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22화 (522/916)

522화. 곤륜성허(昆侖聖墟)

도인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서문설이 몸에 빛을 번쩍이며 도인들을 쫓아가려 했으나 옆에 서 있던 얼굴이 거친 남자 석목이 또 다시 서문설 앞을 막았다.

시종으로 변장을 한 연나도 날아왔고 공손한 표정으로 석목 뒤에 서 있었다.

요염한 여자인 임도가 도인들을 쫓아가려 하자 젊은 여도사가 검으로 임도의 팔을 공격하는 바람에 임도는 뒤로 밀려났다.

허공에 서 있던 진강이 몸을 번쩍이며 도인들을 쫓아가려다가 서문설과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이 서 있는 광경을 보고는 다시 그쪽으로 날아갔다.

서문설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육랑은 반쯤 쓰러져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입가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육랑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서문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육랑, 우리가 저번에 매복을 당한 것도 네가 소문을 흘린 거지? 왜 그랬어?”

서문설이 차갑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서문 사저, 저…… 제 고향은 괴양성입니다.”

육랑이 내는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서문설은 육랑이 하는 말을 듣더니 흠칫 놀랐다.

이때 커다란 소리와 함께 보라색 번개를 감은 망치가 육랑 위에 나타났고, 육랑을 매섭게 내리쳤다.

바람소리와 천둥소리가 함께 시끄럽게 들렸고 귀가 먹먹해졌다.

“멈춰!”

그 광경을 본 서문설이 손에 든 하얀 영치에 빛이 번졌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서문설이 육랑을 구하려고 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 이미 늦어버렸다.

망치가 떨어지자 커다란 보라색 번개가 순식간에 밀려왔고, 육랑은 몸이 망치 그림자에 드리운 채 혼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어서 세 사람이 서문설을 비롯한 사람들 주위로 내려왔다. 셋은 진강, 눈썹이 보라색인 청년인 뇌적과 요염한 여자인 임도였다. 진강이 들고 있는 보라색 망치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이때 이진종의 나머지 제자들도 진강을 비롯한 사람들이 백운관 사람들을 쫓아가지 않은 것을 보았고 전부 이쪽으로 날아왔다.

석목은 이진종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진강과 서문설을 비롯한 네 사람을 제외하고도 이진종의 제자는 다섯 명이 더 있었다.

“설 사매, 괜찮습니까?”

진강은 석목과 연나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곧바로 서문설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하지만 임도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진강, 왜 육랑을 죽였어요? 사문을 배신했어도 잡아서 사존께서 내리신 명을 따랐어야 합니다.”

서문설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얼굴에 혐오스러운 기색을 비쳤다.

“서문 사매, 말이 너무 심한 게 아닙니까? 진 사형은 분명 육랑, 이 배신자가 다시 나쁜 마음을 먹고 사매를 다치게 할까 봐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임도가 차갑게 말했다.

“육랑의 경지는 애당초 저보다 낮습니다. 그리고 육랑 손에는 영기도 없었습니다. 임 사저님 말씀은 빈손인 육랑이 제 상대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서문설이 차갑게 되물었다.

임도가 다시 반박을 하려고 하자 진강이 손을 내밀어서 말렸다.

“그만 하세요! 육랑이 싸우는 중에 우리를 배신해서 동문을 습격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사존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진강이 그리 말을 하자 임도와 서문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문설이 눈길을 돌려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귀하는 누구시기에 갑자기 백운관에 나타난 건가요?”

서문설이 말을 잇기도 전에 진강이 석목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저는 목뢰라고 합니다. 이 극망성 사람이 아니지요. 제 시종과 때마침 이곳을 지나고 있었고 백운관이 경치가 유난히 아름답다고 하여서 구경을 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석목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연나는 가냘픈 몸에 회색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 전모를 쓰고 있어서 시종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연나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게 석목 뒤에 서 있었다.

“설 사매, 다음에는 저와 가까이에서 다니시죠. 제 능력으로 사매를 보호하기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진강은 의심스럽게 석목을 몇 번 바라보더니 곧바로 고개를 돌려서 서문설을 향해 말했다.

서문설은 진강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진강은 다시 고개를 돌려서 석목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어서 진강은 눈알을 한번 굴리더니 갑자기 웃는 얼굴로 석목을 향해서 말했다.

“목 형, 실력이 대단한 것 같은데, 저희와 함께 조금 전에 도망간 놈들을 잡으러 갑시다. 일이 성사되면, 우리 이진종에서 꼭 후하게 보답을 할 겁니다. 어떻습니까?”

“진 형, 과찬이십니다. 저는 워낙 성격이 제멋대로라 녀석들을 따라잡거나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진 사형이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걸 영광으로 아세요. 분수도 모르고!”

눈썹이 보라색인 청년 뇌적이 말했다.

“뇌 사형, 화내지 마시죠! 제가 봤을 때, 이 목 도우님께선 서문 사매가 눈에 들어 도와준 것 같은데, 진 사형이 하신 말을 받아들일 리 없지 않겠습니까?”

임도가 가볍게 웃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임도가 하는 말을 들은 진강은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

“목 도우께선 조금 전에 우리를 구해주신 분입니다. 사형, 그리고 사저. 예의를 갖추셔야죠.”

서문설이 말했다.

“아, 서문 사매, 그 말씀은 잘못됐어요. 이분은 사매를 구해준 것이지, 우리에게는 조금도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갑자기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그 두 놈도 도망갈 수는 없었을 테죠.”

임도가 팔에 생긴 상처를 한번 바라보더니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

“서문 사매, 제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이 사람은 내력도 잘 모르겠고 또 사매를 이렇게까지 구해준 걸 보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방심하지 마시고 항상 조심하세요.”

뇌적이 말했다.

“그 정도는 저도 잘 압니다. 뇌 사형이 신경을 쓸 것까지는 없을 것 같네요.”

서문설이 담담하게 말했다.

서문설이 뇌적이 하는 말에 반박을 하자 뇌적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진강이 이 자리에 있어서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그만 하세요. 목 형이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으니 우리도 강요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설 사매, 빨리 그놈들을 쫓아갑시다. 더 지체하다가는 놓칠 겁니다.”

진강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끊어버렸고 서문설을 향해 말했다.

“진 사형, 죄송합니다. 이 임무를 수행하러 오기 전에 저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임무를 완성하면 종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요. 이제 백운관에 있던 사람들을 쫓아냈으니 종문 사람들에게 이 일을 인계하기만 하면, 제 임무는 끝난 것입니다. 저는 ‘곤륜성허’ 선발을 준비해야 하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서문설이 진강 옆을 스쳐 지나며 말했다.

곤륜성허?

석목은 연나가 이 몇 글자를 들었을 때,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건드린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있어서 물어보지 못했다.

서문설이 단번에 거절을 하자 진강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진강은 서문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더는 설득하지 않았고 “사매, 조심히 들어가요.”라는 말만 남긴 채로 다른 사람들과 백운관을 떠나서 배신자들을 쫓아갔다.

진강은 백운관을 떠나기 전에 석목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눈빛에 온통 경고와 협박을 하는 투가 묻어 있었다. 석목은 담담하게 웃기만 했다.

사람들이 멀어지자, 서문설은 그제야 석목에게 눈길을 돌리더니 말을 했다.

“목 도우님께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고맙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악담만 듣게 했군요. 너그럽게 봐주시고 제 사형과 사저들이 한 말은 신경 쓰지 마시죠.”

“괜찮습니다. 보잘것없는 실력이라서 칭찬을 받는 게 어색합니다. 당신 사형과 사저들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닙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목 도우님, 별말씀을요. 조금 전에 하신 공격 두 번으로도 이미 제 종문 형제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별 볼 일 없는 실력이라고 하시면, 저는 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서문설이 말했다.

“서문 소저, 젊은 나이에 이미 천위에 도달해서 또래들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인데, 몸 둘 바를 모른다니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망망 성역에 성계 강자들이 곳곳에 깔려있습니다. 제 한 몸을 지키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고작 천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신경에는 도달해야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겠지요.”

서문설이 먼 하늘을 지긋이 바라보며 기대에 찬 눈빛을 비치면서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본 석목은 마치 무엇인가 생각난 듯, 얼굴에 기이한 빛이 스쳐 지났다. 그리고 석목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서문설은 석목의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이 어색해하며 말했다.

“제가 헛소리했군요. 목 도우님, 신경 쓰지 마세요. 아, 아직 물어보지 못했네요. 목 도우님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그리고 이곳에는 왜 오셨나요?”

“저는 청란성지의 평범한 제자입니다. 종문에서 내린 임무를 수행하러 극망성에 왔고 임무를 완수하여 시종을 데리고 떠나려 합니다.”

석목이 말했다.

“청란성지의 제자시군요. 역시 실력이 뛰어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서문설이 물었다.

“아닙니다…… 조금 전에 서문 소저가 ‘곤륜성허’라고 하신 것 같은데, 그곳은 어디입니까?”

석목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목 도우님, 종문을 떠난지 꽤 오래되셨지요? 혹시 삼대 성지와 흑마족이 결계에서 결전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서문설이 물었다.

“제가 종문을 떠났을 때, 양측이 싸우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전방에서 벌어지는 결전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석목은 잘 모르는 듯 물었다.

“삼대 성지와 흑마족이 격렬한 전투를 펼치고 있을 때, 성역에 흐르는 혼돈의 힘이 흐려지면서 선계의 유적이 하나 나타났다고 합니다. 훗날, 삼대 성지의 한 곳에서 신경인 존재가 확인되었다죠. 소문에 따르면, 발견된 유적은 천여 년 전에 선계가 요동치면서 훼손된 곤륜성역이라고 합니다.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그 속에 진귀한 선가의 보물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문설이 말했다.

서문설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석목은 곁눈으로 계속 연나를 지켜보았다.

말을 듣는 동안 연나는 안색이 다시 변했다. 석목은 확신이 들었다. 연나는 이 곤륜성허와 연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소문이니 전부 믿을 수는 없겠네요. 정말 선가의 보물이 있었더라면 아마 이미 많은 수련자들이 훑어갔겠지요?”

석목이 장난을 하듯 말했다.

“목 도우님, 그렇게 가볍게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 곤륜성허는 이제 막 일부만 드러냈을 뿐입니다. 곤륜성허는 매우 강력한 상고시대의 금제로 봉인되어있어서 신경인 강자도 돌파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들어간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겠지요.”

서문설이 말했다.

“그렇다면 보물들은 그림 속의 떡이 아니겠습니까? 만질 수도 가질 수도 없어서 애만 태우겠네요?”

석목이 말했다.

“신경 강자 한 명은 봉인을 뚫을 수 없을지 몰라도 신경 강자가 여러명 모이면 또 말이 달라지지요. 삼대성지는 이미 합의를 했습니다. 일 년 뒤에 삼대 성지의 성주들이 동시에 힘을 합쳐서 상고시대의 금제를 깨버릴 모양입니다. 그때가 되면 삼대성지에서 성계 이하인 제자들을 성허 속으로 보내서 보물을 찾게 할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서문설이 설명을 했다.

“아, 그런데 왜 성계 이하인 제자들을 보내는 것인가요? 곤륜성허를 감싼 결계 금제가 그렇게 강력하다면 안쪽은 더 많이 위험할 텐데, 성계 강자가 들어가는 편이 더 유리한 게 아닌가요?”

석목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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