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화. 분신
석목은 손을 흔들어서 비검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빠르게 동굴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소요의 저장 반지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아직 전부 훑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옥합 두 개와 옥병 몇 개가 나타났다.
석목이 신식을 통해 보니 옥병에는 상처를 치료하거나 해독하는 단약이 들어 있었는데, 전부 높은 등급의 물건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당연히 두 개의 법보만큼 가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는 단약을 거두어들인 후 옥합 두 개를 열었다. 그중 한 개에는 푸른색 돌덩어리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수많은 금빛의 줄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마치 별빛이 가득한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유광랑금옥(流光琅金玉)!”
석목의 얼굴에 기쁨의 기색이 어렸다. 그가 알기로 이 물건은 매우 귀한 천재지보로, 법보를 만들기에 좋은 재료였다. 나중에 법보를 제련할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옥합을 여는 순간, 석목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속에는 주먹만 한 핏빛 옥석이 놓여 있었는데, 핏빛이 반짝이는 것이 마치 액체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이건……? 선천혈옥!”
혼잣말을 중얼거린 석목의 얼굴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그는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선천혈옥은 선천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후천적으로 원신을 융합할 수 있는 물건이었고, 정혈을 불어넣으면 선천 경지의 정상에서 성배를 응결시킬 때 쓸 수 있는 최상급 보조 재료였다. 그리고 분신을 제련하는 데 쓰이는 마지막 재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그 재료를 얻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석목은 크게 몇 번 웃고는 이내 긴 숨을 들이마시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는 주변을 몇 번 바라보았다. 이곳은 부석 성역의 외진 곳이라 안전했다. 당장 부공성 요새로 돌아가기보다는 먼저 분신을 제련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다른 물건을 전부 거두어들이고, 영영과 과핵 등의 물건을 꺼내려 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눈썹을 치켜뜨더니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검은빛이 반짝이며 영영과의 과핵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과핵은 검은 안개의 공과 딱 붙어 있었다. 검은 안개 속에는 한 치 정도 되는 검은 뼈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이것은 소요의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영영과의 과핵은 뼛속의 검은 기운을 하나하나 흡입하고 있는 중이었고, 처음보다 훨씬 커져서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급하게 두 물건을 떼어놓으려 했다.
그가 강제로 과핵과 뼈를 갈라놓으려 하자 뼈가 부르르 떨렸고,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과핵의 영성은 예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다만 마기를 흡입한 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석목을 신식을 보내 과핵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마기를 흡입한 뒤에도 별다른 손상은 없었고, 그제야 석목은 마음이 놓였다.
석목이 파란빛을 뿜어내서 영영과의 과핵을 덮자 그제야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그는 소요의 검은 뼈를 한쪽에 두고 마노목과 요산선지초, 자경타나과, 그리고 선천혈옥을 앞에 진열해놓았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분신을 제련하는 방법을 다시 되뇌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석목은 다시 눈을 뜨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이어 그가 다시 입을 벌리자 흑백의 단화가 튀어나와서 영영과 과핵을 감쌌다.
천위에 들어선 후 석목은 외부의 불길이 없어도 금단을 이용하여 단화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 또 법보와 단약 등도 제련할 수 있었다.
단화가 감싸고 있는 영영과 과핵은 고통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일곱 개의 구멍에서 흡입력을 뿜어내어 단화를 삼키고 있었다.
이는 단화를 과핵 내부에 더 순조롭게 스며들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현상이었다.
그가 뿜어낸 흑백 단화는 더 굵어졌고 이어 두 손으로 계속해서 법결을 시전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영영과 과핵은 마치 공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천천히 커졌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마노목이 날아올라 단화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녹애서 한 줌의 자색 액체로 변하였다.
순간 석목의 눈에 금빛이 스쳤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뻗어서 자색의 액체를 조심스럽게 갈랐다. 그리고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자색 액체는 점점 형태를 갖추더니 투명한 뼈로 변했다.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쉰 뒤, 다시 손가락으로 자색 액체를 분리했다. 각각 크기가 다른 액체는 전부 뼈로 변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삼 개월이 흘렀다.
석목의 눈앞에는 한 치 정도 되는 자색의 해골이 하나 있었는데, 해골은 모든 뼈마디에서 투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석목은 그 뼈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매우 흡족해했다. 그리고 한쪽에 있는 푸른 요산선지초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뻗어 요산선지초를 조심스럽게 매만지더니 가볍게 튕겼다.
퍽!
요산선지초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수많은 죽순의 줄기로 변하였다.
석목의 두 눈에서 금빛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누에 같은 죽순 줄기들이 자색 해골 위로 날아가서 마치 힘줄처럼 일일이 뼈 위를 감쌌다.
한참 후, 석목은 손을 멈추면서 깊은 숨을 내뱉었다.
이제 파란색 줄기들은 자색 해골의 표면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고, 마치 사람의 경맥 같았다.
석목은 다시 한 번 영영과의 과핵을 바라보며 그가 손을 흔들자 과핵이 해골의 오른쪽 가슴의 심장 부위에 박혔다.
칙칙!
푸른색의 촘촘한 줄기들이 과핵과 연결되더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계속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몇 개월이 또다시 지나갔다.
석목은 동굴 속에서 끊임없이 두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단화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그의 얼굴은 살짝 창백했고 이마에서는 콩알만 한 땀이 흘러내렸으며, 등 뒤의 옷자락은 이미 푹 젖어 있었다.
석목은 그동안 쉬지 않고 단화를 뿜어내며 분신을 만들었다. 그의 수련 경지가 높아졌다 해도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제련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단화 속에서 주먹만 한 작은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은 웅크린 자세로 몸에서 푸른빛과 검은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생긴 게 마치 작은 아기 같았다.
사람의 모습을 한 그것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입을 살짝 벌리고, 가볍게 숨을 쉬고 있었다.
석목이 깊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그가 뿜어내는 단화는 점점 밝아졌다. 그는 손을 흔들어서 마지막 재료인 선천혈옥을 단화 속에 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다른 한쪽 팔목을 가볍게 긋자,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그의 손목에 얇은 줄이 생겨서 피가 몇 방울 흘러나왔다.
석목은 피가 흘러내리기 전에 그것을 선천혈옥 속으로 불어넣었다.
칙칙!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선천혈옥은 마치 영성이라도 있는 듯 표면에서 핏빛이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단화 속에서 빠르게 작아지며 핏빛 기체로 변했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 법결을 시전하자 핏빛 기체가 날아올랐고, 그것은 마치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분신의 두개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신의 몸이 한참 흔들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핏빛 혈맥이 반짝였다.
작은 사람에게서 생령 특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매우 기뻐했고, 비로소 마음을 놓으며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무로 뼈를 만들고 풀로 힘줄을 만들었으며, 그리고 과일로 살을, 옥으로 피를, 과핵으로 심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분신의 기초 제련이 마무리됐다.
작은 분신은 천천히 화염 속에서 일어서더니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두 눈을 번쩍 뜨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손가락을 살짝 굽혔다. 그의 미간에서 무형의 힘 한줄기가 뻗어나가서 작은 분신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작은 분신은 마구 허우적댔다. 마치 석목이 의식을 통제하려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본 석목의 안색이 살짝 변했고, 그는 놀라는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이 분신은 영성이 강해서 강력한 자아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두 손을 흔들며 법결을 작은 분신의 몸속으로 줄줄이 넣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칠팔 시진이 지났다. 작은 분신의 자아는 드디어 석목에게 굴복했지만, 여전히 잔여 영성을 꽉 붙들고 있었고, 석목이 아무리 힘을 써도 소용없었다.
석목은 정신력을 시전하여 매우 현묘한 경계에 진입하였다. 주변이 쥐죽은 듯 조용했고, 이때 그는 혀를 꽉 깨물었다.
푹!
그의 입에서 피가 한 모금 뿜어져 나와 그 안에 섞여 있는 방대한 정신력이 작은 분신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쿵!
작은 분신의 몸속에 있는 마지막 자아가 무너져버리면서 온전히 석목의 정신력만 남게 되었다.
그의 정혈과 정신력이 섞이자 작은 분신의 머릿속에서 부문이 한 개 나타났다.
이어 작은 분신의 이목구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고, 자세히 보니 그 얼굴은 석목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았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으며 뿜어내던 단화를 멈추고 단약을 한 개 삼켰다.
작은 푸른 분신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석목이 한숨을 돌린 후 손을 흔들자 작은 분신은 날아와서 그의 어깨에 앉았고, 그를 바라보는 석목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분신을 만드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아직은 약하고 또 아주 작았다. 하지만 잘 키워내면 앞으로 큰 쓸모가 있을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쓸 만했다. 분신의 몸과 의식은 석목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고, 석목이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은 분신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채아를 처음 만났을 때와 매우 흡사했다. 다만 채아는 시각을 공유하고, 분신은 오감을 전부 공유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석목은 마치 자신의 몸을 바꾼 듯한 신기한 기분이 들었고, 그는 눈을 감고 분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순간 그의 안색이 변했다. 분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기운이 빠르게 돌면서 천지 영기를 삼키고 있었는데, 영기 외에 공기 중의 마기도 함께 빨아들이고 있었다.
부석 성해는 흑마 성역의 공간 통로와 근접해 있기에, 공기 중에 옅은 마기가 섞여 있었다.
“마기…….”
석목은 눈을 뜨고 옆에 놓인 검은 뼈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분신을 뼈 위에 올려놓았다.
분신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으며, 입에서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매우 좋은 듯 작은 입을 벌리고 마기를 빨아들였다.
뼛속의 마기가 곧바로 분신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서 체내의 기운과 함께 흘렀다.
분신의 몸이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며 크기도 점점 커졌고, 마기를 빨아들이는 속도마저 빨라졌다.
검은 뼈에서 끊임없이 마기가 흘러나와서 전부 분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신의 경지는 급격하게 올라가더니 곧바로 후천에 다다랐다. 후천 중기, 후천 후기, 선천 초기, 선천 중기…….
쩍!
검은 뼈가 갑자기 부러지면서 검은빛으로 변했다. 분신은 그 빛마저 전부 빨아들였다.
검은 뼈를 전부 삼켜버린 분신은 크기가 두 치 정도로 커졌고, 몸에서 검은 빛과 마기를 뿜어냈다. 그 기운은 이미 선천 후기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분신은 너무 많은 마기를 흡입하여 다른 천지 영기를 빨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몸속에서는 온통 마기로 가득 차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석목은 그런 분신을 바라보며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다.
분신은 기생하는 다른 천지 영물과는 달랐다. 분신을 다루는 데는 자고로 다양한 방법이 있었는데, 전통적인 방식도 있었고 개중에는 길을 벗어난 방법도 더러 있었다.
석목은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몰랐지만, 단 하나는 확실했다. 그것은 분신이 마족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제련된 분신이 마기를 가득 담고 있는 뼈를 빨아들인 후,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서 선천 후기까지 도달한 것이 그 증거였다.
이제 마기를 조금 더 빨아들이기만 하면 분신의 실력은 더 강해질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에게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