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화. 나무 부문
한 번, 두 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섬에서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런 거였군. 하하, 드디어 알게 되었어!”
석목은 머릿속에서 빛이 반짝 스쳤고, 고개를 들고 큰소리로 웃었다.
이어서 석목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팔 겉에서 흑백 빛이 크게 번지더니 소용돌이치며 몸에 드리웠다.
석목은 두 손을 맞잡으며 손자국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꿈속에 나타난 백원왕의 손자국과 비슷했다.
석목 주변 흑백 빛이 격하게 흔들리며 서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석목의 두 손에서 흑백 빛이 번갈아가며 소용돌이쳤다. 검은빛 한 줄기와 하얀빛 한 줄기가 천천히 하나로 융합되며 혼돈된 기체 한 줄기로 뭉쳤다.
석목은 매우 흡족했다.
이 한 줄기 혼돈된 기체만 있으면 다른 검은빛과 하얀빛도 전부 융합되어 혼돈된 기체로 바뀔 터였다.
이로써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를 드디어 이루었다!
몸속 혈맥 때문에 석목이 수련한 건 여전히 약한 구전현공이었지만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나중에 몸속 혈맥을 승화시켜서 진정한 천수 혈맥을 각성시키고, 힘을 조금만 더 들인다면 진정한 구전현공으로 바꿀 수 있었다!
석목은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우렁찬 소리가 주변으로 흘러나갔고, 섬이 가볍게 떨리며 근처 바다에서 물결이 퍼졌다.
이 소리는 일각이 지나서야 멈추었다.
이때 석목은 온몸에 혼돈된 기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석목은 혼돈된 기체를 바라보며 눈빛을 계속해서 번쩍였다. 너무 기뻤다.
음과 양의 힘이 하나로 융합되어 만들어진 혼돈된 힘을 바라보며 석목은 그 속에 든 현묘한 이치를 느낄 수 있었다. 혼돈된 힘은 엄청나게 오묘했다.
이어서 앞쪽 먼 곳에 있던 화산 입구에서 우르릉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굵직한 용암 기둥이 뿜어 나와 하늘에 뜬 구름을 찔렀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며 한 손을 흔들었다. 손목 굵기만 한 혼돈된 기운이 날아나가서 화산 입구 위에 나타났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법결 몇 개를 썼다.
수많은 혼돈된 부문이 기체에서 튀어나와 팔각형 봉인진법을 만들어냈다. 모양은 마치 팔각형 원반 같았는데 단번에 화산 입구에 드리웠다.
용암 불기둥이 봉인에 부딪쳤지만 팔각 봉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혼돈된 빛이 반짝였고, 뿜어 나온 용암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화산 입구 위쪽에 팔각 봉인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그 위로 혼돈된 빛이 번쩍였다.
석목이 다시 손을 흔들자 팔각 원반이 날아서 빠르게 줄어들더니 주먹만 한 크기로 변하여 손에 떨어졌다.
원반 안에는 붉은색 물건이 한 줌 들어있었는데 바로 조금 전에 뿜어 나온 용암이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 원반을 던져버렸고, 혼돈된 빛을 날려 원반 속으로 스며들게 만들었다.
원반은 빛이 반짝이더니 찢어져 버렸다.
쏴!
한 묘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용암이 허공에 나타났다가 다시 섬 밑에 있는 바닥에 떨어졌다.
칙칙!
흙이 용암 때문에 녹아내렸고, 그 위에서 하얀 화염이 피어올랐다. 한참 뒤에 뜨거운 용암은 천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기쁨에 벅차올랐다.
이 봉인술은 혼돈된 기운을 기묘하게 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꿈속에서 백원왕에게 직접 배운 걸 써보니 위력이 역시 대단했다.
혼돈된 기운은 음과 양의 힘이 융합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혼돈된 기운으로 만들어낸 봉인은 매우 단단했으며 정확하게 쓰기만하면 봉인하지 못할 물건이 없었다.
혼돈된 기운을 사용하는 기묘한 방법들은 나중에 천천히 연구할 예정이었다. 절대 실망하지 않을 터였다.
석목은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예상 밖으로 구전현공을 빨리 익혔지만 곤륜성허 선발 시간이 아직 조금 남아있어서 석목은 섬에서 계속 수련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석목은 고민이 생겼다.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아서 공법을 수련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순간 석목의 눈빛이 번쩍이더니 곧바로 옥간을 꺼내 들었다.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였다.
무엇을 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으니 차라리 네 번째 법결을 익히고, 수련을 할 수 있는 만큼 하기로 다짐했다.
석목은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 대고 신식으로 그 속을 탐색하며 두 손가락으로 법결을 쓰는 자세를 취한 후, 무릎 위에 옥간을 가볍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칠일 후, 석목은 눈을 떴고 눈에는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
네 번째 구결은 이진종이 현공을 수련한 청란성지 제자들의 온전치 못한 기억들을 긁어모아 얻은 것이라 완벽하지 않았다. 대충 한번 훑어보았는데 법결을 익히기 꽤 어려울 것 같았다.
다행히 앞선 세 단계 수련에서 기반을 잘 다졌고, 공법 속 중요한 부분들은 온전한 공법과 연결이 되어서 아예 깨닫지 못하고 수련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몇 부분은 여러 번 시도를 해야만 했다.
그동안의 명상과 깊은 깨달음을 통해 석목은 간신히 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수련은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후, 석목은 다시 두 눈을 감고서 네 번째 단계 구결을 한 번 묵념을 하며 깨닫기 시작했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석목은 두 손으로 끊임없이 법결을 썼고 입으로는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몸에서 푸른빛이 줄기줄기 밝아져, 몸통 겉에서 헤엄을 쳤는데 밝기는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푸른빛은 서로 얽히고 이어지더니 겉면에 푸른색 줄기가 줄줄이 났는데 마치 이파리에 드리운 맥 같았다.
푸른빛줄기들은 끊임없이 석목의 몸에서 헤엄을 쳤고, 계속해서 묶이고 굵어졌다. 그리고 서로 이어지며 푸른색 기운이 흘러 다녔다.
보름이 흘렀다. 석목의 몸 겉면에 푸른빛줄기가 촘촘하게 덮여있었고, 빛을 뿜어냈는데 몸통과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때 석목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두 눈을 번쩍 떴다. 몸속 푸른빛이 번쩍이며 몸속으로 스며들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두 손을 바라보았고, 놀랍고 기쁜 마음이 동시에 휘몰아쳤다.
예전에 영령과와 수령왕의 신목을 흡수한 덕분에 석목은 몸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우 순수한 나무 속성 영기가 가득 모여 있었다. 네 번째 단계를 시도만 하려고 했는데 수련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조금 전에 석목은 이미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에 입문하였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석목은 일어섰다. 몸속에 들어있던 나무 속성 영기는 전부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인 나무의 힘으로 변하였고, 구결을 따라서 계속 정진하려면 바깥 천지에 있는 나무 속성 영기를 흡수해야만 했다.
빙화도는 차가운 힘과 뜨거운 힘이 가득했지만 식물이 적어서 나무 속성 영기도 매우 희박했다. 빙화도는 구전현공을 수련하기에는 적절한 곳이 아니었다.
석목은 동굴 안 비밀 석실로 들어가서 분신을 거두어들인 후, 영우비차를 불러 두꺼운 빛으로 변해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잠깐 사이에 석목은 근처에 자리한 또 다른 섬에 도착했다. 섬에는 나무와 식물이 가득했다.
지금은 울창한 여름이라 초목이 가장 무성할 때였다. 그리고 바다는 기후가 따뜻하고 촉촉해서 섬 위 초목들은 싱싱하니 생기가 흘러넘쳤다. 특히 섬 위에 영초와 영수들이 있어서 나무 속성 영기가 유난히 짙었다.
석목은 너무 기뻤다.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는 나무 속성 영기를 많이 필요로 했고, 도착한 섬은 초목이 매우 무성하여 수련하기에 딱 좋았다.
그는 섬 위에서 내려가 동굴 속에 분신을 내려놓았고, 계속해서 스스로 수련하도록 시켰다. 그리고는 숲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숲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몸 상태를 차분하게 조절한 후 다시 구전현공을 시전했다.
잠시 후에 석목은 몸에서 푸른빛이 크게 번졌고, 푸른색 빛줄기가 얼기설기 나타나서 몸을 둘러쌌다. 이어 몸통에서 강력한 흡인력이 드러났다.
순간 석목을 중심으로 주변 백 리 안 나무와 식물들, 그리고 공기 속 푸른 기운이 얇은 줄기로 변해서 모여들더니 석목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단전의 영해에 있는 혼돈된 기운을 거쳐서 나무 속성 영기로 변했다.
나무 속성 영기가 석목의 몸에 들어가자 몸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빛은 점점 더 밝아졌고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도 빠르게 익히기 시작했다. 석목은 속이 매우 후련했고, 그는 눈을 감고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고, 주변에서 모여드는 나무 영기가 적어지자 그제야 석목은 눈을 떴다. 그리고 안색이 변해 있었다.
울창하던 숲이 전부 누렇게 변해버렸고, 초목이 말라버려서 죽음만이 깃든 섬으로 변하였다.
“네 번째 단계가 이렇게 지독하다니!”
석목은 깜짝 놀랐다. 구전현공을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되었다.
석목은 몸을 움직여 분신을 거두어들인 후 다른 섬으로 향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석목은 면적이 수십 리 정도 되는 섬 위에 서 있었고, 푸른색 빛을 감싼 채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섬 위 식물들은 푸른빛을 줄줄이 뿜어내었고, 빛은 곧바로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무성하던 식물들이 점점 누렇게 변해갔다.
석목이 두르고 있는 푸른빛은 점점 굵어졌으며 눈이 부셨다. 한 달 전보다 몇 배나 더 밝아진 것 같았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서 몸속에 깃든 나무의 힘을 움직여 보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 나무의 힘이 전부 간으로 모이더니 순식간에 간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푸른빛이 반짝였고, 간에서 푸르고 작은 가마 모양 부문이 서서히 나타났다. 하지만 빛은 매우 희미했다.
“좋아! 드디어 나무 부문으로 응집시켰어. 네 번째 단계에 이제 제대로 입문했군. 시간을 더 들이면 완전히 소성 경지에 들어설 수 있겠어.”
석목이 눈을 뜨더니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많이 흥분을 한 상태였다.
그가 네 번째 단계를 이렇게 순조롭게 수련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예전에 삼킨 수령왕의 신목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석목은 아마 모를 터였다.
석목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간에 적힌 희미한 부문이 반짝였다.
이어서 오른쪽 주먹 겉에서 푸른빛이 끊임없이 번쩍였고, 푸른색 빛줄기가 줄줄이 나타나 서로 엉키더니 굵은 빛이 덩굴처럼 뭉쳤다.
먼 곳에서 바라보니 석목의 오른쪽 손의 피부도 갑자기 나무 무늬로 변하였다. 그리고 짙은 나무 속성 기운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은 생기를 뿜었는데 마치 푸른 덩굴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재미있네!”
석목은 오른쪽 주먹을 바라보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몸속 천수 혈맥 때문에 네 번째 단계를 수련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팔 하나 정도, 또는 팔 하나와 비슷한 크기만 나무로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입문했으니 지금은 손 하나만 나무로 변했고 이 정도도 나쁘지 않았다.
석목이 이제 막 목화(木化)를 기묘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할 때, 그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바다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더니 거대한 소용돌이가 수도 없이 나타났다. 소용돌이는 방대한 요기를 풍기며 밀려왔고, 그 속에서 온몸이 검은색인 해수가 한 마리 튀어나왔는데 커다란 해사(海蛇) 요수였다. 요수가 풍기는 기운은 이미 천위 중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머무는 섬들을 몇 곳이나 옮기면서 해수에게 습격을 자주 당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계 정도 수준이라 대충 싸워도 괜찮았는데 천위 요수는 처음 나타났다.
쓱!
둘은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석목은 마음이 다급하여 무심결에 오른쪽 팔을 들어서 앞을 막았다.
펑!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사는 꼬리가 마치 강철채찍 같았고, 겉에 촘촘한 가시가 자라나 있었다. 석목은 엄청난 힘이 오른쪽 팔을 타고 몸까지 전해지는 걸 느꼈고, 뒤로 튕겨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