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화. 다시 서문을 만나다
석목과 연나는 해란성에 돌아가지 않았고, 바로 서쪽으로 날아갔다. 하룻밤을 꼬박 날아서야 큰 성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태백성(太白城)이었다.
명옥성엔 전송진법이 총 두 곳 있었는데, 한 곳은 해란성이었고, 또 다른 곳이 바로 태백성이다.
태백성은 대륙의 가운데에 있었고, 산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성의 규모로만 봤을 때, 해란성보다 훨씬 작았지만, 태백성은 대륙에 자리한 또 다른 대국인 파사국(婆娑國)의 도성(都城)이 있는 성이라 사람들이 붐볐고, 매우 번화했다.
성의 북부에 하얀 탑이 하나 서있었고, 탑 꼭대기에 자리한 대전에는 방대한 기운을 풍기는 수련자들이 드나들었다. 그중 반 이상은 도포를 입은 인족이었다.
이곳이 바로 전송법진이 있는 곳이었다.
석목과 연나는 대전에 들어갈 때, 회색 천으로 만든 도포로 갈아입었고, 머리에 삿갓을 썼다. 연나는 얼굴에 얇은 면사포를 둘렀다.
석목은 주변을 한번 훑어보았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관사에게 전송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냈다. 그리고 연나와 대전 가운데 놓인 커다란 전송법진 속으로 들어갔다.
하얀빛이 반짝였고, 두 사람이 사라졌다.
* * *
해란성 북부 천 리 밖. 수십 리까지 화려한 정원이 즐비해 있었는데, 여긴 명옥성의 삼대 세가 중 하나인 팽씨 가문의 부저가 있는 곳이었다.
정원 깊은 곳에 있는 화려한 집 안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전 전체가 흔들리며 먼지가 흩날렸다.
대전 안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노인이 회색 수염을 기른 채 주변에 형태가 없는 기류를 감고 있었다. 노인은 번개를 번쩍이며 놀라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못난 놈들. 내 귀한 손자 형이를 혼마저 사라지게 만들다니. 널 살려두면 뭐하겠느냐!”
화려한 옷을 입은 노인은 손에 회색빛을 쥐고 있었다. 회색빛 속에 작은 사람이 황공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는데, 바로 원성의 혼이었다.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그 두 사람은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학 성주마저 두 사람에게 죽었습니다! 저도 어렵게 숨어서 혼을 남겨서 보고를 하러 온 것입니다. 어르신, 꼭 두 사람을 죽여서 소주님을 위해 복수를 해주십시오.”
원성의 혼이 울부짖으며 빌었다.
“말해.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생겼지?”
노인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회색빛을 감은 작은 원성은 다급하게 입으로 회색빛을 뱉어냈고, 거울 하나를 뽑았다. 거울 위에 석목과 연나의 모습이 나타났고, 원성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 이 두 사람은 우리 명옥성의 수련자 같지 않습니다. 두 사람에게 소주님께서 팽씨 집안사람이라고 말했으나, 끄떡도 하지 않고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어르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당치도 않는 말이다!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봤느냐?”
노인은 화가 나서 물었다.
“어…… 어르신, 둘은 매우 교활해서 해란성으로 돌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푸른 비차를 타고서 서쪽으로 향했는데, 아마 태백성으로 갔을 겁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서 돌아왔지만, 두 사람이 여전히 있는지 저도 잘……”
회색빛 속 작은 원성은 조심스레 말했다.
“어서 태백성의 전송법진을 닫으라고 지시해라! 어떤 대가라도 치를 테니, 어떻게 해서든 녀석들을 꼭 찾아내라!”
화려한 옷을 입힌 노인이 말했다.
“네!”
대전 입구 앞에 파란 피풍의를 입은 사람들이 다섯 명 나타났고, 명을 받자마자 곧바로 날아갔다.
잠시 후에 팽씨 가문사람들이 정원에서 튀어나와 사방팔방으로 향했다.
“날 따라와!”
화려한 옷은 입은 노인은 손에 작은 원성을 쥐고서 몸에 파란빛을 크게 드러냈다. 그리고 번쩍이며 대전에서 날더니,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또 다른 대전으로 날아갔다.
* * *
반각이 흐른 뒤, 태백성에 자리한 하얀 탑 꼭대기에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노인이 나타났다.
“팽산(彭山) 어르신, 인사드립니다!”
전송대전에는 몇몇 관사와 보초를 서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노인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포권을 쥐며 인사를 올렸다.
노인은 대전 가운데에 놓인 전송법진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이미 닫혀버린 진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전송법진을 이용한 사람들 중에 이 두 사람이 있었는가?”
노인이 손을 흔들자, 허공에 파란 빛덩어리가 나타났고, 그 속에 석목과 연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몇몇 관사들은 석목과 연나의 모습을 보더니, 망연자실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르신, 오늘 총 일흔여덟 명이 명옥성에서 나갔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장 앞에 서있던 관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뭐? 빨리 말해!”
노인은 성질을 부리며 말했다.
“반시진 전에 청모교(青茅教) 제자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전송법진을 이용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삿갓을 쓰고 있었고, 여자는 천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용모가 다른 것 같지만, 몸 생김새가 매우 비슷했습니다.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가장 앞에 있던 관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르신, 청모교 같이 작은 종파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 전송을 할까 말까 합니다. 아마 그 나쁜 녀석들이 맞을 것입니다.”
노인의 손에 있던 원성의 혼이 말했다.
“그래서 둘이 어디로 갔어?”
노인이 다시 물었고, 몸에서 놀라운 기운이 폭발했다.
“어르신, 극망성(極芒星)으로 갔습니다.”
가장 앞에 있던 관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관사는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노인이 깊은숨을 내뱉더니, 이내 기운을 회복하여 평온을 되찾았다.
“전송법진을 계속 닫아둘 필요는 없다. 해란성이든 이곳이든, 두 사람이 돌아오면 거침없이 죽이라고 지시해라!”
노인은 말을 한마디 남기고서 큰 보폭으로 대전으로 들어갔다.
* * *
대전에 자리한 한 비밀 석실 속, 노인은 전송법진 앞에 서있었다. 전송법진 속에 또 다른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의 허상이 서있었는데, 화려한 옷을 입은 노인과 얼굴이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은 한쪽 눈을 마치 다친 듯 눈가리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화가 가득 차있었다.
“어느 놈이 이렇게 간이 부었어! 우리 팽씨 가문의 후손을 죽이다니!”
외눈 노인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큰 형님. 바로 이 두 사람입니다. 이 남자는 변장술을 부릴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전송법진을 통해 극망성으로 갔습니다. 그곳 전송법진은 다시 명옥성으로 가는 게 아니라면, 성지가 있는 천은성으로 전송을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노인은 석목과 연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흥, 고작 변장술 하나 가지고! 내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다! 팽산, 사람들을 불러라. 극망성을 뒤져서 반드시 찾아내. 나머지 일은 나에게 맡기면 된다. 천은성으로 가게 되면, 두 사람을 내가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외눈 노인이 말을 한마디 하더니 사라져버렸다.
* * *
극망성은 이진성지와 가장 가까운 행성 중에 하나였다. 크기는 명옥성과 비슷했다.
극망성엔 대륙이 총 세 개 있는데, 매우 번화했다. 면적이 가장 큰 대륙은 중간에 있는 남주대륙(南周大陸)이었다.
동화성(東華城)은 남주대륙에서 가장 큰 성은 아니지만, 대륙에서 가장 번화한 성 중 하나였다. 교통 요지인데다가 오가는 상인들이 많아서 상점도 많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동화성은 극망성에서 가장 큰 세력인 ‘백운관(白雲觀)’이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동화성의 남쪽에 있는 번화한 거리 한쪽에 삼 층짜리 객잔이 한 채 있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창가에 앉아있었는데, 바로 연나와 석목이었다.
두 사람은 회색 도포를 벗어버리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석목은 ‘역골결’로 용모가 평범하고 피부가 검은 청년으로 변신했다. 연나는 여전히 면사포를 한 겹 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부유한 집안 출신인 평범한 사람들 같았다.
“동화성이 매우 번화하다는 걸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와보니 정말 명불허전이군.”
석목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맞은편에선 연나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나는 손으로 면사포 한쪽을 살짝 거뒀고, 고개를 숙여서 품 안에 든 물건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하는 말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석목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두 사람은 반나절 전에 동화성에 도착했다. 석목은 동화성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전송법진을 찾아서 이진종이 다스리는 천은성으로 가서 다시 청란성지에 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성 안에 팽씨 가문의 제자들이 전송법진이 있는 대전을 지키고 있었다. 전부 하얀 도포를 입은 백운관의 제자들이었다.
석목은 변장하고 들어가려다가 생각을 바꿔서 우선 숨어있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연나를 데리고 성을 한 바퀴 돌며 지리나 익히려던 참에, 이 객잔을 발견한 것이었다.
“여긴 술안주가 꽤 괜찮네?”
연나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허허, 너, 점점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성계 강자가 아니라면, 절대 네 몸에서 풍기는 두 갈래 기운을 느낄 수 없을 거야.”
석목은 탁자 위에 놓인 술 주전자를 들며, 연나의 잔을 가득 채웠다.
“얼떨결에 네가 날 도와준 거야.”
연나가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자세히 말해봐.”
석목이 말했다.
연나는 입을 오므렸고, 얼굴에 매우 옅은 웃음이 스쳤다. 이어서 눈에는 적막이 스쳐 지났다.
석목은 멈칫했다. 연나가 예전 보다 훨씬 활발해진 것 같았다. 표정도 예전처럼 차갑지만은 않았다.
“내가 다시 태어나려면, 성배를 응결시켜서 왕생지도(往生之道)를 다시 수련해야 해. 내가 만약 계속 사령계에 있었더라면, 온종일 사령들과 함께 지냈을 거고, 절대 성공할 수 없었을 거야.”
연나가 말했다.
“그렇군. 그동안 사령계로 돌아갈 수 없었는데, 오히려 이승에서 무엇인가 깨달은 건가?”
석목이 알듯 말듯 한 표정으로 물었다.
연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않았고, 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석목은 연나를 방해하지 않고서 혼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한 시진이나 흘렀지만, 연나는 일어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심심해진 석목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음!”
안색이 변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탁자가 흔들렸다. 석목은 가볍게 소리를 내더니, 아래에 있는 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연나의 아름다운 눈빛이 반짝였고, 석목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석목의 눈길이 향하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연나는 눈이 굳어버렸다.
길가에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복색을 보니 이진종의 제자들 같았다.
가장 앞에 서있는 사람은 어린 소녀였는데, 피부가 눈처럼 하얗고 머리카락이 길게 드리워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소녀에게서 옅은 눈의 기운이 풍겼는데, 마치 눈 속에 핀 연꽃 같았다.
석목의 눈에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 그 소녀는 다름 아닌 천음차녀, 서문설이었다.
석목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연모했지만, 결국 천우성에서 내리던 빗속에서 헤어졌고, 승선의 길을 걷게 된 여인이었다.
헤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여기서 만났다.
석목은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왔고, 오래전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났다.
서문설은 용모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청순함은 사라졌고, 똑 부러지는 느낌이 더해졌다. 서문설은 이미 천위에 도달했고, 석목과 같은 천위 초기 정도 같아보였다.
서문설 옆에 키가 훤칠한 청년이 서문설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이목구비는 잘생겼으나 얼굴에 오만함이 묻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