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화. 파란색 빙염
“흥! 정말 쓸모가 없군. 혼자서 어찌하지 못하겠으니, 환수들을 모조리 이쪽으로 끌고 와 버리다니.”
연나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고, 얼굴에는 혐오하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석목은 연나가 임도의 말투를 연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서문설에게 아니꼬운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수습을 하며 말했다.
“임 사매, 시간이 없으니, 우선 눈앞에 있는 환수부터 물리치고 봅시다.”
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요염하게 움직였다. 손에 든 자사자에서 빛이 번졌고, 곧바로 천위 중기인 도마뱀 한 마리를 향해 공격을 했다.
“고마워요, 뇌 사형.”
서문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뇌적으로 변장을 하고 있어서 뭐라고 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파뢰검을 들고서 다시 환수들과 격전을 치렀다.
후!
파뢰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눈보라 속에서 미친 듯이 흔들렸다. 파뢰검은 검 그림자를 줄줄이 만들어냈다.
보라색 번개가 환수 무리에서 끊임없이 퍼졌고, 천위 초기인 도마뱀 환수 두 마리가 순식간에 번개 속에서 산산조각으로 변한 뒤에 사라졌다.
서문설은 눈앞에 있는 ‘뇌적’을 바라보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서문설은 곧바로 생각을 거뒀다.
처음 뇌적을 봤을 때, 뇌적은 진강을 따라다니며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볼품이 없는 자라서 관주인 팽악마저 뇌적을 기억하지 못할 터였다. 팔대 도관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제자들에 속했다.
진기를 조금 회복하자, 서문설은 들고 있던 백옥영치가 밝아졌고, 도마뱀 환수를 향해 공격했다.
다른 한쪽에서 연나가 몸을 흔들며 싸우고 있었는데, 연나는 자사자를 매우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위력과 민첩한 동작은 임도가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
하늘에서 흩날리는 보라색 허상들이 날카로운 가시로 변하였고, 층층이 겹쳐 있는 눈보라를 뚫고서 허공에 걸려있는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지나갔다. 그림자 속에서 날카롭게 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에서 하얀 얼음 칼날들을 보라색 그림자가 찢어서 수많은 얼음 조각으로 바꾸었고, 얼음 조각들은 눈보라와 함께 떨어졌다.
이때 위쪽에서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솔개 환수 십여 마리가 눈보라를 타고, 아래를 향해 내려왔다. 솔개 환수들은 허공에서 맹렬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칙, 칙!
촘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오리바람이 흩날리는 눈보라를 감았고, 이내 얇은 얼음 칼날로 변해서 연나를 비롯한 세 사람을 향해 우르르 날아왔다.
얼음 칼날이 지나친 곳마다 얇은 상처가 번쩍였고, 상처 안에서 어두운 빛이 흘러나왔다.
이때 석목과 연나는 양쪽에서 도마뱀 환수 몇 마리와 싸우고 있어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서문설은 이를 악물고 몸을 번쩍이며, 세 사람 중에 가장 앞쪽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백옥영치를 던져버리고는 두 손으로 여러 갈래 법결을 썼다.
하얀빛이 번지며, 영치 겉에 적힌 부문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이어서 영치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동그랗고 희미한 빛이 영치에서 퍼지며, 커다란 우산처럼 세 사람에게 드리웠다.
탱! 탱! 탱!
수많은 얼음 칼날이 날아왔고, 줄줄이 희미한 빛 때문에 떨어졌다. 하얀빛이 격하게 흔들리며, 촘촘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서문설은 하얀빛 아래에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법결을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부문이 줄줄이 보호막 속으로 날아 들어갔고, 드디어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원래도 눈처럼 하얗던 서문설은 두 볼이 더 창백해졌다. 기운도 다시 한번 줄어들었다.
이때 석목이 도마뱀 환수 두 마리를 죽여 버렸다. 서문설이 벌인 상황을 본 석목은 곧바로 손을 굽혀서 법결을 펼쳤다. 파뢰검에서 보라색 빛이 반짝였고, 곧바로 하얀빛을 에둘러서 날아나가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렇게 솔개 환수들 십여 마리를 공격했다.
퍽!
허공에서 보라색 번개가 이십여 장 크기인 커다란 전망(電芒)으로 변하였고, 솔개들 수십 마리를 전부 잡아버렸다.
석목은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이제 막 번개를 폭발시키려 할 때, 몸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느꼈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파란빛이 하얀 안개 속에서 날아오며 파란 화염으로 변했다. 그리고 석목의 등을 향해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석목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몸속에서 법력이 끊임없이 뿜어 나왔고, 손에서 현묘한 법결을 하나 쓰며 입으로 “터져!”라고 외쳤다.
우르릉!
커다란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허공에 드리운 보라색 전망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뱀처럼 꿈틀대는 보라색 전망이 미친 듯이 용솟음치더니, 십여 마리 솔개들에게 드리웠다.
전망에 닿은 솔개 환수들 중에 몇 마리는 곧바로 터져버렸고, 나머지도 전망이 번쩍이자, 줄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때 파란 화염이 코앞까지 날아왔다.
서문설이 만들어낸 희미한 우산 모양 막에 파란 화염이 부딪치는 순간, 막은 소리도 없이 터져버렸고, 백옥영치도 빛으로 변하여 다시 날아왔다.
백옥영치에서 나는 빛이 매우 어두워졌다.
서문설을 손을 뻗어서 백옥영치를 받았다. 순간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걸 느꼈고, 몸도 부르르 떨렸다. 손바닥 절반엔 파란색 얼음이 한 층 깔려있었다.
“극한빙염(極寒冰焰)!”
서문설은 안색이 변했다. 이어서 놀라 소리를 질렀고, 곧바로 영력을 오른쪽 손에 불어넣었다.
극한빙염 뒤에 하얀 안개가 이어서 몰려왔다. 흔들리던 눈꽃이 전부 유유하게 파란빛이 도는 얼음벽으로 뭉쳤고,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을 둘러쌌다.
연나는 돌아서서 석목이 막아내고 있던 빙갑거서와 맞섰다. 하지만 온 힘을 쓸 수 없어서 그런지 도무지 출수를 못했다.
석목이 차갑게 소리를 지르며 몇 갈래 법결을 펼쳤고, 한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파뢰검이 휙 소리를 내더니, 곧바로 보라색 빛으로 변하여서 백 장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석목이 외는 주문과 함께 눈보라 속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라색 빛이 줄줄이 밝아졌고, 주변 십 장 안에 드리운 눈보라가 전부 보라색으로 변하였다.
석목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바닥을 치켜 올리더니, 아래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파뢰검은 곧바로 보라색 빛줄기로 변하였고, 허공에서 찔러 내려왔다. ‘탱’하는 소리와 함께 파뢰검은 몸 앞에 꽂혔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고, 파뢰검에서 수십 장 정도 되는 보라색 번개가 격하게 흔들리더니, 가운데 커다란 균열이 하나 생겼다.
파란 빛기둥이 그 균열에서 뿜어 나왔다.
서문설은 석목보다 더 앞쪽에 있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파란빛을 맞았다.
서문설이 의식하며 손을 앞으로 뻗어 빛을 막아내려고 하자, 석목이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멈춰, 빨리 물러나!”
하지만 서문설은 몸에 극한빙염이 남긴 기운이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 잠시 멈칫하였다. 이제 물러나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고, 서문설의 몸을 바닥 쪽으로 강하게 눌렀다. 파란색 빛이 석목의 팔을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서문설이 엎드린 바닥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파란색 물결이 땅에서 튀어나와 파란빛과 맞서며 공격을 막았다.
명수결을 쓴 후,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순간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석목은 곧바로 법결을 바꿨고, 파란 물결은 굳어버렸다. 그러자 파도는 하얀 얼음으로 변하였다.
파도 모양 하얀 얼음이 서문설의 몸 앞에서 위로 솟아올랐다. 서문설이 백옥영치를 소환한 것과 비슷했다.
연나는 손에서 보라색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빙갑거서 두 마리의 머리를 전부 뚫어버렸다. 이어서 연나가 들고 있던 자사자가 튀어나왔고, 번개가 번지며 빙갑거서 세 마리를 뒤로 물리쳤다. 연나가 다시 석목을 바라봤을 때, 때마침 그 광경을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아름다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하지만 연나는 단 한 번만 바라보았을 뿐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연나는 몸에서 기세가 점점 치솟더니, 자사자가 미친 듯이 번쩍였다. 그리고 도마뱀 세 마리를 전부 잘라버렸다.
석목은 더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두 손을 다시 흔들었고, 파뢰검이 땅에서 튀어나와 허공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어서 한 마디 현묘한 주문이 울려 퍼졌고, 파뢰검 주변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며 구름이 모여들었다.
잠깐 사이, 허공에 두꺼운 먹구름이 나타났다.
천위 후기인 빙갑거서는 파란 빛기둥이 막히는 광경을 보자, 화가 치솟아 네 다리를 휘갈기면서 덮쳐왔다. 커다란 입을 벌리자, 매우 차가운 빙염이 용솟음치며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파란색 빙염이 쏟아져 나오자, 이미 온도가 매우 낮은 얼음 벌판은 더욱 추워졌다.
얼음 벌판은 마치 한순간에 멈춰버린 것 같았고, 휘날리던 눈보라도 더는 움직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얼음벽으로 뭉쳤다. 얼음 언덕이 여기저기서 올라왔고, 계속 좁혀들며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을 압박했다.
“만경자뢰(萬頃紫雷)!”
이때 석목이 큰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눈에 보라색 빛이 반짝였고, 두 손으로 법결을 쓰더니, 입에서 정혈을 한 모금 뿜어내서 부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허공에 있는 파뢰검 속으로 스며들게 만들었다.
파뢰검 겉에서 번개가 크게 번졌고, 기세가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우르릉!
허공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보라색 빛이 계속해서 번쩍이더니, 파뢰검이 빙글빙글 돌며 마치 돌아가는 부채처럼 물통 굵기만 한 보라색 번개 수백 갈래를 퍼뜨렸다. 그리고 두꺼운 먹구름에 수백 갈래 커다란 구멍들을 만들어냈고, 먹구름에서 번개가 우르르 쏟아졌다.
펑, 펑, 펑!
격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땅 위에서 번개가 뱀처럼 퍼져나가며 수많은 얼음 조각들이 터져나갔다. 얼음 조각들은 눈보라 속에 떨어졌다.
이어서 보라색 검 그림자가 갑자기 허공에서 떨어졌고, 파죽지세로 수많은 얼음을 뚫어버렸다. 그림자는 번개를 감고서 맹렬하게 빙갑거서의 머리를 공격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빙갑거서는 조금도 피하지 못했다!
쾅!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라색 번개가 호를 그리며 사방에서 떨어졌고, 놀라운 번개가 주변을 보라색으로 찬란하게 비추었다. 파뢰검은 이어서 번쩍이더니, 다시 빙갑거서의 큰 몸통 위에 나타났다.
이때 빙갑거서는 머리가 이미 검게 타버렸고, 보라색 장검이 머리 위에 꽂혀있었는데, 곧바로 두 덩어리로 갈라졌다.
파란색 빙염이 머리에 난 구멍에서 흘러나왔고, 빙갑거서의 몸을 덮으며 얼려버렸다.
이 모든 일은 매우 복잡해 보였지만, 실은 번개가 서너 번 반짝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문설은 여전히 손을 뻗어서 막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눈에는 온통 놀라운 기색이었다.
석목은 몸을 비틀거리며 한 손으로 파뢰검을 잡았고, 검을 빙갑거서의 머리 꼭대기에서 뽑아냈다. 이어 빙갑거서가 산산이 부서져 가루로 변했다.
가장 앞에 있던 빙갑거서가 죽어버리자, 허공에 남아있던 솔개들 열 몇 마리는 마치 뼈대를 잃어버린 듯이 순식간에 진형이 흔들렸다.
이때 연나는 멈추지 않았고, 손에 든 자사자로 수많은 보라색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다시 한번 빙갑거서들을 죽여 버렸다.
서문설이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몸속에 남아있는 차가운 기운을 몸 밖으로 뿜어낸 후, 다시 백옥영치를 들어서 석목과 함께 남은 환수들을 죽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