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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93화 (493/916)

493화. 위기

웅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석목의 오른쪽 주먹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온통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석목의 주먹은 검게 변해 있었다. 마치 검은 수정 같았는데, 웅도의 공격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음의 힘……. 너도 구전현공을 수련했구나!”

웅도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안색이 굳으며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덤덤한 눈빛으로 웅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쪽 주먹에서 검은빛이 눈에 띄게 퍼지더니 오른쪽 팔 전체가 까맣게 변했고, 표면에서는 빛이 감돌고 있었다.

“고작 인족 놈이 구전현공을 연마했다니. 심지어 두 번째 단계까지 수련했어? 어쩐지 잘난 체를 하더라니.”

웅도는 차가운 눈으로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왜? 무서워?”

석목이 말했다.

“무서워? 하하! 현공 두 번째 단계면 또 어쩔 건데? 고작 천위 초기에 있는 놈이 나와 싸우겠다니. 아직 턱없이 부족해. 현공을 수련했으니 죽어도 억울하지는 않겠군!”

웅도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장검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몸에서 엄청난 영력의 파동을 뿜어냈다.

“으윽…….”

그의 옷이 찢어지더니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왔고,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부에 자라난 솜털은 굵고 길게 변했다.

잠시 후 웅도는 십 장 정도 되는 커다란 곰으로 변했고, 그의 머리는 허공에 서 있는 석목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와 있었다.

지난번과 달리 곰의 몸은 반은 하얀색이고 반은 검은색이었다.

“두 번째 단계…….”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 웅도는 천수인 호천웅(昊天熊)의 혈맥을 가지고 있다. 감히 비천한 인족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

곰은 석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왼쪽 손바닥을 들어 하얀 화염을 석목에게 뿜어냈다.

석목은 곧바로 오른쪽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팔에서 검은빛을 뿜어내며 다시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커다란 주먹 그림자가 나타나서 하얀 곰의 발바닥과 부딪쳤다.

쾅!

석목은 엄청난 힘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튕겨 날아갔다.

그는 허공에서 몸을 몇 번 회전시키며 간신히 균형을 잡았고, 몸속에서 기혈이 들끓더니 피가 입으로 한 모금 뿜어져 나왔다.

“똑같은 구전현공의 두 번째 단계지. 천수 본체에서 나온 양의 힘이 어때?”

곰이 말했다.

석목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빛냈다. 그의 등 뒤에 있는 날개가 갑자기 하얗고 검은색으로 변했고, 혼돈의 기운을 은은하게 뿜어냈다. 그가 풍기는 기운도 몇 배나 강해졌다.

“아니, 음양 합일? 이건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의 힘이잖아! 말도 안 돼!”

곰이 큰소리로 외쳤다.

석목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하얗고 검은 빛이 섞인 두 팔을 앞으로 뻗어서 음양의 힘을 시전하였다.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커다란 손바닥 두 개가 나타났다. 왼쪽 손에서는 하얀 화염이 들끓었고, 오른쪽 손에서는 검은빛이 빛났다.

석목은 몸 앞으로 두 손바닥을 마주하고 힘차게 합장했고, 허공에서 커다란 두 손바닥이 강하게 부딪쳤다.

쿵!

허공에서 하얀 화염과 검은빛이 섞였다. 두 기운은 서로 침투하며 얽히고설키더니 회색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소용돌이는 만들어지자마자 하얗고 검은 안개의 공이 되어 곰을 향해 날아갔다.

이 광경을 본 곰의 몸에서 흉악한 기운이 스쳤고, 곰은 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두 손바닥을 위로 치켜들어 안개의 공에 맞섰다.

하얗고 차가운 얼음산이 화염의 힘에 밀려 빠르게 날아가서 안개 공과 부딪쳤다.

얼음산과 비교하면 하얗고 검은 안개 공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고, 아무런 기세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이 부딪치는 순간 하얗고 검은 안개 공은 그대로 얼음산을 뚫어버렸다. 이어서 하얀 화염마저 가로지르더니 놀라운 속도로 커다란 곰의 가슴에 부딪혔다.

쿵!

곰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얼음산과 함께 터져버렸다. 검은빛과 하얀 화염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하늘과 땅 사이는 하얗고 검은 두 가지의 색으로 물들여졌다.

허공 속에서 부러진 팔다리와 얼음산 조각이 곳곳으로 튕겨 나가더니 다시 힘에 이끌려 날아왔다.

혼돈의 안개는 마치 커다란 짐승처럼 입을 벌리고 부러진 팔다리와 얼음 조각들을 전부 삼켜버렸다.

한참이 지나자 땅 위는 사람들이 오기 전과 마찬가지고 고요해졌고, 아무런 영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운석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 있었는데, 깊이가 한 장 정도 되어 보였다. 그 안에는 웅도의 찢어진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석목은 깊은 웅덩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고, 그의 등 뒤에 돋아난 하얗고 검은 날개는 다시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석목은 날개를 가볍게 흔들며 허공에서 내려왔다.

상대를 죽이긴 했지만 석목의 안색도 좋지는 않았다. 계속 정신없이 도망친 데다 구전현공까지 펼치는 바람에 쉴 틈이 전혀 없었다. 몸은 내상을 입고 있었고 기운도 온전치 못했다.

석목은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을 단번에 삼켰다. 그제야 그의 안색이 조금 회복되었다.

그는 손을 흔들어 파란빛을 뿜어내면서 웅도와 다른 사람들의 시체를 저장 법기에 넣었다. 한쪽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법보와 영기도 거두어들였다.

석목은 다시 웅도의 시체를 살펴보다가 하얀 옥병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여 앞쪽을 가리켰다.

웅도의 시체에 머리카락처럼 얇은 핏줄기가 나타나더니 다시 작은 핏덩어리로 뭉쳐졌다. 그것은 석목이 법결로 이끌자 옥병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석목은 하얀 옥병을 거둔 후 세 사람이 모은 마혼도 가져왔다. 그리고는 불의 공을 만들어서 세 명의 찢어진 사체를 태워버렸다.

그는 다시 영우비차를 불러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비차 위에서 최상급 영석을 두 개를 꺼내 진기를 빠르게 흡수하였다.

하지만 석목이 날아가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등 뒤에 펼쳐진 칠흑 같은 성역에서 검은빛이 빠르게 날아왔다.

검은 빛은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 빛은 어느새 석목의 지척까지 다가왔고, 목을 조여 오는 듯한 두려운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빛 속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풍겨오는 위압감이 낯설지 않았다. 바로 성계의 흑마일족이었다.

그는 더 고민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등에 커다란 날개를 펼친 채 왼쪽 팔에 있는 양의 힘을 날개에 불어넣었다. 잠깐 사이에 날개의 크기가 몇 배나 커지며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날개를 펄럭이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멀리 달아났다. 그는 단번에 수 리 밖으로 날아가서 점으로 변하였다.

자신의 경지보다 몇 단계나 높은 존재 앞에서는 더 숨길 것도 없었다.

“음? 이렇게 순수한 양의 힘이라니……. 구전현공인가!”

석목을 뒤쫓던 소요는 그가 달아나는 것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벌레 같은 놈들 몇을 해치우다가 구전현공을 수련한 자를 다 만나다니. 저 공법은 우리 흑마일족의 천적이니 더욱 놓아줄 수가 없겠군!”

소요는 검은빛을 뿜어내며 석목의 뒤를 계속 쫓아갔다.

양의 힘을 날개에 불어넣은 석목은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며 빠르게 뒤로 흘러갔다.

그의 속도는 이미 상상할 수 없는 경지까지 도달했지만, 소요의 검은 빛은 더 빨랐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석목은 마음속에서 막막함이 몰려왔다. 이 성역에는 부서진 육지 조각과 죽어버린 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점점 흘렀고, 둘은 이제 칠팔 리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소요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물통 굵기의 검은 빛기둥이 그 속에서 튀어나왔고, 빛기둥은 번개처럼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곧바로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석목은 흠칫 놀랐다. 검은 기둥이 품고 있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 빛기둥을 맞으면 죽지는 않는다 해도 중상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그는 등 뒤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날개의 표면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수십 장 멀리까지 날아갔고, 간신히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 바람에 그가 앞으로 날아가는 속도도 줄어들었다. 그 순간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소요가 나타나서 길을 막아섰다.

석목의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어떤 천위의 존재도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천위의 대원만에 도달한 무인이라 해도 싸워볼 만했다.

하지만 성배를 응결시킨 성계 강자의 실력은 천위 무인과는 천지차이였다. 그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인족 놈, 구전현공을 수련했다는 것은 흑마일족의 천적이라는 뜻이다. 목숨을 내놓아라.”

소요가 차갑게 웃었다. 그의 몸에 새겨진 마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커다란 먹구름이 나타났다.

쓱!

검은 손바닥이 먹구름에서 튀어나와 석목을 잡으려 했다.

손이 다가오기도 전에 가늠할 수도 없는 힘이 먼저 퍼졌고, 주변의 허공이 일그러지더니 석목을 압박해왔다.

석목은 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완성했다. 그리고는 붉은 원숭이 법상이 그의 몸속에서 튀어나와서 커다란 화염 곤봉을 휘둘렀다.

“으아!”

붉은 원숭이 법상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어 화염으로 감싸인 곤봉이 몇 배나 커지더니 미친 듯이 큰 손을 공격했다.

이를 본 소요의 눈에서 경멸의 기색이 스쳤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서 몇 갈래의 법결을 만들어냈다.

검고 커다란 손이 부풀더니 다시 몇 배나 커졌고, 표면에는 마문이 촘촘히 생겨났다. 커다란 손은 손가락을 굽히며 화염 곤봉과 붉은 원숭이 법상을 손에 쥐고 부숴버리려 했다.

그때 검은 손의 위쪽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석목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온몸을 금빛으로 감싼 채 붉은 불빛과 파란 물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적원화경과 명수결, 토템의 힘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극도로 끌어올려 시전했다. 놀라운 힘이 그의 몸에서 폭발했고, 주변의 허공이 격하게 흔들리며 끊임없이 일렁였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여의빈철곤의 표면에서는 끝없이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위력은 붉은 원숭이 법상의 화염 곤봉보다 훨씬 강력했다.

“하!”

석목이 기합을 지르며 여의빈철곤을 휘둘러 굵고 커다란 곤봉 그림자를 만들었다.

펑!

여의빈철곤에 맞은 검은 손의 표면에서 빛이 미친 듯이 번쩍이더니 곧장 부서져버렸다.

소요의 얼굴에는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다.

“이놈, 내가 너를 너무 우습게 봤구나. 이렇게 많은 재주를 부릴 줄이야. 성계에 가까운 힘을 쓰다니!”

그는 큰소리를 지르며 다시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소용돌이치며 여덟 개의 검은 손이 그 속에서 튀어나왔다. 검은 손들은 하늘을 뒤덮으며 석목을 잡으려 했고, 빈틈없이 퇴로를 전부 막아버렸다.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손들이 곧 석목의 머리와 사지를 잡아서 찢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석목은 그 자리에 서서 피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고, 숙연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복잡한 주문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등 뒤에서 붉은빛과 파란빛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쳤다.

붉은 원숭이 법상이 눈 깜박할 사이에 나타나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번쩍였고, 이어서 등 뒤에 있는 한쪽 날개에 스며들었다. 날개는 순식간에 열 배 정도로 커져서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이어 파란빛이 반짝이더니 커다란 법상이 십여 장 높이까지 날아올랐다. 상반신은 사람 모양에 하반신은 파란 물고기 꼬리 모양인 반인반어 법상이었다.

파란 법상도 빛을 반짝이더니 또 다른 한쪽 날개로 스며들었다.

날개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화염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끊임없이 맴도는 물줄기로 변했고. 이번에는 물로 만들어진 날개가 나타났다.

날개의 한쪽은 불이고 한쪽은 물이었지만, 둘은 전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손이 석목과 닿으려는 순간, 그가 등 뒤의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자 화염과 물의 기운이 십 장 밖까지 퍼져나갔다. 이어 석목의 몸이 반짝이며 사라지더니 다시 백 장 밖에 나타나며 검은 손이 닿는 범위를 벗어났다. 그의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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