그의 몸에서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목 부위에 새겨진 마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드린 그의 몸이 갑자기 커졌다.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흑마일족 우두머리의 몸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이어 살갗이 찢어지더니 검은 창처럼 생긴 뼈가 찢어진 살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커다란 뼈 호저(豪猪)로 변한 흑마일족 우두머리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고, 그는 네 발로 허공을 짚으며 고예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고예는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가볍게 뻗었다. 그러자 짙은 안개가 호저의 콧구멍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뼈 호저는 움직임이 조금 느려지기만 했을 뿐, 핏빛을 띠고 있는 두 눈에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놀라운 속도로 덮쳐왔다.

그러자 고예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영혼과 정신을 닫고 온전히 살육의 본능에만 의지하는 것도 내 혼돈영목의 방법 중 하나지.”

호저의 속도는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달려드는 힘이 엄청나서, 그가 머리로 들이받으니 운석이 단번에 산산조각이 났다.

고예를 공격하는 데 실패한 호저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몸에서 빛을 뿜어냈다. 이어 그의 등 뒤에서 수백 개나 되는 하얀 가시가 돋아나서 긴 창으로 변하더니 앞으로 튕겨나갔다.

하얀 가시는 차가운 빛을 반짝이고 공기를 찢으며 고예에게 날아갔다.

고예는 순간 멈칫했다. 속도가 빠르지 않은 호저가 이렇게 신속하게 가시를 뿜어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어 고예는 오른쪽 눈을 감았고, 그의 왼쪽 눈에서 회색빛이 크게 퍼지더니 그 속에서 안개가 소용돌이쳤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서 물결이 일렁이면서 검은 소용돌이가 허공에 나타났다.

화살 같이 쏟아지는 하얀 가시는 전부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고예는 왼쪽 눈을 천천히 감더니 이번에는 오른쪽 눈을 번쩍 뜨자 그 속에서 무엇인가가 어렴풋이 반짝였다.

그러자 호저의 몸 앞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검은 소용돌이가 허공에 나타났다.

픽! 픽!

수백 갈래의 가시가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와 호저의 몸에 떨어졌다.

탱! 탱! 탱!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호저의 몸통에 수많은 구멍이 뚫리면서 진득한 혈액이 그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어 그의 앞에서 돌고 있던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더니, 커다란 입으로 변하여 호저를 삼켜버렸다. 이제 호저의 기운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고예가 다시 왼쪽 눈을 뜨자 소용돌이가 천천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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