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화. 기이한 통로 (2)
서문설은 온화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며 통로에 다가가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다른 이화관의 제자들도 공간 통로가 의심스럽다는 걸 느끼기라도 한 듯, 삼삼오오 모여서 낮은 목소리로 의논을 나누기 시작했다.
석목은 잠깐 침묵하더니,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찌 되었건, 방금 한 생각은 추측에 불과했고,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괜히 말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만 끌 게 분명했다.
“됐다. 공간 통로를 발견했으니, 더 지체하지 말자. 다들 준비하고서 일각 후에 십삼 층으로 가자.”
온화가 말했다.
통로로 오는 동안 제자들은 수많은 환수를 사냥하였고, 현궁영패는 구슬이 이미 전부 밝아졌다. 이제 시간이 반도 남지 않았으니, 당연히 빨리 탑을 올라야만 했다.
* * *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이화관 사람들은 한 명씩 공간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십삼 층에 도착했다.
이어서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십삼 층은 회색 세계였다.
주변 곳곳이 황량하고 척박한 땅이었다. 바닥은 말라서 갈라졌으며, 십 장, 심지어 백 장이나 되는 골짜기가 곳곳에 패여 있었다. 이따금 풀들이 자라나 있었지만, 전부 칠흑 같은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하늘엔 검은 구름이 떠다녔고, 공기 중에는 마기가 들끓었으며,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석목은 십삼 층이 부석 성해와 매우 흡사하다고 느꼈다.
“이번 층은 환경이 매우 기이하다. 다들 조심해야 한다. 다들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한 줄로 서서 둘러보며 앞으로 나아가자.”
온화는 잠깐 침묵한 후에 말했다.
이화관 제자들은 전부 한 마디씩 대답하며 한 줄로 퍼져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내 예상엔 감수관, 진뢰관, 건천관 사람들은 아마 일찍부터 이곳에 온 것 같아. 여기 공간 통로도 세 도관 사람들이 봉인했을지 몰라. 우리는 조금 더 조심해서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석목은 연나에 전음으로 말했다.
연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눈에 옅은 은빛이 한 층 나타났다. 동시에 몸에서도 아주 옅은 공간 파동이 퍼져나가 주변에 드리웠다.
석목은 멈칫하며 눈에 옅은 금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몰래 영목신통을 써서 주변 모든 움직임을 탐색하였다.
사람들은 앞으로 한참 동안 걸어갔다. 이때 앞쪽에 있던 검은 구름이 빠르게 날아왔다. 구름 속에서 사나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매우 짙은 마기가 순식간에 몰려왔다.
“환수다, 조심해!”
온화는 수련 경지가 가장 높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상한 점을 느끼며 큰소리를 질렀다.
“음……”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며, 검은 구름 주변을 바라보았다.
구름 주변 허공에서 느껴지지 않을 파동이 살짝 일렁였고, 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만약 영목신통을 쓰지 않았다면, 절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때 멀리 있던 검은 구름은 이미 사람들 앞까지 다가왔다.
검은 구름 속에서 단번에 그림자들이 이삼백 마리 정도 빽빽이 날아왔다. 그림자들은 전부 키가 이삼 장 정도였고, 겉에 보라색 마문을 가득 새겨두었다. 주변에 마기를 감싸고 있는 마수들이었다.
마수는 대부분 수련 경지가 지계였고 천위 경지도 사오십 마리는 되었는데, 흉흉하게 두 발로 몰려오는 모습을 보니, 기세가 매우 놀라웠다.
“조심해, 환수가 매우 많아. 각자 수단을 써서 막아내, 전열이 흩어지게 하지 마!”
온화가 큰소리로 외쳤다.
온화가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마물들이 덮쳤고,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다.
마수는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많았지만, 천위 경지는 고작 사오십 마리였다. 이화관 제자들의 숫자와 맞물렸다. 나머지는 전부 지계 경지였다.
그리고 번개의 힘은 마물을 짓누르는데 효과가 좋아서, 마수가 제자들을 둘러싼 후에 마기가 드러내는 부식 효과로 우위를 차지했으나, 이화관 제자들은 무너지지 않고서 진형을 잘 이루었다.
석목은 입으로 중얼거렸고, 파뢰검에 빛이 크게 번졌다. 이어서 팔뚝만 한 번개로 호를 그리며 뿜어냈고, 번개는 기세등등하게 주변으로 다가오는 마수들을 박살냈다.
눈부신 번개가 반짝일 때마다, 마물 환수 한두 마리가 두 덩어리로 갈라졌다.
연나는 석목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연나는 손에 든 자사자를 휘두르며 수많은 보라색 환영을 만들어냈다. 모든 마물들은 닿자마자 전부 몸통이 뚫려버렸다.
서문설도 석목과 연나 가까이에서 하얀 백옥영치를 들고 있었는데, 그곳에 빛이 반짝였고, 뼈가 시린 한기가 뿜어 나왔다.
서문설은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두 손을 흔들었다. 얼음과 눈이 연이어 뿜어 나갔다. 비록 얼음과 눈은 번개보다 마물들에게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마수가 움직이는 걸 느리게 만들어 줘서 석목과 함께 싸우면 더욱 효율적으로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세 사람은 이미 마물 환수들을 십여 마리나 죽여 버렸고, 그 중에는 천위 마물도 한 마리 있었다.
다른 이화관 제자들도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나눠서 맡으며, 사이가 좋은 사람들과 힘을 합쳐 뇌전대전을 썼다. 뇌전대전은 위력이 매우 대단했고, 제자들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아직 제자들은 단 한 명도 탈락하지 않았고, 백 마리에 가까운 마물들이 전부 죽어서 많은 환주를 남겨놓았다.
이때 사나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몸집이 칠팔 장 크기인 커다란 마물이 하나 나타났다.
마수는 머리가 마치 사자 같았고, 몸에 보라색 무늬가 번쩍였으며, 마기가 들끓어 보라색 갑옷을 하나 만들어냈다. 손에는 자금장극(紫金長戟)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아주 무서운 기운을 풍기는 게 이미 천위 후기에 도달한 것 같았다.
사나운 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을 포위하던 마물들이 전부 뒤로 물러나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화관 사람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더니, 아무도 쫓아가지 않고서 온화를 바라보았다. 온화가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온화는 눈빛이 반짝였고,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이때 허공에서 마물 우두머리가 또다시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며 울부짖었고, 그 소리는 바늘처럼 귓속을 찔렀다.
주변에 있던 마물들도 사나운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고, 몸에 검은빛이 크게 번지며 허공에서 빠르게 덮쳤다.
검은 마기가 용솟음쳤고, 마물들 주변으로 모여들어 굵은 화살을 하나 만들어냈다. 굵은 화살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왔고,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찔렀다.
“큰일이다!”
온화는 안색이 굳었고,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몸에 보라색 빛을 크게 둘렀다. 보라색 거울이 머리에서 나타났고, 빛이 크게 번졌다.
보라색 빛이 반짝이자, 둥그렇고 커다란 보라색 방패가 나타나 사람들 앞을 막았다.
우르릉!
마수 수백 마리가 우르르 몰려왔고, 보라색 방패에 강하게 부딪쳤다.
방패가 흔들렸고, 수련 경지가 낮은 지계 마물들은 몸통이 터져버려 검은 안개로 변했다.
하지만 보라색 방패도 마기가 스며들어 겉에 두른 빛이 어두워졌고, 격하게 흔들렸다. 온화도 몸이 함께 흔들렸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보라색 방패는 잠깐만 남아있었고, 이내 터져버렸다. 온화가 낮게 신음소리를 냈다. 온화는 몸이 비틀거리며 뒤로 한 발자국 밀려났다.
방패가 깨져버리자, 화살처럼 몰려오던 마물들이 사람들과 부딪쳤다.
처참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고, 보라색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큰 부상을 당한 일고여덟 명이 탑 밖으로 전송되었다.
이화관 사람들은 진형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마물들과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마물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진형을 흩어놓았지만, 마물들도 적잖이 상처를 입었고 절반 이상은 죽어버렸다.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은 운이 좋아서 조금 전에 마물들이 가한 이상한 공격을 비켜갈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다시 힘을 합쳐서 단번에 마물들 십여 마리를 물리쳐버렸다.
이때 세 사람 앞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마물 우두머리가 갑자기 나타나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마치 땅에 번개가 내리치듯 내려왔는데 마기를 드리운 자금장극을 휘두르며, 석목의 머리를 내리쳤다.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큰소리를 지르며 두 손을 흔들었다. 파뢰검에서 보라색 빛이 크게 번졌고, 빛은 허공에서 몇 배나 불어나 몸 앞에 드리운 자금장극을 향해 날아갔다.
펑!
두 무기가 부딪쳤고,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물 우두머리는 몸을 흔들거리더니,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석목이 몸을 크게 흔들며 뒤로 밀려났다.
석목은 번개 속성 공법을 수련한 경험이 없었다. 경뢰검결도 대성까지 수련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석목은 파뢰검이 갖춘 위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없었다.
석목은 뒤로 몇 발짝 물러나 부드러운 몸과 부딪치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보니 연나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석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석목은 간사하게 웃으며, 전음으로 다급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연나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허공에 뜬 마물 우두머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온통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연나가 번쩍이며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곧바로 마물 우두머리 등 뒤에 나타났다. 손에 든 자사자에 빛이 크게 번지며, 눈부신 선을 하나 그었다.
빛이 반짝이는 순간, 자사자가 이미 마물 우두머리의 뒤통수로 향했다. 겉에는 번개를 감은 채 칙칙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물 우두머리도 실력이 놀라웠다. 마물 우두머리는 번개처럼 돌아서더니, 손에 든 자금장극을 흔들며 놀라운 속도로 등 뒤에서 자사자로 날린 공격을 막아냈다.
연나는 눈빛이 반짝였다. 연나가 팔을 흔들자, 자사자는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폭풍이 휘몰아치듯 마물 우두머리를 향해 쏟아냈다.
마물 우두머리는 화를 내며 울부짖었고, 손에 든 자금장극을 휘둘러 검은색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연나가 날린 자사자를 막아내지 못하여 순식간에 몇 번이나 찔렸다. 다행히 급소가 아니라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고, 뒤로 물러나며 연나가 날린 매서운 공격을 피했다.
연나와 마물 우두머리가 격전을 치르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정신이 없어서 아무도 연나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옆에 서 있던 서문설만 입을 살짝 벌렸다. 아름다운 눈에는 놀랍다는 기색이 어렸다.
석목은 눈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석목은 몸을 날리더니, 큰소리를 지르며 파뢰검에 빛이 크게 번지면서 마물을 향해 휘둘렀다.
보라색 빛이 반짝이며, 파뢰검이 일고여덟 갈래 커다란 검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석목은 마물 우두머리를 그림자 속에 둘러싸고는 강하게 휘둘렀다.
보라색 빛이 크게 번졌고, 주변 십 장 안이 온통 눈부신 번개로 덮였다.
처참한 소리가 번개에서 흘러나왔고, 이어 연나가 번개 속에서 튀어나와, 석목과 함께 내려왔다.
보라색 빛이 흩어졌고, 마물 우두머리도 사라져버렸다.
서문설은 눈에서 맑은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했다.
이때 또 다시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공에 그림자가 네 개 나타났고, 각각 눈부신 보라색 번개가 번졌다. 번개는 매우 굵었는데, 마치 뇌룡이 여기저기 날뛰는 것처럼, 그 위세가 실로 놀라웠다.
네 명 중에 한 명은 온화였고, 나머지 세 명은 이화관에서 실력이 뛰어난 제자들이었는데, 수련 경지는 전부 천위 후기였다.
네 사람은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몸에 굵은 번개를 합쳤다. 그러자 허공에서 번개가 크게 번졌다. 번개는 마치 보라색이 맴도는 커다란 태양 같았다.
이어서 네 사람이 동시에 큰 소리를 지르자 보라색 태양이 번쩍이더니, 굵은 번개로 변하여 아래 수백 장 범위에 드리웠다. 번개 아래 있던 사람들과 마물들이 전부 그 안에 들어갔다.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손에서는 파란빛이 반짝이었지만, 곧바로 부드러운 손이 붙잡았다.
“급하게 굴지 마.”
연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퍽 소리와 함께 보라색 빛이 우르르 쏟아졌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닿자, 곧바로 비껴가며 다시 마물들의 몸통을 무겁게 갈라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