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화. 등탑
시간이 벌써 닷새나 흘렀다. 각 도관에서 온 제자들은 이미 비교적 높은 공간까지 올라갔다. 환수들도 실력이 강해졌고, 평범한 제자들은 탈락하기 시작했다.
팔 층, 너비가 백 장 정도인 큰 강물 위에서 태택관 제자들이 독수리 환수들 수십 마리에게 포위되었다.
독수리 환수들은 실력이 매우 강력했는데 그중 서너 마리는 이미 천위 초기였다.
몇몇 제자들은 전부 천위 초기였고, 서로 등을 맞대고 서있었다. 그 모양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몸속 진기가 많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제자들은 전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순간, 허공에서 독수리 환수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며 두 날개를 퍼덕였다.
제자들은 안색이 변했고, 예쁘장하게 생긴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여제자가 한 손을 흔들었다. 보라색 우산 모양 법보가 속에서 튀어나와 몇 배나 자라났다. 그리고 몇몇 제자들 머리 위에 드리웠다.
칼바람이 휘몰아치며 보라색 우산 위를 강하게 내리쳤고,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라색 우산 모양 법보가 격하게 흔들리며 빛이 번쩍였다. 그러나 끝내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여자는 얼굴이 굳었다.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짙푸른 발톱이 옆에서 뻗어 들어왔고 단번에 피풍의를 두른 여제자의 어깨를 잡고서 휘둘렀다.
“안 돼!”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여제자가 놀라서 소스라치며 처참한 소리를 질렀다. 법보를 꺼내 들기도 전에 몸이 허공에 내팽개쳐졌다.
휙, 휙!
칼바람이 여제자의 몸에서 휘몰아쳤고, 몸에서 빨간 피가 튀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독수리 환수가 덮쳤고, 집게 같은 발이 단번에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여제자의 머리를 잡아채려 했다.
여제자는 온통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만약 머리가 잡혔다면 아마 뇌가 주변으로 흩뿌려졌을 터였다.
이때 여제자의 몸에서 보라색 빛이 밝아졌고, 몸통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서 탑 밖으로 전송되었다.
여자가 독수리에게 잡힌 후, 몇몇 사람들이 짠 진형은 이미 파괴되었다. 온힘을 다해 몇 마리 독수리 환수를 죽여 버린 후 단 한 사람만이 도망을 쳤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현궁탑 밖으로 전송되었다.
* * *
구 층 지하 동굴 속, 동굴 깊은 곳엔 공간 통로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도마뱀 머리에 사람 몸통인 괴물들 오륙십 마리가 통로를 둘러싸고 있었다.
도마뱀 환수들은 전부 지계 정상인 실력이었고, 그중 몇 마리는 몸통이 유난히 다부졌는데 실력이 천위 초기였다.
공간 통로 앞 빈 땅에선 도마뱀 환수가 칠팔십 마리나 날뛰고 있었고, 진뢰관의 도포를 입은 제자 세 명을 가운데로 몰았다.
그중 보라색 도포를 입은 남자가 손에 번개를 번쩍이는 단극을 들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요염한 여자였는데 손에 검은색 채찍을 하나 들고 있었다.
채찍 위에는 온통 가시들이 거꾸로 자라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얼굴이 푸른 소년이었는데 손에 칼 한 자루와 검 한 자루를 각각 들고 있었다. 검과 칼은 전부 법보급이었다.
세 명은 천위 중기였고, 서로 등을 맞댄 채로 서 있었는데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 환수들을 전부 죽일 수는 없습니다! 잠시 후에 제가 신호를 보내면 함께 통로 쪽으로 달리는 겁니다. 들어갈 수 있을지, 그건 각자 실력에 맡깁시다!”
보라색 도포를 입은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손에 든 단극을 위아래로 휘둘렀다. 보라색 번개를 감싼 그림자가 단극에서 튀어나와 주변에 있던 도마뱀 환수에게 떨어졌다.
튀어나온 그림자들은 정확하게 도마뱀 환수의 목덜미에 떨어졌고, 환수를 단번에 죽여 버렸다.
“좋습니다!”
요염한 여자가 대답했다. 손에 든 검은색 채찍 법보에서 검은빛이 번쩍였는데 매우 대단한 법보인 것 같았다.
채찍 그림자가 주변에서 일렁거렸다. 범위 안 에 들어온 환수들은 곧장 몇 덩어리로 갈라져 버렸다.
얼굴이 푸른 소년이 손에 든 검에서 몇 장 정도 길이 빛이 튀어나와 종횡으로 날아갔다. 그 수준은 다른 두 사람이 쓰는 법보와 비슷한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년은 안색이 조금 창백했다.
세 사람은 주변에서 몰려오는 도마뱀 환수들과 싸우며 천천히 공간 통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은 실력이 매우 훌륭한 편에 속했지만 주변에서 몰려오는 환수들이 너무 많아서 걸을 때마다 진기를 적잖이 써야만 했다. 하물며 탑에선 단약을 삼킬 수도 없었다.
세 사람이 두르고 있던 빛은 눈에 보이는 속도로 어두워졌고, 입에서는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또 한참이 지났다. 얼굴이 푸른 소년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검에서 풍기던 빛도 어두워졌고, 순간 몸을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진기를 전부 소모한 모양이었다.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환수들이 갑자기 밀물처럼 몰려왔고, 단번에 셋을 묻어버리려고 했다.
이때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남자가 이를 악물고서 “달려.”라고 외쳤다. 남자가 손에 쥔 단극에서 번개가 크게 번졌다. 두 팔을 휘두르자 수많은 보라색 그림자가 튀어나와 하늘 위 별들처럼 번쩍였다.
몸 앞 몇 장 범위 안에 있던 도마뱀 환수들은 전부 죽어버렸다.
요염한 여자가 들고 있던 검은색 채찍에서도 빛이 크게 번졌고, 몇 갈래 채찍 그림자가 튀어나와 검은 구렁이로 변하였다. 그리고 주변 환수 무리 속으로 향했다. 환수 무리는 순식간에 뒤엉키며 대열이 난잡해졌다.
두 사람의 몸이 순식간에 두 갈래 빛으로 변했고, 앞쪽에 있는 환수 무리를 뚫고 지나간 빛은 공간 통로를 향해 날아갔다.
얼굴이 푸른 소년은 수많은 환수들이 덮치자 절망스런 기색을 내비치며 몸에 보라색 빛을 번쩍였다. 그러자 몸이 전송이 되어 나가버렸다.
보라색 도포를 입은 남자와 요염한 여자는 공간 통로 십 장 앞까지 도착했고, 몇몇 천위 초기 경지 환수들이 기세등등하게 몰려왔다.
이때 보라색 도포를 입은 남자가 보라색 부적을 하나 꺼내 들어서 날렸다. 부적은 빛으로 변하여 희미해지더니 놀라운 속도로 허공에 곡선을 그리며 공간 통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요염한 여자는 그리 운이 좋지 못했다. 몇몇 천위 도마뱀 환수 때문에 길이 막혀버렸고, 휘갈기는 발그림자 속에서 풀썩 땅에 주저앉았다. 요염한 여자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현궁탑이 열린 지 여드레가 지났다.
십 층에 자리한 커다란 호수 위에서, 간수관 제자 세 명이 커다란 독수리를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 발밑 호수가 갑자기 들끓기 시작하더니, 물 화살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독수리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독수리 위에 서 있던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주변으로 흩어졌다.
이때 굵은 촉수 하나가 물에서 뻗어 나와 번개처럼 제자의 몸을 휘감았고, 제자를 호수 속으로 끌어당겼다.
우르릉!
호수 곳곳에서 수많은 거대 촉수들이 뻗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향했다. 커다란 환수 한 마리가 서서히 나타났는데, 문어 환수였다. 풍기는 기운을 보니 이미 천위 후기에 도달한 것 같았다.
문어의 한 촉수에서 조금 전에 붙잡힌 제자가 온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노력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촉수는 제자를 더욱 꽉 묶어버렸고, 제자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곧바로 숨을 거둘 것 같았다. 이때 보라색 빛이 반짝이며 제자가 사라져버렸다.
문어 환수는 계속해서 촉수를 미친 듯이 휘둘렀고, 나머지 사람들을 향해 촉수를 휘갈겼다. 그 속에는 촘촘한 물화살이 섞여 있어서 주변 호수에 수많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잠깐 사이에 나머지 사람들도 전부 빛을 번쩍이며 탑 밖으로 전송되었다.
* * *
이 시각, 현궁탑 밖 하얀 석대에 보라색 도포를 입은 사람들이 여덟 명 서 있었다.
옷소매나 복식으로 봤을 때, 전부 이진종 내원 팔대 도관 쪽 사람들이었다. 이화관 관주 팽악, 진뢰관 관주 적문천 그리고 태택관 관주 운몽택이 그 사이에 있었다.
석대 위에 수많은 보라색 거울이 있었는데, 빽빽이 있어서 그 숫자가 천 개는 되어 보였다.
거울 속에서 수많은 광경들이 나타났고, 비치는 상은 전부 탑 속에 있는 팔대 도관 제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작은 거울들 위에는 몇 장 정도 크기인 커다란 보라색 거울이 하나 놓여 있었다. 보라색 거울은 탑을 드러냈고, 거울 속 층마다 점이 몇 개씩 있었다. 점들은 아래서부터 위로 갈수록 수가 점점 줄었다.
점들은 다양한 색상을 띠고 있었는데, 각각 팔대 도관을 상징했다.
보라색 거울에는 각 도관의 제자들이 탑에 얼마나 올랐는지 뚜렷하게 나와 있었다. 덕분에 한눈에 상황을 내다볼 수 있었다.
이제 각 도관의 제자들이 어떤 실력인지 뚜렷이 드러났다.
팔대 도관 중에 종합하여 성적이 가장 좋은 도관은 진뢰관이었고, 그 다음이 감수관, 세 번째는 생각지 못한 이화관이었다. 이화관은 늘 실력이 비교적 약한 도관으로 취급을 받았는데, 이런 상황이 펼쳐지자, 사람들은 놀랍고도 의아해했다.
이화관 관주 팽악의 하나 남은 눈에는 온통 기쁨이 어려 있었다.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다른 성적이 좋지 못한 몇몇 도관의 관주들은 커다란 보라색 거울 속 점들이 분포된 상황을 바라보며 안색이 어두워졌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팽악은 시선을 돌려서 보라색 작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안에 자색 도포를 두른 귀가 긴 남자가 나타났다. 온화였다.
온화는 지금 황량한 초지에 놓여 있었다. 온화는 몸을 위아래로 번쩍이고 있었고, 손에는 자색 유성추(流星錘)를 하나 들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현귀(玄龜) 모양 커다란 환수 두 마리와 싸우고 있었다.
온화는 몸 주변에서 유성추가 이리저리 휘날렸고, 간간이 수많은 망치 그림자를 만들어 내거나, 보라색 빛꼬리를 끌어냈는데, 마치 별똥별 같았다.
몇 번 숨을 들이키는 사이, 두 현귀 환수들 중에 한 마리는 머리가 터져버렸고, 다른 한 마리는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껍질이 반이나 부서져 있었다.
“몇 년 사이, 온화는 실력이 또 크게 자란 것 같습니다. 이번에 곤륜성허에 들어가면, 꼭 그 실력을 전부 발휘할 겁니다.”
진뢰관 관주 적문천이 입을 열었다.
“적 관주님, 과찬이십니다. 진뢰관 만호종도 실력이 또한 대단하지요. 이미 십일 층까지 갔습니다. 온화는 아직 십 층인데 말이죠.”
팽악이 웃으며 말했다.
“온화의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온화 말고도 이화관에는 적잖이 고수들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도 실력이 대단하네요.”
적문천이 말을 하며 손으로 보라색 거울을 가리켰다.
팽악이 멈칫하며 적문천이 가리키는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거울 속에선 남녀 한 쌍이 일고여덟 마리나 되는 곰 환수와 싸우고 있었다. 남자는 머리와 눈썹이 보라색이었고, 손에 보라색 뇌검을 한 자루 든 채로 몸 주변에 번개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요염한 자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손에는 가시 범벅인 뾰족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곰 환수는 몸집이 매우 웅장했지만, 몸짓은 매우 날렵했다. 앞발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누르스름한 발바닥 그림자가 날아갔는데, 하늘과 땅을 찢어버릴 위력이 드러났다.
곰 환수 뒤에는 공간 통로가 하나 있었는데, 두 사람은 때마침 십 층에 도착했다.
석목과 연나는 힘을 합쳐 곰 환수를 죽였다. 조금 어색해 보였지만,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이때 석목이 두 손을 흔들자, 파뢰검이 굵은 검 그림자로 변하였다. 검 그림자 위에 번개를 감싸며 칙칙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위력이 너무 세서 가볍게 곰 환수 몇 마리가 만들어낸 손바닥 그림자들을 공격하여 부숴버렸다.
이어서 연나가 손에 든 자사자도 환영을 줄줄이 만들어냈고, 석목이 지키는 가운데 독사가 혀를 날름이듯 곰 환수를 찔러버렸다.
거울에서 화려한 빛이 번졌고, 보라색과 노란색 두 갈래 빛이 흘렀다.
잠깐 사이에 곰 환수 두 마리는 머리통이 뚫려버렸다.
석목은 연나를 한번 바라보았다. 둘은 구 층에서 만났고, 석목이 제안하여 둘은 같이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뇌적과 임도는 예전에 함께 진강을 뒤따랐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인다고 해서 의심을 받을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