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성계의 강자
망망 성해에서 그들은 한참 동안 비행을 계속했다. 뒤쫓아 오던 흑마일족도 드디어 자취를 감추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비로소 긴장을 조금 늦추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커다란 운석을 지나칠 즈음, 격렬한 공간의 파동이 밀려왔다.
칠흑 같은 하늘에 길고 좁은 틈이 생기더니 그 속에서 회색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난류!”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빨리 피해라! 이곳을 벗어나야 해!”
한 천위 제자가 놀라 소스라치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라서 방향을 돌렸고, 거대한 운석을 피하려 했다.
별 하늘의 난류는 별이 부서질 때 형성되는 혼돈의 힘을 가진 회색빛으로, 하늘과 땅 사이의 양의 힘과 음의 힘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막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서 접촉하는 모든 사물을 순식간에 산산조각 낼 수 있다. 그 때문에 평범한 비행 영기는 절대 접근할 수 없었다. 은월 같은 일등급 전함을 타지 않고 난류가 있는 성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다만 난류는 성역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고, 규칙이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즉, 석목 일행은 극도로 운이 좋지 않아서 이곳에서 마주치게 된 셈이었다.
퍽!
커다란 운석은 회색빛에 닿자 마치 타오르는 태양에 부딪힌 얼음처럼 가루로 변해버렸다.
운석이 가루로 변하자 공간의 파동이 더 격렬해졌다. 그리고 별 하늘에서 회색 소용돌이로 변하더니 엄청난 흡입력이 그 속에서 몰려왔다.
그곳을 벗어난 사람들은 이내 강력한 힘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비행 법기의 속도도 순식간에 느려졌으며, 몇몇 지계 제자는 자신의 비행 법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뒤로 밀려가고 있었다.
석목은 자신의 대원 중 한 명이 뒤로 밀려가는 것을 보았고, 다급하게 그를 힘껏 당겨서 소용돌이의 힘이 미치는 범위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다른 세 명은 운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들은 강력한 힘에 끌려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산산이 부서졌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석목은 자신의 몸속에 있는 힘이 별 바다의 회색 소용돌이와 맞물리는 느낌을 받았다. 끌려가는 힘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몸속의 힘이 소용돌이와 함께 천천히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회색 소용돌이는 차차 멈추더니 사라졌다.
남은 사람들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고, 모든 사람은 입을 다문 채 움직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누군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저길 봐! 은자 전함 아니야?”
사람들은 그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 별의 조각 옆에 전함이 정박해 있었다. 부문이 복잡하게 새겨져 은은하게 빛을 뿜고 있는 그 배는 바로 은자 전함이었다.
연합의 제자들은 매우 기뻐했다. 이삼십 명의 지계 제자가 기다리지 못하고 전함을 향해 날아갔다.
곽참도 막 날아가려 하는 순간, 석목이 그를 붙들었다.
곽참은 멈칫하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장들을 포함해 오십 명이 넘는 사람은 전함을 지켜보기만 할 뿐 다가가지 않았다. 그는 그걸 보고 이내 뭔가를 깨달았다.
다른 한쪽에 있던 웅도는 곁눈질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날아가려던 그의 몸이 멈추었고, 차가운 눈빛으로 은자 전함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전함 근처까지 날아갔을 때, 전함의 옆에 있던 별 조각에서 갑자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은백색 빛의 막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수백 명의 흑마일족 사람이 그 속에 나타났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팔 호 거점의 지원군도 쫓아온 것이다. 심지어 존재를 숨길 수 있는 은자 전함마저 빼앗겼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남은 천위 제자들이 세개 조로 분산해서 돌파하자!”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제안했다.
사람들은 여럿으로 갈라지고 싶지 않았지만, 같이 있다가는 전멸이라는 끔찍한 결과가 다가올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럿으로 나뉘면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었다.
남은 서른 명은 세 조로 나뉘었고, 각 조는 서너 명의 천위 제자가 이끌었다.
석목의 조는 기존의 대원들로 구성되었고, 웅도도 그의 조에 합류하겠다고 했다.
형세가 다급한 데다 웅도의 실력이 다른 천위 제자들보다 강한 만큼, 석목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동의했다.
세개 조는 빠르게 나뉘어 각각 세 방향으로 도망쳤다.
먼저 은자 전함으로 날아가던 이삼십 명은 흑마일족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였고, 곧이어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석목 등 스무 명의 사람이 막 도망쳤을 때, 근처의 대륙에서 검은 기운이 용솟음쳤다. 그곳에는 백 명이나 되는 흑마일족이 길을 막고 있었다.
석목은 눈길을 돌려서 양쪽을 바라보았다. 수 리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두개 조도 똑같이 막혀 있었다.
가장 앞쪽에서 길을 막고 있는 흑마일족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온몸의 피부가 갈갈이 찢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찢어진 곳에서 피가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어 가시 같은 백골이 찢어진 곳에서 솟아나왔고, 구불거리며 사지를 덮어버렸다. 갈비뼈도 전부 튀어나와서 하얀 흉갑처럼 가슴을 감싸고 있었다.
석목이 큰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가서 손에 든 검은 곤봉에서 화염을 뿜어냈다. 뼈 갑옷을 두른 흑마일족도 두 팔을 앞으로 교차하며 그를 향해 다가왔다.
펑!
순간 뼈 갑옷을 두른 흑마일족의 몸이 짓눌리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석목의 여의빈철곤이 그 뼈 갑옷 사이에 끼어 있었다.
흑마일족이 큰소리로 외치자 마기가 몸에서 소용돌이쳤다. 그의 팔에서 뾰족한 뼈가 튀어나와서 석목의 가슴으로 향했다.
석목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곤봉이 긴 창처럼 흔들리며 앞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흑마일족은 가슴을 내밀고 석목을 향해 전진했다. 그는 조금의 두려운 기색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입에서 끈적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흑마일족은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뚫어버린 검은 곤봉을 바라보았다.
곤봉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다만 회색 안개를 두르고 있는 게 조금 기이해보였다.
그 회색 안개에는 음과 양이 섞인 혼돈의 기운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 리 없었다.
한편 석목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웅도가 차가운 빛이 번뜩이는 장검을 휘두르며 천위 경지의 흑마일족의 가슴을 뚫었다.
석목과 웅도가 길을 열자 또 다른 두 명의 천위 대장이 각자의 필살기를 시전했고, 스무 명 정도의 지계 제자들을 이끌고 싸워나갔다.
그들이 길을 막은 적군을 뚫고 지나갈 때쯤, 다른 두개 조의 사람들은 흑마일족의 포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은자 전함 주변에서 수백 명의 흑마일족이 쫓아오자 그들을 이끌던 대장들은 석목이 있는 쪽으로 전부 도망 왔다. 마흔 명이 넘는 지계 제자의 생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바람에 가뜩이나 위태롭던 전선이 무너져버렸고, 남겨진 마흔 여 명의 지계 제자는 그대로 흑마일족에게 둘러싸였다.
“저 멍청이들!”
웅도는 그 광경을 보더니 욕설을 퍼부었다.
대장들이 도망가자 은자 전함에 있던 흑마일족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그들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서 석목 등이 있는 쪽으로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었다.
“빨리 가자!”
석목이 낮게 소리 지르자 그의 두 날개에서 하얀빛이 나타났다. 그는 곤봉의 그림자를 층층이 만들어서 길을 막고 있는 몇 명의 흑마일족을 단번에 물리치고, 곽참 등을 데리고 빠르게 도망갔다.
웅도와 또 다른 대장 두 명은 대원들을 데리고 석목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 뒤에서는 아홉 명의 천위 경지 대장 중 단 한 명만 붙잡혔고, 나머지는 구멍이 다시 메워지기 전에 도망쳐 나왔다.
석목은 가장 앞쪽에서 날아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도망쳐나온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그의 가슴이 갑자기 내려앉았다. 극도로 위험한 무언가가 몰려오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다급하게 날개를 거두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러나 그의 뒤에서 따라오던 천위 대장들은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바로 멈출 수 없었고, 그중 다섯 명은 이미 석목을 앞질러 날고 있었다.
그때 강한 영력의 파동이 갑자기 밀려왔다. 앞쪽의 커다란 육지 위에서 산봉우리 같은 안개 손바닥이 마기를 휘감은 채 석목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거센 회오리바람이 마기를 감싸며 흉흉하게 몰려왔고, 그 바람에 부석 성해의 운석과 육지의 파편들이 부서져서 돌들이 휘날렸다.
다섯 명의 천위 대장은 판단력을 잃고 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안개 손바닥으로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그들은 안개를 뚫고 나오려 했지만, 손바닥에 강하게 붙잡혀버렸다.
펑! 펑! 펑!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비명소리마저 내지 못했다. 그들의 몸은 손바닥에 의해 부서져서 피의 안개를 뿌렸다.
남은 사람들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회오리바람에 의해 여기저기 흩날리며 뿔뿔이 흩어졌다.
석목 소대의 이진종 제자 한 명은 머리를 운석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의 머리는 잘 익은 수박이 깨지듯 쉽게 부서져 버렸다. 곽참과 나머지 두 사람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석목은 등 뒤의 날개를 움직이며 옆에 있는 운석을 잡고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운석 위에는 키가 오 장 정도에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몸에 마문이 가득 새겨진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목에는 머리 세 개가 돋아 있었고 몸에는 팔이 여섯 개나 있었다. 무서운 기운을 풍기는 것이 성계의 존재가 분명했다.
그가 여섯 개의 팔을 흔들자 검은 기운이 그 속에서 튕겨 나왔다. 기운은 다시 손바닥으로 변했고, 혼잡하게 날아다니는 부서진 돌 사이에서 도망가려는 자를 잡아서 그대로 부숴버렸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그 남자가 바로 흑마일족의 대령 소요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소요의 머리가 천천히 움직이며 주변을 훑어보더니 석목에게 시선이 향했다.
석목은 강력한 신식이 그의 몸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소요의 눈알 여섯 개가 전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동작을 멈추고 사방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때 누군가가 석목을 불렀다.
“석목!”
석목이 고개를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의 커다란 운석에 세 그림자가 붙어있었다. 그를 부른 것은 웅도였고, 그 외에 또 다른 천위 제자 두 명이 있었다.
웅도는 석목이 자신을 바라보자 곧바로 전음을 보냈다.
“저 놈은 성계의 강자야.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놈이 아니라고. 나에게 방법이 하나 있는데, 당신들이 도와줘야 해.”
“어떻게 도우라고?”
석목이 물었다.
“잠시 후 저 놈이 우리를 공격할 때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좀 벌어줘. 내가 저 놈의 봉쇄를 뚫어버릴 테니까.”
웅도가 말했다.
그 사이에 소요의 커다란 몸집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는 단번에 수십 장을 이동하며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막고 있을 테니 빨리 움직여.”
석목이 웅도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른 두 명과 함께 소요의 앞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