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30화 (530/916)

530화. 침체하다

동굴로 들어가자 석목은 눈이 번쩍 뜨였다. 동굴은 매우 드넓었다.

동굴은 천장이 매우 높았는데 마치 산봉우리를 전부 비워낸 것 같았다. 천장 위가 바로 산꼭대기였다.

천장에 사람 머리만 한 투명 보주(寶珠)가 수백 알 걸려있는데 차갑고 화려한 빛을 뿜어내며 동굴 전체를 환하게 비췄다.

석목은 동굴 속을 쭉 훑어보았다. 동굴 속에 여덟 석대가 선천 팔괘 모양으로 퍼져 있었고, 석대 위에 자운목(紫雲木)으로 만든 백 장 크기 책장들이 수십 개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온갖 책들이 꽂혀있었다.

석목은 위를 향해 날아올랐고, 반 시진이 넘게 돌아서야 겨우 이 여덟 석대를 전부 한 번씩 훑어보았다.

이진종이 가진 서적은 청란성지보다 훨씬 적었다. 그중 대부분은 도가 법문과 관련 있는 공법 비서와 각종 연단과 연기를 할 때 쓰는 고서였다.

이 밖에 종문과 관련 있는 고서에는 도가의 체계와 사상을 기록한 책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주변을 한 바퀴를 돌고 난 후에야 석목은 영추대를 지키고 있는 장로나 제자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제자들이 어떻게 고적을 바꾸는지 궁금하던 찰나, 이진종의 제자 한 명이 옆을 스쳐지나 팔괘 석대 중간에 멈춰 섰다.

팔괘 석대 가운데엔 사각형 돌기둥이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보라색 무늬가 촘촘하게 그려져 있었고, 기이한 부문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제자는 돌기둥 옆으로 다가가 보라색 옥각을 하나 꺼내서 돌기둥에 꾹 눌렀다.

잠시 후, 하얀빛이 돌기둥에서 나오더니 옥간으로 변하여서 제자의 손에 떨어졌다.

부진(符陣)으로 만들어진 돌기둥은 청란성지의 탑령과 매우 흡사했다.

남은 시간 동안, 석목은 백학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그리고 초저녁이 다 되어서야 석목은 동부로 돌아갔다.

이어서 연속 며칠 동안 석목은 이진종의 제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을 한 번씩 다녀왔다. 법보와 영기를 제련하는 ‘도기각(道器閣)’을 비롯하여 뇌적의 기억을 따라 이진종의 제자들이 평소에 하는 수련 생활을 익혔다.

이진종은 연기와 단도(丹道) 방면에서 청란성지보다 뛰어난 점이 많았다. 많은 단약들을 보면서 석목은 군침을 흘렸다.

그리고 석목은 단동이 말했던 공훈전에도 한 번 다녀왔다. 최상급 영석은 일대일 비율로 자금점으로 바꿀 수 있었는데 이 점도 청란성지와 매우 흡사했다.

이 밖에도 석목은 이진종에도 종문을 벗어난 자유 거래 구역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역 이름은 ‘역란방(易闌坊)’이었다. 역란방은 주된 산봉우리 열 개 중 하나인 극음봉(極陰峰)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통류방과 규모가 비슷했다.

* * *

며칠 뒤 아침.

석목은 뇌적의 동부에 자리한 비밀 석실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 손을 흔들어 방문을 열었다.

비밀 석실은 그리 크지 않았고 노란색 옅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떤 결계 같았다.

결계 속에는 검은색 수정이 빙 둘러싸여 있었고, 석목과 키가 비슷한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몸 주변에 적힌 마문이 번쩍였고, 검은 마기가 수정에서 흘러나와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검은색 띠 일곱 개가 몸에서 뿜어 나와, 몸 주변에서 위아래로 펄럭였다. 청년의 몸에 새겨진 마문과 맞물리는 것 같았다.

석목은 눈앞에 앉은 청년을 바라보며 흡족해했다.

석목은 역란방에서 마기를 차단하는 금제를 몇 개 샀다. 몇 번 시험을 해본 후에 마기를 정말 차단한다는 걸 확인하고는 분신을 소환해서 밤낮없이 석실에서 마살천나공을 수련하도록 시켰다.

바다 깊은 곳에 있던 마기 동굴처럼 마기가 풍부한 환경이 아닌지라 분신이 경지를 돌파하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하지만 다행히 분신이 바닷 속에서 짙은 마기를 머금고 있는 검은 수정들을 많이 가져와서 이렇게 수련을 할 수 있었다.

석목은 한 손을 흔들어 법결을 하나 펼쳤다.

분신의 몸에 새겨진 부문들은 빛이 점점 어두워졌고, 일곱 갈래 검은 띠도 다시 몸속으로 들어갔다. 분신이 두 눈을 떴고, 칠흑 같이 검은 눈으로 앞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석목은 분신을 한참 바라보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 때문인지 분신의 눈빛에 사악함이 어려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느낌은 처음 분신을 만들 때도 들었던 기분이었다. 하지만 분신이 수련을 한 경지가 높아질수록 이런 느낌은 더욱 강력해졌다. 특히 며칠 전 마살천나공 일곱 번째 단계를 본격적으로 수련하면서부터 느낌이 더욱 강렬해진 것 같았다.

석목은 분신이 마족의 공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그러리라 짐작했다.

이때 분신이 갑자기 팔을 들더니 마기 네 갈래가 손에서 뿜어 나와 순식간에 검은 촉수로 변하여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신이 또 다른 쪽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마기 세 갈래가 앞뒤로 뿜어나가서 촉수 세 개로 변하더니 조금 전에 날아간 네 촉수와 얽히고설키며 마기가 들끓는 검은 망으로 변했고 십여 장 범위에 드리웠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손을 들었다. 마기로 만든 일곱 갈래 촉수가 전부 터져버려 검은 안개로 변하더니 다시 분신의 두 팔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석목은 다시 한번 분신이 마기를 뿜어서 마살천나공을 쓰도록 지시했고 몸도 함께 움직이도록 시켰다.

이렇게 여러 번 시도를 한 후, 석목은 한 손을 흔들어서 분신을 멈춰 세웠고, 그의 미간에 드리운 주름이 더 깊어졌다.

“왜 그런 거지? 공법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니 반응이 더 느려지잖아. 특히 몸동작까지 함께 쓰면 더 느려지는 것 같아. 이런 정도면 기껏해야 약한 상대와 싸울 때만 쓸 수 있고, 경지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절대 상대를 공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쉽게 공격을 당할 거야.”

석목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약한 상대와 싸우는 데만 분신을 쓸 수 있다면 분신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런 상황은 예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석목은 조종 실력이 아직 서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점점 더 느려지는 것을 보니 조종 실력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만 같았다.

분신은 지금 공법을 일곱 번째 단계까지 수련하였다. 이대로라면 수련 경지가 다시 올라갔을 때 분신이 보여주는 반응과 속도는 더 느려질 터였다.

그런데 분신은 자아가 없어서 석목이 내린 지령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조종 실력에 문제가 있을 터였다.

잠시 후, 석목은 한숨을 내뱉더니 분신에게 계속 수련을 하라고 지시를 내린 후, 비밀 석실에서 나왔다.

* * *

동부 밖으로 나온 석목은 백학을 소환하여 하늘 위로 올라갔다.

반각 후, 백학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석목은 한 동부 앞에 내려섰다. 백학도 동부 앞에 세워 두었다.

이 동부는 보기엔 넓어 보이지 않았지만 매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동부 밖은 평평한 꽃밭이었고, 그 위에 다양한 색 꽃들이 요염하게 자라나 있었다.

석목은 꽃밭을 한번 훑어보았다. 이 꽃들은 선지영초니라 평범한 식물들이었다. 화려한 색깔과 아름다운 생김새가 주인의 분위기와 취향에 매우 걸맞았다.

“임 사매, 동부에 계십니까? 뇌적이 찾아왔습니다.”

석목은 형식상 한 마디 말을 했다. 석목은 이미 신식을 통해 연나가 동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석벽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더니 돌문이 열렸다. 그리고 요염한 여자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뇌 사형이군요. 들어와서 얘기하시지요.”

연나는 가볍게 웃고는 석목을 향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석목은 눈에 웃음기가 스쳤고, 고개를 끄덕이며 연나를 따라 동부로 들어갔다.

“동부에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는 왜 온 거야?”

돌문이 이제 막 닫혔을 때, 연나가 돌아서서 퉁명스러운 투로 말했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연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임도와 똑같이 말을 하고 행동하여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석목과 단둘이 남게 되면 곧바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석목은 속으로 쓴웃음을 절로 지었다.

“내 분신 말이야. 이미 마살천나공을 일곱 번째 단계까지 수련했어. 그런데 최근 들어서 조종을 할 때 반응이 점점 느려지고 있어. 혹시 그 이유를 알아?”

석목이 물었다.

“아, 네가 분신을 조종할 수 있기에 그런 것들을 전부 아는 줄만 알았지.”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연나는 이렇게 말했다.

“분신 조종? 그건 신식만 일부 빼내서 영기를 조종하듯 조종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석목이 멈칫하며 말했다.

“영기를 조종하는 일과 분신을 조종하는 일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다른 점도 많아. 영기는 신식이 충분히 강하다면 영기를 조종하여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있지. 하지만 분신은 달라. 분신이 취하는 행동을 조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분신이 쓰는 공격과 방어 행동을 비롯해서 전부 조종을 해야 해.

네 신식을 정확하게 몇 갈래로 나누어 각각 조종을 해야 한다는 거지. 이런 공법 종류를 따로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마 다루기 어려울 거야. 나는 네가 익숙하게 조종하기에 이미 그런 공법을 수련할 줄 알았어.”

연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수련을 한 것 같기도 하네. 남해성에 있을 때, 통천선교의 한 장로 손에서 ‘통천어령결’을 받았는데 그 속에 분신술과 관련된 비술이 있었어.”

석목이 잠깐 생각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 비술은 입문 등급인 비술인 것 같군. 분신의 실력이 강해질수록 네 분신술(分神術)이 요구하는 힘도 높아질 거야. 그런 현상이 생긴 건 정신을 분리하는 힘이 약해서 그런 거야.”

연나가 대답했다.

“그럼 신식의 힘과 분신술을 단련하기만 하면 이런 문제는 해결이 되는 건가?”

석목이 물었다.

“아마 그럴 거야. 네게 지금 필요한 건 높은 단계 분신술을 수련하는 거야.”

연나가 말했다.

“내 ‘통천어령결’은 통천선교에서 받은 거지만 통천선교는 또 이진종에 속해서 이런 공법 종류를 적어둔 비밀 전집이 있을 거야.”

“됐어, 이제 돌아가. 앞으로 큰일이 아니면 찾아오지 마.”

연나가 말했다.

“아…… 그래.”

석목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연나는 아마 두 사람의 관계가 들킬까봐 걱정이 돼서 그러는 것 같았다. 애당초 임도와 뇌적은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다. 진강 때문에 연결된 사이일 뿐이었다.

석목은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임도가 머물던 동부에서 나와서 백학을 타고 영추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석목은 영추대로 들어온 후, 곧바로 공법 비급이 있는 평대로 날아가 꼼꼼하게 찾기 시작했다.

지난번 왔을 때 대충 훑어보았는데 팔괘 중 손괘(巽卦) 위치 평대에 신식 공법을 수련하는 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반시진이나 찾고 나서야 석목은 일곱 번째 책자에서 이런 공법을 찾았다.

“운룡공신술(雲龍控神術). 보조 공법, 수련을 한 후 신식의 힘을 용으로 변신시켜 마음대로 현묘하게 변화를 줄 수 있으며 모두 일곱 번째 단계까지 있다. 구백오십 자금점이 필요하다.”

“한해심신결(瀚海尋神訣). 보조 공법, 수련을 대성하면 신식의 힘이 많이 증대된다. 다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총 열세 단계가 있으며 천이백 자금점이 필요하다.”

……

석목은 반나절이나 샅샅이 책들을 뒤져보며 총 서른 몇 가지 분신술과 관련된 공법 전집들을 보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석목은 눈이 가운데 선반 가장 오른쪽에 놓인 표지가 푸른 공법 전집에 떨어졌을 때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통천성령결(通天聖靈決)》. 총 십오 단계, 자금점 이천삼백 점.

“혹시……”

석목은 통천선교와 이진종의 관계를 떠올렸고 거의 확신했다. 통천성령결과 통천현령결 사이에 분명히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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