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화. 쳐들어가다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광맥을 떠나려 할 때, 갑자기 눈에 무엇인가 들어왔다.
다시 앞쪽으로 수십 장을 날아가 보니, 해초로 만든 커다란 둥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둥지 속에는 사람만한 보라색 커다란 알이 하나 놓여있었는데, 번개를 간간이 튀기며 강력한 생명력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뇌교수가 약해진 이유가 있었어. 이제 막 알을 낳은 것이었구나.”
석목이 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눈앞에 놓인 알을 바라보며, 석목은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천위 요수인 뇌교수가 낳은 알은 흔하지 않은 번개 속성을 띠고 있었다. 성역으로 가져가서 팔면, 꽤 비싸게 팔릴 터였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서 파란빛으로 용의 알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더는 머물지 않고 수면 위로 날아갔고, 허공에 선 영우비차에 올라탔다.
“선배님!”
멀지 않은 곳에서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석목을 보더니, 다급하게 맞았다.
석목은 인뢰석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소녀는 인뢰석을 잽싸게 건네받더니, 품에 꼭 안았다.
“갑시다.”
석목은 소녀를 한번 보더니, 영우비차를 불러서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 * *
며칠 뒤, 천위 요수인 뇌교수가 죽었다는 소문은 종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다. 결국 커다란 파동이 일었고, 사람들은 석목을 천지신명과 같은 존재라고 불렀다.
종문마다 사람을 보내서 소문이 진실인지 확인하도록 했고, 바다 깊은 곳에서 드러난 영석 광맥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었다. 종문들은 광맥을 두고 다투기 시작했고, 운황대륙에서 암투가 벌어졌다.
석목은 종문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고, 빠르게 바다를 떠나서 다시 황폐된 산맥으로 돌아왔다.
연나는 여전히 혼수상태였고, 기운은 불안했다.
석목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허리춤에서 수혼 주머니를 꺼내서 흔들었다.
혼 덩어리들이 줄줄이 날아서 연나의 입가로 다가갔다.
연나는 입을 작게 벌렸고, 본능적으로 혼을 하나씩 삼켰다. 기운이 차차 강해졌다.
뇌교수의 혼을 삼킨 연나는 몸에서 하얀빛이 반짝였고, 연나가 입으로 작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연나, 괜찮아?”
연나가 깨어나려는 낌새를 보이자, 석목은 기뻐하며 다급하게 다가가서 물었다.
“이곳은 어디지?”
연나가 어여쁜 눈썹을 찌푸리며 힘이 풀린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아, 여긴 운황대륙이야. 행성 이름은 아직 몰라. 내 생각인데, 아직 미양 성역 안에 있는 것 같아.”
석목이 설명을 해줬다.
“나, 얼마 만에 깨어난 거야?”
연나가 멈칫하며 물었다.
“이미 한 달 가까이 됐어. 네가 날 구하려다가 혼을 크게 다쳐서, 요수들의 혼을 사냥해서 빨리 회복시켜주려고 했는데, 이 행성은 영력이 너무 희박해서 경지가 높은 요수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어. 그래도 깨어났으니 다행이야. 다시 사령계로 돌아가면, 더 빨리 낫겠지.”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연나는 잠깐 침묵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당분간은 돌아가지 못할 거야.”
“왜?”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혼을 다쳐서 그렇거나, 성계 돌파에 실패해서 그런 것 같아. 예전에 성계 마혼을 강제로 삼키는 바람에, 내 혼에도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어. 경지를 높이려면, 아마 충분한 마기가 필요할 거야.”
연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마기! 여긴 천지영기도 매우 희박한 곳이라 마기를 얻을 순 없을 거야. 급한 대로 우선 혼부터 회복하자.”
석목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석목의 분신도 마화가 되었고, 지금 마기가 부족해서 스스로도 궁지에 몰려있었다.
연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막 깨어났으니 우선 조금 더 쉬어. 내일 나가보자. 요수도 찾고, 이 행성을 떠날 준비도 해야 해.”
석목이 말했다.
* * *
보름 뒤. 붉은색 광활한 대지 가운데 천 장 정도로 높은 커다란 화산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르릉!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땅은 흔들렸다.
커다란 화산 입구에서 검은 연기가 들끓으며 피어올랐고, 속에선 붉은색 불덩어리들이 끊임없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화산과 멀지 않은 허공에 푸른색과 하얀색 사람이 서서 화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피풍의를 두른 훤칠한 청년의 눈썹은 검 같았고, 눈은 별처럼 반짝이는 게, 참 잘 생겼다. 청년과 나란히 서 있던 여인은 하얀 궁장을 입었고, 미모가 매우 뛰어났으며, 몸매는 늘씬하고 세속에서 벗어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석목과 연나였다.
“아마 곧 나올 거야……”
석목은 화산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이 말을 마치기 바쁘게 화산 입구에서 다시 한번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굵은 화염 기둥이 분화구에서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불기둥은 구름 높이까지 치솟다가, 다시 들끓는 죽처럼 산을 타고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그 위로 먼지와 검은 연기들이 넓게 퍼져서 하늘을 회색으로 뒤덮었다.
석목이 손을 들어 머리 위에서 한 번 흔들자, 반원 모양 파란 막이 허공에 나타나서 두 사람에게 드리웠다. 화산에서 뿜어 나온 먼지와 화염 덩어리들이 옅은 막에 떨어지자, 물에 닿듯이 막이 가볍게 패이더니, 이내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왔어.”
이때 연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석목이 눈길을 돌리자 검은 촉수들이 화산 입구를 감싼 짙은 연기 속에서 촘촘하게 튀어나왔다.
이어서 평평하고 넓적한 머리가 뒤따라서 나타났고, 머리 위에는 초롱같은 붉은 눈이 박혀 있었다. 눈은 검은 연기 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석목이 등 뒤의 화염 날개를 펄럭이며, 파란 막에서 튀어나와 곧바로 화산 입구로 향했다.
“크엉!”
큰소리가 울려 퍼졌고, 검은 머리가 화산 입구 위에 완전히 드러났다. 그리고 입에는 집게처럼 구부러진 뾰족한 이빨이 양옆으로 뻗어있었다.
이어 하늘을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뜨거운 용암이 머리에서 줄줄이 흘러나왔고, 화염으로 만든 창처럼 흉흉하게 주변을 공격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뒤로 반 발짝 물러났고, 손바닥을 뒤로 끌어당겼다. 몸 앞에 두른 파란 막을 전부 거둬들여 주먹에 감싼 후에 팔을 휘두르자 주먹에서 그림자가 튕겨 나와 격하게 흔들리더니, 전부 푸른 구체로 변하여 쏟아져 내렸다.
이어 붉은색과 파란색 빛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잠깐 사이에 파란색이 단번에 붉은색을 덮어버렸고, 터지는 소리를 냈다.
기세가 흉흉한 지네 요수는 뿜어 나오는 용암과 함께 파란빛에 단단히 묶이더니, 하늘에서 떨어졌다.
“터져!”
석목이 큰소리를 지르자, 왼쪽 손에서 하얀 화염이 번쩍였고, 주먹으로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뜨거운 기류가 석목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퍼졌고, 다시 하늘로 솟아올라 떨어지는 얼음 수정들과 부딪쳤다.
펑!, 펑!
얼음 수정들이 터졌고 사체가 찢겨 흩날렸다. 이때 연나가 허공에 나타나서 입을 벌리자, 빛덩어리가 흩날리는 시체 속에서 유유히 흘러나오며 연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기 속 기운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 석목은 눈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두 사람은 보름 동안이나 떠돌아다녔고, 이 행성은 이름이 인진성(湮塵星)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진성에서 가장 큰 종문은 대륙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천현진문(川玄塵門)이었고, 인진성을 드나드는 유일한 전송법진 또한 천현진문에 있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연나를 데리고서 요수를 죽이며 혼수를 모았고, 서쪽으로 향했다.
* * *
한 달 뒤.
운황대륙의 서쪽 끝. 길게 들어선 산봉우리 가운데 마치 별들 속에 뜬 달처럼 수백 장 정도 되는 높은 검은 산봉우리가 하나가 우뚝 솟아있었다.
주변 몇몇 산봉우리는 푸른 숲으로 뒤덮였고, 굵은 나무들이 하늘을 찔렀으며, 붉거나 푸른 기와를 덮은 건물들이 사이에 서있었다. 가운데 있는 산봉우리만 꼭대기가 벌거벗은 듯이 거무칙칙한 암석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검은 대전 하나만 그 위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이때 밝은 빛 하나가 먼 곳에서 날아왔고, 검은 산봉우리 위에서 멈추었다. 이어서 석목과 연나가 나타났다.
연나는 얼굴이 여전히 창백했지만, 혼은 많이 회복이 된 것 같았다.
석목이 실눈을 뜨고 아래를 훑어보았고, 그의 눈에서 금빛이 흐르더니, 금색의 커다란 망이 눈앞에 나타났다.
팔각형 모양인 거대한 망이었는데, 주변 여덟 산봉우리를 이어서 촘촘하게 짠, 팔괘 모양 봉금망진(封禁網陣)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망은 바로 아래에 있는 검은 봉우리를 꽁꽁 감쌌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청명검이 나왔고, 허공에서 긴 곡선을 그으며 금색 망을 찢어놓았다.
푸른빛이 반짝이며 다시 날아왔고, 금색 망 겉에서 빛이 미친 듯이 번쩍였다. 그리고 긴 틈을 하나 만들어내더니, 다시 합쳐지려는 듯했다.
석목과 연나는 빠르게 아래를 향해서 내려갔고, 틈 사이를 뚫고서 검은 대전 앞에 내려섰다.
두 사람이 내려오자, 검은 대전 속에서 많이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가장 앞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은 푸른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이 수척한 백발노인이었다.
백발노인은 관상이 착했고, 세 갈래 흰 수염이 자연스럽게 나부꼈는데, 도인처럼 깊은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수련을 이룬 경지는 이미 천위 초기였다.
“무량천존(無量天尊), 감히 여쭙건데, 두 도우께선 무슨 일이시기에 미리 언질도 없이 이곳에 오셨습니까?”
노인이 손에 든 총채를 한번 흔들며 인사를 올리더니 물었다.
석목과 연나는 기운을 숨기지 않아서 수련 경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하여 현청(玄清)의 도인은 문책을 하는 뜻을 숨겨두었지만, 말을 건네는 투가 격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풍기는 기운 때문에, 노인은 두 사람을 감히 막대하지는 못했다.
이때 하늘에서 몇 줄기 빛들이 나타나더니, 주변 산봉우리에 머물던 몇몇 사람들이 나타났다.
빛은 사라졌고, 산꼭대기에 남자 세 명과 여자 두 명이 나타났다. 그 사람들은 전부 도포를 입고 있었다.
나타난 이들은 멈춰 서자마자 전부 연나를 바라보았다. 두 여도사를 포함한 사람들은 전부 연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도사들은 세상에 이런 절세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마치 신선을 바라보듯이 연나를 바라보았다.
세 도사들뿐만 아니라 두 여도사들마저 멍하니 연나를 바라보았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골치가 아팠다. 연나를 데리고 나올 때, 좀 더 초라하게 옷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연나의 미모 하나만으로도 번거로운 일이 꽤나 생길 게 뻔했다.
한 중년 여도사가 정신을 가다듬더니, 쨍그랑 소리를 내며 긴 검을 뽑아서 석목과 연나를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
“어디에서 온 미친 녀석들인가? 간이 부어서 이렇게 함부로 우리 천현진문에 쳐들어오다니!”
“정 사매, 급하게 굴지 마시오. 스승님께서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으셨는데, 이렇게 막 소리를 지르면, 저 미인이 당황할 것입니다.”
여도사의 뒤에 서있던 중년 도사가 말했다.
중년 도사는 눈가가 까맣고 볼이 푹 꺼진 게 악귀 같았다. 악귀 같은 도사는 연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혀를 내밀며 입술을 한번 훑었다.
악귀 같은 도사의 눈빛이 연나의 가슴에 머물자, 석목의 안색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 말을 들은 중년 여도사는 혐오스런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뽑은 검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영청(靈清), 검을 거두고 예를 갖춰라!”
수척한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무랐다.
“네!”
중년 여도사는 내키지 않은 듯 긴 검을 거두어들였다.
“당신이 현청입니까?”
석목이 말했다.
“네, 바로 접니다. 두 분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말해주시죠.”
노인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존님……”
석목이 노인의 이름을 부르자, 몇몇 도사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