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35화 (535/916)

535화. 목화(木化)

석목은 십 장 정도 날아가서야 간신히 몸을 바로 세웠다. 오른쪽 팔은 이미 피범벅이 되었다. 아마 공격을 막아낼 때 구전현공의 힘도 쓰지 않았고, 금비늘도 쓰지 않았기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이때 손목에 난 상처가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회복이 되었고, 눈 깜박할 사이에 상처는 전부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다급하게 공법을 썼다. 목화가 된 몸은 오른쪽 주먹에서 오른쪽 팔꿈치까지 확대 되었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오른쪽 팔이 목화가 되면서 겉에 푸른 줄기를 휘감으며 뭉쳤고, 상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엔 이런 신기한 회복 능력이 있었다.

이때 해사 요수가 큰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커다란 몸이 비린내가 풍기는 요기를 몰고 오며 다시 한번 석목을 덮쳤다.

“죽어!”

석목이 차갑게 소리를 지르더니 몸속 진기를 명수결로 바꿨다. 목화가 된 오른쪽 팔이 순식간에 살로 변하더니 주변에서 파란빛이 뿜어 나왔다.

석목은 한 손을 흔들어 남정번을 꺼냈다.

쏴!

바닷물이 소용돌이쳤고, 커다란 수룡 세 마리가 나타나서 흉악하게 날뛰며 해사 요수를 덮쳤고, 수룡들은 해사 요수보다 컸다.

쾅!

커다란 짐승들이 부딪쳤고, 수룡 세 마리가 터져버렸다. 하지만 해사 요수도 강력한 힘 때문에 튕겨져 날아가 몸통이 바다 속으로 빠졌다. 그리고 열 몇 장 높이의 파도가 하늘로 치솟았다.

석목이 낮게 소리를 지르며 두 팔에 혼돈된 빛을 크게 감고 주먹을 앞으로 날렸다.

훅! 훅!

혼돈된 주먹 그림자 두 갈래가 번개처럼 튀어나가 해사 요수의 몸에 부딪쳐 단번에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해사 요수의 커다란 몸이 순간 멈추더니 몸에서 풍기던 검은색 빛이 어두워졌고, 또한 흘러나오는 기운도 많이 약해졌다.

요수는 눈에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계속해서 울부짖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요수는 경지가 순식간에 천위 중기에서 지계 후기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잠깐만 지속되었고 요수는 기운을 다시 빠르게 회복했다.

석목은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이것이 바로 석목이 생각해낸 혼돈된 기운을 기묘하게 사용하는 법이었다.

혼돈된 기운을 적의 몸속으로 넣으면 혼돈된 봉인술을 써서 몸속 진기와 법력 대부분을 봉인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짧은 시간 동안 진기의 흐름이 불규칙하게 변하여서 경지가 대폭 떨어진 것이었다.

오늘 시도해보니 역시 효과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지속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리고 상대가 수련을 한 경지에 따라 다른 효과를 불러올 터였다.

그리고 수련 경지가 석목보다 훨씬 높은 적이라면 아마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기운을 빠르게 회복하는 해사 요수를 바라보며 석목은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어서 석목은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고 손에 든 남정번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솨아아!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사 요수 주변에 있던 물은 전부 사라졌고, 커다란 구체로 변하여서 요수를 안에 가둬버렸다.

물로 된 구체는 투명한 빛을 뿜었고, 그 안에 갇힌 요수는 격하게 움직이며 벗어나려고 시도를 했다.

하지만 몸속 요력 대부분을 봉인당해 실력이 크게 떨어졌고, 구체는 격하게 흔들렸지만 한참 동안 부서지지 않았다.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석목이 구체 위에 나타났다. 석목은 오른팔에서 검은빛이 크게 번졌고, 극도로 차가운 기운을 풍기며 단번에 구체를 공격했다.

퍽!

커다란 구체가 순식간에 하얀 얼음이 되었고, 요수를 그 안에서 얼려버렸다.

구전현공이 가진 음의 힘은 매우 대단했다. 해사 요수는 비록 천위 중기였지만 실력이 줄어들면서 몸속 요력도 음한 기운이 스며드는 걸 막아내지 못했다. 온몸의 혈맥은 전부 얼어버렸으며 기운도 빠르게 줄어들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얼음 구체가 바다 위에서 둥둥 떠다녔고, 파도와 함께 유유히 흔들렸다.

석목이 얼음 구체 위에 서서 매우 흥분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천위 중기인 물 속성 요수는 바다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더욱 강력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천위 후기 요수와 비슷했다.

평상시에도 그런 요수를 죽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꽤 많은 공을 들여야만 했는데 지금은 두어 번 만에 해결해버렸다.

이유는 바로 석목이 혼돈된 기운을 기묘하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석목이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오른손으로 하얀 얼음 구체를 누르자 손바닥에서 검은빛이 반짝였다.

커다란 얼음 구체가 점점 줄어들어 바닷물로 스며들었고, 해사 요수의 사체가 바다 위에 떠다녔다.

이때 검은 그림자가 해사 요수의 머리에서 튀어나와서 먼 곳으로 도망을 가려 했다. 그림자 안에 작은 뱀 허상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바로 해사 요수의 수혼이었다.

“도망을 가다니. 이리 와!”

석목이 차갑게 웃더니 미리 준비라도 한 듯이 손에서 파란빛을 날렸고, 해사 요수의 수혼에 빛을 드리워 끌어왔다.

석목의 몸에서 금빛이 번지더니 등 뒤에 뱀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입을 벌려서 해사 수혼을 삼켜버렸다.

몸속에 깃든 힘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쳤다. 천위 중기인 수혼을 하나 삼키자 힘은 더욱 강해졌다.

석목은 다시 손을 흔들더니 청명검이 날아 나와 해사 요수의 사체를 몇 토막으로 갈라놓은 후, 한참을 뒤적이며 요괴 구슬을 챙겼다.

이어서 석목은 섬에서 수련을 하는 중인 분신을 거두어들이고는 영우비차를 불러서 멀리 있는 섬으로 날아갔다.

남은 시간 동안 석목은 한편으로 수련을 하며 또 한편으로는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인 목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가 예측했던 것처럼 몸 어느 부위든, 상처를 입었을 경우에 그 부위를 목화하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원래대로 회복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상처가 깊으면 회복 속도도 더 느려질 터였다.

이런 점을 발견한 석목은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혈맥을 키워 구전현공을 완벽하게 수련한 뒤는 어떨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만약 진정한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에 이르면 온몸을 완벽하게 목화할 수 있을 테고, 그때면 놀라운 회복력을 갖추게 될것이었다. 전설처럼 피 한 방울로 다시 태어날 정도는 아닐지라도 적과 대치할 때 최소한 지지는 않을 터였다.

* * *

한 달 뒤 어느 날, 운정선도와 수천 리 떨어진 짙푸른 바다 섬 위. 세 개의 산이 섬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섬 가운데는 푸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샘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숲속 커다란 소나무 밑에서 석목이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로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몸 주변에 푸른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순간 석목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손목을 돌려 뇌적의 자금각을 꺼내 들었다.

석목은 자금각을 눈으로 한 번 흩어보았다. 자금각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겉에 작은 글씨가 한 줄 나타났다.

“일주일 뒤, 극음봉 현궁탑(玄穹塔) 아래.”

글씨를 본 석목은 곧바로 일어서서 가까운 곳에 앉아있는 분신을 거두어들인 후, 영우비차를 불러서 푸른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운정선도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일주일 뒤, 운정선도 극음봉 뒷산.

안개가 자욱하게 뒤덮인 소나무 숲은 산봉우리를 온통 짙푸르게 물들였고, 산봉우리 사이에 붉은 벽을 치고, 푸른 기와를 얹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펼쳐져 있다.

건물 뒤편에 몇 리 정도 되는 땅이 있었는데 하얀 돌을 깔아놓은 커다란 광장도 있었다.

구름을 찌르는 석탑 하나가 백석 광장 위에 우뚝 솟아있었다.

석탑은 전체가 푸르스름했고 청진석(青塵石)으로 쌓아올린 탑이었는데 몸통은 팔각형이었다. 탑은 전부 꽉 막혀서 창문이 하나도 없었고, 남쪽에 흰 돌문만 하나 있었다.

탑 위에는 복잡하고 어두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점점이 촘촘하게 적힌 부문이었다. 빽빽한 부문은 구름에 덮인 탑 몸통 꼭대기까지 퍼져있다.

탑 주변 땅에 흐르는 영력이 어두운 무늬를 타고서 탑 속으로 줄줄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하얀 돌문 위에는 커다란 팔괘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좌우 양쪽 문을 각각 절반씩 차지했다.

이때 팔괘가 새겨진 문 바로 앞쪽에 있는 광장에 보라색 도포를 입은 이진종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각각 여덟 방향에 서 있었다. 이진종의 제자들 소매에 새겨진 그림으로 봤을 때 제자들은 내원 소속인 팔대 도관 출신들이었다.

팔대 도관 제자들은 그 숫자가 전부 달랐는데 많으면 이백여 명이었고, 적으면 백여 명 정도 되어 보였다.

백석 광장 밖으로 만여 명이나 되는 보라색 도포를 입은 제자들이 서 있었다. 그중에는 스스로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자들도 있었고 또 외원 제자들도 있었다.

이때 석목이 변신한 뇌적이 광장의 한쪽에 서 있었다. 이화관에서 온 제자들 백여 명 가운데 임도로 분장한 연나도 서 있었는데 연나는 뒤에 서 있는 여제자와 작은 목소리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화관 제자들 가장 앞쪽엔 후덕하게 생긴 청년이 뒷짐을 진 채로 제자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청년은 이화관의 큰 사형인 온화였다.

“이번 대결에 참여하는 팔대 도관 제자들 중 간산관(艮山觀)을 빼면 우리 이화관의 제자들이 가장 적군요.”

이화관의 제자들이 선 대오 가장 앞쪽에 있던 머리를 묶은 남자가 말했다.

“기존에 있던 많은 사형과 사제들을 부석성으로 보내서 흑마족과 싸우며 고수들을 많이 잃었잖습니까? 반년 전 백운관 반란 사건으로 진강을 비롯한 사형과 사제들도 희생을 당한 게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지요.”

남자 옆에 서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듣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하긴, 종문은 실력자들이 넘치는 곳이라 현궁탑에서 뛰어난 실력을 뽐낼 자신이 없다면 신청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정예 인원만 뽑다 보니.”

머리를 묶은 중년 남자가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온화는 돌아서서 이화관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사제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이화관은 다른 몇몇 도관들보다 참여하는 인원이 적지만 이번 선발은 각자의 능력을 더욱 중요시합니다. 다만 시합을 시작하면 충돌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너무 어려운 상대는 최대한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온 사형, 다른 도관에서는 어떤 뛰어난 사람들이 탑에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대화를 하던 두 사람 뒤에 서 있던 서문설이 갑자기 물었다.

서문설이 한 질문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전부 온화를 바라보며 주의 깊게 대답을 기다렸다.

석목은 서문설을 한번 바라보더니 다시 온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각 도관마다 상황이 전부 다릅니다. 실력이 대단한 제자들도 차고 넘치지요. 저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 중 세 명은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 다들 조심해야 합니다.”

온화는 나머지 일곱 도관의 제자들이 서 있는 자리를 천천히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어느 세 사람입니까?”

서문설이 물었다.

“세 사람은 저처럼 전부 각 도관의 수석 제자들입니다. 그중 건천관의 막린회(莫吝悔)는 뒤끝이 있고 행동은 거침이 없습니다. 막린회와 조금이라도 갈등을 빚던 사람들은 그 누가 되었든지 수련을 하던 중이나 밖에 나가서 임무를 수행할 때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했지요.

진뢰관(震雷觀)의 만호종(万虎从)은 성격이 괴팍하고, 만호종이 수련한 혼뢰공(混雷功)은 이미 진경에 이르렀습니다. 감수관의 수봉월(水封月)은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 세 사람은 수련 경지가 이미 천위 후기에 도달했습니다. 만약 부딪치게 된다면 최대한 피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온화는 이화관 사람들에게 당부를 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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