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화. 질문하다
사흘 뒤 석목은 분신을 제련하느라 소모한 진기를 회복한 뒤, 부공성 요새로 돌아가기 위해서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
분신은 영수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마의 속성을 가진 분신이라 연합쪽 사람들이 알게 되면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석목이 있던 곳은 부공성 요새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부석 성해는 너무 위험한지라, 석목은 영우비차를 타고 가다 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는 보름이 지나서야 겨우 부공성 요새에 도착했다.
커다란 요새를 마주한 석목은 왠지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는 비로소 잠시나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연합에 의해 버려지고, 또 사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죽은 것을 생각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욱이 그 뒤로 석목은 수많은 고난을 겪었고 성계 마족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
석목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 나서 영패를 사용하여 요새로 들어갔다. 그리는 막린우 장로가 사무를 처리하는 총전으로 곧바로 찾아갔다.
석목은 그의 앞에서 직접 묻고 싶었다. 삼 대 성지를 대표하는 주둔 장로의 언행에 대해서 그 어떤 변명이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총전 안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고, 은색 갑옷을 두른 제자 두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막 장로님은 안에 계십니까?”
석목이 두 제자에게 물었다.
“사형, 막 장로님은 지금 중요한 회의 중입니다.”
두 사람의 경지는 지계에 불과했다. 그들은 석목이 대장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정중하게 답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사형, 막 장로님은 지금 중요한 사안에 대해 논의 중이니 끝나고 들어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로님이 화를 내실 겁니다.”
보초를 서는 제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발길을 멈추었다.
“막 장로님은 지금 누구를 만나서 무슨 논의를 하고 있나요?”
석목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물었다.
“반 년 전, 연합 대군이 흑마일족의 팔 호와 십 호 두 거점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장로님은 그 당시 공을 세운 몇몇 대장과 함께 포상과 관련된 일을 논의 중입니다.”
또 다른 제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이에 그는 두 손으로 보초를 서고있는 제자를 밀치고 곧바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두 제자는 그 기세에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그중 한 명이 고개를 돌려 석목을 부르려 하자, 옆에 있는 다른 제자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대전에 들어가니 막린우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었고, 양쪽에는 몇몇 성계 장로가 있었다. 그 밑으로는 칠팔 십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세 사람의 수련 경지가 가장 높았는데, 한 명은 붉은 옷을 입은 여자였고 이진종 출신 같았다. 또 다른 한 명은 키가 구 치 정도 되는 민머리 남자로 청란성지의 요족이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얼굴이 누렇고 몸이 마른 청년이었는데 이마에 검은 반점이 있었다. 그는 스물여덟이나 스물아홉 살 정도로 보였는데 축운성전의 제자인 것 같았다.
석목은 그중 민머리 남자를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영격(荣格)으로 현계 구역에서도 유명한 천년 제자였다. 번개 속성의 벽력공(霹靂功)을 수련하였으며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세 사람은 막린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서 기뻐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막린우를 향해 계속 무언가 말했고, 막린우는 크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성계 장로들은 엄숙하게 앉아서 그들의 대화에 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기쁨에 겨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발걸음 소리가가 울렸다. 사람들이 전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막린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석목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어느 소대 소속이냐?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총전에 들어오다니!”
“허허, 막 장로님. 승리에 취해서 이 버려진 제자는 진즉에 잊으셨군요.”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 말을 들은 막 장로는 멈칫하더니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는 뒤늦게 석목을 알아본 것 같았다.
“아, 자네로군. 미안하네.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구 호 거점 기습 임무는 아주 완벽히 해주었다. 수고 많았네. 참, 그리고 좋은 소식을 전해줄 게 있다. 연합이 이번에 두 군데의 중요한 거점을 차지하며 흑마일족의 기를 잔뜩 꺾어버렸지. 그대들의 공이 크니 포상이 내려질 것이다.”
막린우가 수습하려는 듯 재빨리 말했다.
“포상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구 호 거점을 기습한 사람들은 사백 명 가까이 되는데, 아마도 거의 다 죽어버렸겠지요. 아무리 큰 포상이라 해도 죽은 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면서 한 치의 공경도 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막린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주위 사람들도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며 놀라움이 섞인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상식으로서는 성계 존재를 이런 태도로 대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석 대장,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네. 자네가 살아서 돌아온 것도 매우 기쁘다. 연합은 지금 한창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라 자네처럼 용맹하고 지휘력이 뛰어난 대장을 필요로 한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편하게 말해라. 연합 차원에서 최대한 들어줄 것이다.”
막린우는 일어서려 하는 몇몇 천위 제자를 붙잡으며 말했다.
“막 장로님, 저는 오늘 단 한 가지 질문을 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수만 명의 연합 제자는 그동안 전쟁에서 흑마일족과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당신들 눈에는 버려도 괜찮은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입니까?”
석목이 천천히 말했다.
그 말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성계 장로가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비록 결정은 막린우가 내린 것이지만,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가운데에 앉아 있던 막린우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애당초 전략을 가장 중요시한다. 큰 것을 보고 득과 실을 따지기 마련이지.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피치 못한 일이다. 흑마일족이 결계를 뚫고 우리 미양성역의 천만 생령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너희의 희생은 이 미양성역 전체를 위한 것이다. 가죽이 통째로 없어지면 털이 어디에 붙어 있을 텐가? 개인의 입장에서 봐도 이것은 수련의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깨달음을 얻고, 또 한계를 돌파하지 않겠는가?”
“막 장로님의 말씀에는 정말 정의가 넘치시는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리라는 것을 왜 미리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저희가 전쟁터에 나가는 걸 거부하기라도 할까봐 그러셨습니까?
미리 알고 준비를 했더라면 최소한 사백 명이나 되는 제자가 전멸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로는 희생된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연이어 질문을 퍼부었다.
막린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막 장로님이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면 저 또한 이 부공성 요새에 남을 수 없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석목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이놈! 망언을 퍼붓고 장로님께 대들다니. 윗사람에게 이런 무례를 범해놓고 두려워서 도망가려는…….”
얼굴에 두꺼운 연지를 찍어 바른 요염한 여자가 허리에 손을 짚고 호통을 쳤다.
“저는 연합을 위해 전방에서 십여 년간 싸웠습니다. 이미 약속한 십 년의 기한을 채웠는데, 떠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리고 저는 막 장로님께 용무가 있어서 온 겁니다. 당신이 뭔데 끼어드는 겁니까?”
석목은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며 물었다.
“너…….”
요염한 여자는 그의 말을 듣더니 말문이 막혀버렸다.
“석 사제, 화내지 마십시오. 이 분은 이진종의 부요(付瑤) 사매입니다. 그때의 전투에 참여했었지요. 십 호 거점에서 진격전을 펼치며 목숨 걸고 싸웠고, 그 덕분에 우리 연합이 순조롭게 거점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민머리의 남자 영격이 말했다.
“그런가요? 제 기억이 맞다면 우리가 구 호 거점을 공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십 호 거점에 있던 수백 명이 가세해왔습니다. 그중 천위의 마족만 해도 수십 명이 넘었지요. 그럼 부 사매님께 묻겠습니다. 삼분의 일도 채 남지 않은 십 호 거점의 흑마일족을 물리치느라 어떤 식으로 목숨을 걸었나요?”
석목이 물었다.
“그건…….”
석목의 예리한 질문에 영격은 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곳의 몇몇 대장은 전부 팔 호와 십 호 거점에서 전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석 사제의 말은 연합을 위해 목숨 걸고 용맹하게 싸운 우리가 전부 쓸모없는 놈이라는 뜻입니까? 우리가 세운 모든 전공이 무용하다는 것인가요?”
얼굴이 노랗고 이마에 검은 반점이 있는 청년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투는 격하지도, 그렇다고 온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 말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석목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전공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제 전공에 대해 좀 말씀해드리지요. 저 석목은 부공성 요새에 머무는 십여 년간 크고 작은 거점 쟁탈전을 천 번도 넘게 치렀습니다. 그동안 흑마일족 삼천사백십칠 명을 죽였고, 그 가운데 천위 경지만 일흔 세 명입니다.
잠복 격살이든 운송 탐색이든, 제가 이끈 소대는 매번 작은 희생으로 최고의 결과를 냈습니다. 막 장로님께 묻겠습니다. 저 석목이 단 한 번이라도 연합에 피해를 끼진 적이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막 장로님의 버리는 패가 되어버렸는지요? 혹시 제가 당신과 같은 이진종 출신이 아닌 청란성지 출신이라서 그러신 건가요?”
석목이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에 대전이 온통 시끌벅적해졌다. 청란성지와 축운검파에서 온 몇몇 성계 장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막린우를 바라보았다.
“뻔뻔한 놈! 구 호 거점을 습격한 대원 중 우리 이진종 출신의 제자가 단 한 명도 없었나? 막 장로님은 요새의 당직을 맡은 장로님이신데, 공정하지 않다는 말인가?”
부요가 소리쳤다.
“석 사제,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막 장로님이 요새에서 하신 모든 일은 우리가 모두 봐오지 않았습니까? 정말 석 사제가 말한 대로라면 우리 연합 측이 어떻게 이런 전적을 거둘 수 있었겠습니까?”
노란 얼굴 청년이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
“석 사제는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데, 실은 전투 시에 명을 어기고 제멋대로 전선에서 도망친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고작 천위 초기 의 경지로 어떻게 아무 탈 없이 이곳에 나타날 수 있지? 연합의 규율 중 첫 번째가 명을 집행하되 절대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부요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매의 말은 제가 그곳에서 마땅히 죽음을 당하여 원혼(冤魂)이라도 되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받은 명령은 성계 장로님들이 팔 호와 십 호 두 거점을 습격하는 동안 구 호 거점을 지키는 흑마일족을 일부 유인해서, 다시 구 호 거점을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구 호 거점 흑마일족의 수가 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미끼로 팔 호와 십 호 두 거점의 흑마일족을 구 호 거점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었지요.
결국 우리는 겹겹이 포위되어 절망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운이 좋아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막 장로님, 그리고 이곳의 모든 장로님께 묻겠습니다. 이런 것도 제가 명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도망친 것으로 취급하실 겁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말에 막린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옆에 앉은 몇몇 장로도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버려진 우리는 팔 호와 십 호 거점의 흑마일족을 성공적으로 유인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이 그렇게 수월하게 두 거점을 빼앗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 소대원들과 연합의 많은 제자가 죽었습니다. 당신들은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오히려 살아 돌아온 저를 질책하시는군요. 그 이유가 뭡니까?”
석목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청란성지에서 온 몇몇 성계 장로도 고개를 흔들며 눈을 감았다. 더 듣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노란 얼굴의 청년이 무엇인가 더 말을 하려고 하자, 막린우가 손을 흔들어 제지했다.
“됐다. 이번의 전공과 과실에 대해서는 우선 논하지 않겠다. 이번 전투에서 여러 제자의 희생에 대해서는 연합 측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책임을 질 것이다.
석 대장이 이렇게 흑마일족 손에서 탈출해서 살아 돌아온 것은 연합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먼 길을 돌아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우선 돌아가서 쉬도록. 자네가 원하는 답은 들었으니 성급하게 굴지 마라.”
막린우의 말을 듣고, 더 따져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석목은 인사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총전을 나섰다.
막린우는 실눈을 뜨고 멀어져가는 석목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