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89화 (489/916)

489화. 성동격서(声东击西)

구 호 거점은 부석 성해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흑마일족의 후방에 속했다.

구 호 거점은 흑마일족 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로, 그 중요성은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십 호 거점과 팔 호 거점이 결계를 치는 형국으로 구 호 거점을 감싸고 있었다.

그동안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구 호 거점에는 천위 경지의 흑마일족만 사오십 명이 있었고, 지계 흑마일족은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십 호와 팔 호 거점의 지원까지 더해지면 여기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 게 뻔했다.

“연합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들이 싸움도 하기 전에 주눅이 들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막린우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성계 강자의 위압감이 주변으로 퍼지자 사람들은 흠칫 놀랐고,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장로님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구 호 거점은 다른 거점들과 다릅니다. 십여 년 전 연합은 이미 수차례 대규모 인원을 모집하여 그곳을 정면으로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간다 해도 아마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푸른 머리에 자색 피부를 가진 요족 남자가 앞으로 다가가 손을 모으며 말했다.

“이미 계획이 다 있다. 이번 작전에 앞서 성계 장로가 소대를 꾸려 십 호와 팔 호 거점을 기습, 구 호 거점의 적 일부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이와 연계해서 상대 진영을 흐트러뜨리는 것이지. 그리고 너희가 구 호 거점에 침투해 공세를 펼치면 대규모 인원이 추가로 투입될 것이다. 이 거점을 점령하기만 하면 결계로 봉인된 곳을 곧바로 뚫을 수 있다.”

막린우가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임무는 겉보기에만 완벽한 전략이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먼저 소란을 피운 다음 서쪽을 공격한다는 뜻)를 하는 셈이었는데, 너무 위험한 방식이었다. 이 세 거점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기에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너무 컸다.

하지만 석목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막린우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왜들 그러는 거냐? 이곳에 오래 있다 보니 처음에 들은 규칙도 잊은 거냐? 임무 수행을 거부하겠다는 건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 답했다.

“흥! 당연히 그래야지. 좋아, 돌아가서 하루 휴식을 취하고 내일 초저녁 모든 대원을 데리고 주영산 앞 광장에 집결한다. 절대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막린우가 말했다.

“네!”

사람들은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거역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 * *

이튿날 초저녁, 석목은 십여 명의 대원과 함께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이미 백여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쪽에는 작은 금색 전함이 있었고, 전함 옆에는 은색 갑옷을 입은 체구가 큰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금색 전함은 은월전함보다는 조금 작았고, 모양은 마름모꼴이었다. 좌우 양쪽에는 복잡하고 촘촘한 부문이 새겨져 있는 게 평범한 전함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이번 임무에 참여하는 서른다섯 개의 소대가 줄줄이 도착했다. 총 사백 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그때 전함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전부 전함에 올라타십시오. 저는 한의(韩仪)라고 합니다.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책임을 질 것입니다.”

석목은 대원들을 데리고 전함에 올라탔다.

서른다섯 개의 소대가 전부 전함에 타자 은색 갑옷을 입은 남자 한의도 전함에 올랐다.

금색 전함의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한의의 조종에 따라 금빛을 뿜으며 날아올랐다.

하늘 위로 올라가자 선체 주변에서 기이한 파동이 일렁였고, 곧 옅은 금색 빛의 막이 나타나서 선체를 감쌌다.

그 순간 석목은 갑자기 주변의 영기가 전부 막혀버린 듯 답답해졌다. 자신의 진기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석목이 곽참 등에게 물어보려고 할 때 주위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모든 사람이 석목과 똑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여러분, 너무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전함의 이름은 은자(隐刺)입니다. 기습 작전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으로, 종적을 감출 수 있는 특별한 비행 법보입니다. 은폐 장벽을 열면 외부에서 맨눈으로 선체를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전함 위의 진법은 임시로 전함 자체의 영력을 닫아버려서, 영력의 파동을 가장 작은 범위까지 축소합니다. 적들이 발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지요. 여러분도 영력을 제대로 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텐데, 전부 정상적인 상황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본 한의가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내뱉었다.

은자 전함의 속도는 빠른 편은 아니었고, 한 시진이나 넘게 날고 나서야 난석 성해에 진입했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떠다니는 커다란 운석 조각들, 수많은 전함의 파편을 보면서 안색이 굳어졌다.

막린우가 부임한 후 전장의 상황은 더욱 격렬해졌다. 성지 연합과 흑마일족 모두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은자 전함은 난석 속에서 반 시진이나 넘게 날았고, 그제야 연합에서 보낸 몇몇 척후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백 명이나 넘는 사람을 태운 전함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전함이 부석 성해에 들어서자 흑마일족의 순찰대와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전부 은자 전함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반나절 후, 전함은 부석 성해 깊은 곳의 커다란 운석 앞에 도착했다.

“여러분, 이곳이 구 호 거점입니다. 은자 전함의 위치가 알려지면 안 되니, 여러분은 저와 신식을 연결하면 됩니다. 제가 전함을 가지고 내려가겠습니다.”

한의가 말했다.

석목은 전함의 한쪽 끝에 서서 커다란 운석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검은 건물들이 웅장하게 일렬로 펼쳐져서 작은 보루를 이루고 있었다.

건물 위에는 검은 빛의 막이 덮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흑마일족의 마문과 흡사한 금색 무늬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여러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아래를 바라보며 주춤거리는 사람들을 본 한의가 낮은 목소리로 재촉했다.

“별 거 아닙니다. 자, 갑시다!”

그때 웅도가 낮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신의 소대를 데리고 가장 먼저 검은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도 고개를 돌려 곽참 등 소대원을 바라보고, 날개를 몇 번 펄럭이더니 전함에서 나와 아래를 향해 돌진했다.

웅도와 석목이 앞장서자 나머지 소대들도 지체하지 않고 각각 빛을 뿜으며 내려갔다.

스륵!

금속음과 함께 가장 앞쪽에서 날아가던 웅도가 등 뒤의 장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밝은 빛을 뿜어내며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은색 칼날의 빛이 허공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커다란 은색 달처럼 튕겨나가서 검은 빛의 막에 떨어졌다.

쿵!

검은 빛의 막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그 위에서 은은하게 번지던 마문이 순식간에 밝아져서 뚜렷하게 변했다. 하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웅도의 공격은 빛의 막에 약간의 틈만 만들어냈을 뿐 깨버리지는 못했다.

“적의 습격이다!”

키가 큰 흑마일족 보초가 큰소리를 질러서 거점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금세 끊겨버렸다. 날카롭고 파란 얼음의 창이 매우 정확한 각도로 빛의 막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창은 곧장 보초의 목을 뚫고 비스듬히 땅에 꽂혔고, 그는 창과 함께 땅에 박힌 채 죽어버렸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빛이 어두워지면서 끈적끈적한 피가 창을 타고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졌고, 단단하고 검은 안개가 그의 몸속에서 흘러나왔다.

이어 석목이 지닌 마혼 주머니에서 빛이 반짝였다. 육각형의 부문이 주머니에 나타나더니 기이한 흡입력이 생겨서 검은 안개를 전부 빨아들였다.

“곽참, 너희가 해결해라!”

석목이 큰소리로 소대원들에게 명령했다.

곽참은 재빨리 대답하더니 세 명의 동문을 데리고 날아갔다.

그들은 허공에서 네 방향으로 흩어져서 손으로 독특한 법결을 시전했고, 그의 몸에서 푸른빛과 자색 빛이 흘러나왔다.

퍽!

네 사람이 서 있는 사이의 한 장 정도 범위 안에 자색 번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방인뢰결!”

곽참이 큰소리를 지르자 네 사람의 손가락이 동시에 아래를 향했다. 그들이 몸에 감고 있던 번개가 손가락을 따라 허공에서 모였고, 긴 번개로 변하여 깊은 별의 하늘로 들어갔다.

콰르르!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굵은 자색 번개가 허공에 나타났다.

이어서 번개가 교룡처럼 쏟아지더니 균열이 생긴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펑!

폭발음이 울리면서 자색의 번개에 부딪힌 빛의 막은 산산조각이 났다.

건물에서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면서 키가 훤칠한 사람들이 그 속에서 튀어나왔다. 가장 앞에 있는 마흔 명 정도의 사람은 키가 유난히 컸고, 천위 강자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죽여라!”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석목 등 삽십여 명의 대장은 몸에서 오색 빛을 뿜어내며 검은 기운을 향해 내려갔다.

그들 뒤로 삼백 명이 넘는 성지 연합 제자들이 따랐다. 그들은 각자 손에 든 영기와 법보를 휘두르며 흑마일족을 향해 돌격했다.

석목이 내려오자 십여 명의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그를 둘러쌌다. 검은 갑옷을 입은 흑마일족들이었는데, 모두 마기가 감도는 조각달 모양의 칼이나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온 몸에 마문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는 커다란 체구의 남자였다. 마문이 반짝이자 그의 몸에서 머리 한 개와 팔 두 개가 빠르게 솟아났다.

두 개의 머리가 입을 크게 벌리자 그 속에서 마기가 가득한 빛의 기둥이 석목을 향했다.

석목의 손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여의빈철곤이 나타났고, 그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불의 뱀 세 마리가 나타나서 곤봉을 칭칭 감았다.

훅!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염이 들끓는 커다란 곤봉이 휩쓸고 지나가니 검은 빛기둥이 박살이 났다.

네 개의 팔을 가진 흑마일족은 손에 든 마기로 방어하려 했지만, 거대한 힘에 휘말려서 비명과 함께 멀리 날아가 버렸다.

석목은 동작을 멈추지 않고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리자 몸과 곤봉을 둘러싼 화염이 순식간에 짙고 파란 안개로 변했다.

그는 곤봉을 위로 들었다가 힘껏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쿵!

여의빈철곤의 끝이 땅에 부딪혔다. 그러자 파란빛이 뿜어져 나오며 물결 같은 빛의 무늬가 주변으로 퍼졌고, 열 명이 넘는 흑마일족 사람을 전부 감쌌다.

그러자 흑마일족들은 마치 늪지에 빠진 것처럼 동작이 느려졌고, 그들이 몸에 지닌 마기마저 파란 물결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석목의 손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쩍!

짙은 안개를 감싸고 있던 흑마일족들의 동작이 완전히 멈춰버리며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다.

쓱! 쓱!

붉은빛이 번쩍이며 붉은 부적이 날아와서 얼음 조각상들의 위에 하나씩 붙었다. 부적은 몇 번 반짝이더니 곧바로 터져버렸다.

눈 깜박할 사이에 십여 명의 흑마일족이 가루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단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석목은 곧바로 몸을 돌려서 또 다른 흑마일족 한 조를 덮쳤다.

다른 한쪽에서는 예닐곱 명 정도 되는 청란성지와 축운검파 제자들이 손에 든 영기와 법기를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촘촘한 방어선을 형성하여 스무 명 정도 되는 흑마일족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들의 뒤편에서는 곽참과 세 명의 동문이 몸에서 번개를 번쩍이며 사방진뢰대진을 펼쳤다. 그들은 굵직한 자색 번개를 조종하며 흑마일족의 목숨을 끊임없이 앗아갔다.

이들은 모두 석목이 이끄는 경465 소대였다.

앞사람들의 도움으로 곽참 등이 만들어낸 대진은 그 위력이 극대화됐다.

그밖에 나머지 삼백 명이 넘는 지계 무인과 월계술사들도 각자 대장의 통솔 하에 천 명 가까이 되는 흑마일족과 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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