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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20화 (520/916)

520화. 백운관에서 격전을 치르다 (1)

서문설을 바라보는 청년은 눈에 열정이 가득 어렸지만, 서문설은 청년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서문설 일행은 길가에서 서성이지 않고서 곧바로 먼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인파 속에서 사라졌다.

석목이 멈칫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 여자, 아는 사람이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연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음, 서문설이라는 여인이야. 나처럼 남해성에서 왔어. 나와…… 익숙한 사이라고 할 수 있지. 그 해에 통천선교에서 주최하는 승선 대전에서 승리했고, 남해성의 전송법진을 통해 떠난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석목이 말했다.

“아, 옛 친구……”

연나가 느릿하게 말했다.

석목의 가슴이 두근거렸고, 입을 벌려 무엇인가 해명을 하려 했지만, 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옛 친구인데 왜 인사 안했어?”

연나가 물었다.

석목은 침묵을 지켰다. 그때 있었던 일을 연나에 말하기 불편했다.

“가자.”

연나가 벌떡 일어서더니,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석목은 다급하게 계산을 했고, 뒤를 따라 내려갔다.

객잔에서 내려온 연나는 곧바로 서문설이 향한 방향으로 빠르게 쫓아갔다.

석목은 복잡한 눈빛을 내비치며 뒤를 따라갔다.

* * *

반시진 후, 동화성 서쪽 성문 앞, 서문설 일행이 서있었다.

“서문 사매, 오랜만에 동화성에 왔는데, 이렇게 다급하게 돌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오늘 밤 천도맹회(天道盟會)가 동성에서 경매를 한차례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중에 귀중한 보물들이 몇 개 사매에게 어울릴 것 같은데, 우리 하루 더 머뭅시다. 제가 그 보물들을 사매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키가 훤칠한 청년이 서문설 옆으로 다가가서 아부하듯 말했다.

“진 사형께서 품으신 좋은 뜻은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이번 임무는 종문에서 직접 파견을 보낸 일입니다. 중요한 일이니 임무부터 수행합시다. 만약 늦어서 그 사람들이 도망이라도 친다면, 진 사형도 사존님께 드릴 말이 없을 겁니다.”

서문설이 담담하게 말했다. 말투가 조금 차가웠다.

“사매가 한 말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선 임무를 마치고, 다시 사매와 함께 제대로 돌아보겠습니다.”

진 씨 청년은 안색이 조금 변하였고, 마른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서문설은 청년을 신경 쓰지 않았고, 오색비단을 불러서 올라타고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진 씨 청년은 아랫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지시를 했고, 사람들이 각각 비차를 불러서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사람들이 떠나자, 성문 근처에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연나와 석목이었다.

“따라가자.”

연나가 말했다.

“우리가 왜 따라가?”

석목이 이상한 듯이 물었다.

“네 옛 친구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흐르고 있어.”

연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석목은 멈칫하더니 멀어져가는 빛을 바라보았다. 눈에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

연나가 몸에 빛을 반짝이며 날아오르려고 할 때, 석목이 갑자기 연나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연나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우선 이것부터 입어.”

석목은 손을 흔들어 푸른색 피풍의를 꺼내서 연나에 건네었다.

연나는 잠깐 망설이더니 피풍의를 받았다.

“옷도 갈아입어야 해.”

석목은 연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그리고 저장 반지에서 회색 피풍의와 전모를 하나 꺼내서 연나에게 건네었다.

“피풍의부터 두르고 옷이랑 모자도 바꿔. 그럼 보통 시종들과 다름이 없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시종?”

연나는 석목을 째려보며 입으로 가볍게 두 글자를 내뱉었다.

“사람들이 다 네 얼굴만 쳐다보잖아. 이렇게 입으면 번거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연나 주변에 검은 안개 한 덩어리가 나타나서 몸에 드리웠다.

잠시 후 검은 안개가 사라졌고 회색 옷을 입고 전모를 쓴 젊은 시종이 나타났다.

석목은 멍했다. 연나가 무슨 수단을 부렸는지 하얗던 피부가 검게 변했고 이마에 그린 연꽃 모양도 푸른색 태반으로 바뀌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또 뭐가 문제야?”

연나는 멍한 석목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목소리까지 변했군. 좋아.”

석목이 머리를 끄덕였다.

“여기서 꾸물대지 말고 빨리 가자.”

연나가 말했다.

“잠깐만.”

석목이 말을 하며 몸에 파란빛을 밝혔다. 허공에 순간 미세한 파동이 일렁였고 석목의 몸에 파란빛이 드리우더니 녹아내리듯 줄어들었다.

피부는 까매졌고 콧대는 내려앉았으며 이마도 튀어나왔고 미간에 주름까지 생겨서 조금 추한 모습으로 변했다.

“됐다. 가자.”

석목은 목소리도 예전과 달리 조금 더 거칠어졌다.

연나는 인상이 거칠어진 석목을 보며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석목도 싱글벙글 웃으며 영우비차를 불렀다. 두 사람은 영우비차에 올라타서 서문설 일행이 떠난 방향으로 쫓아갔다.

* * *

두 사람은 동화성을 떠나서 계속해서 서문설 일행이 떠난 동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발각되지 않기 위해 이삼십 리 떨어진 거리에서 쫓아갔다.

반 시진 뒤, 앞쪽 작은 산이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산꼭대기 푸른 숲에는 하얀색 벽과 검은 기와로 지은 궁궐이 즐비해 있었고 궁궐들은 전부 동서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드넓게 퍼져서 산꼭대기를 모두 뒤덮었다.

서문설 일행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일주향(一炷香) 동안 더 기다렸다가 허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가장 서쪽에 있는 마당 앞으로 다가갔다.

마당 왼쪽에서 커다란 깃발이 높게 휘날리고 있었는데 그 위에 ‘백운관’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정원의 문 양쪽 벽엔 각각 ‘청정무위(清靜無為)’, ‘이경좌망(離境坐忘)’이라는 몇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글씨체가 매우 우아했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극망성에서 가장 큰 종문 세력이라 불리는 백운관이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보초를 서는 사람마저 없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신식을 보내서 정찰했다. 안쪽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두 사람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두 사람은 가운데 놓인 넓은 길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길가에선 대나무가 흔들렸고 송백도 줄을 지어 서있었다. 석목과 연나는 패루(牌樓), 영궁전(靈官殿)을 지나서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주전 앞까지 걸어 들어갔다.

전문은 잠기지 않고 열려 있었는데 앞의 향로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광경을 보니 사람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오는 내내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무엇 때문인지 백운관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석목과 연나는 앞으로 몇 발자국 다가가 문을 살짝 밀었다. 하지만 주전 안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고 이 삼십 장 정도 되는 장엄한 신상(神像) 하나만 가운데 우뚝 서있었다. 신상은 법복을 둘렀고 머리에 주관(*珠冠: 보석으로 장식한 모자)을 쓰고 있었으며 손에는 옥홀(玉笏)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각각 여자아이 한 명과 남자아이 한 명이 시종을 들고 있었다.

“쨍그랑!”

이때 주전 뒤쪽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석목과 연나는 서로 마주 보더니 곧바로 돌아서서 뒤에 있는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주전 뒤쪽엔 드넓은 정원이 펼쳐졌는데 양쪽에는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소나무들이 두 줄로 서있었고 정원의 가운데엔 태호석으로 쌓아 올린 십 장 높이 석가산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라는 경문이 새겨져 있다.

석가산과 백 장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화려한 빛이 뿜어 나왔다.

석목과 연나는 커다란 석가산 뒤에 숨어서 아래에 있는 정원을 내려다봤다.

정원에서 반원 모양의 금색 빛이 번쩍였고 빛 속에서 기이한 형태가 간간이 번쩍였는데 결계 진법 같았다.

이때 서문설을 비롯한 이진종 제자들 열 몇 명이 진법 가운데에 서서 화가 난 눈으로 제자들을 둘러싼 하얀 도포를 입은 도인들 이백여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삽 사십 장 정도 되는 커다란 금정(金鼎)이 하나 뒤집혀 있었고 그 위에는 현묘한 부문이 줄줄이 새겨져 있었다.

“도옥(道玉), 이진종은 백운관을 늘 후하게 대접했다. 왜 반역을 저질렀나?”

진 씨 남자가 화가 난 얼굴로 맞은편에 있는 중년 도사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중년 도사는 몸집이 말랐는데 두 눈의 빛을 감추고서 정원에 서있었다. 득도한 선인 같은 모습이었다.

중년 도사 옆에는 검은 수염을 드리운 중년 도사 한 명과 젊은 여도사가 서있었고 세 명 모두 천위 강자였다.

“지금 우리 백운관을 후하게 대접했다고 말했나? 진강(秦罡), 내가 다시 묻지. 우리 사존 백룡 도장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두 달 전, 명을 받고 이진종에 간 뒤로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너희가 감금이라도 한 것이겠지!”

도옥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룡(白龍) 도장은 말을 함부로 지껄이며 성주께서 하신 말씀을 거역했다. 그런데도 성주께서 아량을 베풀어 그 큰 죄를 용서해 주셨지. 지금 미라봉(彌羅峰)에서 폐관하며 반성하는 중이다.”

진강이 말했다.

“흥, 말은 그럴듯하지! 우리 사존이 너무 바른 말을 해서 성주가 당황한 건 아니고?”

도옥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도옥, 간이 부었나? 성주님을 헐뜯는 말을 하다니!”

진강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일을 이렇게까지 끌고 왔는데 내가 두려워할 것 같나? 이진종은 삼대성지 중에 하나로 함부로 소속 행성들의 영석을 갈취했지. 최근 백 년간 돌령(突苓), 척백(拓柏)을 포함한 행성들 서른 몇 곳은 자원이 전부 고갈되었고 천지영기가 무너져서 폐성이 되어 몰락했어.

십여 년 전, 괴양성(魁陽星)은 성핵(星核)마저 다 빼앗겨서 성역에 있는 혼돈의 힘이 침입하는 걸 막지 못했지. 그 때문에 행성 자체가 산산이 부서졌고 죽어버린 생령들의 숫자를 셀 수 없다. 이렇게 양심이 없는 것들에게 충과 효를 다할 가치가 있겠나?”

도옥이 묵직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도옥이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석목은 예전에 지나쳤던 폐허들과 곧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인진성이 떠올랐다.

“흥, 미양 성역에 큰일이 일어날 거야. 미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돌령, 괴양 같은 작은 행성들뿐만 아니라 이 극망성마저도 지키지 못하겠지. 백룡은 백운관을 다스리는 관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멀리 내다 볼 줄 몰라, 이렇게 생각이 짧다니.”

진강은 차갑게 웃으며 경멸하듯 말했다.

“우리는 사존과 같은 생각이다. 이처럼 연못을 말려서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 천도를 어기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다. 너희도 이런 양심 없는 행동을 멈추는 게 좋을 테지.”

도옥이 말했다.

“종문에서 깊이 가르침을 주었기에 우리가 오늘날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어찌 너희처럼 배은망덕할 수 있겠나? 도옥, 너도 백운관에 들어올 때 승선 대전을 겪었고 이수관에 들어가서 성주께 은혜를 입지 않았느냐?”

진강이 물었다.

“승선? 승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승선은 제자들을 모으는 수단에 불과하지 않나? 우리는 너희들과 똑같이 이진종이 자원을 갈취하는데 쓰는 도구일 뿐이라고.”

도옥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서문설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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