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화. 꿈속 전쟁
한참 후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둥근달이 동쪽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석목은 구름 속에 숨었다가 나타나길 반복하는 둥근달을 바라보며 탄월식 자세를 취한 채로 또다시 꿈속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달빛이 모여들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은 기분이 좋아졌다. 흡일식처럼 탄월식이 달빛을 흡수하는 속도도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내 수련 경지가 올라가 천위 무인이 되어서 그런 건가……”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좋은 일이었고,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밤이 빠르게 지나갔다. 석목은 머릿속에 은빛 찬란한 구슬이 하나 나타났다.
이렇게 밤낮이 교차하며 한 달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한 달 중에 절반을 들여 석목은 흡일식과 탄월식을 수련했고, 머릿속에서 햇빛 구슬과 달빛 구슬이 이미 아이 주먹만 해졌다.
석목은 동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법력과 진기를 동시에 머릿속에 집어넣어 두 구슬에 닿게 만들었다.
퍽!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두 구슬이 깨져버려 하나는 태양 허상으로 또 하나는 달 허상으로 변하였다.
두 허상은 한쪽이 찢어지더니 매우 순수한 진기와 순수한 법력으로 변하여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근맥을 따라 흐르더니 단전 영해에서 모였다.
한참 후, 석목은 눈을 떴고 얼굴에 기쁨이 어려 있었다.
몸속 진기와 법력은 모두 적잖이 발전했고 특히 술법들의 수련 경지가 크게 올랐다.
탄월식을 수련하길 멈춘 후, 석목은 탄월식의 경지가 계속 월계 초기에 머물렀는데 지금은 경지가 한 단계 올라 월계 초기 정상에 도달했다. 그리고 월계 중기와 단 한 발자국 차이를 두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석목은 심혈을 기울여 구전현공을 수련하였고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직접 겪은 경험으로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도 차차 한계를 뚫으려고 했다.
석목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 깜짝할 사이 또 두 달이 흘렀다.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서 동굴 속에 앉아있었고 몸에 흑백 두 갈래 빛이 각각 몸통을 절반씩 뒤덮고 있었다.
한참 후에 흑백 빛이 천천히 줄어들어 두 팔만 감쌌다. 이어서 빛은 천천히 두 팔 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이 눈을 뜨더니 일어서서 흡족한 기색을 내비쳤다.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를 드디어 대성까지 수련하였고 돌파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네 번째 단계를 수련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운과 통찰이 필요한 부분이라 너무 성급할 필요가 없었다.
석목은 천천히 동굴에서 걸어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산꼭대기 위로 올라가 다시 주변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대낮이라 하늘이 맑게 갰고,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바다는 푸르렀고, 시선 끝자락엔 하늘과 물이 이어졌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섬에 서 있자니 마치 파란 공간에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하늘과 바다가 같은 색을 띠는 세상에서 석목은 스스로 유난히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석목은 풍경이 놀랍기만 했다. 그래서 잠시 수련과 관련된 일들을 내려놓고, 가슴을 활짝 편 채로 눈앞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고, 석양이 점점 내려앉았다. 동쪽 하늘에서 밝은 달이 떠올랐다.
석목은 이미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늘과 나란히 떠있는 해와 달을 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심경이 기이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머릿속에 또다시 수련과 관련된 일들이 떠올랐다.
석 달 동안 석목은 탄월식과 흡일식을 부지런히 수련하였고 경지가 천위 초기 정상까지 다가갔다.
술법을 수련하여 몸속 법력은 이미 월계 초기 정상에 도달했고 신식의 영해에 다시 한번 은백색 구슬을 응결시켰다. 이제 통천성령결을 수련하여 법문을 깨닫기만 한다면 단번에 술법 경지를 올릴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석목은 무도 실력이 천위에 진입한 후 술법을 매우 적게 썼고, 이미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다.
석목이 만난 상대는 대부분 천위 실력을 뛰어넘어서 월계 술법을 쓰기 좀 초라했다. 하지만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를 수련하고 음양이 균형을 이루는 도리를 깨달은 후, 술법을 함께 수련한다면 무도를 수련하는 경지를 높이는데도 꽤 효과가 있다는 걸 느꼈다.
석목이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느긋하게 움직일 수 없었고, 석목은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탄월식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두 눈을 감더니 곧바로 꿈속으로 들어갔다.
* * *
하지만 이때, 석목은 깜짝 놀랐다. 이곳은 익숙했던 꿈속 세계가 아니었다.
석목은 백원왕으로 변하여 만 장 정도 높이 산봉우리 정상에 서 있었다. 몸에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금색 갑옷을 둘렀고, 손에는 금색 곤봉을 들고 있었으며 주변 운무가 거대한 산봉우리들을 스쳐 지나는 게 마치 선경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백원왕 맞은편엔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었는데 똑같이 몸집이 거대한 한 사람이 봉우리 위에 서 있었다.
운무 속에 비치는 거대한 이는 은색 갑옷을 입었고 손에 은색 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를 쥐고 있었다. 더욱 신기한 점은, 그의 이마에 세로로 자란 눈이 하나 있었고, 그 위로 은색 빛을 번쩍이며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서 있었다. 각자 풍기는 강력한 기운 파동이 부딪쳐서 허공이 흔들렸다.
때는 황혼이었고, 먼 하늘 끝에 석양과 함께 갓 떠오른 밝은 달이 걸려있었다.
“이건……”
석목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알아차렸다. 또 특별한 꿈속에 들어온 것이었다.
석목은 조금 흥분이 되었다. 예전 경험으로 비춰보면 이런 특별한 꿈에 들어올 때마다, 적잖이 수확을 얻었다. 백원왕과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일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백원왕과 앞에 서 있는 은색 갑옷을 입은 삼목(三目) 장군은 잠깐 대립하더니 두 사람의 모습이 동시에 희미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앞으로 날아갔다.
백원왕은 두 눈에서 금빛이 반짝였고, 손에든 금색 곤봉에서도 빛이 크게 번졌다. 굵은 곤봉 그림자가 순식간에 천지 사이에 나타나 번쩍이더니 똑같이 생긴 곤봉 그림자를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를 이끌며 앞쪽 삼목 장군에게 향했다.
곤봉이 스친 자리에서 금빛이 눈부시게 튕겼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어두워졌다!
삼목 장군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백원왕이 공격을 하는 순간, 몸에 눈부신 보라색 빛이 번졌고, 삼첨양인도의 겉에도 보라색 빛을 감았다.
삼목 장군이 두 팔을 앞으로 힘껏 휘두르자 주변에 은색 칼 그림자가 촘촘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은색 홍수처럼 밀려왔고, 금색 곤봉 그림자들과 부딪쳤다.
우르릉!
큰소리가 울려 퍼졌고, 금과 은 두 가지 빛이 얽히고설키며 큰소리를 만들어냈다. 금색 또는 은색 기류가 사방팔방으로 밀려 들어갔고 너무 촘촘하여서 그 수를 셀 수 없었다.
두 사람 주변 공기가 격하게 흔들렸다. 두 가지 색깔 기류가 스친 자리에 공간 균열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하지만 백원왕과 삼목 장군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고, 공간 균열 속에 서서 각자 손에 든 병기를 들고 싸웠다. 공간 균열은 두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백원왕은 손에 든 금색 곤봉을 이리저리 바꾸며 매우 훌륭한 곤법을 썼다. 하지만 삼목 장군도 어디에서 온 능력자인지 손에 든 삼첨양인도를 매우 민첩하게 돌렸다. 백원왕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둘은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싸웠다. 산꼭대기에 나타났다가 또 만 장 멀리 떨어지기도 했고, 바다 깊은 곳에 나타나기도 했다.
한순간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선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수많은 산봉우리가 터지면서 돌들이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파도가 하늘 높이까지 접히며 밀려왔고, 귀를 찢을 것만 같은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오랫동안 싸웠어도 백원왕은 포기하지 않았다. 흉악한 몰골로 손에 든 금색 곤봉으로 삼목 장군의 삼첨양인도를 공격했고 튕겨서 날렸다. 그리고 왼손에서 하얀빛이 크게 번지더니 주먹을 앞으로 힘껏 날렸다.
하얀빛이 미친 듯이 용솟음쳤고, 쿵 소리와 함께 하얀빛이 화염으로 변하여 손에서 날아갔다. 그리고 커다란 화염 주먹으로 뭉치더니 삼목 장군을 향해 밀려갔다.
화염 주먹이 스친 허공은 한참 동안 일렁였고, 마치 불 때문에 녹아내리려는 듯했다.
“양의 힘!”
백원왕의 몸속에 있던 석목은 깜짝 놀랐다.
이런 하얀 화염 공격은 석목도 쓸 수 있었지만 위력은 절대 백원왕처럼 강력하지 못했다.
삼목 장군은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두려운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삼목 장군은 입가에 힘을 주더니 손바닥을 휘갈겼다.
보라색 빛이 미친 듯이 솟아올랐고, 여기저기 뒤엉키며 순식간에 연꽃잎으로 변하였다. 꽃잎이 파도처럼 층층이 밀려왔고, 커다란 보라색 연꽃으로 변하여 허공에서 날아오는 화염 주먹을 맞았다.
보라색 연꽃은 하얀 화염 주먹보다 조금 작았고, 생김새도 특별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위력은 매우 놀라웠다. 연꽃이 빙글빙글 돌며 꽃잎에 보라색 빛이 흐르더니 커다란 화염 주먹을 막아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대치했다.
백원왕은 큰소리를 내면서 울부짖으며 오른쪽 손가락을 움직여 번개처럼 손 그림자를 만들어내더니 손 그림자를 앞으로 밀어버렸다.
검은빛이 튕겨 날아왔다. 극도로 차가운 기운도 함께 밀려왔고, 순식간에 하얀 화염 주먹으로 스며들어 주먹과 합쳐졌다.
화염 주먹은 겉에서 흑백 빛이 번갈아 나타나더니 검은색도 하얀색도 아닌 혼돈된 기체로 변했다.
혼돈된 기체가 빠르게 주변을 감싸며 보라색 연꽃 안쪽으로 드리웠다. 수많은 부문이 안에서 나왔고, 눈 깜박할 사이 팔각형 봉인으로 만들어지며 연꽃을 안에 꽁꽁 가둬버렸다.
봉인 속 연꽃은 마치 호박석 속에 든 파리처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뿜어내고 있던 보라색 빛도 응고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삼목 장군은 안색이 변했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것 같았다.
이때 금빛이 반짝이더니 백원왕이 손에 든 금색 곤봉이 순식간에 불어나서 마치 한 줄기 금빛처럼 순식간에 백 장 거리를 뛰어넘어, 놀라운 속도로 삼목 장군의 가슴을 때렸다.
펑!
삼목 장군은 입으로 피를 한 모금 뿜었고, 몸통이 날아가 버렸다.
백원왕 몸속에 있던 석목은 어안이 벙벙했다.
삼목 장군은 수백 장이나 날아가 웅장한 산봉우리에 부딪쳤고, 쿵 소리와 함께 산봉우리가 터져버렸다.
그리고 삼목 장군은 폭발하는 힘에 반동을 주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가슴에 두른 은색 갑옷이 찢어졌고, 입가에 핏자국이 한 줄기 묻어있었다. 크게 다친 것 같았다.
이때 삼목 장군은 검지와 중지를 합쳐서 고개를 들더니 곧바로 이마에 자라난 세 번째 눈을 짚었다. 그 눈에서 은색 빛이 크게 번졌다.
그 모습을 본 백원왕은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손에 든 곤봉을 치켜들고서 앞으로 날아갔다.
* * *
이때 석목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꿈에서 깨어버렸다. 눈앞에 놓인 광경이 변하면서 석목은 다시 섬 위에 놓였다.
“조금 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쟁 한가운데 빠져 있었던 터라, 석목은 정신이 혼미했다.
이때 석목은 무엇인가 떠오른 듯이 두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조금 전에 봤던 모든 것들, 그러니까 흑백 빛이 하나로 융합되어 혼돈된 기체로 바뀐 것, 그런 변화가 석목이 그토록 원했던 음양을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방법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곧바로 두 눈을 감고서 집중하며 기억을 되돌렸다. 조금 전에 봤던 모든 광경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떠올려 자세히 분석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