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화. 머물다
석목과 연나는 빠르게 성벽 밑으로 내려갔고, 성시 안 거리에서 서성거렸다.
“연나, 이 명옥성은 천지영기가 풍성한 편이야. 네 상처가 아직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니, 이곳에서 조금 더 머물자. 요수를 사냥해서 기력 보충도 하고.”
석목이 연나를 향해 말했다.
“조금 전에 부딪친 사람은 이 행성에서 꽤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거야.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 아마 이미 사람을 불러서 널 찾아내라고 했을지도 몰라.”
연나가 석목에게 말했다.
“저런 도련님 행세나 하는 나부랭이들이 많이 오면 뭐해. 정말 주제 파악도 못하고 오게 되면, 내가 그 녀석들 어르신들을 대신해서 버릇을 좀 고쳐주지!”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연나는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자. 우선, 이 행성에 대해 알아보고, 다시 결정하자.”
석목은 말을 하며 돌아서서 길가에 있는 책을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연나는 복잡한 눈빛으로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따라서 들어갔다.
반 시진 뒤. 두 사람은 서점에서 걸어 나왔고, 석목은 손에 옥간을 하나 쥐고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석목은 가게에 있는 자료들을 뒤져가며, 명옥성에 관한 정보를 대충 훑어보았다. 이 명옥성엔 대륙이 단 하나만 있었고 대부분은 바다였다. 다시 말해, 이 행성에서 요수를 잡으려면, 바다로 나가 해수를 사냥해야만 했다.
해수는 육지에 사는 요수들과 달리 고정된 자리에 머물지 않아서 정확한 서식지를 알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지도 옥간에 천위 해수들이 사는 서식지가 표시되어 있긴 했으나, 정확하지는 않을 터였다.
이때 연나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고, 조금 전보다 더욱 강력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연나, 왜 그래?”
석목은 연나의 기운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는 물었다.
“괜찮아.”
연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위치를 확인했으니, 그럼 빨리 성 밖으로 나가서 바다로 가자.”
석목은 연나가 대답하기 전에, 허리를 감싸안고 파란빛을 크게 뿜으며 바다로 날아갔다.
두 사람이 이제 막 날아갔을 때, 거리의 어두운 곳에서 파란 피풍의를 입은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내가 계속 따라갈 테니, 빨리 가서 소주님께 알려. 녀석들이 도망을 치려고 한다고 전해.”
파란 피풍의를 입은 사람이 말을 했고, 곧바로 석목과 연나를 따라갔다.
다른 한 사람은 성 안쪽으로 날아갔다.
해란성은 바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어 두 사람은 빠르게 바다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석목은 주변을 한번 둘러본 후, 영우비차를 불러서 연나와 함께 그 위에 올라탔다.
이어서 석목은 고개를 돌려서 뒤쪽을 한번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어 법결을 펼쳤다. 영우비차는 빛이 크게 번졌고, 매우 빠른 푸른빛으로 변해서 바다 안쪽으로 날아갔다.
뒤쪽 십 리 밖 바다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났고, 조금 전에 따라오던 파란 피풍의를 입은 사람이었다.
영우비차가 빠르게 하늘을 날았고, 눈 깜박할 사이에 피풍의를 입은 사람 시선 끝에서 사라졌다. 피풍의를 입은 사람은 한숨을 내뱉었다.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 * *
영우비차는 바다 깊은 곳으로 향했고, 석목은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다시 옥간에 신식을 불어 넣었다.
잠시 후에 석목이 법결을 펼치자, 영우비차가 방향을 틀어서 왼쪽으로 날아갔다.
반나절 뒤에 짙은 안개가 드리운 섬이 눈앞에 나타났다.
석목은 눈을 반짝였고, 법결을 시전하자 영우비차가 섬 위 허공에 떠있었다. 석목의 신식은 갑자기 넓게 퍼져서 주변 수십 리에 드리웠고, 바다 깊은곳까지 탐색을 했다.
잠시 후에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어렸다.
“천위 해수도 있군. 운이 좋은 날이야. 연나,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내가 요수의 혼을 가져올게.”
석목은 연나를 향해 말을 하고는 파란빛을 크게 뿜으며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영우비차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연나가 눈을 뜨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연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일각이 지났다.
섬 근처 조용한 바다 위에 갑자기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커다란 파도들이 말려오며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르릉!
파도가 뒤집혔고, 파란빛을 감싸고 있는 석목이 날아서 나왔다.
이어서 쿵 소리와 함께 바다 위에 붉은 요수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 요수는 몸이 집만큼 컸으며, 커다란 가재 같았는데, 커다란 집게에서 차가운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머리에는 붉은 눈알이 여섯 개나 자라나 있었고, 지금 막 석목을 덮치려고 했다.
가재 해수는 실력이 이미 천위 중기 정상에 도달해 있었다.
바다 위에서 파도가 휘몰아쳤고, ‘칙칙’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가재 해수는 눈알에 붉은빛이 크게 번졌는데, 여섯개의 눈에서 빛들이 뿜어 나와 석목에게 향했다. 이어 가재는 집게 두 개를 마구 흔들더니, 집게 그림자가 산처럼 크게 나타났고, 가재는 석목을 사이에 두고 두 집게로 집으려고 했다. 이때 허공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란빛을 두르고 있는 석목이 두 손을 흔들자, 몸 앞에 빛이 반짝이며 깃발이 하나 나타났다. 남정번이었다.
반년 동안 석목은 한쪽에서 남정번과 청명검을 제련했고, 또 한쪽으로는 손상된 두 법보의 영성을 회복하여 거의 다 복구했다. 그리하여 발휘할 수 있는 위력도 전보다 훨씬 강력했다.
남정번에서 파란빛이 크게 번졌고, 순식간에 몇 배나 불어났다. 빛이 드리우자, 바닷물이 곧바로 역류하며 두터운 물벽을 만들었다.
가재가 뿜어낸 붉은 빛다발이 벽에 부딪쳤고, 이내 터져버렸다. 이 물벽은 두께가 두세 장이나 되었고, 조금 부서지긴 했지만 붉은빛을 잘 막아냈다.
가재가 다시 울부짖으며, 집개를 미친 듯이 흔들어서 물벽을 공격했다.
쿵!
물벽 겉에 파란빛이 흐르더니, 결국 터져버렸다.
이어서 가재가 다시 공격을 하려고 할때, 가재 눈앞에서 파란빛이 번쩍이더니, 허공에 수많은 얼음꽃이 나타나서 가재에게 향했다. 얼음꽃은 주변 십 장 정도에 드리우고 있었는데, 아주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가재는 커다란 얼음에 둘러싸였고, 머리 반쪽만 얼음 위로 내밀고 있었다.
가재가 깜짝 놀라서 붉은빛을 크게 뿜으며 벗어나려고 허우적대자 파란 얼음은 계속해서 흔들렸고 균열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때 푸른색 검빛이 번쩍이며, 붉은 가재 머리 옆으로 날아왔다.
검빛은 가재의 머리를 향해 스쳐 지났고, 커다란 몸통이 굳어버렸다. 머리 반쪽이 떨어졌고, 푸른 피가 머리통에서 뿜어 나오고 있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서 두 갈래 법결을 펼쳐 남정번과 청명검을 거두어들였다.
석목은 손에 든 두 법보를 바라보자, 매우 흡족했다.
이 천위 중기 요수는 방어력이 유난히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실력을 바다에서 가장 강하게 발휘할 수 있었기에 석목은 요수를 해수면 위로 끌어 올렸고, 또 법보의 힘을 빌려서야 간신히 요수를 죽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였다.
석목이 요수 앞으로 날아가서 손을 흔들더니 파란빛이 튕겨 나와 커다란 가재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붉은 혼을 감싼 채로 다시 거두어들였다. 이어 석목은 가재 머리를 한 번 더 갈라놓았고, 요괴 구슬을 꺼내고 나서야 다시 영우비차에 올라탔다.
“우선, 이 혼부터 먹어.”
석목은 혼을 꺼내서 연나에 건넸다.
연나는 망설이지 않고서 입을 벌려 가재의 혼을 삼켜버렸다. 순간 연나는 몸에 하얀빛이 한 층 나타났고, 불안하던 기운이 많이 차분해졌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마음이 놓인 듯이 한숨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일각이 지나서야 연나는 천천히 눈을 떴고, 안색이 많이 밝아졌다. 하지만 석목은 여전히 연나의 기운이 불안한 걸 느낄 수 있었다.
“연나, 너무 다급하게 길을 나서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 이 명옥성은 이진종이 다스리는 행성 중 하나라, 적잖은 천위 요수들이 살고 있어. 우리는 여기서 상처를 모두 회복하고서 다시 길을 떠나자.”
석목이 말했다.
“종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연나가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종문에 급하게 돌아갈 이유는 없어.”
석목이 말했다.
연나는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이었다.
* * *
해란성 밖, 몇 장 정도 되는 파란 용 모양 비차가 허공에 떠있었다.
그 위에 일고여덟 명이 서있었는데, 바로 화려한 옷을 입은 청년 일행이었다. 뚱뚱한 남자와 얼굴이 각진 중년 남자도 그곳에 있었고, 낯선 청년들도 몇몇 더 있었다.
모두 키는 훤칠했고, 몸매는 매우 말랐으며, 피부는 노랗고, 눈썹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다들 매우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공경을 하는 태도로 팽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놓쳐버리다니. 이런 못난 놈!”
팽형이 파란 옷을 입은 남자를 향해 크게 화를 냈다. 그 남자는 바로 석목을 바다까지 쫓아왔다가 놓쳐버린 사람이었다.
“소주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놈은 푸른색 비차를 타고 있었는데, 속도가 매우 빨라 잠깐 사이에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제가 따라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파란 옷을 입은 남자는 팽형 앞에 무릎을 꿇었고, 매우 황공하다는 태도로 말했다.
“소주님, 그놈은 수련 경지가 매우 높아서 이런 척후들이 따라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닙니다.”
원성이 말했다.
“그놈이 바닷속으로 날아갔어. 이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그 놈을 찾겠나?”
팽형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원성이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 일은 제가 이미 예측했습니다.”
이어서 원성은 푸른 옥간을 하나 꺼내 들고 말했다.
“척후가 한 보고를 들어보니, 그 두 사람은 성 안 상점들에서 물건을 좀 샀다고 합니다. 자세히 물어보니, 두 사람은 명옥성의 지도 옥간을 구했고, 천위 요수들이 머무는 종적을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지도 옥간을 구했습니다. 이 지도를 따라서 찾는다면, 꼭 그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팽형이 다시 좋아하며 말했다.
“좋아, 역시 원 형은 꼼꼼하다니까.”
원성은 가볍게 웃으며 옥간을 팽형에게 건네었다.
“좋아, 그럼 우리는 이 위에 표시된 곳을 하나씩 뒤지는 거야. 꼭 찾아내야 해.”
팽형이 신식을 옥간으로 보내더니, 이내 거두어들이며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 두 사람을 찾으려면, 학 형이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팽형은 눈썹이 위로 뻗은 남자를 향해 포권을 쥐며 말했다.
“그럼.”
학 형이라는 남자는 담담하게 한마디 답했다.
팽형이 손으로 법결을 펼치자, 용 모양 비차에 빛이 크게 번졌다. 그리고 파란 환영으로 변해서 날아갔는데, 영우비차와 속도가 비슷했다.
* * *
사흘 후.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고, 파도가 하늘 높이 솟구치며 하나, 하나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파도 속에서 석목은 문어 해수와 싸우고 있었다.
문어 해수는 몸통이 삼십 장 정도나 되어 보였고, 여덟 촉수가 위아래로 꿀렁이고 있었으며, 바다 위에 소용돌이와 파도가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문어 해수와 비교했을 때, 석목은 몸집이 매우 작아 보였다. 하지만 석목은 마치 한 줄기 번개처럼 문어 해수 주변에서 여기저기 번쩍이며 나타났다. 석목이 나타날 때마다 문어 해수는 몸에 각각 크기가 다른 상처가 생겨났다. 그로 인해 문어 해수는 잔뜩 화가 났지만, 석목을 공격할 수 없었다.
잠시 후에 허공에서 날카로운 검 소리가 울려 퍼졌고, 석목이 움직이자 푸른색 커다란 검이 아래를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문어는 몸이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문어는 검이 날아오자, 촉수 다섯 개를 위로 들어서 머리를 보호했다. 그 위에 검은색 빛이 한 층 나타났다.
푸른 검이 떨어지자, 몇 줄기 촉수가 힘없이 끊어져 버렸고, 빛이 반짝이더니 계속 날아가서 문어 해수의 머리를 두 쪽으로 갈라버렸다.
문어 해수는 커다란 몸집을 두어 번 펄떡이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한 손을 흔들어서 청명검을 거두어들였고, 다시 내려와서 매우 익숙하게 문어 해수의 혼과 요괴 구슬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근처에 있는 영우비차에 올라탔다.
석목은 싸움이 끝나자, 얼굴에 땀자국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