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화. 용솟음치는 마기(魔氣)
부석 성해의 끝자락.
한 장 정도 되는 육각형 빛 조각들이 모여들어서 크고 등근 막을 형성하였고,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옅은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둥근 막 어느 한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고, 그 구멍을 통하여 둥근 막 가운데를 바라볼 수 있었다. 가운데에 백 장 정도 되는 검은 소용돌이가 천천히 맴돌았고, 검은 기운이 여러 줄기로 흘러나와서 주변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렸다.
둥근 막과 멀지 않은 곳에, 검은 안개 속에 묻혀있는 커다란 검은색 부도(浮島)가 있었는데, 그 위에 모양이 특이하고 높은 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 탑은 절반이 짙은 마기(魔氣)에 묻혀있었고, 열 몇 갈래로 높이 뻗은 탑 꼭대기만 마기 밖에 놓여있었는데, 그 광경이 매우 기이하고 흉흉했다.
이때 부도와 수 리 밖에 떨어진 망망 성해에서 폭발하는 소리, 고함치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하늘과 땅을 뒤흔들어 놓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금색과 은색 거대한 전함들 백여 척이었다. 전함들 선두 양쪽에는 각각 구멍이 한 개씩 있었는데, 그 속에서 빛이 번쩍였고, 간간이 금빛이 터져 나왔다.
커다란 전함 맞은편에는 백 장 정도 되는 검은 구름이 마주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검은 빛기둥이 간간이 뿜어져 나와서 앞에 있는 전함을 향해 날아갔다.
금빛과 검은 화염이 허공에서 겹쳤고, 서로 부딪쳤으며, 영력 충돌이 여기저기서 일어나서 주변에 떠다니는 수많은 운석들을 사방으로 날리며 가루로 부숴버렸다.
때때로 굵은 금빛 기둥이 먹구름을 뚫었고, 빠른 속도로 뒤쪽에 놓인 검은 부도를 향해 날아갔다.
금색 빛기둥이 검은 부도 백 장 정도까지 다가왔을 때, 부도에선 검은빛이 반짝였고, 둥근 막이 허공에 나타나며 검은 부도를 감싸서 빛기둥을 막아버렸다.
쿵!
또 한 줄기 빛기둥이 몰려왔다.
빛기둥이 둥근 막에 부딪치며 터져버렸다. 하지만 검은 막은 조금의 균열도 생기지 않았다.
전함과 먹구름이 대치를 하고 있을 때, 거대한 먹구름 앞쪽에서 흑마족 강자 수천만 명과 연맹의 수련자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순간 마기가 솟아올랐고, 빛은 끊임없이 번쩍였으며,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처참한 비명은 차마 들을 수 없었다.
머리가 두 개, 팔뚝이 네 개인 천위 흑마족 강자 열 몇 명이 손에 든 마기를 휘두르며, 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진종 수련자들 백여 명이 천위 흑마족들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번개가 끊임없이 맴돌았고 비명이 들렸다.
다른 한쪽엔 축운 검파 무인들 수십 명이 검결을 쓰며 진법을 조종하여 커다란 검의 홍수를 만들었고, 공격해오는 흑마족 무인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
만인이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와 백 리 떨어진 성해에는 십 장 정도 되는 커다란 사람들 열 몇 명이 서 있었다. 전부 머리가 세 개에 팔은 여섯 개씩 자라나 있었는데, 성계 존재인 마족이었다.
이 마족들은 손에 기이한 법보를 들고 있는가하면, 특이한 법결을 펼치고 있었고, 몸 앞으로 커다란 먹구름을 만들어냈다.
검은 마기가 용솟음치며 모여들더니, 수백 장 정도 되는 커다란 마벽을 만들어내어 성지 연합을 공격했다.
연합 측에서는 성계 장로들 열 몇 명의 몸에 빛이 크게 번졌다. 피풍의가 휘날렸고, 발을 움직이며 진법을 따라 특정 위치에 서서 각자 법결을 썼다. 그리고 현묘한 주문을 외웠다.
주문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장로들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폭발했다.
이어서 오색영롱한 빛 안개 수십 갈래, 검 빛, 투명한 번개들이 뿜어 나오며 하늘을 가렸고, 그 빛들은 마벽을 향했다. 빛이 스친 자리 주변은 격하게 흔들렸고, 검은 공간에 줄기줄기 균열을 만들어냈다.
우르릉!
격렬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갈래 홍수가 격하게 부딪혀 얽히고설키며 폭발을 만들어냈다. 천지를 휘젓는 파멸의 기운이 파도가 되었고,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지나간 자리마다 빛이 환하게 비쳤고, 수많은 부석들이 폭발했다.
수많은 운석 덩어리들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갔고, 공중에서 마찰을 일으키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불이 붙은 별똥별처럼 아래에 있는 전쟁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수많은 흑마족과 연합의 수련자들이 피하지 못한 채, 갑자기 날아온 불똥 에 큰 상처를 입었고, 심지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사람들도 많았다.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었지만, 성지 연합이 점점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앞쪽 전선이 점점 흑마족이 머무는 검은 부도 방향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 * *
가장 앞쪽에 있는 금색 전함 위, 노인 세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복장으로 봤을 때, 각각 삼대 성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 기세라면 하루나 이틀 만에 흑마족들을 전부 쫓아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 결계를 단단히 봉쇄한다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은 막을 내릴 겁니다.”
푸른 피풍의를 입은 청란성지의 장로가 말했다.
“동 장로님, 그 말씀은 틀렸습니다. 제가 봤을 때, 이틀이 아니라 반나절이면 이 흑마족들을 전부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전력을 다해서 공격하면, 완전히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진종의 장로가 말했다.
“허허, 이제 더는 그 힘을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 전함으로 공격을 한 후, 전면 공격을 합시다.”
회백색 수염을 드리운 축운검파의 장로가 말했다.
잠시 후에 수백 척 전함에서 동시에 빛이 번쩍였고, 선체 가장 앞쪽에서 태양처럼 눈부신 빛기둥이 먹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펑, 펑, 펑!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먹구름 속에서 가슴을 찢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연합의 모든 수련자들은 명을 받들라! 전면 공격을 시행하라!”
가장 앞쪽에서 연합 장로가 우렁찬 목소리로 지휘를 하자, 뒤에 있던 전함들 수백 척에서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퍼졌다.
수백 척 전함에서 오색영롱한 빛들이 반짝였고, 사람들 수천, 수만 명이 전함에서 뛰어나와서 전쟁터 속으로 들어갔다.
더 많은 지원군을 투입하자, 성지 연합은 기세가 더욱 강해져서 흑마족은 한 동안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뒤로 밀려났다. 이어 찢어진 시체들 수천 구만 남긴 채, 드디어 먹구름 속까지 밀려났다.
성해에서 연합의 성계들과 대치하던 흑마족의 성계 존재들은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어렸다. 그러나 승패를 가르는 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룰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연합의 성계가 통제를 하니,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성지 연합의 대군이 바싹 쫓아갔고, 제자들 이만여 명이 기세를 몰아서 흑마족을 전부 몰살시킬 작정이었다. 흑마족 사람들은 전부 먹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법보의 빛이 각양각색으로 먹구름 속에서 반짝였고,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처참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제기(祭旗)!”
이때 먹구름에서 말투가 괴상한 고함이 들렸다. 흑마족 사람이었다.
먹구름 속에서 살벌하게 외치는 소리가 줄어들었고, 난잡한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먹구름 가운데서 검은 기운이 용솟음쳤고, 마치 들끓는 물처럼 뿜어져 나왔다.
커다란 깃발이 먹구름 가운데서 천천히 올라왔다. 이 붉은 깃발에서 빛이 흘러나와서 먹구름을 검붉게 물들였다.
들끓는 검붉은 구름은 피바다처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피구름 바깥쪽에서 갑자기 기이한 공간의 파동이 나타났고, 허공에서 여섯 갈래의 빛이 반짝였다. 마기가 그 속에서 뿜어 나오더니, 머리가 세 개 달렸고, 팔이 여섯 개 달린 흑마족 여섯 명이 나타났다.
이 여섯 사람은 기운이 바다처럼 깊었고, 마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손에 귀두혈기(鬼頭血旗)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각각 피구름이 있던 여섯 자리에 서 있었다. 이어 깃발을 든 손을 뺀 다섯 손으로 각각 다른 법결을 펼쳤으며, 난해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주문을 외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여섯 사람이 손에 든 혈기에서 붉은빛이 크게 번졌다.
이어 혈기에서 핏빛 쇠사슬이 여섯 갈래로 튀어 나왔고, 전부 피구름 가운데에 있는 핏빛 깃발과 연결되었다.
윙-
핏빛 쇠사슬과 깃발에서 빛이 얇게 뿜어 나오더니 커다란 막을 만들어냈다. 막은 마치 엎어 놓은 그릇처럼 피구름 전체를 봉쇄해버렸다.
이 모든 건 너무나 갑자기, 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연합의 수련자들 대부분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몸이 금제 속에 묻혀버렸다.
“혈살마혼진(血煞魔魂陣), 큰일이다. 계략에 빠졌어!”
금색 전함에 있던 한 장로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장로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가장 앞쪽에 있던 전함 몇 척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금빛을 줄줄이 발사하며 붉은 막을 공격했다.
쾅!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붉은빛의 막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계 존재인 흑마족 강자 여섯 명도 몸통이 막과 함께 흔들렸다. 마치 심신이 연결되어 커다란 충격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중에 두 명의 입가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막은 심하게 흔들렸지만, 부서질 낌새는 없었다. 여전히 단단하게 피구름을 감싸고 있었다.
이때 먹구름 가운데 놓인 핏빛 깃발에 갑자기 피구름이 뭉치더니, 핏빛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커다란 손바닥이 하나 튀어나왔다.
그 뒤로 커다란 머리와 몸통이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온 건 다름이 아니라 백 장 정도 되는 거대한 핏빛 시체였는데, 주위에 마기가 감돌고 있었다.
시체는 온통 피범벅이 되어있었고, 마치 금방 피부를 벗겨낸 사람처럼 모양이 매우 끔찍했다.
시체는 머리와 이목구비에 피가 묻어서 입과 코마저 구분할 수 없었고, 눈에는 커다란 구멍만 두 개 있을 뿐 눈알은 없었다. 끈적한 피가 눈꺼풀에서 흘러내리며 눈에 난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
시체가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떤 흉측한 짐승과 비슷했다.
그리고 크게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성지 연합 제자들 속으로 뛰어들어서 커다란 손바닥을 휘둘렀다. 하늘을 뒤덮는 피가 손바닥에서 튀어나왔고, 마치 피가 긴 강물처럼 흘렀다.
그 주변에 있던 연합의 제자들은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서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순간 속도가 느린 사람들은 핏빛 강에 빨려 들어가서 핏물로 녹아버렸고, 다시 커다란 시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시체가 손바닥을 몇 번 뒤집자, 백 명 가까운 연합의 제자들이 죽어버렸다.
다른 한쪽 전함 옆, 축운검파 제자들 백여 명이 몇몇 천위 대장들이 지휘하는 가운데 전진했다. 그리고 손에 빛을 반짝이며 검결을 펼치자, 검이 손에서 뿜어 나와 허공에 모였다.
백여 자루 장검이 줄줄이 서 있었고, 헤엄을 치는 용처럼 허공에서 맴돌더니, 검 끝이 커다란 시체에게 향했다.
윙윙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형태와 빛깔이 각각 다른 장검 수백 갈래가 하나로 뭉쳐서 백 장이나 되는 하얀 빛을 만들어냈다.
휙.
커다란 빛이 허공에 하얀 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커다란 시체의 심장으로 향했다.
검이 심장에 꽂혔지만, 시체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피로 두 갈래 강을 만들어 휘두르며 사람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에서 혈관 같은 검붉은 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와서 커다란 검을 감쌌고, 순식간에 덮어버린 후, 그곳에서 마기를 뿜어내며 칙칙거리는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