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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96화 (496/916)

496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소요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는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소요의 몸이 터져버리며 그 자리에는 수많은 핏덩어리만 남았다.

석목은 백 장 밖의 허공에서 멈춰 섰다. 거친 숨을 들이마시는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창에서 연나가 나왔다. 그녀 역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몸에 두르고 있는 하얀 빛도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어두웠다.

연나를 보는 석목의 눈에는 존경심과 놀라움이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성계의 존재가 그와 연나에 의해 이렇게 죽다니,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물론 운이 따르기도 했고, 연나가 포기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사실 처음에 석목은 어떻게 해서든 도망갈 궁리만 했었다.

그가 별 생각 없이 거둔 이 해골 영총은 점점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때 흩날리는 피의 빗속에서 검은빛 공이 튕겨 나왔다. 그것은 아기처럼 작은 분신(小人)이었는데, 얼굴은 소요와 똑같이 생겼다.

검은 작은 분신은 원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석목과 연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한줄기 검은빛으로 변하여 순식간에 멀리 날아갔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날개를 펼치고 곧바로 그것을 쫓아갔다.

하지만 작은 분신은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눈 깜박할 사이에 몇 리 밖으로 날아가 석목을 멀리 떨쳐버렸다.

그때 작은 분신 앞의 허공에서 물결이 일렁이더니 연나가 갑자기 귀신처럼 나타났다.

하얀빛이 그녀의 손에서 나오더니 단번에 작은 분신을 가두어버렸다.

작은 분신은 빛에 갇힌 채 이리저리 뚫고 나가려 안간힘을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연나…….”

석목은 복잡한 눈빛으로 연나를 바라보았다.

연나는 석목을 슬쩍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손가락에서 투명한 빛이 나와서 빛 속의 작은 분신 몸에 닿았다.

펑!

작은 분신의 몸이 그대로 찢어지며 검은 점들로 변했지만, 여전히 빛에 갇힌 채 조금도 흘러나가지 않았다.

연나는 두 눈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입을 벌려서 그 검은 점들을 전부 빨아들였다.

이어 그녀의 몸에서 빛이 흐르면서 흐려졌던 몸이 다시 밝아졌고, 몸 전체에서 기이한 기운을 풍겨 나왔다.

연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격하게 흔들더니 석목을 돌아보지도 않고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사령계로 돌아간 것이다.

“연나…….”

그녀를 지켜보던 석목은 소름이 끼쳤다.

그는 연나에게 선계와 관련된 일을 물어보려 했으나, 그녀는 곧바로 떠나버린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석목은 고개를 흔들며 소요의 찢어진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끊어진 팔 한쪽의 손가락에 검은색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석목은 기뻐하며 파란빛 한줄기를 뿜어내 반지와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법보들을 전부 거두었다. 그리고 한쪽에 금제되어 있는 검은 방울도 거두어들였다.

그는 가볍게 숨을 뱉으며 손을 내밀어 소요의 찢어진 사체를 태워버렸다. 사체는 곧바로 한 줌의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음?”

석목이 그곳을 떠나려는 순간, 타버린 사체 속에서 검은 빛이 반짝였다.

석목이 소매를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자 가루가 주변으로 흩어졌다. 이어 그 속에서 검은 뼈 한 가닥이 나타났는데, 표면에서 마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건 뭐지……?”

석목이 허공에서 손을 뻗자 검은 뼈가 날아왔다.

소요는 몸이 전부 터져버렸는데, 이 뼈만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석목은 의아해하며 그 뼈를 챙겼다.

그런 뒤에 석목은 상처를 치료할 틈도 없이 곧바로 영우비차를 불러 날아갔다.

* * *

석목은 한 시진을 넘게 날았고,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어느 작은 육지에 착륙했다.

석목의 얼굴은 상당히 창백했다. 그는 방금 전의 싸움에서 큰 상처를 입었고 진기도 엄청나게 많이 소모해서 한계에 달해 있었기에,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석목이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니 앞쪽에 산봉우리가 하나 있었다.

석목은 그 산봉우리를 향해 날아가서 손을 흔들었고, 몇 갈래의 빛을 뿜어내서 동굴을 하나 만든 뒤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십여 개의 진기가 그의 몸에서 뻗어 나와서 동굴 곳곳에 떨어지며 결계를 만들었다.

석목은 자리에 앉아서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을 한 개 삼키고, 최상급 영석 두 개를 꺼내들었다. 이어 그의 몸에서 파란빛과 빨간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석목은 이틀이 지난 후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서 매우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고, 몸속의 상처와 진기는 이미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석목은 지난 이틀 동안 흑마일족의 강자가 갑자기 쫓아올까 긴장을 풀지 않았고, 시시각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성계의 존재를 죽여 버렸기에 흑마일족 대군에서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어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석목은 긴 숨을 내뱉고, 소요의 저장 반지를 꺼내 들었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그것을 아직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성계 존재의 저장 반지인 만큼 상당히 기대가 됐다.

이어 신식으로 검은 반지를 훑어본 석목은 환하게 웃었다.

그는 신식을 거두어들이고 반지에서 많은 물건을 땅 위에 쏟아냈다.

물건 중 절반 이상은 검은 수정석이었는데, 그것은 최상급 영석과 비슷했다.

석목은 전방에 온 지 꽤 오래됐기에 이 검은 수정석이 마정(魔晶)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 속에는 매우 순수한 마기가 내재되어 있었는데, 마족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영석과 같은 존재였다.

수정석의 크기와 빛깔을 보니 전부 최상급 마정이었다. 마문의 공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밖에도 희귀한 마 속성의 재료들도 있었는데, 전부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마족의 물건 외에 오행 속성의 영재나 단약, 심지어 법보도 두 개 있었다.

그중 크기가 한 치 정도 되는 푸른 비검이 있었는데, 외형은 평범했는데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기를 불어넣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푸르스름한 검의 기운을 풍겼다.

또 한 개는 파란색의 작은 깃발이었는데 파란빛이 감돌면서 그 위에는 얼음꽃 그림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두 법보 모두 극도로 강한 영력의 파동을 풍기는 최상급 법보였다. 아마도 소요가 성지 연합의 경지 높은 무인이나 술사를 죽인 뒤 빼앗은 것 같았다.

석목은 그것들을 보고 상당히 기뻐했다. 천위 경지에 오른 후 적당한 법보가 없어서 늘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소요의 마보 몇 개는 그가 수련한 공법으로는 제련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법보 두 개는 등급이 낮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제련한 물건이라 그가 사용하면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없긴 해도, 실력을 상당히 끌어올려줄 것이었다. 특히 파란 깃발은 물 속성의 법보라 명수결과 결합하면 매우 유용할 듯했다.

그는 손을 흔들어서 파란빛을 뿜어내어 푸른색 비검과 파란 깃발을 거두어들이자 빛이 반짝이며 두 법보가 그의 몸으로 들어가서 의식의 세계에 나타났다.

영해 속에서 흑백의 금단이 빛을 뿜으면서 두 법보를 감싸고 천천히 제련하기 시작했다.

그때 파란 깃발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검은빛이 나타나서 석목의 진기를 막아버렸다. 바로 마기였다.

“음? 그 성계 마족이 설치한 금제인가?”

석목의 왼쪽 팔에서 양의 힘이 용솟음쳤고, 그 힘은 의식으로 들어가서 파란 깃발을 감쌌다.

깃발의 검은 기운이 빠르게 줄어들더니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금제가 강력하지 않은 걸 보니 아마도 소요가 대충 설치해놓은 것 같았다.

금제의 제약이 없어지자 석목의 진기는 빠르게 깃발을 감쌌다.

깃발에서 파란빛이 반짝이더니 파란색 영문이 층층이 나타났고, 하얗고 검은 빛이 천천히 파란 영문으로 들어가자 깃발이 가볍게 흔들렸다.

영문은 법보 속의 금제였는데, 이를 제련하기만 하면 법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눈 깜박할 사이에 사흘이 흘렀다.

영해 속의 파란 깃발에 있는 영문은 절반 정도 제련되었고, 마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뛰어다녔다.

석목은 눈을 뜨고 제련을 멈추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우선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게다가 타인이 제련한 법보는 시간이 충분하다 해도 근본적인 것까지 제련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입을 벌리자 파란 깃발이 그 속에서 나왔다.

이 파란 깃발의 이름은 남정번(藍晶幡)이었다.

석목은 파란빛을 만들어서 그 깃발 속으로 밀어 넣었다.

깃발은 파란빛을 뿜어내더니 십여 배나 커져서 사람만 한 깃발로 변했다.

석목은 깃발을 들고 동굴 속에서 나왔다.

이어 그는 눈 깜박할 사이에 수백 리 밖의 산골짜기까지 날아갔다.

석목은 흥분된 표정으로 몸속의 명수 진기를 끊임없이 깃발에 불어넣었고, 파란 깃발의 빛이 점점 밝아졌다.

석목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힘차게 깃발을 흔들었고, 파란 깃발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물소리와 함께 홍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 물은 칼날 모양으로 변하더니 근처의 작은 산봉우리를 갈라놓았다.

쿵!

산봉우리는 가볍게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물의 칼날은 계속해서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물의 용으로 변신, 또 다른 산으로 향했다. 굉음과 함께 산이 부서지며 돌덩이가 주변으로 흩날렸다.

석목은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명수결로도 이런 물의 공격을 시전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이렇게까지 대단한 위력은 아니었다. 하물며 이 깃발은 이제 막 초기 단계까지만 제련됐을 뿐이었다.

파란 깃발의 빛이 더 밝아지자 그는 손을 흔들어서 그것을 허공에 내던졌다. 그리고 법결을 시전하자 깃발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얼음꽃이 나타났다.

매서운 기운이 얼음꽃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산골짜기 전체가 차가운 기운에 휩싸였고, 산골짜기의 표면에는 얇은 서리가 앉았다.

석목은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또다시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얼음꽃이 반짝이더니 주변에 수십 개의 똑같은 얼음꽃이 나타나서 산골짜기 곳곳에 떨어졌다.

쩍! 쩍!

얼음꽃이 땅에 닿을 때마다 그 주변으로 파랗고 기이한 서리가 어렸고, 서리는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나가서 단번에 산골짜기 전체를 두꺼운 얼음으로 덮어버렸다.

석목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주변의 얼음꽃은 그가 음의 힘으로 응결시킨 것보다는 못했지만 매우 강력했다.

석목은 기뻐하며 나중에 시간이 충분할 때 제대로 제련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손을 흔들어서 다시 깃발을 거두어들인 뒤 동굴로 돌아갔다. 또 다른 법보를 제련해야 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사흘이 또 흘렀다.

한 산봉우리에서 푸른 검의 빛이 미친 듯이 움직이면서 천둥 같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검의 빛은 마치 번개가 허공을 스치듯 지나가서 두어 개의 산봉우리를 뚫고 지나갔다. 산봉우리들은 종잇장처럼 가볍게 갈라졌다.

석목은 산꼭대기에 서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하늘을 날던 검의 빛이 반짝이더니 사라졌다.

이어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비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석목은 매우 조심스럽게 비검을 매만졌고, 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이미 이 비검을 완전히 제련한 상태였고, 검의 이름은 청명(淸明)이었다. 남정번처럼 다양한 공격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한 자루의 단순한 비검이었지만, 그 대신에 검으로서의 공격력은 매우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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