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화. 대질하다
연나가 하는 언행을 보며 석목은 깜짝깜짝 놀랐다. 연나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마치 임도가 환생하여 이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됐다. 이제 가자.”
큰 사형은 또다시 한숨을 내뱉더니 커다란 금색 장방형 비차를 불렀다. 그 위에는 부문이 줄줄이 적혀 반짝였는데 등급이 높은 비행법보였다.
일행들이 비차에 올라탄 후 큰 사형은 손을 흔들었다. 비차는 부드럽게 떠오르더니 단번에 백 장이나 날아나가서 허공에 금색 빛줄기를 그으며 이화봉을 향해 날아갔다.
귓가에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갔고 석목은 고개를 숙여서 이 구역을 내다보았다. 울창한 숲속에 소박한 건물들과 정원들이 은은하게 보였는데, 사람들이 영전을 정돈하고 있었다.
허공에는 도포를 입은 제자들이 백학이나 독수리 같은 영금을 타고서 옆을 지나갔다.
* * *
일각 후.
금색 비차가 산중턱에 드리운 짙은 안개를 가로지르며 이화봉 꼭대기까지 날아오른 후, 소박한 도관 앞에 멈췄다.
소박한 도관은 산꼭대기 낭떠러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면적이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따로 떨어져있어서 매우 신비로웠다.
석목은 도관 입구를 한번 바라보았다. 다른 도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 위에 걸린 편액에는 ‘이화관’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글씨체는 매우 힘이 있어 보였고 교룡처럼 구불구불했으며 매우 비범했다.
몇몇 사람들은 큰 사형 뒤에서 패루와 영관전을 지나갔고 또 좁고 긴 정원을 하나 지났다. 그리고 도관 뒤쪽에 있는 주전 앞에 도착했다.
이때 주전은 문이 꼭 닫혀있었고 창에서 촛불 빛이 은은하게 비쳤다. 타오르는 단목향의 짙은 냄새가 그 속에서 흘러나왔다.
큰 사형은 대전 문 앞으로 다가가서 도포를 한 번 더 가다듬더니 몸을 굽히며 공손하게 말했다.
“사존님, 뇌적 사제와 임도 사매가 왔습니다. 중요한 일을 보고한다고 합니다.”
그 뒤로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이 똑같이 몸을 굽히고 서 있었다.
이때 소나무 무늬가 새겨진 두꺼운 문이 갑자기 ‘끼익’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들어오너라.”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석목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주전 속으로 들어갔다.
주전 안엔 십 장 정도 높이인 도조(道祖) 신상이 세 개 놓여 있었고 그 앞에 널찍한 제사상이 한 개 놓여 있었으며, 제사상 위에 선과와 영초들이 가득 있었다.
제사상 앞에 회색 방석이 세 개 놓여 있었는데, 양쪽 끝은 비어있었고 가운데 놓인 방석에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이 앉아있었다.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인은 위엄이 가득했는데, 한쪽 눈이 병든 듯 검은색 눈가리개를 두르고 있었다.
“사존님.”
큰 사형이 앞으로 다가갔고 석목을 비롯한 세 명이 뒤에서 함께 인사를 올렸다.
“뇌적, 임도. 너희 둘이 보고할 일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냐? 음, 왜 둘 뿐이냐? 진강은?”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 사존님, 제자가 보고할 일은 바로 그 일입니다. 진강 사형…… 불행하게도 극망성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석목은 일부러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벌벌 떨면서 말했다.
“뭐?”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노인은 화가 난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몸에 두른 보라색 피풍의가 크게 부풀어서 형태 없는 위력이 순식간에 퍼졌다. 방대한 압력이 몰려왔고 석목과 연나는 그 힘에 밀려서 뿔뿔이 뒤로 밀려났다.
“사존님, 화를 가라앉히십시오!”
석목은 놀란 표정으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다급하게 말했다.
또 다른 한쪽에서 연나도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났다.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고 얼굴도 창백해졌다.
“말해. 어떻게 된 일이냐!”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노인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사존님, 백운관의 도옥을 비롯한 배신자들을 죽이는 중에, 진강 사형과 다른 동문 사제들 이십 명 정도가 전부 희생을 당했습니다.”
석목이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진강이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하게 말해봐라.”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노인은 석목과 연나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진강 사형은 원래…… 원래 살 수 있었습니다.”
연나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음?”
노인이 눈길을 돌려 연나를 바라보았다.
연나는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더니 곧바로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사존님, 육랑이 우리를 배신하여 정보가 먼저 흘러나갔고 그리하여 우리는 위험에 처하였습니다. 몇몇 사제들이 죽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진강 사형이 내리는 지시를 받아 최선을 다해서 백운관 제자들을 다시 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옥을 비롯한 배신자들이 혼란한 중에 도망을 치려고 했고 진강 사형은 사존님께서 거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남은 제자들을 데리고 쫓아갔습니다. 하지만 서문 사매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며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서문설, 임도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더냐?”
노인은 다시 서문설에게로 눈길을 돌렸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사존님, 정확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제자 먼저 종문에 돌아온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진강 사형이 사존님께 상황을 보고도 드리기 전에 육랑 사제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 행동은 종문의 규칙과 사존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라 생각했고 진강 사형과 다투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큰 상처를 입은 탓에 화가 나서 함께 쫓아가지 않았습니다. 백운관의 배신자들은 도옥을 포함해 고작 예닐곱 명 정도라, 제자……, 제자,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서문설이 다급하게 포권을 쥐며 말했고 얼굴에 가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작 예닐곱 명이라고?”
노인은 멈칫하더니 다시 석목과 연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온통 의문을 품은 채 물었다.
“그건…… 실은 서문 사매가 한 말은 맞습니다. 그때 도망간 사람은 예닐곱 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도옥은 이미 종문 밖 사람들과 연합을 했습니다. 진강 사형이 우리를 데리고 쫓아갔을 때, 몇몇 강자들과 힘을 합쳐 덫을 놓았습니다. 진강 사형과 몇몇 사제들이 격한 싸움을 치르며 희생되었고 저와 임도 사매만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석목은 멈칫하더니 포권을 쥐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서문설은 한숨을 내뱉었고 옆에 있던 연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진강은 너희 둘보다 실력이 강하다. 진강도 도망가지 못했는데 너희 둘은 어떻게 도망을 친 것이냐?”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고 몸에서 방대한 기운이 다시 한번 몰려왔다.
대답하기도 전에 석목은 강력한 신식이 몸에 드리우는 걸 느꼈다.
석목은 멈칫하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주전에 들어가기 전, 이미 이런 일이 생기리라 예상한 석목은 몸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만들어두었다. 신식으로 둘러보는 걸 대비한 것이었다.
연나는 원래 심한 상처를 입었고 이미 비술로 혼을 제압하여 혼이 불안정해보였다. 조금 전에 입가에 흐르던 피도, 연나가 일부러 이화관주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석목과 연나가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노인은 신식을 곧바로 거두어들였다.
석목은 긴장을 풀며 포권을 하며 말했다.
“도옥을 비롯한 배신자들을 잡았을 때, 진강 사형이 뇌극수를 써서 치명타를 날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도옥을 돕던 사람들이 나타나서 갑자기 우리를 공격하여 진법이 뚫려버렸고 우리는 처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진강 사형은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서 현천뢰폭을 시전하였고 간신히 적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물리쳤습니다. 덕분에 저와 임 사매도 어렵게 목숨을 건졌습니다.”
“너희가 말하는 강적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냐?”
노인이 돌아서서 가운데 놓인 신상을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어렵게 물었다.
“강적은 단 두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피부가 거무칙칙했고 코가 낮았으며 이마가 튀어나온 추한 중년 남자였고 물과 불, 두 공법에 능했습니다. 천위 초기 수련 경지였지만 실력은 천위 후기보다 강해 보였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시종이었는데 이마에 푸른색 반점이 있었고…… 쓰는 공법이 매우 기이했으며 손에서 은색 긴 창…… 제자도 두 강적들이 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석목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했다.
석목이 중년 남자가 어땠는지 용모를 묘사할 때 서문설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리고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인이 한 손으로 석상 앞에 놓인 제사상을 부숴버려 먼지가 휘날렸다.
석목과 연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겁에 질려있었다.
“사존님, 화를 가라앉히세요. 두 사람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시오.”
큰 사형은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이 화를 내자 곧바로 몸을 굽히며 설득했다.
“그 두 사람이라니!”
노인은 큰 사형이 하는 말을 듣지도 않았고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말했다.
“사존님, 그 두 사람을 알고 계시나요?”
석목은 의아한 듯이 물었다.
“흥! 너희들이 말한 공법을 보니 일전에 명옥성에서 우리 팽씨 가문의 후손을 죽인 녀석들 같구나. 또 변장을 해서 내가 아끼는 제자까지 죽여 버리다니. 나, 팽악(彭嶽)의 손에 잡히면 내가 친히 껍질을 벗기고 뼈를 부숴주마.”
노인은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돌고 돌아 다시 팽형의 선조에게 돌아왔다. 정말로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만약 석목과 연나가 바로 팽악의 후손과 아끼는 제자를 죽여 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들켜 버리면 정말 끔찍한 장면이 펼쳐질 터였다.
이때 팽악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손에 보라색 팔각 영패가 하나 나타났고 영패 위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작은 글씨가 몇 줄 나타났다.
팽악은 영패 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안색이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팽악은 보라색 영패를 거두어들였다.
“알았다. 서문설, 뇌적, 임도. 너희 세 명은 우리 이화문의 제자다. 이번 임무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지만, 곤륜성허 선발이 코앞이니 처벌은 내리지 않겠다.”
팽악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존님.”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은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됐다. 다 물러나고 온화(溫華)만 남거라.”
팽악이 손을 흔들며 큰 사형에게 말했다.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은 다급하게 물러났고 주전에는 팽악과 온화 두 사람만 남았다.
“온화, 너는 우리 이화관의 제자들 중에서도 수석제자다. 곤륜성허 선발은 비록 반년 후에 열리지만, 이제 차차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일은 꼭 잘 해결해야 한다. 이번에 곤륜성허를 탐색하는 일은, 성주가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일이다. 그리고 각 도관들이 장차 누릴 입지와 자원을 나누는 일과 큰 연관이 있다.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도관에서 다룰 일은 잠시 너에게 맡기겠다. 꼭 신경을 써서 처리해야 한다.”
팽악이 말했다.
“네. 제자,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온화는 명령을 받아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