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43화 (543/916)

543화. 공모

처참한 소리가 번개 속에서 울려 퍼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보라색 번개 그물이 사라지자, 허공에 서 있던 네 사람도 천천히 내려왔다. 네 사람은 얼굴이 전부 창백해졌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마물 환수들은 전부 사라졌다. 조금 전 공격 때문에 깨끗이 죽었다.

“대단한 뇌진이군……”

석목은 눈이 반짝였고, 참지 못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이건 우리 이진종에서 유명한 진법입니다. 십방진무뢰절대진(十方真武雷絕大陣)은 기운을 분별하여 적들을 공격할 뿐, 아군에게는 상처를 입히지 않지요. 뇌적 사형께선 혹시 모르셨나요?”

서문설이 뇌적을 바라보았고, 눈에 의아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 진법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위력이 강한 건 처음 봅니다.”

석목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가요……”

서문설이 가볍게 대답했고, 석목을 한번 바라보았다. 눈빛에 이상한 기색이 스쳤으나, 곧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석목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서문설을 한번 바라본 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큰 전투를 치른 후, 마물 환수들을 전부 죽였지만, 제자들 중 일고여덟 명 정도는 탑 밖으로 전송이 되었다. 손실이 적지 않았다.

온화가 지시를 내려서 마물 환수들이 남긴 환주는 똑같이 나눠 가졌다.

“여러분, 싸움을 치르느라 원기를 많이 소모했을 겁니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앞으로 갑시다.”

온화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려운 싸움을 치르느라 제자들은 지쳐있었고, 진기 소모도 만만치 않았다. 제자들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석목과 연나도 바닥에 주저앉았고, 서문설이 두 사람 옆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마물이 나타나기 전에, 사람 그림자가 번쩍이는 걸 보았어……”

석목과 연나는 신혼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조금 전에 본 그림자를 연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도 봤어. 확실히 누군가 거기 있었어. 공간이동술 같은 걸 썼어. 이 마물도 아마 그 사람이 끌고 온 걸 거야. 조금 전 혼전을 치를 때도 그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어.”

연나가 잠깐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그렇군, 보아하니 전부 우연은 아니었어. 누군가 우리를 현궁탑에서 쫓아내려고 해.”

석목이 전음으로 말했다.

“너, 이 일을 온화에게 말할 거야?”

연나가 물었다.

“아니, 온화도 멍청이는 아닐 거야. 그 사람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마물이 이곳에 나타난 원인을 알고 있을 수도 있어. 우리는 특수한 상황이니, 사람들에게 시선을 끌지 않는 편이 좋아.”

석목이 침묵을 하더니, 전음으로 말했다.

연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을 감았다.

제자들은 제자리에서 한 시진이 넘게 휴식을 취했고, 온화가 지시를 내리자, 돌아가며 주변을 지켰다. 다행히 마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영석이나 단약을 써서 영기를 회복할 순 없었지만, 공기 중에 흐르는 천지영기로도 회복을 할 수는 있었다. 제자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자, 원기도 많이 회복되었다. 온화가 지시를 내리는 가운데, 제자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탐색을 했다.

* * *

또 한 시진이 흘렀다. 이화관 사람들은 검은색 물가 앞에 도착했다.

그동안 제자들은 마수에게 공격을 여러 번 당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전부 약한 마수들이라서 가볍게 물리칠 수 있었다.

이 물가는 물이 검은색이었고, 물 위는 물결 하나 없이 조용했다. 하지만 겉에서 마기가 피어올라 허공에 검은 먹구름을 하나 만들어냈는데, 그 광경이 실로 음침했다.

물가 왼쪽은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었고, 산꼭대기는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을 찌르고 있었으며,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물가 오른쪽을 따라가면 사막이 하나 나타났다. 매우 먼데까지 크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맞은편으로 가는 길이었다.

온화는 대열 중에서 수련 경지가 높은 사람들 몇 명과 검은 물 위로 날아올라, 주변을 훑어보며 입술을 떨었다. 마치 전음으로 무엇인가를 토론하는 것만 같았다.

물가 근처에서 나머지 제자들이 주변으로 흩어졌고, 각자 탐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멀리 걸어가지는 않았다.

석목은 연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물가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 신식을 보내 앞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잠시 후, 석목은 멈칫했다.

검은 물엔 신식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어서 몇 장 정도 깊이까지 들어가면, 신식을 더 깊게 보낼 수 없었다.

이때 물 위로 날아올랐던 온화를 비롯한 제자들이 다시 돌아오며 말했다.

“여러분, 이 근처 환경은 매우 기이합니다. 검은 물 위를 지나치면, 마수들에게 잠복 공격을 당할 것입니다. 최대한 안전한 길로 가기 위해서 우선 모래사장이 있는 곳까지 돌아서 갑시다.”

온화가 말했다.

주변으로 흩어졌던 이화관의 제자들은 온화가 하는 말을 듣더니, 전부 모여들었다. 그리고 온화가 이끄는 가운데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대략 일각 정도 걸었다. 석목의 머리에 연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왼쪽 백 장 밖에 공간 파동이 있어.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아.”

석목은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동공은 축소되었고, 눈에서 옅은 금빛이 스쳐 지났다.

연나가 가리키는 공간은 확실히 이상했다. 허공에 매우 옅은 음영이 하나 나타났고, 그 자리를 감싸고 있었다. 석목은 영목신통이 뛰어났고, 공간을 감지하는 힘도 예민해서,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온화를 포함하여 앞에서 대열을 이끄는 이화관 제자들은 그 자리가 이상한 걸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저건 아주 뛰어난 공간 진법을 감추는 금제야. 나도 알아차리지 못할 뻔 했어.”

연나가 전음으로 말했다.

“그러니 온화 저 사람들이 보지 못했겠지. 저 자리가 이상하다고 온화에게 말해주자. 이렇게 하자, 너……”

석목이 전음으로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연나는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연나가 고개를 들었고, 눈에서 은색 빛이 스쳐 지났다. 형태가 없이 아주 옅은 정신 파동이 연나의 미간에서 날아갔고, 음영이 진 허공에 떨어졌다.

그 자리에서 파동이 일렁였고, 파동은 매우 옅었다. 하지만 제자들 중에 수련 경지가 높은 몇몇이 파동을 알아차렸다.

“저곳에 공간 파동이 있어! 공간 통로인가?”

온화가 몸을 번쩍이며, 곧바로 근처에 나타났다.

온화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 손을 짚었고, 보라색 번개가 날아가서 순식간에 그 자리에 스며들었다.

퍽!

보라색 번개가 터져버렸고, 번개뱀으로 변하여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허공에 몇 장 정도 크기인 음영이 나타나서 물결을 이루며 흔들리고 있었다. 음영엔 부문이 은은하게 나타났다.

“진법 금제!”

온화는 표정이 굳었고, 손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이며 유성추가 나타났다.

온화가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유성추의 겉에 부문이 줄줄이 나타나며, 눈부신 빛이 크게 번졌다. 유성추가 손에서 나가며 공기를 찢는 소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진법 금제 위를 강하게 내리쳤다.

진법 금제는 격하게 흔들렸고, 겉에 틈이 줄줄이 나타나더니, 터져버려서 점으로 변하였고,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전부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허공에 하얀빛이 터지며, 파동이 크게 일렁였다. 공간 전체에서 윙윙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한 장 정도 크기인 공간 통로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이화관 제자들은 그 광경을 보더니,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복잡한 기색을 드러냈다. 기쁜 와중에 화를 내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일 층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건, 이화관에서 탑에 들어간 제자 중에서도 뛰어난 제자들이란 소리였다. 제자들은 전부 멍청이가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곧바로 무엇인가 알아차렸다. 공간 통로는 진법으로 숨겨져 있었다.

석목과 연나는 제자들 속을 파고 들어, 눈앞에 나타난 공간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로 눈을 한번 마주쳤다.

두 사람 뒤에는 서문설이 조용히 서 있었고, 두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이런 고약한 녀석이 다 있나.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이화관 제자들 중 한 명이 공간 통로를 바라보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뻔하지. 다른 도관의 제자가 그랬을 거야!”

또 다른 제자가 말했다.

“그동안 보여준 종적을 지켜보면, 절대 한 사람이 한 것 같지 않아. 아마 우리와 함께 온 여러 명이 함께 했을 거야.”

“큰 사형, 이제 어떡합니까?”

마른 중년 제자 한 명이 온화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온화는 눈빛이 반짝였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 * *

같은 시각, 십이 층 안.

하늘을 찌르는 눈이 내린 산봉우리 아래, 싸움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수십 갈래 보라색 빛기둥은 하늘을 찌르며 온 천지를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대략 서른 명에 가까운 이진종 제자들은 빙갑거서 백 몇 마리에게 둘러싸였는데, 위쪽에는 솔개들이 빙글빙글 돌며 계속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자들이 두른 도포 소매 위에는 다양한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전부 다른 도관 사람들이었다.

간산관 제자도 있었고, 손풍관 제자도 있었으며, 곤지관 제자들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이화관 제자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이러다간 큰일 납니다. 사형, 사제 여러분, 각자 싸우지 말고, 뇌진을 만들어서 싸웁시다.”

머리가 짧은 청년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청년이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이진종 제자들 수십 명이 좌우를 한 번씩 바라보더니, 어느 도관 출신이든 상관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네 명씩 모여서 진뢰 법진을 일고여덟 개 만들었다.

눈내린 산봉우리 아래선 한동안 퍽퍽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보라색 빛이 번졌으며, 보라색 상자 같은 진법 속에서 빙갑거서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가 짧은 청년은 손에 검은 단봉을 하나 쥐었고, 날아올라 몸 앞에 선 빙갑거서를 단번에 죽여 버렸다.

검은 단봉 끝에서 보라색 번개 구체가 튀어나가, 허공에서 곡선을 그으며 거서의 머리를 공격하였다.

펑!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빙갑거서는 머리가 터져버렸고, 커다란 몸집이 무너지기도 전에 빛으로 변하여 흩어져버렸다.

청년과 멀지 않은 곳에서 머리를 높이 묶고 있던 젊은 여도사도, 손에 보라색 칼을 들고서 옆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보라색 반달이 돌아가며 날아갔고, 빙갑거서의 목에서 한 바퀴 돌았다.

퍽!

빙갑거서는 머리가 목에서 깔끔하게 굴러 떨어졌다.

다른 한쪽, 진법 속에 갇힌 천위 중기 빙갑거서 한 마리가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하얀 안개를 흉흉하게 뿜어냈다.

이때 위쪽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솔개 일고여덟 마리가 우르르 떨어졌다.

솔개들 주변을 감싸고 있던 보라색 막은, 안개 소용돌이 때문에 하얀색으로 한 층 뒤덮였다가, 뒤에서 날아오는 솔개들의 공격 때문에 터져버렸다.

이어 처참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뇌진을 만든 제자 네 명들 중에 단 한 명만 살아남았다. 나머지 세 명은 하얀 안개 때문에 얼어 버려 빛을 번쩍이더니, 현궁탑 밖으로 전송되었다.

전투는 총 두세 시진이나 지속되었고, 열 몇 명이 전송되었다. 그리고 환수들 백여 마리는 전멸했다.

* * *

십이 층의 또 다른 설원 위, 이십 명이 넘는 긴 대열이 한 공간 통로 아래쪽에 서 있었다.

“다행히 여(余) 사제가 공간과 감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이 설원에서 몇 바퀴나 더 돌았을지 모릅니다.”

머리가 짧은 곤지관 출신 남자가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곽 사형, 과찬입니다. 이 공간 통로는 누군가 술수를 부렸기 때문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몸이 마른 청년 도사가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근처에 모여든 환수들도 다른 곳보다 훨씬 많습니다. 아마 누군가 일부러 이런 짓을 한 것 같습니다.”

몸매가 요염한 중년 여자가 말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요?”

짧은 머리 남자가 말을 내뱉었고, 이어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제자들을 한번 바라보더니, 안색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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