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44화 (544/916)

544화. 사령지

십삼 층의 검은색 산봉우리 위에 하얀빛이 밝았다.

빛덩어리 아래쪽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외모가 준수했고, 손에 백옥 부채를 하나 들고 있었다. 우아한 기풍을 풍겼다. 그 사람은 바로 건천관의 큰 제자 막린회였다.

막린회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진뢰관의 만호종이었는데, 팔짱을 끼고 막린회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흉악했고, 굵은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거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막린회, 전에 꾸며둔 계략은 목적을 달성한 것 같은데. 이제 펼쳐질 일들은 정말 문제가 없는 게 맞아?”

만호종이 물었다.

막린회가 대답하기도 전에, 막린회 옆에 서 있던, 용모가 우아한 여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만호종,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지금이라도 물러나. 나와 막 사형, 두 사람은 계획대로 할 거니까.”

“흥, 생각이 있는 거야? 이 일은 너무 큰 파급을 미칠 거야. 우리 세 도관이 볼 이익과 관련이 있으니, 당연히 조심해야지.”

만호종은 눈이 흔들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둘이 그만 싸워. 내 계획대로만 하면, 절대로 문제는 없을 거야.”

막린회가 두 사람이 다투는 걸 끊어버리며 말했다.

만호종과 수봉월은 아니꼬운 눈빛으로 서로 한번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막린회는 무엇인가 느낀 듯이 두 눈을 감았다.

“온화 이 자식, 확실히 실력이 대단하군. 이미 우리가 설치한 금제를 깨버렸어.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잠시 후에 막린회가 두 눈을 천천히 뜨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어서 세 사람은 날아올라 하얀빛으로 들어갔다.

* * *

현궁탑 십삼 층, 검은 물가 옆 모래사장 어딘가.

서른 명에 가까운 온화가 이끌고 있던 이화관 일행들은, 공간 통로에서 나오는 하얀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쁘고 화가 난 기색이 동시에 드러났던 표정은 이미 사라졌다.

예전 경험을 통해, 제자들은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그리고 십삼 층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전력을 다해 공간 통로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많았고, 환수는 숫자가 정해져 있었다. 온화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현궁영패가 아직 밝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무도 십사 층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여러분, 우선 두 조로 나뉘어 움직입시다. 첫 번째 조는 사냥을 해서 환수를 잡고, 다른 한 조는 이 자리를 지켜서 공간 통로를 다시 누군가 숨기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냥을 한 사람들이 돌아오면, 다시 지키던 사람들이 사냥하러 나가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든 영패가 전부 밝아지면, 그때 같이 십사 층으로 올라갑시다.”

온화가 제안을 하며 말했다.

온화는 큰 사형이라, 이화관에서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온화가 제안한 방법은 대체로 안전한 방법이라서 반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지지를 했다.

대략 네다섯 시진이 지난 후, 이화관 일행들은 제자 세 명이 밖으로 전송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현궁영패가 드디어 전부 밝아졌다.

석목과 연나, 서문설은 수련 경지만 놓고 봤을 때, 제자들 중에서도 약한 편에 속했다. 온화가 내린 지시를 따라서 세 사람은 두 번째 조가 되어 움직였고, 자연스럽게 환주를 전부 모았다.

나머지 스무 명 정도 되는 제자들도 잠깐 휴식을 취한 후, 공간 통로를 통해 십사 층으로 들어갔다.

석목을 비롯한 제자들이 공간 통로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변 허공에 갑자기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 그리고 하얀 빛 속에서 잠깐 멈칫하더니,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 *

현궁탑 십사 층은 어두컴컴한 세계였다.

먼 곳을 바라보면, 땅 위가 온통 썩은 진흙탕으로 뒤덮여 있었고, 시신 잔해와 식물들도 가끔 보였지만, 전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하늘에서 먹구름이 떠다녔고, 천지간에 소름 돋는 음기가 가득 차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곳곳에서 휘몰아쳤는데, 귀신이 곡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십사 층은 상황이 서하고국과 매우 비슷했다. 하지만 음기는 서하고국 보다 열 배는 더 강렬했으며, 사령계와 비슷할 정도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연나를 한번 바라보았다.

연나는 앞쪽을 바라보았고, 표정은 차분했다.

“우리 이화관은 이미 높은 순위에 속할 겁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우리들은 대부분 곤륜성허로 들어갈 자격이 주어질 겁니다. 그러니 다들 긴장을 놓지 말고 잘 따라오세요.”

온화가 명령을 내리며, 한 방향을 선택해 걸어갔다.

온화가 하는 말을 들은 이화관의 제자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대답한 후에 곧바로 뒤를 따라갔다.

대략 반시진 정도 걸었고, 사람들은 백 장 정도 되는 검은색 강 앞으로 다가갔다.

거센 물결이 흐르는 강물에서 썩은 시신이 가끔 떠올라 신물 나는 악취를 풍겼다.

“이 무슨 거지같은 곳이야. 정말 더러워 죽겠네.”

몸집이 뚱뚱했고, 머리를 묶은 이화관 제자가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으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조금 참으세요. 기운을 닫아버리면 영력만 소모할 뿐만 아니라, 덫에 걸리기도 쉽습니다. 빨리 환수를 사냥하고, 이번 층 통로를 찾아서 떠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옆에 서 있던 수염을 기른 제자가 위로를 건넸다.

두 사람이 대화를 떨어뜨리기 바쁘게, 강에 흐르던 검은 오물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쳤고, 검은 진액이 화살처럼 속에서 날아왔다.

온화가 손을 흔들자, 보라색 유성추에서 빛이 크게 번졌고, 앞으로 날아가 검은 물화살과 부딪쳤다.

펑!

진액이 주변으로 튕겼고, 검은색 물화살은 곧바로 터져버렸다.

“으르렁…… 으르렁……”

이때 검은 강물에서 낮게 으르렁 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석목은 눈을 번쩍 떴고. 강물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검은 물이 부글대기 시작했고, 안에서 거품이 많이 흘러나왔는데, 마치 끓는 물 같았다.

이어서 키가 큰 사람 형상이 강물 곳곳에서 흔들거리며 튀어 올랐다. 최소 백 구는 되는 것 같았다.

“썩은 거대 시체다!”

온화가 깜짝 놀라서 소리 질렀다.

오물 속에서 튀어나온 건 키가 이십 장에서 삼십 장 정도로 큰 썩은 시체들이었는데,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였다.

썩은 살덩어리에서 검은 기운이 풍겼고, 녹아내린 이목구비가 하나로 뭉개져 있었다. 텅텅 비어있는 눈구멍에서 진흙처럼 끈적이는 액체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시체 거인들은 절반 가까이 천위 경지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백 구가 넘는 시체들이 검은 강물 속에 빽빽이 자리를 비집으며 서 있었고, 두 손으로 강물에서 검은색 진탕을 건지고 있었다.

진탕은 검은 안개를 감고 있었는데, 강에서 건지자마자 곧바로 굳어서 검은 화살로 변했다.

거대 시체들을 지휘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동작이 전부 똑같았다. 마치 규율이 엄격한 군대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화관 제자들을 향해 물화살을 발사했다.

이어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촘촘한 검은색 물화살은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검은색 비 같았고, 하늘은 온통 까맣게 변했다.

더 놀라운 점은 강물 곳곳에서 거대 시체가 끊임없이 슬슬 기어 나오더니,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시체들은 속도가 매우 느리니, 퇴치하면서 물러납시다. 절대 제멋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온화는 유성추를 휘두르며 수십 장 정도 크기인 검은 막을 만들어서 화살을 대부분 막아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영기와 법보를 꺼내서 시체들을 퇴치하며 물러났다.

한 시진이 흘렀다. 전투도 드디어 끝이 났다. 이화관 제자들은 썩은 시체들을 이십 몇 구 물리쳤지만, 제자 두 명이 그 대가를 치렀다.

실력이 만만치 않은 십사 층의 사령 환수를 겪은 후, 제자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후 반나절 동안 사령 환수들에게 공격을 여러 번 받았지만, 다행히 큰 손실은 없었다. 아무도 전송되지 않았고, 나머지 스무 명이 넘는 제자들도 각각 환주를 스무 알 이상 모았다.

이튿날 석목을 비롯한 사람들은 검은색 산봉우리를 에둘러 또 다른 이진종 제자 무리를 만났다.

무리는 백여 명은 되어 보였고, 이제 막 썩은 시체 환수들과 싸우고 온 모양이었다. 적잖은 사람들은 도포에 검은 안개가 스민 자국이 있었다.

입은 복식을 봤을 때, 무리들은 전부 건천관, 진뢰관과 감수관 제자들이었고, 숫자는 서로 엇비슷했다. 각각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했다.

석목은 제자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수봉월, 만호종과 막린회, 세 도관의 대표 제자들이 무리 속에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푸른 청년인 이철과 낭곤이 대열 가장 앞쪽에 서 있었다.

이화관 사람들이 이철 일행을 발견했을 때, 이철 일행도 이화관 제자들을 발견했다.

이철을 비롯한 사람들은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표정을 다시 가다듬었다.

이어서 세 도관 제자들은 이철과 여러 천위 후기 제자들이 이끄는 가운데, 이화관 제자들을 향해 걸어왔다.

“하,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온 사형도 십사 층에 올라 오셨군요. 그리고 이런…… 성가신 녀석들을 데리고. 정말 쉽지 않았겠군요.”

두 무리가 마주치자, 건천관의 천위 후기 제자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너, 이 자식 뭐라는 거야?”

온화 옆에 서 있던 천위 후기 제자가 그 말을 듣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 누구를 성가신 녀석들이라 했는가?”

이화관 제자들은 화를 내는 기색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건천관 제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온화를 바라보았다.

이철은 그 제자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고, 담백한 눈빛으로 이화관 제자들을 바라보며, 전혀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석목은 건천관 제자와 온화의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더니,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이 세 도관 제자들은 무슨 연유인지 섞여서 다니고 있었다.

“조용히 해! 넌 누구야? 막린회는?”

온화가 한 손을 흔들더니, 등 뒤에 있던 제자들을 조용히 시킨 후, 다시돌아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추개(鄒凱)라고 합니다. 막 사형께선 도법이 뛰어나, 이미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추개가 대답했다.

“추개, 그래, 이 십사 층 통로를 너희가 봉인한 게 아니라고는 하지 마.”

온화가 차가운 눈빛으로 추개를 바라보며 화두를 던지며 말했다.

“히히, 맞습니다! 부정할 것도 없지요. 우리 건천관의 수미법진도 알아보지 못하시다니. 온 사형, 그러시고도 이화관의 대표 제자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추개가 가볍게 웃더니, 흔쾌하게 인정했다.

“이런 더러운 짓을 하다니, 규칙을 어기고 종문의 제재를 받을까 두렵지도 않은 건가?”

온화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온 사형, 그 말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탑에 들어왔을 때, 이미 확실하게 말씀하셨잖습니까? 서로 죽이면 안 된다고만 했지, 다른 술수를 부리지 말라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이때 이철이 끼어들며 말했다.

“흥, 그러고 보니, 이 짓은 너희 감수관에서 수영주(水影咒)를 쓴 것이지.”

온화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온 사형, 저희도 종문을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시험을 좀 어렵게 만들어야, 곤륜성허 선발에 쓰레기들이 끼어들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성지들에게 비웃음만 사지 않겠습니까?”

이철은 쓰레기라는 말에 힘을 주었고, 이화관 제자들을 훑어보았다.

이화관 제자들도 성격이 드세서, 다들 화가 치밀어 올라 몸에 번개를 번쩍이며 싸우려는 태세를 취했다.

“싸우시게요? 그럼 놀아드리지요.”

추개가 큰소리를 내면서 웃으며 몸에 빛을 번쩍였고, 퍽 소리가 크게 울렸다.

석목은 연나를 한번 보더니, 몸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소매 속에 감춘 손에서 이미 검결을 펼칠 준비를 했다.

“대결을 펼치고 싶다면, 나중에도 시간은 많다. 현궁탑에서 나가면, 너희 두 녀석이 머무는 동부를 일일이 방문해주지.”

온화가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힘을 주며 말했다.

“아, 그럼 동부에서 온 사형을 기다리겠습니다.”

온화가 하는 말을 들은 이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주 영광입니다!”

추개는 온화를 향해 포권을 했다.

양측은 전부 표정을 굳히고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다. 싸운 책임을 지기 싫은 것이었다.

“흥! 가자.”

온화는 말을 하며 한 손을 흔들어서 이화관 제자들을 데리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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