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화. 강한 세력
영청이라 불린 중년 여도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영청이 천지신명처럼 존경하는 사존이 눈앞에 선 젊은 남녀를 이렇게 조심스레 대하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영청은 석목을 한참 훑어보았고, 석목이 풍기는 기운을 느끼고는 마음속으로 흠칫 놀랐다.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정송진법을 빌리러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뭐……”
“네 이놈!”
몇몇 도사들은 또다시 소리를 질렀고, 얼굴에는 화가 잔뜩 나있었다.
현청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두 분께서 부탁하신 요구를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왜죠?”
석목은 의아한 기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두 사람께서 갖추신 기운과 수련 경지를 보니, 아마 우리 인진성 사람이 아니신 것 같은데, 이 망망 성역에는 진정한 대문파가 따로 있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천현진문 또한 ‘이진종’의 일개 가지일 뿐입니다. 여기 있는 전송법진은 이진종에서 이곳으로 사람을 보낼 때만 가동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천현진문에 멸망의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 절대 열 수 없습니다.”
현청은 ‘이진’이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진종……”
이진종이란 말을 들은 석목은 흠칫 놀랐지만,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석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현청은 위협이 먹힌 줄 알고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계속 말했다.
“콜록, 두 분께선 알아서 떠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 일은 저도 선종에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현청은 ‘선종’ 두 글자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경고와 암시가 가득 담긴 투로 말했다.
하지만 현청은 눈앞에 선 청년을 너무 가볍게 봤다.
“허허, 이진종. 난 또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멸문을 당할 위기에 처하면 열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럼 그렇게 하지!”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방대한 영력이 하늘까지 치솟았고,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서 주변이 순식간에 파란빛으로 가득 찼다. 빛은 파도처럼 주변 천지영기를 들끓게 만들었다.
현청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강력한 힘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바다에 빠진 것처럼 말려오는 파도와 맞서며 부딪쳤고, 이리저리 비틀거리자, 단전의 진기가 흐르는 게 느려져 제대로 설 수도 없었다.
이때 석목의 오른쪽 손에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차가운 기운이 뿜어 나왔다. 파도처럼 번지던 파란빛은 순식간에 멈춰버렸고, 그 위에 하얗고 투명한 얼음이 나타났다.
석목과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몇몇 중년 도사들은 산봉우리와 함께 얼어붙었다.
석목이 갑작스럽게 공격을 하자, 현청은 깜짝 놀라서 손에든 총채를 위로 흔들었고, 붙어있던 털들이 전부 철침처럼 꼿꼿하게 서서 하늘을 가리켰다.
현묘한 주문이 입에서 흘러나왔고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보라색 현뢰(玄雷)가 구천에서 터지더니, 현청의 몸에 떨어졌다.
수많은 번개가 꿈틀거리는 뱀들처럼 현청의 몸에서 뿜어 나와서 파란빛이 뒤로 밀려났고, 얼음들은 사방으로 터져버렸다.
현청 주변에 서있던 중년 도사 두 명을 누르던 압력도 줄어들었고, 때문에 얼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어서 도사들은 검결을 써서 몸 앞으로 보라색 장검 두 자루를 만들었고, 번개를 감고서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현청이 손에 든 총재를 앞으로 휘두르자, 물통만한 빛기둥이 우르르 석목에게 향했다. 이에 석목이 가볍게 팔을 흔들어서 옆에 있던 연나를 뒤로 감추고 왼쪽 팔에서 하얀빛을 뿜어냈다.
그동안 석목이 계속 연나를 돌보고 있었던 터라, 연나를 보호하는 동작이 매우 자연스럽고 익숙했다. 하지만 연나는 석목이 보여주는 행동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고, 연나의 아름다운 눈에서 알 수 없는 빛이 스쳐 지났다.
석목은 연나의 안색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왼쪽 팔은 이미 하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고, 곧바로 보라색 빛기둥을 향해 날렸다.
쿵!
하얀 주먹 그림자가 보라색 빛기둥과 부딪쳤고, 수많은 번개와 화염이 순식간에 터져버렸으며, 형태 없는 기세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보라색 긴 검은 폭발하며 수많은 파편으로 부서졌고, 거센 바람 때문에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근처에 있던 몇몇 천현진문 도사들은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파편에 의해 몸에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다행히 급소를 뚫린 게 아니라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석목과 마주 서있던 현청은 커다란 충격 때문에 몸이 격하게 흔들렸고, 묵직한 신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흘렸다.
현청은 몰래 입에 고인 피를 삼켰고, 아주 놀라워했다.
눈앞에 선 훤칠한 청년의 수련 경지가 현청 자신보다 조금만 더 높다고 생각했는데, 석목이 지닌 영력은 현청보다 훨씬 깊었고, 수련을 한 법결도 훨씬 뛰어났다.
그리고 석목 뒤에 서있는 소녀가 갖춘 기운 또한 석목보다 낮은 것 같지 않았다!
“도우님, 잠시만!”
현청은 석목의 왼팔에서 하얀빛이 번쩍이는 모습을 보았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현청을 바라보았다.
“도우님, 우리 천현진문과 아무런 원한도 없으신데, 살인을 저지를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정송진법은 그냥 사용하시죠.”
현청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생각을 잘 해보셨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조금 전에는 실례를 범했습니다만, 도우님께서 너그럽게 봐주시죠. 정송진법을 사용하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현청은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다만?”
석목이 되물었다.
“네, 실은 정송진법을 가동하는 성석은 선종에서 사람을 파견해서 줍니다. 우리 천현진문에는 성석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조금 전에 도우님께서 하신 부탁을 거절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현청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성석까지 당신들이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보수도 일부 드리겠습니다. 그럼 전송법진으로 안내해주시죠.”
석목이 말했다.
“보수까지는 감히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도우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저희 제자들을 풀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현청은 아직도 얼어있는 몇몇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은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악귀 같은 도사에게 눈길이 멈췄다. 그리고 여유롭게 연나를 데리고서 그 도사 앞으로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놓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딱 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 괜찮다면 대신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석목이 담담하게 물었다.
“그건……”
현청은 깜짝 놀랐다.
파란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악귀 같은 도사는 마치 무엇인가 느낀 듯, 동공이 순식간에 커졌다. 하지만 얼음에 갇혀 있어서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모습은 매우 추해 보였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볍게 짚었다. 파란 물결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더니, 악귀 같은 도사는 순식간에 터졌고, 얼음덩이로 부서져 버렸다.
이때 나머지 도사들의 몸을 뒤덮고 있던 파란빛이 점점 어두워졌고, 얼음도 녹아내렸다. 도사들은 전부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주저앉아서 두려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갑시다.”
석목은 도사들을 쳐다보지도 않고서 현청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따라오십시오.”
현청은 공수를 하며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석목과 연나를 데리고 검은색 대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대전으로 들어간 후, 큰방을 지나고, 또 구첩 병풍을 돌아서야 세 사람은 후전에 도착했다. 후전엔 용이 조각된 기둥이 아홉 개 서 있었고, 그사이에 전송법진이 있었다.
“이 전송법진은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
석목은 전송법진을 한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도우님, 이 전송법진은 거리에 한계가 있어서 오양성(烏陽星)까지만 갈 수 있습니다.”
현청이 대답했다.
“오양성?”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양성이 이 별과 가장 가까운 행성입니다. 하지만 오양성은 인진성과 달리 전송법진이 꽤 많이 있습니다.”
현청이 말했다.
석목과 연나는 서로 마주 보더니, 최상급 영석 세 개를 노인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그럼 열어주시죠!”
현청은 영석을 받아들었고,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그리고 석목과 연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법결을 써서 전송법진으로 회색빛을 날렸다.
전송법진이 격하게 흔들렸고, 검은 석대가 천천히 땅 위에 올라왔다.
석목은 앞으로 다가가서 엄지만 한 성석 한 개를 꺼냈고, 전송법진 가운데 놓인 석대 위로 올려놓았다.
주문을 외우는 소리와 함께 용이 조각된 기둥에서 빛이 번쩍였고, 석목과 연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미양 성역, 명옥성(冥玉星)의 해란성(海瀾城).
명옥성은 미양 성역 삼대 성지 중 하나이며, 이진종에 속한 행성 중 하나였다. 해란성은 성해 가까이에 위치하여 있고, 면적이 천 리 가까이 되며 성에 사는 인구도 수천만이나 되었다. 여긴 명옥성에서 가장 큰 성이었다.
성 곳곳에는 높은 건물이 즐비해 있었고, 넓은 길과 끝없이 이어진 궁전, 그리고 굵은 강이 성시 안에서 흐르고 있었는데, 출렁이는 푸른 물결 위로 다양하고 큰 배들이 한 척, 한 척씩 꼬리를 물고서 떠다녔다.
성의 하얀 궁전 속에서, 전송법진이 윙윙대는 소리를 냈다.
그 전송법진은 명옥성에 있는 성역 전송법진 중 하나였는데, 많은 사람이 이 전송법진을 많이 드나들어 매우 시끌벅적했다.
대전 근처에선 적잖은 수련자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고, 그중에는 천위 수준도 흔하게 보였다.
전송법진을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해란성은 전송법진을 써서 매년 아주 많은 재화를 끌어 모았다.
이때 전송법진이 흔들리며 두 사람이 나타났다.
푸른 피풍의를 입은 훤칠하고 준수한 청년과 하얀 치마를 입은 소녀였다. 소녀는 몸매가 예뻤고, 속세를 벗어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얼굴에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있었지만, 뛰어난 미모를 감출 수는 없었다.
푸른 피풍의를 입은 남자는 매우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확실히 천위 경지였다. 여자는 기운이 불안했고, 몸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
두 사람이 전송법진에서 걸어 나왔고, 하얀 치마를 입은 소녀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소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내뿜는 기운 파동이 심했다.
“왜 그래?”
청년은 고개를 돌려서 소녀를 바라보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아. 전송법진에서 받은 힘이 너무 커서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소녀가 말했다.
“그럼 급하게 가지 말고 이 행성에서 조금 쉬었다가 가자. 여긴 천지영기가 짙으니, 아마 천위 경지 요수들이 있을 거야.”
푸른 피풍의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두 사람은 석목과 연나였다. 두 사람이 인진성을 떠나고 이미 반년이나 흐른 뒤였다.
석목은 청란성지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명옥성은 이진종의 세력 안이라 청란성지와 거리가 멀었다. 돌아가려면 우선 이진종이 있는 천은성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천은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반 이상이나 지나왔다.
연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나란히 전송대전에서 걸어 나왔다.
대전 밖은 매우 높은 성벽이었는데, 백 장 정도는 되어 보였고, 아래를 향해 바라보면, 행인들이 매우 작게 보여서 마치 개미 같았다.
고개를 들어서 바라보니, 성 밖 바다가 훤히 보였다. 마치 드넓은 비취 같았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이 간간이 불어와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높은 벽은 성에서도 기이한 풍경이라, 많은 사람이 성벽에서 아래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석목도 몇 번 더 바라보았고, 경치가 실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석목은 떠돌아다닌 곳이 워낙 많아서 눈앞에 놓인 광경보다 열 배, 백 배나 아름다운 풍경들을 수도 없이 봤다. 석목은 한 번 더 훑어본 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서 앞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간 석목은 눈을 치켜뜨더니, 뒤를 바라보았다. 그렌데 연나가 따라오지 않고서 성벽에 선 채로 멍하니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석목이 다가가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