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화. 분주하게 떠돌아다니다
깊은 밤.
석목은 허공에서 내려와 동굴에 설치한 진법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동굴 끝 커다란 둥지 속에서 연나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석목은 연나 근처로 다가가서 한참 바라보다가, 옆에 앉아서 볼록해진 수혼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석목은 수혼 주머니를 손에 들고 얇게 틈을 하나 만들어냈고, 혼들이 유유하게 백여 덩어리나 주머니에서 흘러나와 동굴 속을 가득 채웠다.
석목은 연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긴장한 기색을 드러냈다. 혼수상태에서 연나가 혼을 삼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혼들은 동굴에서 한참 흘러 다니더니, 조금씩 흩어졌다. 하지만 연나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조금 실망했다.
이때 혼화 한 덩어리가 연나와 한 치 정도 되는 거리까지 날아가자, 연나의 이마에 새겨진 연꽃 모양 검은 표식이 갑자기 빛을 뿜어내더니, 아주 약한 흡인력을 드러냈다. 혼은 파르르 떨더니, 이마 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은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흔들어서 혼 수십 덩어리를 묶어서 연나의 몸과 가까운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그 혼들도 표식에서 빛이 뿜어 나오자, 전부 연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석목은 망설이지 않고서 손에 든 수혼 주머니를 완전히 풀었다. 수천 덩어리나 되는 혼들이 춤추는 나비처럼 주머니에서 흘러나왔고, 동굴 전체에 퍼졌다. 동굴 벽마저 오색찬란한 빛을 띠었다.
이 혼들은 전부 연나의 이마에 난 표식으로 흘러 들어갔고, 곧바로 소용돌이를 그리며 전부 몸속으로 들어갔다.
반나절이나 지났고, 마지막 한 덩어리까지 전부 스며들었다. 이마에 새긴 연꽃 표식은 여전히 환했는데, 흡수한 혼들로 만족하지 못하고서 더 많은 혼들을 원하고 있었다.
석목이 신식으로 탐색을 해보니, 연나의 혼이 처음보다 조금 나아졌다. 석목과 혼으로 연결된 것도 더욱 강력해졌다. 그제야 석목은 만족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충분한 요수들의 혼만 있으면, 연나는 별다른 문제가 없겠군.”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석목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연나는 지금 천위 정상인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연나의 혼 또한 매우 강력했다. 그래서 회복을 하려면 이런 수준이 낮은 요수들의 혼으로는 턱도 없었다. 언제까지 혼들을 모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연나를 빨리 회복시키려면 강한 요수들의 혼들을 더 많이 찾아야 했다. 이렇게 석목이 신식으로 조금씩 찾는 건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더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석목은 한참 고민을 하더니, 눈알을 살짝 굴렸고, 잠시 후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석목은 몸을 일으켜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천 장 정도 되는 높은 산봉우리가 떠다니는 구름과 짙은 안개 속에 서 있었다. 우뚝 솟아있는 모양새가 오만한 표정으로 천지만물을 굽어보는 것 같았다.
산 위에는 기이한 돌들과 암벽들이 곳곳에 널려있었고, 사람이 안아도 두 손이 닿지 않을 굵직한 나무들은 하늘을 찌르며 촘촘하게 산봉우리를 뒤덮었다.
산봉우리 꼭대기는 땅이 오히려 평탄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백여 개 숲을 이루었고, 대부분 푸른색을 띠는 건물들이었는데, 귀한 오동나무와 커다란 청석들로 지어졌다.
건물 숲 가운데엔 청석 광장이 하나 있었는데, 매우 평평한 청석들이 깔려있었고, 반짝반짝 빛을 내는 모양새가 매우 화려했다.
광장 가운데엔 커다란 동정(铜鼎)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높이는 몇 장이나 되었고, 세 개씩 석 줄이 놓여 총 아홉 개였다. 동정들은 푸른 연기를 흘렸고, 옅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냄새는 뭉쳐져 흐트러지지 않았다.
광장 한쪽엔 커다란 궁전이 세 채 서 있었다.
세 궁전에는 전부 용 조각이나 봉황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매우 정교했고, 궁전 위에서 은은한 영력 파동이 이는 것을 보니, 금제를 설치한 것 같았다.
가운데 놓인 궁전 위에는 금색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 위에 “상청궁(上清宮)”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대전은 문이 활짝 열려있었는데, 대전 안은 매우 넓었다. 안쪽에는 거대한 신상을 세 개 모시고 있었는데, 신상들은 바로 도가인 삼청성인(三清聖人)이었다.
대전 위에 사람들이 네다섯 명 순서대로 앉아있었는데, 마치 무엇인가 논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운데 있는 사람은 얼굴이 각진 중년 남자였다. 자주색 도포를 입었고, 가슴에는 음양팔괘가 그려져 있었다. 손에 부침(浮沈)을 한 개 들고 있었고, 모습은 단정했는데, 이곳의 우두머리 같았다. 중년 남자는 선천 정상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도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이 각진 중년 남자와 모습이 비슷했다.
“장문 사형, 이 일은 매우 이상합니다. 어제 동람(東嵐)산맥에서 갑자기 영기가 폭발했는데, 그 규모가 굉장했습니다. 우리들의 상상 이상이었지요. 하지만 이 파동은 잠깐만 비치더니, 곧바로 사라졌습니다.”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매우 기이한 일이라니, 혹시 어떤 보물이라도 나온 게 아닐까요?”
뚱뚱한 남자 옆에는 중년 여도사도 한 명 앉아 있었는데, 여도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보물이 나타나는 징조가 아니었습니다. 어제 제가 때마침 동람산맥 근처에 있었는데, 이 영기 폭발은 하늘에서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요.”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얼굴에 실망을 하는 기색이 스쳤다.
“동람산맥은 우리 육합종(六合宗)과 멀지 않으니, 모두 나중에 동람산맥에 사람을 보내서 찾아보라고 하지. 어떤 이상한 움직임이라도 있는지 봐야 해.”
중간에 앉아 있던 장문인이 말했다.
“네.”
뚱뚱한 남자가 답했다.
장문인이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대전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엔 푸른 피풍의를 입은 청년이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자네는 누구인가? 제멋대로 우리 육함종에 쳐들어오다니!”
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장문인의 눈빛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순식간에 얼굴이 어두워지며 일어섰고, 뚱뚱한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이 푸른 피풍의를 입은 남자는 석목이었다. 석목은 주변사람들을 한번 쭉 둘러보더니, 장문인을 다시 바라보았다.
“여기 주인입니까?”
석목은 상대가 묻는 말에는 답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되물었다. 온통 믿을 수 없다는 말투였다.
“나는 옥정상인(玉鼎上人)이고 육합종의 장문인이다. 그대는……”
중년 장문은 석목의 경지를 볼 수 없어서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옥정상인, 이 근처 어디에 지계보다 높은 수련을 한 요수들이 있습니까?”
석목은 장문인이 하는 말을 끊어버리고 물었다.
장문인은 그 말을 듣더니, 멈칫하며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혹시 잘 안 들리시나요?”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있는 듯 없는 듯 위압감을 흘려보냈다.
“네 이놈!”
대전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열려다가, 갑자기 전부 놀란 표정을 짓고선 몸에 빛을 뿜으며 손으로 법결을 펼쳤다. 뚱뚱한 남자는 성격이 가장 급했다. 뚱뚱한 남자는 붉은빛을 번쩍이며 장검을 꺼내 들었고, 장검에서 불빛이 타올랐다.
“예를 갖춰라!”
검을 뽑으려는 찰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대전 한쪽에서 문이 열렸고, 머리가 하얀 노인이 빠르게 걸어 나와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석목은 백발노인을 한번 바라보았다. 노인은 경지가 지계 초기였고, 이 종문에서 경지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종문사람들은 서로 한 번씩 마주 보더니, 노인이 하는 말을 거역하지 못했고, 몸에서 번지던 빛을 거두어들였다. 뚱뚱한 남자도 장검을 거두었다.
“후배 종학입니다.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백발노인은 석목에게 다가가더니,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전부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형태 없는 힘이 백발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백발노인은 더욱 공경하는 태도를 갖췄다.
“빨리 와서 선배님께 인사드리지 않고 뭐하느냐!”
백발노인이 고개를 돌려서 뒤에 있던 종문사람들에게 호통을 쳤다.
옥정상인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토씨 하나 달지 못했고, 다급하게 다가와서 석목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후배들이 아는 게 없어서 선배님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옥정상인을 비롯한 종문사람들이 고개를 굽히며 말했다.
“종학, 육합종의 태상이시니, 제가 조금 전에 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알고 계시겠지요?”
석목은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백발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 서쪽으로 이천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커다란 초지가 하나 있습니다. 초지 깊은 곳에는 구렁이가 한 마리 있지요. 초지 북쪽은 제황(啼煌)산맥인데, 천 리 안에서 영기가 가장 짙은 곳입니다. 오랜 기간 맹독이 자욱하게 퍼져 있어서 독충이나 독사 같은 짐승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 중 벽서(碧噬) 두꺼비가 가장 해치우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제황산맥을 위험지역이라고 부릅니다. 거기보다 조금 더 먼 곳엔 지계인 요수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선배님께서 혹시 더 아시고 싶으시다면, 지도 옥간에 표시를 해서 드리겠습니다.”
백발노인은 공손히 말했다.
“그래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었다.
백발노인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옥간을 꺼내 들며, 손에 자색 빛을 뿜더니, 눈을 감고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백발노인은 두 눈을 뜨더니, 두 손으로 옥간을 석목에게 건네었다.
석목은 옥간을 받아들었고, 신식을 보내 탐색을 하였다. 일고여덟 곳에 표시를 해놓은 것을 보았고, 흡족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었다.
“선배님, 존함이 어떻게 됩니까? 혹시 상계에서 이곳에 내려온 선인이십니까?”
백발노인이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종문사람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온통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한 기색이었다.
“상계선인……”
석목은 백발노인을 비롯한 종문사람들을 바라보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제 이름은 알 필요 없습니다. 신분 또한 선인이 아닙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사람들은 대답을 듣자, 실망하는 듯했다.
석목은 옥간을 거두어들이며 물었다.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이 행성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행성이요? 무슨 행성 말씀이십니까?”
백발노인이 그 말을 듣더니, 멈칫하며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석목은 노인이 짓는 표정을 보더니, 무엇인가 깨달은 듯이 한번 웃었다.
이 행성은 영기가 매우 희박했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수련을 한 경지 또한 매우 낮았다. 아마 석목이 처음 있었던 칠종과 비슷해서 행성이라는 개념조차 모를 터였다.
“아닙니다. 이 대륙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선배님, 이곳은 운황대륙(雲荒大陸)입니다. 이곳은 대륙 남쪽입니다.”
백발노인이 답했다.
“그렇군요. 혹시 운황대륙 지도 옥간이 있을까요?”
석목이 또 물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백발노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리고 푸른 옥간을 꺼내서 공손히 건네었다.
석목은 옥간을 받더니 신식을 쏘았다. 빠르게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석목이 손을 흔들자, 각각 노란색과 푸른색 최상급 영석 두 개가 탁자 위에 놓였다.
“그래요. 이렇게 많은 걸을 알려줬으니, 이 두 영석은 답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석목은 말 한마디를 던졌고, 이내 파란빛을 반짝이며 밖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사라져버렸다.
백발노인은 멍했다. 석목이 그냥 가버리는 바람에 묻고 싶던 말들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백발노인은 탁자 위에 놓은 영석 두 개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흙 속성이었고 하나는 나무 속성이었다. 영석은 아주 짙은 기운과 영력 파동을 뿜고 있었다.
“이…… 이건 무슨 영석이지? 이렇게 강력한 영력 파동을 일으키다니!”
백발노인은 깜짝 놀랐다. 백발노인이 봤던 가장 좋은 영석은 상급 영석 뿐이었다. 하지만 이 영석 두 개가 보여주는 영력의 파동은 상급 영석들보다 백 배나 더 강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