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화. 보라색 번개
근처에서 뒤로 물러나던 사람들도 각자의 수단을 써서 몸 앞으로 날아오는 얼음들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 적잖은 사람들이 얼음 조각에 맞았다. 상처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옷이 찢어져서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맞은편에 있던 감수관 사람들이 배를 잡으며 비웃었고 몇몇 제자들은 석목을 보며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낭곤도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손에 든 검은 칼을 써서 서문설과 싸우기 시작했다.
무도법상을 쓰면 너무 큰소리가 나올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두 사람 중 아무도 법상을 소환하지 않고서 손에든 법보로만 싸웠다.
서문설은 먼저 공격을 했기 때문에 살짝 우위를 차지하는 것 같았다.
서문설 주변에는 수많은 눈꽃이 흩날렸고 서문설이 팔을 움직이자 눈꽃들이 낭곤을 향해 줄줄이 밀려갔다.
눈꽃마다 기운을 극한으로 풍겼다. 평범한 눈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낭곤은 몸에 검은빛을 번쩍였다. 그러자 칼이 가로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매서운 빛이 줄줄이 튀어나와서 망처럼 묶였다. 하지만 서문설이 날린 공격만 간신히 막아냈을 뿐 본체는 견고해서 뒤로 밀려났다.
석목은 눈빛이 반짝였다. 낭곤이 쓰는 공법은 서문설과 비슷했고 전부 물속성인 공법이었다. 낭곤이 쓴 빛은 전부 검은 물빛이었는데 서문설이 쓰는 얼음속성 공법에 통제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문설 주변의 하얀 눈꽃은 점점 넓게 퍼졌고 낭곤이 쓰는 검은빛을 점차 눌러버렸다.
이것은 서문설이 수련한 대단한 공법인 ‘경화설월(鏡花雪月)’이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낭곤은 안색이 초조해졌다.
이때 낭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고 몸에서 검은빛이 크게 번졌다. 손에 든 칼도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휙 소리를 냈다.
우르릉!
사람 머리만 한 검은 공이 수십 개 칼날에서 튀어나왔고 촘촘하게 날아갔다. 그리고 눈부신 번개가 검은 공들 위에 줄줄이 나타났다.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그것은 규수신뢰(葵水神雷)의 신통이었다.
폭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반 정도 되는 규수신뢰가 터져버려 서문설이 주변에 두른 눈꽃 결계에 틈을 하나 찢어냈다. 남은 규수신뢰는 서문설을 향해 날아갔다.
“서문 사매, 조심해요!”
이화관 사람들은 안색이 변했고 전부 식은땀을 흘렸다.
머리가 푸른 청년을 비롯한 감수관 사람들은 크게 웃기 시작했고 큰소리로 응원을 하였다.
서문설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손에 든 하얀 옥치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이어서 서문설이 입으로 중얼거렸다.
몸 주위의 하얀 눈꽃들이 줄줄이 모여서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은 얼음학들이 한 마리, 한 마리씩 나타나 울부짖었다.
서문설이 손을 흔들자 하얀 옥치가 검은 공을 향해 날아갔다.
하얀빛이 미친 듯이 번쩍였다.
얼음학들은 뿔뿔이 날개를 펼쳐서 홍수를 이뤘고 검은 공을 향해 덮쳤다. 그리고 두 갈래 빛이 허공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하늘을 울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삼십 마리나 되는 얼음학과 규수신뢰가 부딪치자 학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검은 공 수십 개는 겉에서 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검은 공들은 하얀 얼음공들로 변해서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
“말도 안 돼!”
낭곤은 안색이 변했다.
서문설이 만들어낸 하얀 얼음학은 이삼십 마리 정도가 아니었다. 나머지 학들은 전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고 날개를 펼치곤 앞을 다투며 낭곤을 향해 날아갔다.
이때 서문설은 두 손을 앞으로 교차하며 주문을 외웠고 몸에 투명한 파란빛이 한 층 나타나더니 빛은 몸 앞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낭곤은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고, 그는 큰소리를 지르더니 발을 짚어서 몸을 뒤로 튕겨 하늘에서 흩날리는 얼음학과 거리를 두었다.
낭곤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고 왼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칼날에 그었다. 그러자 피가 터져 나왔다.
낭곤은 피가 묻은 손가락으로 칼날을 빠르게 문질렀고 순식간에 현묘하기 그지없는 핏빛 부문들이 나타났다.
윙! 윙!
검은 칼 위에 핏빛이 한층 드리웠고 낭곤의 몸에서 핏빛이 점차 감돌았다. 두려운 살기가 몸에서 풍기더니 낭곤은 기운이 점점 강력해져서 순식간에 천위 후기 정도까지 올라갔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눈빛이 살짝 변했다. 옆에 있는 이화관 제자가 ‘혈제(血祭)’라고 중얼거리며 두 손을 조심스럽게 소매에 넣었다.
“좋다.”
감수관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자 다시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리가 푸른 청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에 걱정을 하는 기색이 스쳤다.
혈제는 위력이 매우 강했지만 정혈원기를 많이 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법을 다루는데 실패할 위험도 있었다. 지금 서문설과 낭곤은 실력을 다루는 것일 뿐 목숨을 걸고 싸울 때가 아니었다. 혈제를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혈하도법! 혈전삼계!(血戰三界)”
낭곤의 눈에 흉악한 기색이 스쳤고, 그가 큰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핏빛 칼을 강하게 휘둘렀다. 촘촘하고 굵은 칼빛이 교차하며 나타났고 빛은 몸 앞에서 촘촘한 망을 만들어내며 십 장 정도 범위에 드리웠다.
날아오던 얼음학들을 핏빛 망이 삼키더니 얼음학들은 전부 터져버려서 빛으로 변하여 사라졌다.
“혈하참(血河斬)!”
낭곤이 소리를 지르더니 손에 든 칼을 세차게 휘둘렀다.
십 장 정도 되는 핏빛이 비단처럼 나왔고 눈부신 핏빛은 서문설을 향해 날아갔다. 기운이 너무 방대하여 마치 흉흉한 피바다가 허공에 나타난 듯이 밀려왔다.
칼빛이 스친 자리는 격하게 흔들렸고 커다란 균열이 하나 생겼다.
그 광경을 본 서문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고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두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서문설은 몸 앞에 파란빛이 빠르게 모여들었고 사람만 한 얼음꽃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빛과 차가운 힘을 뿜어냈다.
석목은 눈이 반짝였고 조금 놀랐다. 파란색 얼음꽃이 풍기는 차가운 기운은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에서 풍기는 음의 힘과 비슷했다. 하지만 서문설이 쓴 게 무슨 비술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핏빛 비단이 좁고 긴 공간 균열을 이끌고서 서문설의 몸 앞까지 밀려왔을 때 서문설은 손으로 앞쪽을 한번 짚었고 얼음꽃이 순식간에 날아서 핏빛을 맞이했다.
쾅!
이어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빛과 파란빛 고리가 허공에서 부딪쳤고 한창 대치했다. 주변의 공기가 들끓었으며 사람들은 뿔뿔이 뒤로 밀려났다.
석목은 뒷짐을 쥐고 서 있었는데 거센 바람을 맞았어도 꼿꼿이 서 있었다. 석목은 눈에서 옅은 금빛이 반짝였다. 빛고리 깊은 곳에선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지만 석목은 안쪽 상황이 뚜렷이 보였다.
핏빛은 기세가 절정에 달했지만 파란 얼음꽃은 가늠하지 못할 공법이었다. 꽃잎이 빠르게 돌아가자 한기가 전부 칼날 속으로 들어갔고 핏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 광경을 본 낭곤은 화가 난 소리를 질렀고 몸에 핏빛이 크게 번졌다. 그의 두 눈은 피로 잔뜩 물들어 있었고 이목구비가 일그러졌으며 미친 기색을 내비쳤다.
낭곤은 두 손에 핏빛 칼을 들고 있었고 다시 한번 칼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서 방대한 핏빛을 튕겼다.
서문설은 손으로 다양한 법결을 썼고 파란 얼음꽃이 크게 번지더니 쓱 소리와 함께 얇은 빛이 얼음 가운데서 튕겨 나와 엄청난 속도로 핏빛 칼 위에 떨어졌다.
퍽!
칼을 둘러싼 핏빛은 단번에 터져버렸고 파란빛은 기세가 줄어들지 않고서 낭곤의 어깨를 뚫어버렸다.
파란 얼음이 순식간에 낭곤의 어깨에서 퍼져나갔고 팔 전체가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이더니 점점 몸으로 퍼져나갔다.
낭곤이 큰소리를 질렀다. 마치 짐승이 큰 상처를 입은 듯이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는데 포악한 기운이 몸에서 흘러나왔다.
낭곤은 파란 얼음이 퍼지는 걸 신경 쓰지 않았고 혀끝을 깨물어서 칼에 피를 한 모금 뿜어냈다. 그러자 손에 든 칼에서 다시 한번 핏빛이 크게 번졌다. 그리고 은은하게 혈룡이 구불구불 나타나고 있었다.
“낭 사제! 안 돼!”
머리가 푸른 청년이 안색을 굳히며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진종에서는 개인이 싸우는 걸 금했다. 물론 악의 없이 치르는 대결은 팔대관주들이 묵인을 했고 종문의 고위 인사들도 모르는 척 넘어가 줬지만 두 사람은 지금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정도였다. 만약 낭곤이 사람을 죽일 마음을 품고서 서문설이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면 두 사람은 엄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
하지만 낭곤은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머리가 푸른 청년이 소리를 질렀지만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르릉!
핏빛 칼이 손에서 튕겨 나와 마치 광폭한 혈교도처럼 서문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조금 전에 비치던 빛보다 훨씬 강력한 위세를 몰고서 서문설을 공격했다.
강력한 위압감을 느낀 서문설은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 이어서 서문설은 손에 든 옥치를 연달아 흔들어서 하얀빛을 뿜어냈고 차가운 기운이 더욱 크게 번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얼음벽이 몇 개 만들어졌다.
얼음벽이 막 만들어졌을 때 핏빛 칼은 이미 날아왔다.
쩍! 쩍! 쩍!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얼음벽은 마치 두부처럼 닿는 순간 가루가 되어 부서져 버렸다.
서문설의 눈에 드디어 당황하는 기색이 스쳤다. 핏빛 칼이 이렇게까지 강력한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서문설은 다급하게 발을 짚어서 뒤로 날아갔다. 손은 움직이고 있었는데 마치 또 다른 수단을 쓰려는 듯 보였다.
“죽어!”
낭곤이 큰소리를 질렀고 두 눈에 핏빛이 크게 번졌다. 그리고 두 주먹을 몸 앞으로 짚으며 검지와 약지를 앞으로 가리켰다.
핏빛 칼날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그리고 짐승이 포효하는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순식간에 서문설을 따라잡아 머리를 갈라놓으려 했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고함을 질렀다.
이때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서문설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머리는 보라색이었고 눈썹도 보라색이었는데 뇌적으로 분장한 석목이었다.
석목의 두 손에 보라색 번개가 크게 번졌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보라색 검 기운이 손가락에서 튀어나가 번개 검망을 하나 만들어냈다.
핏빛 칼이 검망에 떨어지자 망은 순식간에 찢어졌다. 하지만 칼이 날아오는 속도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때 석목의 오른손에서 보라색 번개가 크게 번졌고 그 틈을 타서 칼을 덥석 잡았다.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한 손으로 핏빛 칼을 잡았고 보라색 번개가 터져버려서 석목은 손이 드러났다. 손 위에는 금색 비늘이 촘촘하게 둘러져 있었으며 비늘에서는 흑백인 두 갈래 빛이 번지더니 빛방패가 한 층 생겼다. 방패로 칼의 힘을 막아냈다.
번개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곧바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보라색 번개가 단번에 금색 비늘과 흑백 빛을 전부 막아버렸다.
핏빛은 점점 어두워졌고 상황이 드러났다.
“뇌적 사형, 사형……”
서문설이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엔 온통 놀라움이 어려 있었고 혼이 빠진 것만 같았다.
주변 이화관 제자들도 놀란 기색으로 석목을 바라보았고 몇몇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머리가 푸른 청년은 안색이 더욱 크게 변했다.
“가!”
석목이 손을 흔들자 양의 빛이 손바닥에서 날아갔다. 그리고 핏빛 칼 위에 강하게 떨어졌다.
핏빛 칼은 마치 크게 망가진 듯이 날아갔고 핏빛도 많이 사라졌다.
낭곤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다시 한번 반격을 하려고 했다.
이때 낭곤 옆에 푸른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머리가 푸른 청년이 귀신처럼 나타나서 팔을 흔들었다. 그리고 손가락 그림자로 낭곤의 가슴과 배를 가볍게 짚었다.
낭곤은 눈에서 핏빛이 번쩍이더니 핏빛은 이내 사라졌고, 눈빛은 점점 맑아졌다.
낭곤은 왼쪽 몸에 파란 얼음이 뒤덮여 있었다. 이어서 몸에 힘이 풀리자 곧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머리가 푸른 청년이 낭곤을 부축했고 그제야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