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화. 번개를 감고 싸우다
‘치직’대는 소리와 함께 석목 앞을 막고 있던 물과 불의 날개에 구멍이 뚫리려고 했다.
보라색 긴 창이 날개를 뚫으려는 순간, 파란색 물갑옷에 부딪쳤다.
물갑옷 위에 물결이 일렁였고 커다란 힘을 감은 채로 날아오던 긴 창은 물결 때문에 매우 어두워졌다.
이어서 보라색 번개가 물결과 함께 주변으로 흩어졌다.
명수결이 만들어낸 물갑옷은 긴 창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물갑옷은 보라색 긴 창에 담긴 힘을 막아 낸 후 곧바로 거품으로 변하여 터져버렸다.
퍽!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오른쪽 쇄골 밑에 붙어있던 금색 비늘이 찢어졌고 피가 화살처럼 뿜어 나왔다.
긴 창은 물갑옷의 힘 때문에 빗나가서 석목의 가슴을 빗겨나갔고 겨드랑이를 스쳐 지났다.
오른쪽 가슴에 난 상처는 긴 창이 스친 자리였다.
석목은 온몸이 마비가 되었고 몸속에서 영력을 다루는 게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등 뒤에 있는 물과 불의 날개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 모든 일은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났다.
석목이 일어서기도 전에 허공에 있던 뇌극수가 다시 한번 발을 허우적대며 석목을 덮쳤고, 크고 날카로운 두 발은 번개를 두르고 있었다.
석목은 무엇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영력은 쓸 수 없었고 뇌극수가 이제 막 석목을 덮치려 했다.
이때 석목은 귓가에서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은색 긴 창의 허상이 구레나룻을 스쳐 지나갔고, 긴 창은 들끓는 마기를 감고서 뇌극수를 향해 날아갔다.
펑!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색 긴 창의 허상이 뇌극수의 커다란 발에 부딪치던 순간, 마기가 흉흉하게 뿜어 나와서 뇌극수의 앞발을 감싸버렸다.
뇌극수는 몸에 번개를 번쩍이며 계속해서 덮치려고 했지만, 마기에 발이 꽁꽁 묶인 채로 몸이 굳어버렸다.
석목 등 뒤 먼 곳에서 연나가 손에 은색 창을 들고서 검은 마기를 감고 있었는데 낯빛은 하얀색이었다.
“고마워! 이제 내가 처리할게!”
석목은 가볍게 한마디 던졌고 뒤로 한 바퀴 뒹굴더니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석목은 왼쪽 팔에 하얀빛이 크게 번졌고 뜨거운 기운이 그 속에서 뿜어 나와서 주변이 뜨거운 기운으로 들끓었다.
“하!”
석목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갔다. 그리고 몸 앞으로 주먹을 쥐더니 마기에 묶여있는 뇌극수에게 향했다.
허공에 하얀 주먹 그림자가 나타났고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감고서 뇌극수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쾅!
현뇌지력과 양의 힘이 격하게 부딪쳤다. 커다란 보라색 뱀 모양 번개가 하얀 화염 속에서 튕겨 나왔고 들끓는 마기와 겹친 후에 드디어 완전히 터져버렸다.
부채 모양 거대한 기운 파동이 허공에서 퍼져나갔고 포진을 하고 있던 이진종 제자들이 전부 튕겨서 날아갔다.
“목뢰, 흑마족이랑 공모를 하다니!”
진강은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옷자락이 거센 바람 때문에 휘날리고 있었다. 이때 진강이 석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손을 뒤집어서 옆에 떠있는 남정번을 거두어들였다. 이어서 석목이 입을 벌리자 검은 곤봉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반쯤 접은 주먹을 휘두르자 검은 곤봉이 순식간에 자라나서 한 장 정도 되는 곤봉으로 변하였다.
“포진! 이 두 족속들을 죽여 버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요염한 여자인 임도가 소리를 질렀다.
석목 주변에 서 있던 이진종의 제자들은 각각 화려한 빛을 드러내며 입으로 무엇인가를 크게 외우고 있었다. 손에 든 각양각색 영기에서 보라색 번개가 번쩍이더니 다시 석목을 가둬버린 빛으로 만든 막을 손으로 짚었다.
이때 막에서 커다란 거품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고, 보라색 번개가 거품 속에서 터져버리더니 그곳에서 번개 채찍이 튀어나와 석목에게 향했다.
석목은 발을 빠르게 움직이며 손에 든 곤봉을 위아래로 휘둘렀다. 검은 곤봉 그림자가 하늘에서 흩날렸고 석목과 연나 주변으로 날아오던 긴 채찍들을 전부 막아냈다.
진강은 동문들과 힘을 합쳐서 공격을 해도 석목이 날리는 매서운 곤봉질을 꺾지 못했다. 그러자 진강이 잠깐 망설이더니 이를 악물고는 눈에서 보라색 뱀 모양 번개 두 줄기를 번쩍이며 손에든 망치를 다시 한번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검은 머리가 번개 속에서 주변으로 흩날렸고 망치 겉에서 기이한 부문이 연이어 번쩍거리더니 몸통 전체가 번개로 드리워 마치 뇌신(雷神) 같았다.
우르릉!
하늘을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길게 드리운 구름막에 순식간에 커다란 틈이 벌어졌다. 그 속에서 번개가 줄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멋대로 날뛰던 뇌극수는 마치 쏟아지는 강물 같았고 하늘 전체를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진강이 돌아서자 뇌적은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진 사형, 이건…… 현천뢰폭(玄天雷瀑)을 끌어내려는 건가요? 그건 너무 무리인 것 같은데…….”
다른 한쪽에서 임도가 눈에 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존경하는 눈빛으로 진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목은 잔뜩 찢어진 먹구름을 바라보았고 그 속에서 놀라운 힘이 밀려나오는 걸 느꼈다.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검은 곤봉을 꽉 쥐었다.
이어서 석목은 발을 움직여서 팽이처럼 빠르게 돌았다. 손에서 만들어낸 곤봉 그림자도 점점 허상으로 변하였고 허공에 희미한 잔영만을 만들어냈다.
주변에 쳐진 빛으로 된 막 위에 있던 보라색 채찍들이 끊임없이 잔영을 휘갈겼지만 닿기 직전에 튕겨서 날아가 버렸다.
석목의 잔영이 만든 검은색과 하얀색 빛덩어리가 나타났고 기의 흐름이 주변에서 일어났다. 이때 석목이 크게 소리를 지르자 하얀빛이 갑자기 하늘 위로 솟아올랐고 검은빛이 땅을 향해 빠르게 떨어졌다.
드디어 두 빛덩어리는 거의 동시에 막에 부딪쳤다.
펑!
막이 격하게 흔들렸고 진법 곳곳에 서 있던 이진종의 제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으며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튕겨서 날아가지는 않았다.
“별것 아니군!”
진강이 허공에서 피식 웃었고 이어서 눈빛이 변하더니 망치를 아래로 힘차게 휘둘렀다.
진강이 망치를 휘두르자 뇌적과 임도도 손에 든 진기에서 보라색 빛이 크게 번지더니 이내 터져버렸고 두 사람도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두 사람은 이목구비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이때 하늘에서 오랫동안 묶여있던 먹구름이 드디어 속박에서 벗어나 흉흉하게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속에 담고 있던 보라색 번개는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펑!
천둥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하늘은 마치 커다란 구멍이 난 듯 들끓는 맹수들이 강을 이루며 흉흉하게 하늘 아래로 쏟아졌고, 보라색 막 속으로 뛰쳐 들어갔다.
“네 까짓 게 설 사매를 탐하다니 내 현천뢰폭으로 네 마지막 길을 보내주지. 하하하……”
이때 진강은 미쳐버린 듯이 포효하며 말했다.
하지만 웃음이 멈추기도 전에 입으로 피를 뿜었고 기운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어서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나더니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현천뢰폭을 강행했지만 진강도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
하늘에 뜬 보라색 뇌폭이 석목을 향해 쏟아졌고 주변에 흐르던 천지원기마저 혼란스러워졌다. 수많은 기류가 휘몰아쳐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보라색 번개 폭포를 꽁꽁 감쌌다.
하지만 이때, 검고 흰 두 빛덩어리 사이에서 갑자기 기이한 파동이 생겼다. 이때 빛덩어리 사이는 마치 중력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고 특수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석목 주변에 있던 동그란 막이 갑자기 줄어들더니 흑백 두 빛 사이에 놓였다.
석목과 연나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빛으로 만든 막 속에 있었고 막을 둘러싸고서 진법을 쓰던 이진종의 제자들도 이끌려서 흑백 빛 속으로 끌려 들어왔다.
이제 막 끌려 들어왔을 때, 이진종의 제자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이진종의 제자들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절뢰진법과 함께 검고 흰 빛 속에 묶여버린 채로 얼굴에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이때 검고 흰 두 빛 덩어리가 크게 번지더니 주변 공기마저 흑백으로 변하였고, 커다란 공간에 담긴 힘이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양쪽으로 갈라진 흑백 빛 덩어리가 다시 가운데로 합쳐지기 시작했고 천지원기를 전부 끌어 모아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맷돌처럼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러면서 그 사이를 갈아버리고 있었다.
허공에 뜬 흑백 맷돌에서 큰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진종 제자들은 주변에서 몰려오는 압박과 찢어질 것만 같은 힘을 느꼈다. 그제야 이진종 제자들은 엄청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걸 느끼고는 두려움에 떨며 소리를 질렀다.
숲속으로 내려온 진강은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고, 온통 믿기지 않는 기색이 눈에 비쳤다.
이진종 제자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잔인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때 하늘에 드리운 현천뢰폭이 드디어 커다란 흑백 맷돌 위에 떨어졌다.
천지가 흔들리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라색 빛과 흑백 맷돌이 순식간에 혼연일체가 되었고 동시에 터져버렸다. 십 장 정도 되던 둥그런 빛이 터지면서 주변 하늘 전체를 흑백으로 물들였다.
수많은 보라색 뱀 모양 번개가 사방으로 퍼졌고 땅 위에 넓게 펼쳐진 나무들이 검게 타버려 부서지더니 푸른 소나무 숲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강은 폭발과 함께 부서진 둥그런 검은색 막을 보고서 혼이 나간 듯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폭발로 진강의 동문인 사제, 사매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전부 시체로 변해서 찢어져 버렸고 뇌적과 임도는 진법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지만 의식을 잃어버렸으며, 거센 바람이 불어 피부와 사지가 제자리에 붙어있지 않았다. 뇌적과 임도는 풍기고 있는 기운은 매우 약했고 곧 숨을 거두기 직전이었다.
더욱 절망적인 건 허공에 드리운 번개가 전부 사라진 후, 허공에 다시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어때? 괜찮아?”
석목은 흑백 날개를 펼쳤고 몸으로 연나를 감싼 채 물었다.
연나는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려있었고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연나에게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석목은 돌아서서 땅 위에 있는 진강을 향해 날아갔다.
“말…… 말도 안 돼. 현천뢰폭이 떨어지면 천위 후기인 무인도 감당할 수 없는데 네가 어떻게……”
진강은 큰 상처를 입어서 도망가지도 못했고 두려운 기색으로 석목을 바라보고 부들부들 떨면서 물었다.
석목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몸속 기혈이 한참 동안 들끓더니 피비린내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현천뢰폭은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석목이 흑백 날개와 혼돈의 기운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어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석목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피를 힘겹게 삼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사제들이 만든 절뢰진은 곤진이지만, 나에겐 보호막과도 같았지. 나는 멸선일식으로 너의 절뢰진을 압축시켜서 네가 쓴 현천뢰폭을 막았다. 좀 모험이긴 했지만 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그 말을 들은 진강은 얼굴에 참담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진강이 반응하기도 전에 하얀빛이 번쩍이었고 주먹이 날아와서 가슴을 뚫어버렸다. 화염이 가슴에 난 구멍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석목은 진강의 기운이 전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연나에게 날아가서 말했다.
“너무 격하게 싸워서 남경문의 주의를 끌었을 거야. 우선 이곳을 떠나자. 전송은 조금 더 기다려 보고.”
“그럼 청란성지는 제때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연나가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힘을 덜 쓰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석목은 먼 곳을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