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화. 원성의 혼
풍덩.
바다 위에서 물보라가 일었고, 두 사람이 날아올라 왔다.
석목이 이제 막 영우비차를 부르려 할 때, 먼 곳에서 파란빛이 빠르게 날아와서 단숨에 가까이 다가왔다.
빛이 반짝이더니, 용 모양 비차가 나타났다.
“하하, 며칠이나 찾았는데, 여기에 들어박혀있었군!”
팽형은 석목과 연나를 보더니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얼굴에 기쁨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팽형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날아올라서 석목과 연나를 둘러쌌다.
“아, 너희구나. 왜? 지난번에 혼쭐을 내줬는데, 부족해서 죽으러 온 건가?”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학 형, 저놈을 죽여주세요. 다만 혼은 남겨주셔야 합니다.”
팽형은 소리를 지른 후, 고개를 돌려서 옆에 서있는 눈썹이 위로 올라간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팽형이 한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서 연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남자는 천위 정상인 사람이라, 당연히 연나가 내뿜는 성계에 가까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학 형?”
팽형이 의아한 듯 다시 남자를 불렀다.
그리고 팽형은 눈썹 끝이 위로 향한 남자가 연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학 형. 혹시 저 미인이 마음에 드시나요? 역시 영웅은 보는 눈이 비슷하다더니. 저 여인은 정말 최고입니다. 나중에 함께 즐기는 건 어떻습니까?”
팽형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연나는 얼굴에 차가운 서리가 한 층 어렸다. 연나가 실눈을 뜨자, 차가운 빛이 한 줄기 뿜어 나왔고 몸에서 은빛이 반짝였다.
눈썹이 올라간 남자는 안색이 굳더니, 곧바로 비차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빛이 허공에서 반짝였고, 하얀 창이 나타나서 곧바로 팽형의 머리를 찔렀다.
펑!
팽형은 머리가 터져버렸다.
하얀 창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날아올라서 ‘쿵’하는 소리를 내며 용 모양 비차를 뚫어버렸다.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연나가 비차 위에 나타났다. 연나가 손을 흔들자, 하얀 창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고, 다시 손가락으로 들어갔다.
“소주님!”
얼굴이 각진 원성이 놀라서 소스라치며 소리를 질렀고, 연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팽형은 머리가 터져버렸고, 몸통은 머리 없는 시체로 변하여 허공에서 두어 번 흔들리더니, 풍덩 바다 속으로 빠졌다.
용 모양 비차도 구멍이 뚫려서 아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연나는 눈을 돌려서 멀리 있던 눈썹 끝이 올라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우님, 오해십니다. 저는 도우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추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전부 이 팽……”
연나가 남자를 노려보자, 남자는 깜짝 놀라서 다급하게 해명을 했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얀빛이 반짝이며, 연나는 모습을 감췄다.
이어서 남자의 등 뒤에서 빛이 반짝였고, 창이 빛 속에서 튀어나와 눈썹 끝이 올라간 남자의 심장으로 향했다.
남자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경지가 천위 정상이라 일촉즉발인 순간에 큰소리를 질렀고, 몸에서 일곱 빛깔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달걀 모양 빛의 막을 세 층이나 감쌌다.
퍽!, 퍽!, 퍽!
하얀 창이 막 세 겹을 뚫었고, 창끝이 옷가지에 붙었다.
연나는 순식간에 막 세 층을 뚫어버렸지만, 막은 창의 속도를 늦췄다.
창끝이 몸을 찌르려는 순간, 남자가 갑자기 돌아섰다. 남자는 손에 보라색 칼을 한 자루 들고 있었는데, 엄청난 번개가 그 위에서 튀기고 있었다. 칼이 창끝을 갈랐다.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빛이 순식간에 터져버렸고, 남자는 몸통이 날아가더니, 뒤로 한참을 밀려나서야 간신히 멈췄다. 남자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입에서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창을 막아내긴 했지만, 날카로운 기운 때문에 심장과 폐를 다쳤다.
남자가 간신히 멈춰 섰을 때, 하얀빛을 반짝이며 연나가 남자의 미간으로 향했고, 속도는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남자의 눈에 절망의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남자는 미친 듯 소리를 질렀고, 몸에서 수많은 일곱 빛깔 번개가 번쩍였다.
남자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없었다.
석목은 먼 곳에서 연나와 눈썹이 올라간 남자가 싸우는 광경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눈길을 거두어 주변에 서있는 얼굴이 각진 원성과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우리를 죽이려고 쫓아온 거지? 그럼 어쩔 수 없지 다 죽어버려야겠군!”
석목은 담담하게 말하며 몸에 파란빛이 크게 번졌고, 주변 수십 장 안에 빛이 드리웠다.
하늘을 찌르는 차가운 기운이 파란빛 속에서 흘러나왔다. 여긴 바다 위라 물의 원소가 무궁무진했다. 파란빛이 드리운 사람들 몸에 하얀 얼음이 뭉쳤고, 얼음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
주변 몇몇 사람들은 그제야 무엇인가 느낀 듯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각자 빛을 뿜어서 몸을 감싸는 얼음을 깨버리려 했다.
하지만 석목은 오른쪽 팔로 음의 힘을 조금 사용하여 빛 속에 섞었다. 따라서 하얀 얼음은 매우 견고했다. 사람들 중 원성만 몸을 둘러싼 얼음을 깨 버렸고, 파란빛이 드리운 범위를 벗어났다.
석목이 콧방귀를 뀌며 한 손을 흔들었다. 푸른색 검빛이 손에서 튀어나와 번개처럼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여기저기서 핏빛이 터졌다!
하얀 얼음에 갇힌 사람들은 머리가 전부 하늘 위로 날아갔고, 깔끔하게 단칼에 잘렸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어서 짚자, 푸른색 검 겉면에 빛이 크게 번지더니, 쉭 소리와 함께 원성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원성은 이미 백 장 정도 날아서 도망을 치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검빛이 점점 강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갑자기 돌아서서 큰소리를 지르며 회색 거울을 하나 꺼냈다. 거울은 빙글빙글 돌며 촘촘한 회색 빛줄기를 뿜어내었고, 회색 망을 만들어 검빛에 드리웠다.
회색 검빛에서 음침하고 차가운 기운이 풍겼다. 회색빛이 파고들자 청명검이 만들어낸 푸른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심지어 검에서도 윙윙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두 손으로 여러 갈래 법결을 만들어냈고, 청명검에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단번에 회색 빛다발을 뚫어버렸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에 적힌 글자들이 줄줄이 밝아졌고, 푸른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원성은 멀지 않은 곳에서 남자가 연나를 간신히 막아내는 걸 보았고,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원성이 입을 벌리자, 매우 순수한 진기가 흘러나오며 반짝이더니, 회색 거울 속으로 스며들었다.
거울엔 회색빛이 크게 번지더니, 빛줄기를 뿜어내서 단번에 몸을 감아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속도가 매우 빨라서 단번에 몇 리나 날아가 버렸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어 청명검을 거뒀다. 그리고 등 뒤에 붉은색과 푸른색 두 갈래 빛이 번지더니, 물과 불의 날개가 나타났다.
두 날개를 펼치자, 석목은 몸이 희미한 허상으로 변하였고, 원성을 향해 쫓아갔다. 속도는 원성보다 훨씬 빨랐고, 눈 깜박할 사이 원성이 만들어낸 회색빛이 뚜렷하게 보였다.
석목이 다시 손을 흔들어서 청명검을 꺼냈고, 청명검은 푸른빛을 크게 드러내며 원성의 머리로 향했다.
푸른 검빛이 떨어지는 동안, 검 전체에서 눈부신 화염이 나타났다. 십 장 길이 화염검이 한 자루 나타나서 불빛이 크게 번졌는데, 마치 타오르는 태양 같았다.
“대일검결! 십일승천!”
불빛이 반짝이자, 화염검이 순식간에 열 갈래로 나뉘었다. 칼마다 눈부신 검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마치 태양 열 개처럼 엄청난 기세로 원성에게 향했다.
엄청나게 뜨거운 온도가 순식간에 백 장 안을 덮었고 근처 허공이 활활 타올랐다. 바닷물이 들끓기 시작했고, 하얀 수증기들이 끓어올라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모든 게 희미해져 시야가 혼탁해졌다.
원성은 입술이 바짝 말랐고, 귀도 먹먹해졌으며, 눈앞에는 빛만 번지고 있었다. 원성은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입을 벌려 회색 거울에 피를 뿜어냈다.
그러자 회색빛이 크게 번지더니, 허상 수십 개로 변하여서 원성 주변에 나타났고, 원성을 둘러쌌다.
주변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넘쳤다.
이어서 거울은 회색 빛기둥을 하나씩 뿜어내서 열 자루 화염검을 막아냈다.
쿠아앙!
커다란 소리가 울려 백 리까지 퍼져나갔다. 허공도 그 소리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화염을 둘러싼 검의 기운과 회색빛이 주변으로 터져나갔고, 바다 위에는 파도가 끊임없이 부딪쳤다.
허공에서 사람 그림자가 운석처럼 떨어졌는데, 바로 원성이었다.
원성은 낭패를 본 표정으로 입에서 피를 마구 뿜어내고 있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거의 타버렸고,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원성은 바다 속으로 빠져버렸다.
이때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석목이 바다 위에 나타났다.
석목은 손에 검은빛을 반짝이며 여의빈철곤을 꺼냈다.
석목의 눈에서 한 줄기 빛이 반짝였고, 석목이 손을 흔들자, 여의빈철곤이 검은 그림자로 변해서 날아갔다. 속도는 매우 빨랐는데, 단번에 바다를 가로질러 원성을 쫓아갔다. 그리고 원성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가슴을 뚫고서 지나가 버렸다.
“유성간월!”
원성은 이미 중상을 입었고, 가슴까지 뚫려 버려서 살아갈 마지막 기회마저 빼앗겼다. 원성은 눈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원성은 머리에 회색빛이 반짝이더니, 어두운 빛이 하나 날아올라서 바다 깊은 곳으로 흘러갔고, 이내 사라져버렸다.
회색빛이 이제 막 날았을 때, 검은 곤봉이 날아와 원성의 머리를 터뜨려버렸다.
여의빈철곤에서 검은빛이 반짝였고, 원성이 몸에 지니고 있던 법기를 걸고서 위로 날아올랐다.
머리 없는 원성의 시체가 천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바다 위, 석목이 한 손을 흔들어 여의빈철곤과 원성의 법기를 거두어들였다.
이때 먼 곳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이 고개를 들어서 바라보자, 십 리 밖 상공에서 수백 장 정도로 촘촘한 번개 구름이 이어져 있었고, 굵은 보라색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번개막을 만들었다.
석목은 심안을 통해서 그 속에 희미하게 서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였다. 두 사람은 놀라운 속도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광경은 단 한순간만 지속되었고, 갑자기 모든 번개가 터져버렸다. 위쪽에 있던 번개 구름도 터져서 사라졌다.
일순간 천지가 보라색 번개로 가득했다.
하늘에서 흩날리는 번개 속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고,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이어 처참한 소리가 빛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눈썹을 올려 뜬 남자가 낸 목소리였다.
이어서 보라색 번개가 전부 사라졌고, 어여쁜 몸매가 드러났는데, 연나였다.
눈썹 끝이 올라간 남자는 완전히 사라져서 시체나 뼈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연나도 원기를 많이 소모한 것 같았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불안했다. 눈썹 끝이 올라간 남자가 쓰던 번개 공법은 결코 만만한 공법이 아니었다.
석목은 연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연나와 백 장 정도 떨어진 자리에 멈춘 석목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푸른빛을 바다 속으로 날려서 파란 반지를 하나 건졌다. 팽형이 쓰던 저장법기였다.
나머지 사람들이 저장한 물건들은 귀찮아서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석목은 파란 반지를 한 번 바라보았다. 반지 위 파란색 물고기 표시를 본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석목이 다시 몸을 번쩍이며 사라지더니, 연나 옆에 나타났다.
“괜찮아?”
석목이 연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일이 귀찮아졌지?”
연나가 물었다.
“우리가 죽인 사람들은 이 행성에서 꽤 권세가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
석목이 말했다.
“또 오면 전부 죽여 버릴 거야.”
연나가 차갑게 말했다.
“두려워할 건 아니지만, 일이 복잡해졌어. 내가 알기로 이 행성의 전송진법은 이 사람들 가족이 통제하고 있어. 우리는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해.”
석목이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연나는 막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석목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손을 흔들어 영우비차를 불렀다.
잠시 후에 푸른빛이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른빛은 사라지고 한참 지나자, 바다 위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회색빛이 한 덩이 나타났다. 빛 속에 작은 사람 모양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원성의 혼이었다.
작은 사람은 푸른빛이 멀어져가는 곳을 한번 바라보더니, 빠르게 해란성 방향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