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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00화 (500/916)

500화. 유세하다

이틀 뒤, 부공성 요새 총전.

드넓은 편청에서 막린우와 한 청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었다. 얼굴이 노란 청년이었다.

“응가(應鎵), 그러니까 네 말은 구 호 거점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 더 있다는 말인가?”

막린우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전부 지계 제자였고, 운이 좋아서 흑마일족의 추살을 피해서 돌고 돌아 이곳으로 귀환한 것 같습니다.”

응가라고 불린 청년이 대답했다.

“차질 없이 준비했겠지?”

막린우가 말했다.

“막 장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잘 달래서 포상을 내렸습니다. 다음 제자들이 도착하면 그들은 돌려보낼 것입니다.”

응가가 말했다.

“그들에게서 알아낸 것이 있는가?”

막린우가 다시 물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습니다. 흑마일족의 성계 존재인 소요 때문에 포위를 뚫은 연합의 제자들, 특히 천위 제자들은 전부 격살 당했다고 합니다. 소요의 눈에 차지 않은 소수의 지계 제자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답니다.”

응가의 말에 막린우가 머리를 끄덕였다.

“석목이라는 그 자는 어떻게 소요의 손바닥에서 벗어난 걸까요? 살아서 요새로 돌아오다니 말입니다.”

응가가 차갑게 말했다.

“그 자는 실력이 꽤 있어 보인다. 소요의 손에서 살아남다니.”

막린우가 말했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저희가 두 거점을 차지한 후의 몇 차례 전투에는 소요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승승장구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응가가 말했다.

“소요는 흑마일족에서도 유명한 인물이다. 매우 교활한 자인만큼 절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돼. 이렇게 하지. 우선 석목에게 사람을 보내서 구 호 거점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명목으로 포상을 내리고, 잘 회유해보도록 해라. 그리고 이 기회에 그를 대반격에 참여하도록 하는 거지.”

막린우가 말했다.

응가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머리를 끄덕였다.

“됐다. 다른 분부할 사항은 없으니 우선 돌아가거라.”

막린우가 손을 흔들며 응가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방의 창가로 다가가서 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허리춤에서 하얀빛이 두어 번 반짝였다.

손을 흔들자 하얀 영패가 허리춤에 나타났고 작은 글자들이 떠올랐다.

그것을 본 막린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석목의 동부에서 파란빛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물결이 일렁였다.

석목은 동부의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두 눈을 감고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시전하는 법결이 끊임없이 바뀌었고, 몸에서는 파란빛이 물결처럼 번쩍였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번쩍 떴다. 그가 공법을 거두자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파란빛이 두개골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일어서서 방문을 열었다. 푸른 옷을 입은 낯선 남자가 밖에 서 있었다.

“석목 사형이시지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남자는 석목을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손을 모았다.

“당신은?”

석목이 물었다.

“저는 관(關) 씨입니다. 이름은 보잘것없어서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요새에서 막 장로 등 장로님들을 위해 심부름과 전령 등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석 사형처럼 전방에서 적들과 싸우는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요.”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막 장로라는 이름을 듣자 석목의 눈에서 기묘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석목은 관 씨 성을 가진 남자를 친절하게 맞았다.

“그러시군요. 관 도우, 들어오십시오.”

“석 사형, 감사합니다!”

관 씨 남자가 손을 모으며 말했다.

“누추한 곳이라 아무것도 대접할 게 없네요. 양해해주십시오.”

관 씨가 자리에 앉자 석목이 말했다.

“아닙니다.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관 씨 남자가 다급하게 머리를 저었다.

“관 도우,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리에 앉은 석목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석 사형이 지난번 구 호 거점 습격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신 것에 대한 포상 내용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관 씨 남자가 말했다. 그가 웃으며 손을 흔들자 탁자 위에 최상급 영석이 수북하게 쌓였다. 최소 수백 개는 되어보였다. 그리고 옥합 세 개도 있었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고생 많으십니다.”

“허허, 혹시 지금 열어보시지 않을 건가요? 옥합의 물건들은 전부 구하기 어려운 보물들입니다.”

관 씨 남자는 바로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옥합 한 개를 열었다. 그 속에는 파란 단약 한 개가 있었는데, 손가락 크기 정도였고 투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파란 물줄기가 단약 근처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무극수원단(無極氺元丹)입니다. 이 안에는 선천 수원의 힘이 내재되어 있지요. 물 속성 공법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매우 좋은 단약입니다. 성계 이하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 한계를 돌파할 때 복용하면 확률을 일 할 정도는 높일 수 있습니다.”

관 씨 남자가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이 단약은 그에게는 확실히 필요한 보물이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임무를 수행하며 틈틈이 수련해서 실력이 빠르게 늘어난 편이었다. 천위 중기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긴 했지만, 앞으로 한계를 돌파할 때 이 단약은 매우 유용할 것이었다.

그는 뚜껑을 닫고 또 다른 옥합을 하나 들었다.

“음? 이건 백년한옥(????玉)!”

석목이 말했다.

그 옥합은 전체가 하얀색이었고 수많은 눈꽃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만져보니 매우 차가웠다. 이는 흔하지 않은 백년 한옥으로 만든 것이었다.

“석 도우, 정말 예리하시군요. 맞습니다. 이 옥합은 백년 한옥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안에 든 물건이 좀 특별해서요. 백년 한옥으로 만들어진 옥합이 아니면 보존이 어렵습니다.”

석목은 옥합을 열었다. 그 안에는 하얀 수정석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주먹만 한 크기에 깨끗한 하얀색을 찬란하게 뿜고 있었다. 수정석 안에서는 하얀 화염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천화지석(天火之石)!”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네, 바로 천화지석입니다. 이 돌은 천년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최상급 불 속성의 수정석입니다. 놀라운 불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볼 속성의 법보를 만드는 데는 최상의 재료지요. 석 사형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관 씨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보아하니 연합 측은 이미 그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수련한 공법에 대해서도 전부 알아낸 듯했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뚜껑을 닫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세 번째 옥합을 열어보는 순간 또다시 멈칫했다. 그 속에는 푸른색 옥간이 하나 있었다.

석목은 한줄기 신식을 옥간 속을 보내 살펴보았다. 이어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옥간에는 공법에 대한 기록이 있었는데, 바로 대일검법(大日剑法)이었다. 이것은 천위의 검법으로, 공훈점 교환 목록에서 본 적이 있어서 석목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이 검법은 아마도 천 점의 공훈점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검법은 아주 순수한 양의 힘을 사용해야 시전이 가능한 공법인데, 그 위력이 상당했다. 석목도 그것을 가지고 싶었으나 필요한 공훈점이 너무 많아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 얻게 된 것이다.

“이 물건들은 확실히 매우 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몸소 가져다주시다니, 저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물건들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것들은 석 사형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관 씨 남자가 말했다.

이어 그는 말투를 바꾸며 말했다.

“석 형의 실력이 대단해서 연합의 여러 장로님이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이 물건들은 얼마 전의 임무 때문에 석 사형이 연합을 오해하시게 된 것 같아서 막 장로님이 특별히 분부하여 보낸 것입니다. 임무에 관한 포상이기도 하고, 또 보상이기도 합니다.”

석목은 그 말을 듣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저 같은 천위 제자 따위가 어떻게 감히 연합 고위층의 결정에 불만을 품겠습니까? 관 도우가 괜한 걱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석 사형은 정말 아량이 넓으시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가 온 이유는 포상을 드리려는 것뿐만 아니라 또 있습니다.”

관 씨 남자가 긴장을 풀면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석목은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석 사형도 보셨다시피 지금 삼 대 성지에서 제자들을 전방으로 끊임없이 보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연합과 흑마일족은 며칠 뒤 어려운 싸움을 앞두고 있지요. 석 사형의 실력이 대단하신데 이렇게 떠나신다면, 연합과 석 사형에게 모두 아쉬운 결정이 될 것입니다.

혹시 계속 남아 있을 의향은 없으신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구 호 거점 사건은 우연이었고, 절대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연합 측에서도 석 사형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려고 하는데, 보수도 상당히 마음에 드는 수준일 것입니다. 지금 가져온 이런 물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요.”

관 씨 남자는 기대에 찬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며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연합의 여러 장로님들의 좋은 뜻은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전방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그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석 사형, 정말 잘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이 일은 며칠 더 고민해보셔도 됩니다. 급하게 답할 필요 없습니다.”

관 씨 남자는 다급하게 말했다.

“고민은 충분히 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석목은 천천히 말했다. 그의 말투는 매우 단호했다.

“네, 석 사형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관 씨 남자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어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는 그곳을 떠났다.

석목은 그를 배웅하고 돌아와서 앉았다. 그의 얼굴에 차가운 웃음이 스쳤다.

그는 소위 연합의 고위층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는 이미 막린우의 눈 밖에 났는데, 몇 마디의 감언이설에 계획을 바꿀 리가 없었다.

물론 보상은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당당하게 가져도 되는 것들이었다.

석목은 다시 동부 가운데의 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대일검법의 공법이 들어 있는 옥간을 꺼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신식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야 그는 옥간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이 검법은 역시 전해들은 바와 같이 매우 정교했다. 이것을 시전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할 수 있을 것이고, 통천십팔곤보다도 뛰어날 것이다.

더 기묘한 사실은 검법 안에 어감법문이 한 개 더 있어서, 현묘하고 기이한 비검신통을 시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석목의 마음속에 기쁨이 차올랐다. 그는 곧바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 * *

눈 깜박할 사이에 사흘이 흘렀다.

석목은 여전히 가부좌를 튼 자세로 앉아 있었다.

순간 그의 몸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며 영패에 작은 글자들이 한 줄 나타났다. 바로 청훤이 보낸 소식이었다.

“제자 도착. 속히 이쪽으로 와서 상의 요망.”

석목은 눈을 뜨고 전훈령 위의 소식을 보더니 기뻐하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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