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45화 (545/916)

545화. 후초(后招)

추개는 이화관 제자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추 사형,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온화는 이화관의 대표 제자입니다. 천 년 만에 천위 후기까지 도달한 사람이니,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정신력도 단단하지요. 절대 몇 마디 도발을 했다고, 이성을 잃을 사람이 아닙니다."

이철이 추개 옆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 안 했다. 다만 몇 마디 던졌을 뿐이야. 정신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자질로만 봤을 땐 진강 보다 훨씬 뒤처져. 아무리 열심히 수련을 했다고 한들, 호천각과는 인연이 없을 거야."

추개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호천각도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철이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동경하는 눈빛을 내비쳤다.

"이번 곤륜성허 선발이 계기가 될지도 모르지. 자격을 갖춰서 실력을 잘 발휘하면,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추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길 바랄 뿐입니다. 우선 막 사형이 분부한 대로 움직입시다."

이철이 말했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갑시다."

추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

온화를 비롯한 이화관 제자들은 당연히 추개와 이철이 나눈 대화를 듣지 못했다. 온화는 사제와 사매들을 데리고 저 멀리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갔다.

산골짜기와 가까워졌을 때, 사령 환수들이 습격을 했다. 다행히 대비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도 탑에서 전송되지 않았다.

온화가 지시를 내리자, 아무도 급하게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입구 근처 빈 땅에서 휴식을 취했다.

빈 땅 가운데에 이삼 장 너비인 평평한 돌 위에서 제자 둘과 온화가 앉아 있었고, 나머지 제자들은 그 주위를 빙 둘러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얼굴이 얄팍했는데,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다른 한 사람은 피부가 까맣고, 얼굴에 각이 졌다.

두 사람은 전부 방대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온화를 제외한 천위 후기 제자들 세 명 중에 두 명이었다. 두 사람은 이름이 양덕(楊德)과 방동서(方桐西)였다.

"그 세 도관이 힘을 모아 이런 짓을 벌이다니요. 우리 말고 다른 네 도관 사람들도 똑같이 덫에 걸렸을 것입니다."

양덕이 말했다.

"이런 수작을 부리는 걸 보니, 나머지 다섯 도관 제자들과 제대로 대립을 하는 겁니다."

방동서가 말했다.

"하지만 규칙을 봤을 때, 세 도관 사람들이 잘못을 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네 도관의 제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양덕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시간을 봤을 때, 각 도관의 실력이 뛰어난 제자들은 대부분 십삼 층과 십사 층에 있어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을 겁니다."

방동서가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말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번 시험에서 꼭 성취를 이룰 거야. 최대한 곤륜성허에 들어갈 사람들을 많이 확보해야 해."

침묵을 지키던 온화가 갑자기 말했다.

이철을 비롯한 녀석들에게 도발을 당해 화가 났던 이화관의 제자들은 점점 이성을 되찾았다. 다시 온화가 하는 말을 들으니, 바닥을 쳤던 사기가 다시 차오르는 것 같았다.

"온 사형께서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수단을 꿰뚫어 보았으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합니다. 다른 도관 사람들까지 신경 쓸 건 없습니다."

방동서가 말했다.

"온 사형, 이 일은 조금 이상한 것 같습니다."

이때 맑은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자들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 서문설이었다. 서문설은 석목과 연나 가까이에 있었다.

석목은 서문설이 일어서는 걸 보더니, 다시 연나를 한번 바라보았다. 연나가 석목을 바라보았고, 석목은 머리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친구 말이야.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는 걸 보니, 무언가 눈치를 챈 게 분명해. 만약 우리를 팔아넘기면, 죽여 버릴 거야."

"너무 멀리 갔어. 쟤는 곤륜성허에 가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은혜를 원수로 갚을 사람이 아니야."

석목이 말했다.

"네 말처럼 그러길 바라."

연나가 천천히 말했다.

"아, 서문 사매, 뭔가 발견하기라도 했습니까?"

다른 한쪽에서 온화가 일어서고 있는 서문설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마 다들 눈치를 채셨을 겁니다. 건천관, 진뢰관과 감수관의 뛰어난 제자들이 전부 모여서 다니고 있어요. 그 숫자는 백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수봉월, 만호종과 막린회, 이 세 사람은 대표 제자지만, 그 무리 속에 없었어요. 혹시 온 사형, 정말 추개가 한 말을 믿으시고, 그 세 사람이 각자 움직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서문설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 말하자, 주변에 있던 제자들이 낮은 목소리로 의논을 했다.

온화와 양덕, 방동서는 서로 한 번씩 바라보더니, 한참 침묵을 한 후에 입을 열었다.

"서문 사매 말이 맞습니다. 이 일은 확실히 이상합니다. 현궁탑은 뒤로 갈수록 각자의 실력만 시험하는 게 아닙니다. 만약 무리를 지어 움직이지 않는다면, 진기가 소모되어 탈락할 게 뻔합니다."

"이번 시험은 곤륜성허 속으로 들어갈 사람을 선발하는 게 목표입니다. 백 명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요. 더 빨리, 더 높이 간다고 종문에서 따로 상을 주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세 사람이 상식에 엇나가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습니다."

양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막린회는 여우같은 놈이라 각 층 통로를 봉쇄하는 일을 아마 주도했을 겁니다. 앞으로 뭐가 더 나올지 모르니, 미리 대비를 해야 합니다."

온화와 두 사람은 다시 의논하기 시작했고, 서문설은 묵묵히 앉아서 석목을 한번 바라보았다.

의논을 반시진이나 더 나누었다. 제자들은 막린회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토론의 결과를 맺지 못했다.

제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한 걸 확인한 온화는, 지시를 내려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은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들어갔지만, 더욱 조심스러워져 속도를 더욱 늦췄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닷새도 채 남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한두 층 정도 더 올라가게 되면, 선발될 확률도 훨씬 높아진다.

비록 건천관, 진뢰관과 감수관은 백 명 이상이 거대한 대열을 이루어서 더욱 든든해 보이기는 했지만, 환주를 수집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어서 높이 올라가는데 한계를 느낄 게 뻔했다.

그 뒤로 반나절 동안, 제자들은 환수들의 공격을 열 몇 차례 받았다. 이미 대비를 한 상태였고, 환수 무리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이화관의 다른 제자들 여덟 명과 합하여, 갑자기 대열은 서른 명이 더 넘었다.

이때 대열에 있던 몇몇 사람들 말곤, 대부분 현궁영패에 박힌 구슬이 전부 밝아졌다. 그리하여 위층으로 올라갈 통로를 찾기 시작했다.

한 시진 뒤, 이화관 제자들은 검은색 풀밭 앞에 도착했다.

풀밭은 면적은 매우 넓었다. 물가엔 작은 뭍이 몇 곳 분포되어 있었는데, 뭍들은 흙투성이였다.

시커먼 연못에는 검은 풀들이 빽빽이 자라 있었고, 커다란 검은색 거품이 간간이 솟아올랐으며, 공기 중에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풀밭의 다른 한쪽에서 검붉은 색의 옅은 안개가 솟아올랐고, 안개 속에서 미약한 공간 파동이 전해졌다. 더 먼 곳에서는 회색 산맥이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연나, 아까부터 먼 곳에서 공간의 힘이 전해지는 것 같아."

석목은 풀밭 한쪽을 바라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공간의 힘?"

연나가 전음으로 말했다.

"맞아. 예전과 같은 느낌이야. 다만 이번은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져. 먼 곳에서부터 느껴지는데, 아마 풀밭의 다른 한쪽인 것 같아."

석목이 말했다.

이때 무리 앞쪽에서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걸 들었다.

비명소리를 들은 석목은 연나와 함께 다급하게 앞으로 갔다.

앞쪽 풀밭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곳곳에 패여 있었는데, 크기는 사오십 장이나 되었다. 웅덩이 변두리는 까맣게 타버렸는데, 번개 때문에 타버린 흔적이었다. 웅덩이들 속에는 대부분 오물이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환수와 싸운 흔적이야…… 누군가 이미 이곳을 지나갔어."

온화가 한참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최소 천위 후기 무인이 몇 명이나 힘을 합쳐야 될 거예요. 혹시 막린회와 수봉월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아닐까요?"

방동서가 말했다.

"그 세 사람이 이곳에 왔었는지도 모릅니다. 보아하니 우리 방향이 잘못되지 않은 것 같군요. 앞쪽에 공간 통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녀석들이 봉인했을 수도 있고요."

양덕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일부러 놓은 덫일지도 몰라. 최대한 조심해야 해. 세 사람이 한 조로 나뉘어서 줄지어 풀밭으로 들어가자."

온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 고민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화관의 제자들은 한 마디씩 대답을 하더니, 스스로 대열을 이루었다.

서문설은 잠깐 망설이는 눈빛을 내비쳤다. 그리고 석목을 몇 번 훑어보더니, 천천히 옆으로 다가갔다.

석목은 멈칫하더니, 서문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나는 서문설을 한번 바라보았다. 얼굴에 혐오하는 표정이 스쳤다. 그리고 몸짓을 비틀거리며, 석목 옆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뇌 사형, 풀밭에 들어간 후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임 사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대열이 만들어졌고, 온화가 지시를 내리자, 사람들은 풀밭 가운데로 걸어갔다.

* * *

십사 층의 또 다른 방향, 곤지관의 도포를 두른 제자들 대략 서른 명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눈썹은 검과 같았고, 눈은 별과 같은 훤칠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손에 구부러진 특별한 은검을 한 자루 쥐고 있었다.

무리들이 바라보는 시선 끝엔 서쪽에서 동족으로 퍼진 산맥이 걸려있었다.

다른 한쪽 황량한 곳에서 여씨 청년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옆에 서 있는 곽씨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이어서 두 사람은 서른 명도 채 되지 않는 손풍관 제자들을 데리고서 시선 끝에 걸린 한 산맥을 향해 걸어갔다.

산맥의 다른 한쪽에선 머리를 높게 묶은 젊은 여도사가 몸을 숙여서 땅 위에 난 커다란 웅덩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여도사는 간산관의 대표 제자, 공유월(孔幽月)이었다.

손에 검은색 단곤을 든 머리가 짧은 청년이 조용히 공유월 옆에 서 있었다.

두 사람 뒤로 간산관 제자들 열 몇 명과 태택관 제자들이 섞여 있었고, 총 서른 명이 넘는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다들 지금 가부좌를 틀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젊은 여도사가 일어섰다. 그녀는 손에 든 보라색 곡도(*曲刀: 칼날이 휘어진 칼)로 앞을 가리키며 옆에 있는 머리가 짧은 청년을 향해 뭐라고 말했다.

그 청년은 보라색 곡도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앞쪽을 바라보더니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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