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화. 꾸며낸 이름에 죄를 묻다
“삼대성지는 비록 연합을 맺었지만 결국 한 집안사람들이 아닙니다. 성허 밖에서는 사이가 좋을지 몰라도 성허 안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요. 성계 존재가 낀다면 기필코 일이 복잡해지리라 예상해서 삼대성지의 고위 인사들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서문설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되겠군요.”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도우님께서 궁금하셨던 점을 말씀드렸으니 저도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하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가보겠습니다.”
서문설은 석목을 향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서문설은 석목이 일부러 그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도를 들켜버린 석목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민망하네요. 중요한 일이 있다 하셨으니 그럼 먼저 가보세요. 인연이 있다면 나중에 또 만나겠지요.”
물론 서문설은 석목이 하는 말에 담긴 깊은 뜻을 알 리 없었다. 서문설은 다시 한번 석목을 향해 인사를 했고 비행법기를 불러서 멀리 날아가 버렸다.
서문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연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석목은 떠나가는 서문설의 뒷모습을 한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서 연나를 바라보았다. 연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나, 왜 그래?”
석목이 물었다.
“나 곤륜성허에 갈래.”
연나가 고개를 번쩍 들고서 말했다.
“왜? 무슨 기억이라도 떠올랐어?”
석목은 의외라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고 담담하게 물었다.
“곤륜이란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어. 어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또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어. 아마 그곳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연나가 천천히 말했다.
“곤륜성허는 당연히 갈 거야.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지. 내 생각에 청란성지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반년은 걸릴 거야. 그리고 우리가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청란성지에서 이미 참가할 제자들을 전부 뽑았을지도 몰라.”
석목이 한참 동안 침묵을 하더니 말을 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가만히 석목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우선은 천은성으로 돌아가야 해. 그곳에 가서 다시 동성성으로 빠르게 갈 방법을 찾아보자.”
석목이 말했다.
“그럼 빨리 가자.”
연나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극망성의 지도 옥간을 꺼내 들었고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영우비차를 불러서 연나를 데리고 서북쪽으로 날아갔다.
동화성에 있는 전송진법 말고 극망성에도 천은성으로 갈 수 있는 전송진법이 있었다. 전송진법은 삼천 리 정도 떨어져 있는 서북쪽 출운산(出雲山) 위에 있었다.
출운산은 극망성에 있는 또 다른 종문인 ‘남경문(嵐競門)’의 종문 입구가 있는 곳이었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남경문은 이진종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고 들었다. 남경문엔 천은성으로 갈 수 있는 작은 전송법진이 하나 있는데, 전송을 하는 비용이 동화성에 비해 몇 배나 비싸다고 들었다.
석목이 먼 곳을 선택한 이유는, 백운관이 혼잡해진 이유도 있었지만, 팽씨 가문이 쫓아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한 시진 후.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 위에 한 줄기 빛이 날아왔고 빛은 점점 느려지더니 짙푸른 소나무 위에 멈춰 섰다.
온통 갈라진 비차가 소나무 숲의 상공에 떠 있었고 석목과 연나가 비차 위에 서 있었다.
“바로 앞이 남경문이야. 일각 정도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어.”
석목이 백 리 밖에 있는 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번거로운 일이 생겼군.”
연나가 말했다.
석목이 멈칫했다. 이어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열 몇 갈래 묵직한 광선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이쪽으로 날아왔다.
이때 실눈을 뜬 석목은 눈에서 금색 빛이 흐르고 있었다. 석목은 법결을 써서 영우비차를 먼 곳에 세웠다.
한참 후에 열 몇 갈래 묵직한 빛이 가까이 날아왔고 석목과 연나를 둘러쌌다.
찾아온 사람들은 전부 이진종의 보라색 도포를 입고 있었고 가장 앞에 서 있는 키가 훤칠한 사람은 고개를 치켜들고서 친절하지 않은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석목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서문설과 같이있던 진강이었다. 진강 뒤에는 눈썹이 보라색인 청년인 뇌적과 요염한 여자인 임도도 서 있었고 사람들 열 몇 명이 더 있었다.
“허허, 목 형,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다니.”
진강이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허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배신자를 쫓아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렇게 빨리 잡아왔습니까?”
석목은 표정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자 뇌적, 임도를 비롯한 제자들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허. 당신 죽음이 코앞인데 아직 장난을 칠 기분이 나는가 보군요?”
진강이 차갑게 말했다.
“진 형,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석목이 알아듣지 못하는 듯이 되물었다.
“사제, 사매 여러분. 잘 들으세요.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목뢰라고 합니다. 배신자 도옥을 도와서 우리를 방해하여 도망을 치게 두었습니다. 우리가 이자를 잡아야만 종문에 인계할 수 있습니다.”
진강은 석목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서 뒤를 향해 말했다.
“네!”
이진종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고 얼굴에 흥분된 기색이 어려 있었다.
“허허, 성지의 제자라는 놈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 이름을 들먹거리며 종문이 내릴 벌을 피하려 하다니. 참 기발한 생각입니다만, 그런 짓도 실력이 있는 놈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몸에 파란빛이 크게 번졌다. 거센 파도 같은 힘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진강을 비롯한 이진종 제자들은 전부 석목과 가까이 서 있던 터라, 파란빛이 뿜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마치 바다에 빠진 것처럼 빛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대부분 수련 경지가 지계 수준이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석목이 뿜어내는 방대한 영력에 압박을 느끼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 서 있던 평범한 남자인 석목 몸에서 이렇게 강력한 힘이 흘러나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터였다.
“역적이 반항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죽여 버립시다. 포진!”
진강이 소리를 질렀고 뇌적, 임도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진종 제자들이 전부 영기를 꺼내 들고서 다양한 빛을 뿜으며 석목과 연나를 둘러쌌다.
주문 소리가 울려 퍼졌고 숲속에서 산바람이 불어와 소나무가 흔들렸다. 하늘에는 이미 먹구름이 깔려있다. 먹구름은 엄청 묵직해 보였는데, 마치 납덩어리 같았다.
칙! 칙! 칙!
허공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석목이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진종 제자들은 마치 번개로 지은 비단옷이라도 입은 듯이 전부 보라색 빛을 두르고 있었다.
보라색 번개는 서로 끌어당기거나 이어졌다. 번개가 이어져서 동그란 보라색 번개막을 만들어내서 석목과 연나를 안에 가두어버렸다.
“상처가 이제 막 나았으니 너는 한쪽에서 구경이나 해.”
석목은 살짝 고개를 돌려서 가볍게 말했다.
“너나 조심해.”
연나는 석목을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이 활짝 웃더니 영우비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하얀 구름을 밟고 허공에 서 있었다.
석목은 몸을 굽혀서 앞으로 크게 한 발짝 다가가며 파란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몸 옆으로 주먹을 날려 막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석목 주변을 둘러싼 파도 같던 빛들이 순식간에 들끓었고 빛 속에서 집채만 한 주먹 그림자가 나타나 동그란 막에 내리쳤다.
쿵!
보라색 막이 흔들렸고 석목의 주먹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이진종 제자는 입에서 피를 마구 뿜어내며 뒤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석목은 나름대로 진법을 이루는 사람들 중 실력이 가장 약한 자를 물리쳐 돌파를 하려고 했는데 단번에 진법을 뚫지는 못했다.
이때 석목 위에 있던 진강이 차갑게 웃더니 몸에 보라색 빛이 크게 번졌다. 진강은 사람 머리만 한 망치를 하늘 위로 들어 올리더니 큰 소리로 “인뢰(引雷)”라고 외쳤다.
석목 양쪽에 서 있던 뇌적과 임도는 각각 손에 진기를 한 자루씩 들었고 힘껏 흔들었고 깃발에서 번개가 크게 번졌다.
우르릉!
두툼한 먹구름 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회색 산 같던 구름에 십 장 정도 되는 균열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뜨거운 번개가 구름에서 은은하게 나타났다.
석목은 머리 위 먹구름에서 무거운 압박을 느꼈고, 먹구름에서 마치 무지막지한 짐승이 한 마리 엎드려서 기회를 노리며 석목을 삼키려는 것만 같았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남정번이 나타나서 빙글빙글 돌더니 몇 배나 크게 불어났다. 남정번은 파란빛을 감고 있었고 석목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들이 전부 날아가서 석목과 연나의 머리 위에 커다랗게 휘어진 빛벽을 하나 만들어냈다.
빛벽이 막 만들어지자 먹구름에서 큰소리가 울려 퍼졌고, 빛벽 가운데가 찢어지며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겼다.
펑!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통 굵기만 한 보라색 번개가 교룡처럼 꿈틀거리며 하늘에서 내려왔고 진강이 들고 있는 망치 속으로 들어갔다.
망치에서 빛이 크게 번졌고 현묘한 부문들이 줄줄이 이어지더니 진강도 기운이 점점 폭발하여 천위 후기에 도달했다.
“고작 나 하나 잡겠다고 이 난리를 치다니. 이진종도 정말 답이 없군!”
그 광경을 본 석목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하!”
진강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몸 주변에서 보라색 뱀 모양 번개가 줄줄이 나타났다.
잘 생긴 얼굴에 어두운 보라색 무늬가 줄줄이 나타나더니 곱게 빗은 머리카락도 흩어져서 기운 파동 때문에 마구 흩날리고 있었다. 지금 진강은 마치 흉악한 마귀 같았다.
“죽어!”
진강은 시선을 돌려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손에 든 보라색 망치를 휘둘렀고, 망치에서 커다란 보라색 번개가 터져 나왔다.
보라색 빛이 허공에서 크게 번지며 머리에 외뿔이 자라난 사자 같은 짐승이 나타났다. 이어 짐승은 등 뒤에 날개를 달고서 포효하며 석목을 덮쳤다.
“뇌극수!”
연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강이 손에 든 물건이 진법의 힘으로 천둥번개를 끌어와서 뇌극수 같은 상고시대의 짐승 모양을 빚어낼 수 있었다니.
전설에 의하면, 상고시대 뇌극수는 천둥번개를 다스리던 신수(神獸)로, 뇌극수는 몸에 가장 순수하고 원시적인 현뢰(玄雷)의 힘을 담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뇌극수는 모양만 그럴듯했고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몸통 전체가 보라색이었는데, 전설 속에 나오는 뇌극수는 검은색이라서 그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석목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어서 석목은 몸에서 붉은빛과 파란빛이 동시에 흘러나왔고 물과 불의 날개가 나타났다. 그리고 피부에는 금색 비늘을 층층이 감쌌다.
“헝!”
하늘이 떨리는 포효소리가 울려 퍼졌고 뇌극수가 맹렬하게 덮쳤다. 그리고 날카로운 두 발로 석목을 보호하던 파란 빛벽을 공격했다.
퍽!
몇 갈래의 보라색 번개가 날카로운 발끝에서 튕겨 나와서 순식간에 파란 벽을 긁으며 깊은 상처를 만들어냈고, 파란 벽이 심하게 흔들렸다.
“뚫어!”
허공에 있던 진강은 눈에 흉악한 기색이 스쳤고 입으로 큰소리를 질렀다. 두 팔에서 힘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오더니 다시 한번 보라색 망치를 아래로 짓눌렀다.
뇌극수는 몸에서 번개가 크게 번졌고 날카로운 발을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 위에 구름처럼 번개가 나타나서 파란 벽에 난 상처를 내리쳤다.
우르릉!
보라색 빛과 상처투성이가 된 파란 벽이 함께 터져버렸고 두 갈래 빛이 섞인 채 주변으로 튕겨 날아갔다.
퍽!
아이 팔뚝만 한 긴 창이 뇌극수 머리에 난 외뿔 위에서 튀어나와 석목의 가슴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다급한 마음에 석목은 등 뒤 날개를 앞으로 끌어와서 번개를 감고 있는 긴 창을 향해 내리쳤다.
긴 창은 물과 불의 날개와 심하게 부딪쳤고 세 가지 빛깔이 계속해서 번쩍이더니 허공에서 찌릿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