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화. 구실을 없애다
소요의 머리 세 개가 움직이더니 각각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여섯 개의 눈알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여섯 손바닥은 은밀한 법결을 시전하면서 입으로는 복잡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변에서 짙고 끈적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와서 별 하늘을 뒤덮었다. 잠시 후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손바닥이 나타나서 산처럼 그들을 압박해왔다.
검은 손바닥을 본 석목 일행은 온몸의 영기를 전력으로 동원했고, 그들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중 한 명은 검결을 시전했는데, 손에서 자색 비검이 나오더니 십 장 정도 넓이의 커다란 빛의 검으로 변해 손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또 다른 사람은 몸에서 푸른 화염을 뿜어냈다. 화염은 커다란 불의 바퀴로 변해서 회전하며 손바닥 쪽으로 향했다.
석목은 두 손에 화염이 들끓는 여의곤을 들고 팔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가 곤봉을 몇 바퀴 돌리자 회오리 기운이 곤봉의 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콰르르!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세 갈래의 빛이 검은 손바닥을 공격했고, 그 바람에 손바닥이 격하게 흔들렸다. 완전히 부숴버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다가오는 기세는 어느 정도 멈추었다.
펑!
그 순간 검은 손바닥이 갑자기 부서졌다.
석목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손바닥은 부서져서 안개가 되어 흩날리더니, 다시 소용돌이를 형성하여 사방팔방에서 몰려왔다. 이어 소용돌이는 눈 깜박할 사이에 검은 안개의 공으로 변하여 세 사람과 웅도까지 전부 안에 가둬버렸다.
그때 석목은 매우 익숙한 영력의 파동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고,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본 그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웅도의 몸이 옥처럼 하얗게 변해서 하얀 화염을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구전현공을 시전하고 있었는데, 이미 첫 번째 단계를 터득한 것 같았다.
“하!”
웅도가 분노에 찬 기합을 지르자 그의 몸에서 울퉁불퉁한 근육이 튀어나왔다. 이어 피부에서 얇은 솜털이 갑자기 자라나더니 점점 굵어지고 단단해졌다.
잠시 후 웅도의 몸이 육 장 정도까지 커지면서, 하얀 곰 한 마리로 변했다.
“칵!”
하얀 곰이 크게 포효하며 발을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운석을 밀더니, 네 발로 운석의 바닥을 짚고 살기를 풍기며 앞으로 날아갔다.
백 장 정도까지 날아간 곰은 뒷다리로 커다란 운석을 짚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어 그의 앞발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날카로운 발로 검은 손바닥을 갈겼다.
검은 손바닥은 곰을 잡으려 했지만, 웅도는 그 직전에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러자 곰의 두 발이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커다란 손을 단번에 찢어 구멍을 만들어냈다.
구멍이 뚫리자 소요의 커다란 몸이 부르르 떨렸고, 그의 왼쪽 머리의 입가에 얇고 끈적한 피가 묻어 있었다.
석목 등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곧바로 빛을 뿜어내며 찢어진 구멍으로 향했다.
웅도도 그 뒤를 곧바로 따라왔다. 그는 하얀 곰 모양으로 한참을 달리더니 잠시 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석목과 웅도 등 남은 네 명이 부석 성해에서 계속 도망친 지 두 시진이 지났다.
석목은 영우비차를 타고 다른 세 명과 나란히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두 눈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성해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마음을 놓았다.
“이젠 안전할 겁니다. 조금 쉬었다 갑시다.”
사람들은 전부 지쳐있었기에, 웅도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전함 없이 오랜 시간 도망을 가느라 체력과 진기 소모가 상당히 컸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내려온 웅도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장검을 땅에 꽂아놓았다. 그리고 손에 최상급 영석을 쥐고 진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두 명은 웅도와 멀지 않은 왼쪽에서 가까운 빈 땅을 찾아 앉았다.
그중 한 명이 가부좌를 틀고 푸른 장검을 몸 앞에 꽂았다. 검의 기운이 그의 주변에 나타나서 그를 감쌌다.
그의 이름은 진쟁(秦铮)이었다. 축운검파의 천위 중기 제자로, 석목 소대와도 함께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석목은 그의 보검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아 있었다.
진쟁은 법기인 능운검(凌云剑)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검술 실력 또한 대단했다. 천위 후기의 흑마일족 한 명 정도를 물리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석목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이진종의 천위 후기 제자이고 이름이 범천(范天)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다만 이진종의 뇌법을 수련한 것 같지는 않았고, 위력이 엄청난 불 계열의 공법인 이화진수도(离火真兽图)를 수련하였다.
석목은 웅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암석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단약 몇 개를 꺼내 입에 넣은 뒤 최상급 영석 두 개를 손에 쥐고 휴식을 취했다.
한참 후 웅도가 자신의 검을 땅에서 뽑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칼날을 매만지며 말했다.
“성지 연합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결국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다니. 일단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명을 거역했기에 돌아가기도 어려울 것 같군요.”
그의 말에 진쟁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성지 연합이 우리를 버린 것인데, 명을 거역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말이 그렇다고 해도 규율은 규율입니다. 처음 요새에 도착했을 때 우린 이미 명을 거역한 대가에 대해 자세히 들었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마도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범천이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걱정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목숨을 갖다 버리는 것보다는 처벌이 낫지! 십 년 넘게 이곳을 지켰으니 처벌을 하든 공훈을 전부 없애든 이번에는 꼭 돌아갈 겁니다. 다행히 웅 사형의 대단한 실력으로 큰 문제없이 적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청란성지의 삼 대 조화 신통 중 하나입니다,”
진쟁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웅 사형의 구전현공 덕분에 별 탈 없이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 공법은 대성까지 수련하면 피 한 방울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위력이 대단한 데다 거기에 내재된 음양의 힘은 마기를 정복하기에도 매우 좋은 것이라 합니다. 오늘 보니 역시 대단한 것이었군요.”
범천이 말했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쪽에서 진기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신식을 사용해서 경계 자세를 취했다.
“허허, 과찬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처벌을 피할 방법이 있습니다.”
웅도가 장검을 땅에 살짝 꽂으며 말했다.
“그래요? 어떤 방법입니까?”
범천이 눈빛을 반짝이며 다급하게 물었다.
“죽어버린다면 돌아가서 벌을 받을 일도 없을 것입니다.”
웅도가 웃으며 말했다.
“뭐라구요? 너…….”
범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웅도의 안색에 흉악한 빛이 스쳤다.
“천인(千仞)!”
퍽!
그의 장검의 표면에서 은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사람들이 서 있는 운석의 땅속에서 마치 연꽃처럼 수천 갈래의 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은색 빛이 튀어나오자마자 몸에 화염을 둘렀고, 곧이어 그의 몸에 금색 비늘이 솟아났다. 어느새 그는 한 손으로 바닥을 치며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곤봉을 손에 쥐고 서 있었다.
석목이 아래를 보니 사람들이 푸른 장검을 들고 휘두르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은백색의 칼날이 격하게 부딪치며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다른 한쪽에는 범천이 두터운 푸른 비늘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가슴에서 맹수 조각상 허영이 튀어나와서 입에서 푸른 화염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얀빛은 푸른 갑옷의 표면만 뚫고 이내 터져버렸다.
“웅도,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범천이 소리쳤다.
“미친 거냐? 흑마일족은 죽이지 않고 우리와 싸우다니!”
진쟁이 욕설을 퍼부으며 말했다.
“내가 뭘 하고 있냐고? 허허, 너희 둘, 내가 시전하는 구전현공을 봤지? 구전현공을 수련하는 걸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된다는 것을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석목 저 놈 특히 첫 만남부터 썩 맘에 들지 않았어. 다만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웅도가 석목을 가리키며 음흉하게 웃었다.
“흥! 네가 구전현공을 시전할 때부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니. 이렇게까지 서두를 줄이야.”
진쟁이 차갑게 말했다.
“너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려들다니! 구전현공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고작 첫 번째 단계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범천이 진쟁의 옆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허허, 그렇다면 진정한 구전현공의 힘을 맛보게 해주지!”
웅도가 말을 내뱉으며 빠르게 발을 움직였고, 단번에 몇 장을 움직여 다가갔다. 그의 두 팔에서 근육이 튀어나오면서 상당히 굵직하게 변했다. 그는 장검을 머리 높이 치켜들고 두 사람을 내리치려 했다.
그의 장검에서 하얀빛이 반짝였다. 그곳에서 집 크기만 한 커다란 빛이 뿜어져 나왔고, 하얀 기류가 감돌면서 바람소리를 만들어냈다.
석목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극도로 뜨거운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양의 힘!’
석목은 두 손에 각각 붉은색과 파란색 두 개의 최상급 영석을 손에 쥐고 있었고, 영석의 표면에서 빛이 반짝였다.
진쟁의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는 굉장한 검의 기운을 풍기며 손에 든 장검과 일체화가 되려는 듯했다.
이어 그의 검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며 격하게 흔들렸고, 수많은 푸른 검꽃이 하늘에서 흩날리며 스치는 곳마다 틈을 만들어냈다.
범천도 다급하게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의 가슴 앞에 있는 푸른 맹수의 허영이 급격하게 커지더니 앞으로 날아갔다. 맹수는 마치 하늘을 삼키려는 듯 꼿꼿이 서서 하늘 전체를 푸른색으로 물들여놓았다.
푸른 불의 풍차와 검꽃이 날아오는 하얀 칼날에 부딪혔다.
“굳어라!”
웅도가 큰소리로 외치자 장검의 표면에서 영문이 크게 번졌다. 이어 하얀 칼날의 표면에서 현묘한 부문이 눈부시게 번지며 끊임없이 움직였고, 이미 뜨거워진 빛을 더 눈부시게 달구었다.
쿵!
허공에서도 주변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고, 장검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톱처럼 불의 풍차를 갈라버렸다. 하늘을 뒤덮은 검꽃도 빛에 의해 전부 부서졌다.
온 천지가 순식간에 하얀빛으로 채워졌다.
진쟁 등 두 사람은 법기가 파손되면서 공격을 받고 피를 뿜어냈다. 그들은 다른 동작을 더 취하기도 전에 빛에 의해 삼켜져버렸다.
“아악…….”
두 사람은 처절하게 울부짖었고, 곧 타오르는 화염에 의해 검게 그을린 시체로 변했다.
석목은 계속해서 차가운 눈빛으로 웅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손에 여전히 영석을 쥐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하얗게 물들인 빛이 사라지면서 웅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가 들고 있던 장검의 표면에 있는 영문이 어두워졌다.
“석목, 너를 계속 주시하면서 네가 나서기를 기다렸다. 네가 두 사람을 도와서 힘을 합쳤더라면 살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었잖아? 그런데 넌 멍청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더군.”
웅도가 몸을 돌려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하나쯤 죽이는데 힘을 합칠 것까지 있나.”
석목이 덤덤하게 말했다.
“허세를 부리다니!”
웅도는 석목의 말을 듣더니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가 장검을 손으로 꽉 쥐자 하얀빛이 검을 감쌌고, 기세도 훨씬 강력해졌다.
그가 몸에서 빛을 번쩍이며 석목에게 다가왔다.
“료천참(撩天斩)!”
웅도가 소리를 지르며 몸을 반 정도 비틀었다. 그리고 장검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찍었다.
반달 모양의 하얀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공기에서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에는 줄기줄기 들끓는 하얀 화염도 섞여 있어서 위력이 대단해 보였다.
석목은 실눈을 뜨더니 날개를 펼쳐 뒤로 물러났고, 다시 전진하면서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다.
쾅!
격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의 오른쪽 주먹과 웅도의 하얀 화염이 부딪혔다. 허공에 수많은 기류가 퍼졌고, 양쪽은 잠시 동안 대치 상태를 이루더니 터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