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32화 (532/916)

532화. 바다로 나가 폐관하다

“연월루가 이 정도 설명밖에 해줄 수 없다면 죄송합니다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합당한 경로로 얻은 게 아니라면 이 옥간에 적힌 공법이 진짜인지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이진종의 제자들은 아무도 진정한 구전현공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부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 그녀를 난감하게 하지 마십시요. 선생께서 꼭 확실하게 아셔야 하겠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때 삐걱하고 방문이 열렸다. 머리가 하얀 남자가 화려한 옷을 입고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석목이 백발인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나이가 마흔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머리는 이미 백발이었다. 눈에서 옅은 금빛을 뿜고 있었고 아무런 법력 파동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뇌 도우, 저는 이 연월루의 대관사 풍엽(馮曄)이라고 합니다. 그 질문은 제가 답해드리지요.”

풍엽은 손을 흔들어 아리따운 부인을 나가게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풍 대관사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뇌 도우님도 아시다시피 미양 성역은 삼대 성지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연합을 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안팎으로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계기든 청란성지 제자들의 잔혼을 줍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많이 모을 수 있었고, 차차 공법 비급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전현공도 그중 하나입니다.”

풍엽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표정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인 풍엽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볍게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그 말에는 얼마나 많은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풍엽 때문에 목숨을 잃었고 또 신혼마저 파멸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구전현공의 구결을 수련한 자는 애당초 많지 않았다. 추측해 봤을 때, 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이진종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삼대 성지는 겉보기에만 사이가 좋다는 걸 석목이 모를 리 없었다. 수많은 암투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 지경까지 왔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석목은 자세히 물어볼 수 없었다. 더 물어보았다가 상대에게 의심을 살 게 분명했다. 석목은 무엇인가 깨달은 척을 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풍 대관사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그럼 저도 더는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 * *

최상급 영석을 삼천 개 지급한 후, 석목은 오래 앉아있지 않았다. 석목은 연월루에서 나와 백학을 타고 이화봉에 있는 동부로 다급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동부에 걸린 모든 금제를 열고 비밀 석실로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두 옥간을 꺼내 들었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번 외출에서 이런 뜻밖의 수확을 얻을 줄은 몰랐다. 귀한 공법이 적힌 법전을 두 개나 획득했다.

석목은 먼저 ‘통천성령결’ 옥간을 꺼내서 이마에 가져다 대고 신식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반시진 후, 석목은 눈을 떴고 눈에 기쁨이 어렸다. 이어서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통천성령결’은 역시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예전에 수련한 어령결보다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대체로 구조가 비슷해서 예전에 수련한 공법을 기반으로 수련한다면 ‘통천성령결’도 빠른 시일 안에 익히게 될 터였다.

석목은 ‘통천성령결’ 옥간을 거두어들이고, 계속해서 신식을 구전현공 옥간 속으로 보냈다.

반나절 후에 석목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옥간에 기록된 건 정말로 구전현공이었다. 하지만 지금 석목은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 일부만 필요했다. 온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수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청란성지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진종에서 최상급 영석 삼천 개로 구천현공 구결을 배울 수 있는 건 엄청난 이득이었다.

구전현공의 오묘함은 ‘통천성령결’을 뛰어넘었다. 네 번째 구결을 수련하게 되면 실력이 대폭 상승할 터였다.

석목은 흥분을 간신히 억누르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세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하루 밤낮이 흘렀고, 석목이 천천히 눈을 떴다. 눈에는 온통 흥분된 기색이 드러났다.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부터는 음양을 벗어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행의 힘을 수련해야만 했다. 네 번째 단계는 오행의 힘 중 나무의 힘을 수련해야했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었고, 구전현공이 청란성지의 종파들을 공고히 만드는 공법 중 하나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머지 몇 단계는 오행의 힘을 전부 수련해야할 것이라고 석목은 예측했다. 구전현공엔 세계만물이 운행하는 현묘한 이치가 들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조화 신통으로도 불렸다.

왜냐하면 천지간에 있는 사물들은 대부분 음양오행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서 방안에서 왔다갔다 걸어 다녔다.

몇 년 동안 석목은 최선을 다해 구전현공을 수련했다. 그리고 연이은 격전을 치르며 성계 존재와도 싸우게 되었고 몸속 잠재력을 여러 번 자극하였다. 이제 음양의 균형도 거의 완벽하게 파악했고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는 이미 완성하기 직전까지 왔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갑자기 몸을 멈춰 세우더니 두 눈에 빛을 반짝이며 다짐했다.

곤륜성허 선발까지 반년이란 시간이 남았고, 조금 다급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세 번째 단계를 끝까지 돌파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곤륜성허는 그 위험을 예측할 수 없는데다가 참가자들은 전부 삼대 성지의 경지 높은 제자들이었다. 그전에 실력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분명 그만큼 가치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석목은 뇌적이 머물던 동부에서 구전현공을 수련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동부는 이진종인데다가 성계, 심지어 신계 존재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석목과 관련이 있는 이화관의 관주 팽악도 근처에 있었다.

다행히 뇌적과 임도 두 사람이 이화관에서 눈에 띄는 사람들이 아니라, 팽악도 두 사람을 잘 모르고 있어서 대충 넘어갔지만 최대한 팽악과 접촉을 피해야만 했다.

동부에 걸린 금제만으로는 사람들이 안쪽 상황을 엿볼 수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없었다.

결정을 내렸으니 석목은 연나에게 전신부로 소식을 알린 후, 또 다른 비밀 석실로 걸어갔다.

* * *

이튿날, 이진종의 운정선도 결계에서 석목이 날아서 나왔고, 석목은 망망대해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에 석목은 역란방에 들러 세 번째 단계를 돌파하는데 쓸 단약과 물건을 사느라 시간을 좀 보냈다.

운정선도에서 나온 석목은 백학을 불러서 묵직한 빛이 되어 망망대해 속으로 사라졌다.

운정선도가 자리 잡은 해역의 이름은 무진지해(無盡之海)였고, 끊임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엔 이진종이 탐색하지 못한 곳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다.

석목은 앞을 향해 날아갔고, 그는 신식을 보내서 바다 깊은 곳 상황을 탐색하며 갑자기 안색을 굳혔다.

천은성은 천지영기가 매우 짙어서 바다 깊은 곳에 수많은 바다 요수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제 막 깊은 해역에 도착했는데 천위 실력인 요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더 깊은 곳에서 성계 경지인 요수를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더 조심스럽게 깊은 곳으로 향했다. 마냥 날아갈 수만은 없어서 석목은 백학을 거두어들인 후, 영우비차를 불러서 법력 파동을 최대한으로 통제하며 경지가 높은 요수에 들킬 위험을 막았다.

사흘 밤낮이 지난 뒤, 석목은 한없이 깊은 바다에 도착했다.

석목은 비차 속도를 늦췄다. 여기라면 훤히 보이는 곳에서 수련을 해도 이진종 사람들이 알 리가 없었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폐관수련을 하기 적합한 곳을 찾았다.

반시진 후, 커다란 바다 섬이 눈에 들어왔다.

“음!”

석목은 눈이 번쩍였다.

섬은 면적이 매우 넓었는데 수십 리는 되어 보였다. 더 현묘한 건, 섬은 얼음이 한 층 깔려있어서 온도가 극히 낮았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화산이 폭발하고 있어서 한없이 뜨거웠다. 이곳은 빙화(冰火)섬이었다.

석목은 차가움과 뜨거움이 연결된 산봉우리에 내려섰고, 손가락을 굽혔다가 튕겼다. 그러자 푸른색 검 기운이 줄줄이 날아가서 가볍게 산에 동굴을 하나 만들어냈고, 석목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에 들어가자 차갑고 뜨거운 기운이 교차하는 기이한 느낌이 사방에서 끊임없이 몰려왔다.

석목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석목이 수련하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였다. 차갑고 뜨거운 기운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모공을 통해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몸속에 깃든 음과 양의 힘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섬은 운정선도와 적잖이 떨어져 있었고, 매우 외진 곳이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밖에 금제를 설치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스미는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을 막으면 그 느낌을 찾을 수 없을 터였다.

석목은 분신을 꺼내서 풀어놓았다. 그리고 비밀 석실에서 분신 혼자 수련을 할 수 있게 만든 후, 석목은 다른 비밀 석실로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구전현공을 시전했다. 순간 두 팔에서 흑백 빛 두 갈래가 밝아졌다.

석목은 입으로 어려운 주문을 외우자 흑백 빛이 천천히 몸에서 퍼졌고, 이어 얽히고설키더니 합치길 시도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고, 눈에는 기쁨이 어려있었다.

섬의 특별한 기후가 적잖은 영감을 주었다. 그동안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도 많이 발전했다.

석목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밖은 한창 동이 터서 동쪽 하늘에서 빨간 태양이 천천히 솟아오르고 있었다.

석목은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 산봉우리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자세를 이상하게 비틀었다. 흡일식을 수련하는 자세였다.

몇 년간 석목은 다양한 곳을 떠돌아다녔다. 성역 변경의 부석성 요새, 그리고 어쩌다 이진종의 성지까지 왔다. 생각해보니 꽤 오랫동안 탄월식과 흡일식 등 신기한 법결을 수련하지 않았다.

무작정 조용하고도 외진 섬으로 왔으니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두 가지 법결을 잘 보완하기로 마음먹었다.

흡일식은 수련 속도를 빨리 늘릴 수 있었고, 이번이 얼마나 좋은 기회이겠는가?

잠시 후에 석목은 꿈나라로 들어가 하얀 원숭이 화신으로 변하였다.

석목은 익숙한 느낌이 들었고, 주변 햇빛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이어 석목은 안색이 변했다. 햇빛이 이전보다 두 배 정도 빨리 모여들었다.

석목은 잠깐 기뻐하다가 곧바로 마음을 가라앉혔고, 흡수하고 토하길 반복했다.

해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제야 석목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석목은 정신이 맑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일어서서 기지개를 한번 쭉 켜며 신식으로 몸을 훑더니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석목은 신식의 영해 속에서 반짝이는 금색 구슬이 하나 나타났다. 비록 매우 작았지만 단 한 번 수련을 해서 응결시킬 수 있었기에 놀랍기만 했다.

석목은 동굴로 돌아가지 않았고, 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 구결을 외우며 수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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