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46화 (546/916)

546화. 환령(喚靈)

십사 층에 자리한 핏빛 호수 가운데.

호수의 면적은 이 삼십 묘 정도 되어 보였다. 호수는 핏빛을 띠고 있었고, 마치 끈적이는 핏물 같았지만, 비린내는 풍기지 않았다.

호수의 가운데 이삼십 장 정도 되는 거대한 제단이 하나 놓여 있었고, 제단 전체는 하얀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얀 돌은 마치 뼈로 만든 것처럼 겉면에 음기가 맴돌았고,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제단 주변에 굵은 해골 기둥이 여덟 개 우뚝 솟아있었는데, 어떤 생물이 죽은 사체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기둥 위엔 구불거리는 부문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매우 기괴한 모습이었다. 모양새는 마치 몸통이 일그러진 작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허우적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운데에 한 장 정도로 솟은 푸른색 화염이 소리도 없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핏빛 호수 주변을 사령들이 촘촘히 둘러싸고 있었다. 수백, 수천 마리나 되었는데, 풍기는 기운으로 봤을 때, 사령들 중에 절반 가까이는 천위 경지였다. 사령들은 눈에서 은색 혼불이 번쩍이고 있었다.

제단 위에 자리한 몇 장 정도 크기인 공간 통로에서 하얀빛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어둡고 굵은 빛 몇 갈래가 먼 곳에서 날아왔고, 조용히 핏빛 호수 근처에 내려앉았다. 이어 몇몇 사람들이 나타났다.

감수관, 진뢰관, 건천관의 대표 제자 수봉월, 만호정, 막린회 세 명이었다.

세 명 뒤에는 천위 후기 경지 제자들이 각각 두 세 명씩 서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호수 가운데 놓인 제단, 그리고 그 위에 자리한 공간 통로를 바라보며 눈에 빛을 번쩍였다.

수봉월은 하얀 원판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원판에서 옅은 빛이 새어나왔다.

원판 위에는 수많은 부문이 새겨져 있었고, 가운데엔 바늘이 하나 놓여 있었다. 바늘은 미세하게 떨리며 호수 상공에 뜬 공간 통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 사매의 탐유침(探幽針)은 정말 현묘하군. 나와 만 사형은 이 십사 층을 전부 뒤졌는데도 찾아내지 못했는데. 그런데 수 사매가 이렇게 쉽게 찾아내다니."

막린회는 수봉월이 들고 있는 하얀 원판을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막 사형, 과찬이야. 이런 수법으로 어떻게 막 사형의 수천신통을 따라가겠어? 만 리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건 막 형의 눈을 벗어날 수 없잖아?"

수봉월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 그만하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 셋이 이번 층을 전부 뒤졌는데, 십사 층은 조금 특별한 것 같아. 공간 통로가 한 곳 뿐이라니."

만호종이 말했다.

"그럼 더 좋은 게 아닌가? 일도 번거롭지 않게 되었고. 이미 열하루 째야. 때가 다 되었어."

수봉월이 말했다.

"수 사매, 우리 세 도관의 제자들을 전부 다 배치했나?"

막린회가 물었다.

"막 사형, 걱정하지 마. 이미 제자들을 위해서 금공수주진(禁空水咒陣)을 설치했어. 이 진법이 무언가를 감추는 능력은 막 사형도 들어봤겠지. 두 사형이 직접 다가가도 절대 발견할 수 없을 걸. 사령 환수들은 영지가 없기때문에 전혀 문제 없어."

수봉월이 말했다.

"그럼 됐네."

막린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만들 하고, 이제 시작하자."

만호종은 귀찮은 듯이 말했다.

막린회가 고개를 끄덕였고, 입에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몸 앞에 회색빛이 번쩍이더니, 호각이 하나 나타났다.

호각은 어떤 특별한 뼈로 만들어진 것 같았는데, 호각 위에 검은 부문이 몇 바퀴나 새겨져 있었다.

막린회가 호각을 던져버리며 한 손을 흔들자, 법결 몇 개가 번쩍이며 호각 속에 스며들었다.

회색 호각은 겉에 새겨진 검은색 부문에서 빛이 크게 번졌고, 바람을 따라 한 장 가까이 불어났다. 호각 안에서 소리 없는 물결이 튀어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물결이 흩어지자, 핏빛 호수 속 사령 환수들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전부 호각으로 향했다. 눈 속에 핀 혼불이 격하게 튀어나오며 아주 흥분했다.

사령 환수들은 한참 동안 움직이더니, 몇몇 사람들을 덮쳤다.

"내가 환수들을 막아 시간을 벌게. 두 사람은 빨리 움직여."

만호종이 말을 하며, 부하 두 명을 데리고서 핏빛 호수 옆으로 날아갔다.

만호종은 몸에서 보라색 빛이 크게 번지더니, 번개가 몸 주변에서 꿀렁거렸다.

만호종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허공에 주먹을 쥐었다. 손에서 번개가 반짝이며, 보라색 깃발이 하나 나타났다. 깃발에도 번개가 번쩍였고, 상서로운 기운을 풍겼다. 매우 대단한 법보였다.

보라색 깃발은 한 면에 금색 호랑이가 하나 그려져 있었고, 다른 한 면에는 긴 은색 용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만호종은 깃발을 흔들며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금색, 은색, 보라색 세 갈래 빛이 동시에 번졌고, 빛들은 서로 얽히더니, 주변 백 장 범위에 드리웠다.

이때 호수 가운데서 나타난 사령 환수들이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만호종은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보라색 깃발도 점점 불어나 수백 배 나 더 커졌고, 커다란 보호막을 이루었다. 깃발은 다가오는 수많은 사령 환수들을 막아냈고, 호수의 반이나 가렸다.

호수 속 사령 환수들은 화가 난 소리로 울부짖으며, 몸에 빛이 번졌고, 깃발 위에 수많은 공격을 퍼부었다.

보라색 깃발이 마구 흔들렸고, 깃발 위에 보라색, 금색, 은색의 번개가 줄줄이 나타나서 사령 환수들이 날리는 공격을 막아냈다. 한동안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만호종은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더니, 두 손을 깃발에 딱 붙인 채로 몸속의 진기를 잔뜩 불어넣었다. 그러나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만호종의 등 뒤에 있던 두 사람이 낮게 소리를 질렀고, 손바닥으로 등을 눌렀다. 세 사람의 진기가 연결되자, 보라색 깃발은 더욱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세 사람은 이런 방법으로 수백 마리나 되는 사령 환수들을 전부 막아냈다. 그중의 절반은 천위 경지였다.

호수 근처에서 막린회와 수봉월은 그 광경을 보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막린회의 등 뒤에서 누군가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그 자가 두 손을 흔들자, 회색빛이 손바닥에서 튀어나와 근처 땅에 부문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수봉월과 등 뒤에 서 있던 두 남녀 제자는 손을 휘둘러서 백 개가 넘는 회색 진기 덩어리들을 만들어냈다. 진기들은 순식간에 날아올라 부문 가운데로 떨어지더니, 전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몇몇 사람이 힘을 합쳐 빠르게 커다란 진법을 만들어놓았고, 수많은 회색빛이 진법 속에서 튀어나와 빛기둥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시 합쳐지며 더 굵은 기둥으로 변해서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막린회는 진법 가운데 서서 다시 법결을 줄줄이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허공에 뜬 회색 호각 속으로 날렸다.

잠시 후에 막린회의 등 뒤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번개를 감싼 사람 모양의 형상이 하나 나타났고, 형상은 단번에 호각을 입가에 대고서 힘껏 불었다.

강렬한 소리 파동이 주변으로 흩어졌고, 회색 형상이 곧바로 번쩍이며 날뛰더니, 회색 호각과 힘을 합쳤다. 그리고 호각이 내보낸 형태 없는 소리 파동을 몇 배나 더욱 크게 불려서 주변으로 흘려보냈다.

순식간에 십사 층에 있던 모든 사령 환수들은 눈에 흥분이 가득해지는 기색을 내비쳤다.

땅이 쩍쩍 갈라졌고, 거대한 몸집이 땅속을 비집고 올라왔는데, 전부 강시였다. 강시는 온몸에 푸른 털이 자라나 있었고, 입에선 끈적이는 액체가 흘러나왔으며, 뾰족한 이가 마구 뻗어있어서 구역질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허공에서 날개가 파닥이는 소리가 들렸고, 커다란 새들의 사체가 날아다녔다.

다른 기이하게 생긴 사령 환수들도 여기저기서 나와서 핏빛 호수 방향으로 모여들었다.

"다 된 것 같아. 빨리 가자!"

봉수월은 눈에서 파란빛이 반짝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봉수월이 외치는 말을 들은 막린회는 회색 진법 속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회색 호각을 거두어들이고는 봉수월 옆에 서 있었다.

만호종이 손을 흔들며 법결을 하나 쓰자, 보라색 깃발에서 빛이 번쩍였고, 순식간에 원래 크기로 변하여 손으로 날아갔다.

만호종은 비틀거리며 두 부하를 데리고서 봉수월과 막린회 옆으로 날아갔다.

봉수월이 한 손을 흔들자, 파란색 빛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전부 드리웠다.

파란빛이 크게 번졌고, 이내 천천히 사라졌다. 봉수월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덮쳐오던 사령 환수들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더니, 막무가내로 주변을 뒤졌다. 사령 환수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다시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르더니, 회색 진법 근처로 모여들었다.

막린회를 비롯한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회색 진법은 함께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커다란 회색 빛기둥이 하늘 위로 솟아올라 구름을 뚫어버려서 수백 리 밖에서도 뚜렷이 보였다.

* * *

이때 십사 층의 한 검은색 황야 위. 이화관의 제자들은 더는 흩어져서 탐색을 하지 않았고, 다 같이 모여서 앞쪽으로 날아갔다.

앞쪽 먼 곳에서 회색빛이 반짝이는 광경이 은은하게 보였다.

석목이 무리 속에서 앞쪽에 나타난 회색빛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앞쪽에 드리운 빛은 얼마 전 갑자기 생겼다. 이화관의 제자들은 십사 층에서 한참 동안 공간 통로를 수색했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온화를 비롯한 사람들은 논의를 거친 후, 앞쪽으로 날아가 탐색을 해보기로 정했다. 하지만 석목은 이상하게 불안했다.

"연나, 나는 계속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석목은 옆에 있는 연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전음으로 물었다.

"맞아. 조금 전 누군가가 앞쪽에 환령 대진을 설치했어."

연나가 답했다.

"환령 대진?"

석목이 멈칫했다.

"이 진법은 사령에게만 효과가 있어서 너는 느끼지 못할 거야. 사령들에게 치명적인 흡인력을 드리우는 대진이지. 사령 환수는 정말 죽은 생물과 다를 바가 없으니, 당연히 영향을 받을 거야."

연나가 설명했다.

"뭐?"

석목은 연나가 하는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

이때 십사 층의 다른 한쪽에서 간산관의 제자들 일행이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날고 있던 젊은 여도사는 바로 공유월이었다.

간산관 일행들이 가고 있는 곳도 회색빛이 나타난 곳이었다.

"공 사저, 앞쪽 회색빛은 다른 도관 사람들이 놓은 덫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거기로 갈 겁니까?"

옆에서 검은색 단곤을 들고 있던 머리가 짧은 청년이 물었다.

"음, 내 예감인데, 거기에 공간 통로가 있어."

공유월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머리가 짧은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때 십사 층에 있던 다른 대열들도 회색 빛기둥을 발견하였다.

공간 통로를 찾을 수 없어 초조해하고 있었던 터라, 다들 회색 빛기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건천관, 진뢰관, 감수관 사람들은 없었다.

동서 방향으로 즐비한 산맥들 한곳에 대략 서른 명인 이화관 일행들이 온화가 이끄는 가운데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논의한 것처럼 세 사람이 작은 조를 만들어 앞뒤로 걸어가고 있었다.

석목과 연나, 그리고 서문설이 한 조를 짜서 대열 끝자락에서 걷고 있었다.

먼 곳에서 하늘 위로 치솟은 회색 빛기둥이 뚜렷하게 보였다. 석목은 공간 파동을 감응하는 힘으로 회색 빛기둥이 있는 곳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곳에 위로 올라가는 공간 통로가 있을 터였다.

온화를 비롯한 사람들도 다른 수단을 써서 예상이 적중했다는 걸 확인했다. 많은 사람은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하지만 불안한 느낌은 점점 강렬해졌다.

"환령 대진……"

석목은 가까이에 서 있는 연나를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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