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화. 현궁시련(玄穹試煉)
온화가 말하는 것을 들으며 석목은 시선을 돌려서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을 일일이 훑어보았다.
막린회는 용모가 버젓했고 풍모는 꽤 고상했다. 만약 온화가 말을 해주지 않았고 외모만으로 판단했더라면 뒤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만호종은 이름과 어울리는 용모였다. 허리가 굵고 인상이 지독했으며 짧은 머리는 마치 쇠바늘처럼 곤두서 있었다. 대체로 맹렬한 호랑이 같은 모습이었다.
수봉월은 몸매가 가녀렸고 외모는 아름다웠다. 도포를 입고 있었지만 아름다운 자태를 숨길 수는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마치 석목이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현궁탑을 바라보던 수봉월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석목과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수봉월은 석목의 몸을 잠깐 바라본 뒤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석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세 사람을 몇 번 더 번갈아서 보며 외모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이때 백석 광장 상공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십여 장 정도 되는 금색 큰새가 운무 사이를 가르며 순식간에 푸른색 돌탑 앞까지 날아왔다.
이어서 세 사람이 나란히 돌탑 앞에 내려왔다.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온몸에 보라색 도포를 입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한쪽 눈을 검은색 안대로 가리고 있었다. 바로 이화관의 관주 팽악이었다.
팽악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은 보라색 짧은 수염이 자라난 중년 도인이었다. 도인이 풍기는 기운은 팽악보다 더욱 강력했고 사나웠다.
도복 소매에는 보라색 번개가 한 줄 새겨져 있었다. 아마 진뢰관의 관주 적문천(寂問天)일 터였다.
그리고 적문천 오른쪽에는 보라색 도포를 입은 여도사가 한 명 서 있었고, 여도사는 옅은 안개를 한 층 두르고 있었는데 날씬한 몸매만 보일 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여인의 이름은 운몽택(雲夢澤)이었다. 태택관(兌澤觀)의 관주이자 이진종 여덟 도관을 통틀어 유일한 여관주였다. 운몽택은 이진종에서도 매우 유명한 사람이라서 석목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성계 강자 세 명이 동시에게 나타나자 시끌벅적하던 각 도관 제자들과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세 관주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팔대 도관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올렸다.
관주들 세 명은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았고, 중간에 서 있던 진뢰관 관주 적문천이 금색 새를 영수 주머니에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마를 물리치는 전투를 치르며 선계의 곤륜성허가 나타났다. 이건 우리 미양 성역의 천백 년이 넘는 역사 이래 가장 큰 사건이다. 그리고 우리 이진종에게도 좋은 일이지.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모은 것도, 이번에 곤륜성허로 보낼 뛰어난 사람들을 선발하려고 그런 것이다. 곤륜성허에서 우리 이진종의 위력을 보여주고 다른 두 성지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지. 다들 자신이 있는가?”
우렁찬 목소리가 석목의 귓가에 울려 퍼졌고 심장이 요동쳤다.
“있습니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이진종의 제자들 천여 명이 외치는 열정 가득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좋다! 여러분이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으니 우리도 믿고 맡기겠다! 뒤에 있는 이 현궁탑은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을 테지. 여긴 우리 이진종이 종파를 만들 때 지은 수련지다. 오늘까지 이미 만 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왔지. 이번에는 반년 뒤, 성주님과 함께 성허로 가게 될 제자들을 백 명을 뽑는 데 쓸 것이다.”
적문천이 흡족해하며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적문천이 이제 곧 이번 대결 방식과 규칙을 알려줄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진종의 제자들은 전부 숨을 죽이고서 귀를 기울였다. 광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잠깐 침묵이 흘렀고, 적문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현궁탑은 층마다 독립된 작은 구역이다. 탑에는 진법으로 만든 환수(幻獸)들이 많이 있지. 층이 높아질수록 환수의 실력과 숫자는 늘어날 게다. 여러분이 할 일은 바로 이런 환수들을 죽여서 각자 가지고 있는 현궁령(玄穹令)을 밝혀야 한다. 매 층마다 공간 통로가 몇 개 있고, 현궁령의 환주(幻珠)가 전부 밝아지면 그때 공간 통로를 찾아서 현궁령으로 통로를 열어라.
그러면 현궁탑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현궁탑 각 층에선 진법 때문에 영석이나 단약으로 영력을 흡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 중에 쓸 진기와 영력을 적절하게 조절해야만 하지. 모든 제자들이 공격을 해야 할 목표는 오로지 환수뿐이다.
현궁령 속 환주는 빼앗을 수도 없고, 또 누군가에게 증여할 수도 없다. 만약 일부러 동문을 죽인다면 곤륜성허로 갈 자격을 박탈하는 건 물론, 종문에서 내리는 엄벌을 받게 될 게다. 이 밖에도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영력을 현궁령에 불어넣어라. 그러면 탑 밖으로 나올 게다.”
서로 대결을 할 수는 있었지만 치명타를 가하면 아니 되었다. 이건 석목이 예상한 부분이었다. 천위 경지 제자들은 어느 종문에서든 매우 중요한 전력이었기 때문에 이진종도 제자들을 소모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 시험은 총 보름이다. 시간이 다 되면 현궁령은 자동으로 발동되어 여러분을 탑 밖으로 전송할 게다. 그리고 도달한 층수가 가장 높은 백 명을 상대로 곤륜성허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겠다.”
적문천이 그리 말했다.
“사존님, 만약 시험이 끝났을 때, 같은 층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선발하는 숫자를 넘으면 어떻게 되나요?”
건천관의 제자 막린회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면 옥패를 밝힌 수에 따라 선발할 게다. 이 밖에 더 궁금한 게 있는가?”
적문천이 물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현장은 매우 조용했고, 사람들은 전부 광장 가운데 놓인 현궁탑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러자 적문천은 옆에 서 있던 팽악과 운몽택을 한번 바라보더니 일어서서 한 손으로 법결을 쓰며 앞으로 휘둘렀다.
퍽!
몸 앞에 둥그런 보라색 진법이 하나가 나타났다. 수많은 보라색 빛이 진법 속에서 튀어나왔고, 허공을 가로질러 팔대 도관의 제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보라색 빛은 마치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졌고, 이진종의 제자들 옆에 맑은 자옥영패가 하나씩 떨어졌다.
석목은 손을 들어 자옥영패를 받아들었다. 위에는 복잡한 부문이 줄줄이 새겨져 있었고, 가운데엔 ‘현궁령’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자옥영패을 뒤집어 보니 아주 작은 보라색 구슬이 백 알씩 들어있었다. 겉은 어두운 게 크게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제자들은 각자 현궁령을 챙겼고, 팽악과 운몽택이 날아올라 적문천과 함께 현궁탑 주변 각각 다른 곳에 섰다. 셋은 몸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세 사람이 주문을 외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두 손을 몸 앞에 두어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법결을 만들어냈다. 법결은 번쩍이며 가운데 있던 현궁탑 곳곳에 스며들었다.
현궁탑 겉면을 빙글빙글 둘러싼 부문들이 한 층씩 밝아졌고, 빛은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탑 전체가 눈부신 빛을 뿜었다.
이때 팽악을 비롯한 적문천등 세 사람의 손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각각 손바닥만 한 옥결(玉玦)을 꺼내 들었다. 옥결 겉에선 빛이 반짝였고, 세 갈래 빛이 나와서 동시에 현궁탑 돌문 위 팔괘 그림으로 스며들었다.
팔괘 그림의 괘 자리가 하나씩 밝아졌고, 둥그런 빛기둥이 속에서 튀어나와 수십 장 허공에 둥그런 빛의 막을 드리웠다.
막 속에서 하얀빛이 용솟음치며 커다란 소용돌이가 하나 나타났다.
“제자 여러분, 탑으로 입장!”
적문천이 큰소리로 외쳤다.
적문천이 명을 내리자 팔대 도관 제자들 천여 명이 가장 앞에 있는 수석제자들을 필두로 몸에 빛을 밝혔다.
“막 사형, 수 사매,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누가 더 높이까지 갈 수 있는지 봅시다!”
만호종이 양쪽에 서 있는 막린회와 수봉월을 한번 바라보고 크게 웃더니 몸을 날려서 날아갔다. 그 뒤에 있던 진뢰관의 제자들도 줄줄이 따라 들어갔다.
막린회는 담백한 표정으로 수봉월은 바라봤다. 수봉월이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두 사람은 동시에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건천관과 감수관의 제자들 삼사백 명이 줄줄이 현궁탑으로 날아 들어갔다.
한참 동안 백석 광장에서 두꺼운 빛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녔고 하늘을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장 주변에 있던 수만 명이 부러운 눈길을 보내는 가운데 사람들이 순서대로 하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오색영롱한 굵은 빛이 백석 광장을 맑게 비추었다. 먼 곳에서 바라보면 불빛이 튕기는 커다란 광판처럼 눈이 부셨다.
굵은 빛은 하얀 소용돌이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이화관 사람들 속에서 서문설이 이마에 드리운 머리카락 한 가닥을 귀 뒤로 넘겼다. 앞쪽을 바라보는 서문설은 눈빛이 확고했다. 이어서 서문설은 손을 흔들어 오색 비단을 옷소매에서 뿜어낸 후 몸을 감고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소용돌이 방향으로 날아갔다.
다른 한쪽에서 연나는 석목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허공에서 빛을 몇 번 번쩍이며 소용돌이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두 여자를 한 번씩 번갈아서 본 석목은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속으로 쓴웃음만 지었다.
얼마 전에 서문설을 위기에서 구해준 적이 있었으나, 정체가 석목이었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한 서문설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평범했던 ‘뇌 사형’을 우러러볼 일은 없었다.
연나는 지난번 동부에서 마지막으로 본 뒤 교류를 하지 않았다. 연나가 임도로 변장을 한 뒤로 언행이나 분위기가 임도와 똑같아졌다. 그래서 아무런 문제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석목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더는 지체하지 않고서 하늘로 날아올라 사람들과 같이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주변의 공기가 찢기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주변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 * *
석목은 비칠거리더니 드넓은 초원에 나타났다.
푸른 들풀이 주변을 향해 뻗어있었는데 마치 광활하기 그지없는 푸른 잔디 담요 같았다. 먼 곳에서부터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고, 땅에서 푸른 풀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싱그러운 냄새를 풍겼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짙푸른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녔고, 주변 풍경은 조금도 살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공기 속 영기는 매우 짙어서 밖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문천이 말한 게 맞아. 여긴 수련하기에 매우 좋은 땅이야.”
석목은 혼잣말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신식을 보내서 순식간에 백 리 안 상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식이 뒤덮은 주변은 전부 끝없는 초원만 있을 뿐,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이상한 점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전부 흩어졌군.”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연나도 근처에 없었고, 어디로 전송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석목은 연나와 신혼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 한참 동안 기를 느끼더니 다시 눈을 뜨고서 한쪽으로 향했다.
연나가 있는 방향이었는데 둘 사이는 천 리나 떨어진 것 같았다.
석목은 곧바로 연나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직 일 층이라 우선 이 층으로 빨리 올라가야만 했다.
석목은 잠깐 침묵을 하더니 손을 흔들어서 파뢰검을 꺼냈다. 그리고 보라색 번개로 변하여 한쪽으로 날아갔다.
초원은 면적이 매우 넓었는데 천 리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석목은 속도가 매우 빨라서 곧바로 초원을 벗어났다.
“이 현궁탑 안은 면적이 정말 넓군.”
석목이 속으로 생각했다.
날아가는 동안에 석목은 이진종의 제자들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환수도 종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 층에서 요수를 모으는데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게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더 지체하지 않고서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