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화. 뿔뿔이 흩어지다
싸우는 소리가 한참 동안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특히 웅도는 일부러 석목에게 보여주려는 듯 유난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웅도는 몸을 노란빛으로 감싼 채 천위 후기 강자의 위압감을 풍기며, 손에 든 커다란 법보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그는 바다에서 튀어나온 용처럼 무인지경으로 흑마일족 대군을 휩쓸고 있었다.
연합은 기습적으로 거점을 공격한 덕분에 그 기세나 진형에서 모두 우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수는 상대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팽팽하게 맞설 수 있었다.
성지 연합의 제자들은 다급해하지 않았다. 이번 임무에서 그들의 목적은 단지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는 것이었고, 지원군이 도착하면 물러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양측이 일각이나 싸웠는데도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그동안 연합 쪽에서는 오십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고, 그 대가로 흑마일족을 삼백 명 가까이 죽였다. 그중에는 천위의 흑마일족도 일고여덟 명이나 있었다.
커다란 육지 조각에는 피가 강을 이루어 흘렀고, 사체가 곳곳에 널브러졌다.
흑마일족은 초반의 혼란을 수습하고, 몇몇 천위 후기 강자의 지휘 하에 점차 안정을 찾으며 역공에 나섰다.
그러자 양쪽의 전력 차이로 형세는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실력이 만만치 않은 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흑마일족 천여 명을 삼백 명이 상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석목 소대 주변에는 이미 흑마일족의 사체가 가득했고, 그 수는 무려 사십여 구나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서른 명이 넘는 흑마일족이 주위를 둘러싸고 위협하고 있었다.
곽참을 포함한 네 사람은 계속해서 사방진뢰대진을 시전하는 중이었는데, 전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게 법력의 소모가 적지 않은 듯했다. 앞쪽에서 방어 중인 제자들도 상처투성이였다.
그들이 구사하는 전술은 석목이 지난 십 년간 흑마일족과 교전하며 연구한 것이었다. 서너 배 많은 흑마일족을 물리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원 중 절반은 새로 바뀐 사람이었고, 합을 맞출 시간이 너무 짧았기에 전반적인 작전 수행 능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많은 적이 달려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긋나기 십상이었다.
석목은 자신의 소대가 곤경에 빠진 것을 보고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신도 천위 경지의 흑마일족 세 명에게 에워싸여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곽참 등 네 명을 보호하고 있던 사람 중 축운검파 제자 한 명이 마기의 빛기둥에 부딪힌 것이다. 곧바로 그의 손에 들린 영기와 빛의 막이 침식당했다. 그는 이어서 달려든 두 명의 흑마일족에 의해 복부와 가슴을 찔려 죽었다.
석목 소대의 전술은 공격과 방어에 전부 능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을 맞았으니, 다른 소대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끔찍한 비경과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졌다. 성지 연합 측의 사상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었다.
“인원수가 너무 적습니다. 방어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전투를 반 시진이나 지속했습니다. 이곳은 흑마일족의 거점이라 상대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우린 다 죽을 것입니다!”
“팔 호와 십 호 거점을 이미 통제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지원군은 빠른 시간 내에는 오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 지원군은요? 왜 아직 안 오고 있나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지원군은 어떻게 된 겁니까?”
성지 연합 측이 흑마일족에 의해 계속 밀리자 각 소대에서는 의혹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먼 곳의 성역에서 갑자기 검은 안개가 몰려오는 게 보였다.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면서 수십 갈래의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석목은 믿기지 않은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흑마일족 십 호 거점의 지원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올 수 있는 흑마일족 원군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십 호 거점뿐이었다.
“흑마일족의 원군이다!”
“가장 가까운 거점 두 군데가 봉쇄되었다며? 어떻게 지원군이 나타난 거야?”
“석 대장,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곽참이 다급한 목소리로 석목에게 전음을 보냈다.
“당황하지 말고 방어에 집중해라. 아마도 성지 연합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은자 전함에 연락해보겠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하, 우리 원군이 도착했으니 반격 시작이다! 죽여라! 한 명도 놓치지 마!”
한 천위 후기의 흑마일족이 음흉하게 웃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 말이 떨어지자 연합군을 포위하고 있는 흑마일족의 마기가 강해지더니 공세가 더욱 맹렬해졌다.
석목은 곤봉을 휘둘러 천위 흑마일족 두 명과 싸우며 은자 전함에 계속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신식으로 은자 전함의 한의에게 연락하려 했으나,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상대가 일부러 종적을 감춘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그의 신식이 닿는 범위를 떠난 것일 터였다.
그때 주변에서 천위 대장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한의 그 자식, 아무런 반응이 없어!”
“적의 원군이 오는 것을 보고 먼저 도망간 것은 아니겠지?”
“그럼 어떡해? 전함이 없으면 이 넓은 성역에서 도망갈 수도 없다고!”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좋지 않은 예감이 밀려왔다.
그때 그가 지닌 금색 영패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였다. 그 위에는 작은 글씨가 한 줄 새겨져 있었다.
“각 대장은 들어라. 작전에 변동이 있다. 반드시 구 호 거점을 지켜내라. 다른 조가 팔 호와 십 호 거점을 차지한 뒤 합류하여 흑마일족을 물리칠 것이다. 다음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철수할 수 없으며, 거역한 자는 군법으로 처리할 것이다.”
그것을 본 석목의 이마에서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의 마음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이 작전 변동이라고?’
아마도 막 장로는 처음부터 이들을 미끼로 호랑이를 산에서 빼내는 전략을 취한 게 분명했다. 팔 호와 십 호 거점의 흑마일족을 구 호 거점으로 끌어들이고, 그 틈을 타서 성계 강자들이 수비가 약해진 나머지 두 거점을 빼앗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전략적으로 그 두 곳의 가치가 구 호 거점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막린우, 이 여우 같은 자식! 우리를 이용했어!”
멀지 않은 곳에서 웅도가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기다린 건 적군의 지원군이었어!”
“연합이 우리를 버렸어! 이곳에서 지원병을 기다리라고 했지만, 우리를 미끼로 팔 호와 십 호 거점의 흑마일족을 없앨 작정이었던 거야!”
다른 대장들도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상황이 파악되자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안 돼. 여기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어! 빨리 이곳에서 도망쳐야 해!”
주변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자 성지 연합군 일대가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아무도 먼저 제멋대로 도망가지는 못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
웅도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더니 손을 번쩍였다. 그리고 창처럼 폭이 좁은 비행 법기를 꺼내들었다.
그 위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모양이 다양한 부문이 나타났다. 그것은 꽤 좋은 비행 법기였다.
웅도는 그 위에 올라타더니 영력을 시전하여 순식간에 구 호 거점을 떠나버렸다.
석목은 웅도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반짝이더니, 몸을 돌려서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가자!”
“대장, 전함이 없습니다. 이 부석 성해를 무슨 수로 뚫고 나갑니까?”
축운검파 출신의 제자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다. 우선 이곳을 떠나야 해. 십 호와 구 호 거점의 흑마일족이 함께 공격해오면 그때는 도망갈 수도 없을 것이다.”
석목이 말하면서 영우비차를 불렀고, 푸른빛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곽참 등 다른 사람들도 다급하게 각자의 비행 영기를 꺼내 석목의 뒤를 따라갔다.
누군가 먼저 도망가는 것을 보자 남은 대장들도 영기 법보를 꺼내 부하들을 데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구 호 거점의 혼란은 극이 달했고, 사방에서 백 갈래가 넘는 불빛이 나타났다.
“어딜 도망가!”
성지 연합의 제자들과 싸우던 흑마일족은 그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자 순식간에 검은 먹구름을 만들어 날아올랐다. 그리고 도망가는 제자들을 쫓아갔다.
성지 연합 제자들이 막 하늘로 올라간 순간, 순식간에 십여 갈래의 굵고 검은 안개가 줄줄이 이어져서 마치 쇠사슬처럼 그들을 막아섰다.
검은 안개의 다른 한쪽은 빠르게 날아오는 중인 흑마일족의 원군이었다.
검은 사슬을 맞닥뜨린 웅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뒤를 바싹 쫓아오던 천위 제자가 이를 악물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몸에서 은빛을 뿜어내며 일고여덟 명의 지계 제자를 데리고 검은 사슬로 봉쇄된 구역을 억지로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사슬은 사람들이 몸에 닿자마자 그들을 칭칭 감아버렸다.
사람들은 검은 안개에 의해 완벽하게 묻혀버렸고, 한참 후 그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웅도와 그 뒤에서 날아오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앞에는 사슬이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는 흑마일족이 쫓아오고 있었다. 제자들은 모두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들 잘 따라와라!”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사람들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영우비차를 거두고 몸에서 화염을 뿜어냈다.
석목은 커다란 날개를 번쩍이며 검은 안개로 봉쇄된 구역의 가장 앞쪽으로 날아갔다. 그의 손에 든 검은 곤봉에서는 화염이 맴돌고 있었다.
석목이 곤봉을 휘두르자 기류들이 모여들었고, 붉은 곤봉을 감싼 하얀 기류는 흉악한 짐승들로 변했다.
“백수진황!”
석목이 큰소리를 지르자 별의 바다에 맹수들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수없이 많은 붉은 기류가 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맹수가 되어 엄청난 홍수를 이루었고, 검은 안개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검은 안개 속에서 십여 갈래의 굵은 사슬이 뻗어 나와서 석목의 붉은 홍수와 얽혔다.
콰르르!
맹수들과 검은 사슬이 부딪쳤다가 다시 흩어졌고, 불꽃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어서 수백 마리나 되는 맹수가 가장 앞서 달려 나갔고, 성역의 부석들이 흔들렸다. 끊임없는 충돌 뒤에 검은 사슬이 드디어 기세를 잃고 멈춰버렸다.
그때 붉은 곤봉이 불꽃 사이에서 튕겨 나왔고, 타오르는 화염을 칭칭 감은 곤봉은 사슬을 힘차게 내리쳤다. 곤봉에서 하얀 화염 몇 줄기가 은은하게 보였다.
쿵!
화염의 곤봉이 쇠사슬을 때렸다. 허공에 틈새가 몇 갈래 생기더니 검은 안개 사슬이 전부 끊어져버렸고, 검은 안개에 큰 구멍이 한 개 생겼다. 별 하늘이 찢어진 안개 사이로 얼굴을 보였다.
석목이 날개를 펄럭이며 가장 앞에서 안개를 뚫고 지나갔고, 소대원들은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가 그 뒤를 바싹 쫓아갔다.
성지 연합의 다른 제자들도 그 모습을 보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앞에 있던 백여 명만 빠져나왔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구멍 앞에서 막혀버렸다.
웅도는 구멍과 가까이 있었던 터라, 앞에서 날아가는 사람들을 물리친 후 그곳을 뚫고 지나갔다.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연합 제자들은 구 호 거점의 흑마일족에게 붙잡혔다.
이어서 흑마일족 지원군도 코앞까지 다가왔다. 마기가 넓게 펼쳐져서 몰려오더니 또다시 십여 갈래의 굵은 안개 사슬이 구멍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제자들을 전부 묶어버렸다.
검은 안개 속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망 나온 사람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비선을 타고 뿔뿔이 흩어졌고, 하늘에 떠다니는 부석들 사이를 이리저리 날았다.
백여 명의 사람 중 십여 명은 대장이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더는 자신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전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침묵에 잠겨 날아가고 있었다.
석목은 자신의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곽참을 포함해 단 여섯 명만 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