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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14화 (514/916)

514화. 미색

연나는 석목이 묻는 말에 답하지 않고, 앞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여쁜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는데, 마치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연나를 본 석목은 더는 묻지 않았고, 연나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뒤로 늘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석목도 이미 적응을 했다.

연나가 먼 곳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을 때면, 석목은 조용히 옆에서 함께 있어주었다.

이때 앞쪽에서 몇몇 사람들이 걸어왔고, 석목은 의식을 하며 그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았는데, 전부 파란 옷을 입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걸어오는 청년은 파란색 화려한 복장을 입고 있었는데, 손에 접힌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아, 속된말로 도련님 같아 보였다. 그 청년은 이제 막 천위 초기에 들어서서 기운이 조금 불안했다.

그 화려한 옷의 청년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로 걷고 있었지만, 자신감으로 가득 찬 얼굴에는 세상만사를 장악할 것 같은 모습이 어려 있었다.

석목은 화려한 옷의 청년과 함께 온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이내 눈길을 돌렸다.

화려한 옷을 입은 청년도 석목과 연나를 바라보았다. 다만 그 청년은 석목을 대충 한번 훑어보았고, 곧바로 연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고, 이내 발길을 멈췄다.

하얀 치마를 입은 연나는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다웠는데, 바라보고 있으면 심장마저 멈출 것 같았다. 연나가 입은 하얀 치마는 석목이 어떤 행성을 지나칠 때 산 것이었는데 모양새가 예쁘고 정교하여 몸매와 조화를 잘 이룰 것 같아서 산 옷이었다.

연나는 아직 상처가 회복하지 않아서 기운이 계속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래서 연약한 느낌이 더해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도련님, 무슨 일입니까?”

화려한 옷의 청년 옆에 서있던 뚱뚱한 청년이 멈칫하며 물었다.

뚱뚱한 청년도 천위 경지였는데, 눈은 금붕어 같았고, 음침하면서 옹졸한 분위기를 풍겼다. 뚱뚱한 청년은 화려한 옷은 입은 도련님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서 쳐다보더니,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청년은 뚱뚱한 청년과 마주 보더니, 눈알을 한번 굴렸다.

그리고 뚱뚱한 청년은 석목을 바라보았고, 석목이 천위 초기 경지라는 걸 확인하고는 씰쭉거렸다.

이어서 도련님 귀에 대고서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더니, 큰 보폭으로 석목과 연나에게 걸어왔다.

화려한 옷을 입은 도련님 옆에 서있던 또 다른 사람은 얼굴이 각진 중년 남자였는데, 석목과 연나를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이 각진 중년은 수련 경지가 천위 중기였다.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 중 수련 경지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지만, 화려한 옷을 입은 청년으로부터 한 발자국 뒤에 서있는 모습을 보니, 부하 같았다.

얼굴이 각진 중년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았다.

뚱뚱한 청년은 연나 뒤로 다가갔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서 몸을 연나와 부딪치려 했다.

“퍽!”

뚱뚱한 청년은 안색이 살짝 변했고, 마치 딱딱한 벽에 부딪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어 엄청난 힘이 몰려와서 뒤로 밀려났고, 몸통이 비틀거려서 땅에 넘어질 뻔했다.

뚱뚱한 청년은 고개를 들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느새 석목이 나타나서 연나 뒤에 서있었고, 조금 전 뚱뚱한 청년은 석목의 몸에 부딪쳤던 것이었다.

“꺼져!”

석목이 차가운 눈빛을 비쳤다. 하지만 석목은 소리를 내지 않았고, 신식으로 전음을 보냈다.

그는 연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뚱뚱한 청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그는 천위인데다가 또 명옥성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문에서 한자리를 했다. 가문의 힘을 빌어 교만하게 제멋대로 날뛰는 버릇이 몸에 배었으니, 어찌 이런 호통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네 이놈, 내가 갈 길 가고 있는데, 일부러 와서 부딪치다니, 살고 싶지 않은 게냐?”

뚱뚱한 청년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매우 커서 성벽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이곳을 바라보더니 사람들의 눈은 다시 화려한 옷을 입은 도련님에게 향했고, 전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석목을 바라보는 몇몇 사람들은 눈에 동정을 하는 기색이 어렸다.

연나는 가까이에 서 있었던 터라 그 소리를 듣고서 몸을 살짝 떨더니, 고개를 돌려서 석목과 뚱뚱한 청년을 바라보았고, 아름다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석목은 굳은 표정으로 실눈을 떴고, 차가운 빛이 얼굴에서 스쳐 지났다.

“가자!”

연나는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가볍게 말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석목은 뚱뚱한 청년을 노려보고는 곧바로 연나를 따라가려고 했다.

“거기 서!”

뚱뚱한 청년이 소리를 지르더니,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회색빛이 손에서 나오며 두 사람에게 드리웠고, 연나는 그 속에 갇혀버렸다.

석목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눈에서 사나운 빛을 뿜으며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어서 깔끔한 소리가 한번 울렸고, 뚱뚱한 남자는 몸이 매우 빠른 속도로 튕겨나더니,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굴 반쪽이 퉁퉁 부어올랐고, 그 위에 손바닥 자국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입에서는 빨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뚱뚱한 남자는 허우적거리며 일어서더니, 멍한 기색을 얼굴에 드러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성벽 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과 화려한 옷을 입은 도련님 모두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석목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갔다.

“거기 서!”

이번에 입을 연 사람은 화려한 옷을 입은 도련님이었다. 굳어버린 얼굴에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신분이 고귀한 도련님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괴롭힐 줄만 알았지, 망신을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조금 전에 석목이 뚱뚱한 남자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지만, 도련님이 보기에는 자신의 얼굴을 때린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도련님은 석목과 연나 앞을 가로막았다.

네모난 중년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도련님을 막으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석목과 연나는 발길을 멈추었다.

“내 사람을 치고도 그냥 가려고? 나, 팽형(彭炯)이야!”

화려한 옷의 청년이 어두운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연나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화려한 옷의 청년을 한번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먼 곳으로 돌렸다.

석목이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서 연나 앞에 섰다. 그리고 팽형이라는 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꺼져!”

팽형은 멈칫하더니, 이내 화가 아주 치밀어 올라서 오히려 크게 웃었다.

“그래, 좋아! 살기 싫은 것 같으니, 여기 딱 서있어.”

도련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세 치 정도 되는 칼이 손에 나타났다.

찬란한 칼의 기운이 흘러나왔고, 마치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듯 주변으로 흩어지며 순식간에 몇 장 안에 드리웠다. 등급이 높은 법보였다.

팽형이 손으로 법결을 쓰며 하얀 칼을 강하게 내리쳤다.

칼 빛이 줄줄이 석목을 향해 날아갔고, 하얀 연꽃처럼 뭉치더니, 연꽃잎마다 칼날로 변하여서 맹렬하고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

석목은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지만, 별다른 법결을 쓰지 않았다. 석목은 손에서 파란빛이 크게 번졌고, 금색 비늘을 한층 두른 주먹 그림자가 빛 속에서 나타났다.

석목이 팔을 흔들자, 주먹이 연꽃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빛이 크게 번졌고, 그 속에 파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연꽃 칼날과 파란빛 속 소용돌이가 부딪쳤고, 칼의 기운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팽형은 안색이 변했다.

이때 석목의 주먹이 파란빛 속에서 튀어나와서 무겁게 칼 위로 떨어졌다.

팽형은 몸이 크게 흔들렸고, 하얀 칼이 손에서 날아갔다. 몸통은 뒤로 밀려났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주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안색이 전부 변했고,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에 경악과 기뻐하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석목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고, 오른쪽 손을 들어 올렸다. 금색 비늘이 찢어져 있었는데, 조금 전에 부딪힌 칼날 때문에 찢긴 것이었다.

석목이 가볍게 소리를 내자, 손을 감싸고 있던 비늘이 다시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팽형 옆에 서있던 얼굴이 각진 중년이 팽형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온통 경계를 하는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대단한 힘이군요. 귀하께선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얼굴이 각진 중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연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가자”라고 말하고는 앞을 향해 걸어갔다.

얼굴이 각진 중년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눈에서 기이한 빛이 스쳤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팽형은 상처를 입었지만, 심각하지는 않았다. 이어 팽형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다시 석목을 쫓아가려고 했으나 중년 남자가 말렸다.

석목과 연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고, 이내 사람들 속에서 사라졌다.

주변에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흩어졌다. 성벽 위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도련님인 팽형 일행만 남았다.

“원성(元成), 왜 나를 말리는 거야? 날 이렇게까지 망신을 시켰는데, 그냥 참으라고?”

팽형이 분노하며 말했다.

“도련님, 저 사람은 실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 셋이 힘을 합쳐도, 저 자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겁니다. 우선 좀 참으시고,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시 체면을 찾도록 합시다.”

원성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저 자의 수련 경지는 천위 초기 밖에 안 되는데, 실력이 강하다니!”

팽형이 화를 내며 말했다.

이때 뚱뚱한 청년이 걸어왔다. 손에는 조금 전에 날아간 칼을 쥐고 있었고, 칼을 다시 팽형에게 돌려주며 원성을 바라보았다.

원성이 손을 흔들자, 앞에 푸른색 작은 짐승이 하나 나타났다. 주먹만 한 크기였는데, 몸통은 뚱뚱했고 사지가 짧았지만, 코는 또 매우 길었다. 짐승은 몸을 웅크린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아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이 녀석은 제가 키우는 ‘영서(靈犀)’입니다. 수련을 한 무인의 실력을 파악하는데 매우 능통하지요. 그 청년을 아주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은 성계 존재와 마주했을 때만 나타나지요.”

원성이 말했다.

팽형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련님, 저 두 사람은 아마 성계 전송법진에서 나온 사람들일 겁니다. 아마 바로 이곳을 바로 뜨지는 않을 것 같아요. 보복하고 싶으시다면, 우선 사람을 보내서 지켜보게 하고, 돌아가서 학(郝) 어르신께 말씀드립시다. 어르신의 수련 경지라면, 저 자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사람을 죽이기만 하면, 하얀 옷을 입은 여인도……”

원성이 말했다.

“맞아, 원 형 말이 맞아. 임호(林虎), 사람을 보내서 저 사람들 종적을 지켜봐. 원 형, 우선 집으로 돌아가자.”

팽형이 흥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임호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다시 사람들을 데리고 먼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원성은 팽형 뒤를 따라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눈에서 기이한 빛이 스쳤다.

‘영서’는 석목에게서 강력한 실력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석목이 지니고 있는 차가운 힘도 느꼈다. 원성이 수련을 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기운이었다. 그리하여 원성은 팽형을 설득하여 석목을 죽이려고 했다.

석목을 죽이면, 다시 수를 써서 그 몸속에 있는 차가운 기운을 취할 작정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원성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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