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화. 적의 칼로 적을 베다
석목과 연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힘을 합쳐 주변에서 몰려오는 사령 환수들을 막아내고 있다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서문설은 두 사람과 다른 쪽에 서 있었는데 손에 든 백옥영치에서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색 비단을 몸에 감아 보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뚫고 갈 건가요? 환수들이 너무 많습니다.”
양덕이 물었다.
“저에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기회를 노려봅시다.”
온화가 침묵하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일행들은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라 도망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양덕, 우선 네가 막고 있어.”
온화가 말을 하더니 가운데로 다가갔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곧바로 온화가 있던 자리를 메웠다.
온화는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두 손을 휘둘렀다.
이어서 온화의 두정골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보라색 거울이 하나 튀어나왔다.
온화는 두 손으로 빠르게 법결을 하나 시전하였고 거울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보라색 빛이 크게 번졌다. 보라색 빛은 눈부신 빛이 아니라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빛이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 입으로 주문을 외우더니 한참 후에 거울에 빨간 피를 한 모금 뿜어냈다.
보라색 거울에 새겨진 꽃무늬가 전부 밝아졌고, 빛이 반짝이더니 허공으로 스며들어 사라져버렸다.
이어 거울이 스며든 곳에서 물결이 줄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석목은 곁눈질로 그 광경을 바라보더니 눈에 빛을 반짝이며 연나를 바라보았다. 연나도 때마침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허공에 이는 파동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칙, 칙!
연이어 소리가 울려 퍼졌고 허공에 틈이 몇 줄 생기더니 부드러운 보라색 빛이 허공에서 뿜어 나와 주변 환수들을 비추었다.
보라색 빛이 드리운 환수들은 움직임이 순식간에 멈췄다. 마치 기이한 힘 때문에 동결된 것 같았다.
보라색 빛이 드리워진 범위는 매우 넓었으며 이화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던 환수들은 전부 보라색 빛이 드리워져 움직이지 못했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다들 빨리 가요!”
온화는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며 기이한 자세를 취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화관 제자들은 기뻐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보라색 빛 사이를 비집고서 먼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과 연나, 서문설, 세 명도 제자들과 함께 밖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제자들이 반 정도 날았을 때, 온화가 있던 땅 왼쪽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온몸이 칠흑같이 검은 강시 환수 한 마리가 기어 나와서 입을 크게 벌렸고, 입속에서 검은빛이 날아와 온화에게 떨어졌다.
온화는 안색이 변했고,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 드리운 보라색 빛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틈새가 몇 군데 더 생겼다.
순식간에 수많은 환수들이 다시 깨어났고, 제자들을 향해 덮쳐왔다. 여러 갈래의 빛들이 제자들 무리로 떨어졌다.
이제 막 날아가던 이화관의 제자들은 당황한 나머지 적잖은 사람들이 주변으로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때, 양덕과 방동서가 손에 법보를 꺼내 들며 보라색 번개 빛을 뿜어내서 다시 광막을 받쳐 공격을 막아냈다.
“여러분, 흩어지면 안 됩니다. 계획대로 동쪽에 있는 작은 산에서 만납시다!”
양덕이 큰소리로 외쳤다.
양덕이 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각자 방법을 써서 환수들을 물리치며 동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석목과 연나는 수많은 사령 환수들이 묶여있는 틈을 타서 산맥의 다른 한쪽으로 날아갔다.
“뇌 사형, 두 분은 어디로 가시나요?”
지켜보던 서문설이 물었다.
“저와 임 사매는 배수일전(背水一戰)하여 공간 통로를 뚫어볼 작정입니다.”
석목이 잠깐 망설이며 말했다.
“그럼…… 두 분께선 조심하세요. 저는 안전하게 가겠습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서문설이 말했다.
“사매도 조심하세죠.”
석목이 말을 마친 후에 연나와 둔광이 되어 회색 빛기둥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현장은 이미 난장판이 되었다. 온화를 비롯한 제자들은 자기 몸을 가누느라 정신이 없어서 석목과 연나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문설은 석목과 연나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더니 눈에 빛을 반짝이며 양덕을 비롯한 제자들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석목과 연나는 전력으로 질주했고, 석목은 수련 경지가 높고 몸이 강인해서 날아가는 동안 공격을 하는 환수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연나도 실제 수련 경지가 이미 천위 정상이라 더욱 문제 없었다.
주변 경치가 빠르게 뒤로 밀려갔고, 모든 것이 멈추었을 때, 석목과 연나는 이미 검은색 산맥 근처에 도달했다.
석목은 주변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 주변은 드넓은 황야였다. 황야에도 수많은 환수들이 있었지만 두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이에 두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연나는 차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이 공간 통로 근처겠지. 음, 그런데 회색 빛기둥은?”
석목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물었다.
“진법의 효과가 없어진 것 같아. 그래도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령 환수들을 부르기엔 충분했어. 나머지 다섯 도관 사람들을 단번에 끝내버렸잖아.”
연나가 담담한 투로 말했다.
연나가 하는 말을 듣던 석목은 두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드넓은 황야를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자락에 핏빛 호수가 보였고, 호수 가운데 제단 위에서 하얀 구름 덩어리가 강렬한 공간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핏빛 호수 주변을 사령 환수들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다. 헤아려 보니 최소 수천 마리는 되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사령 환수들도 끊임없이 호수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십오 층으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겠군. 그래도 온힘을 다하면 아마 기회가 있을 거야.”
석목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연나는 석목이 한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연나는 갑자기 눈길을 돌리더니 주변 산맥을 바라봤다. 눈에서 기이한 빛이 뿜어 나왔다.
“왜 그래?”
석목은 연나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연나가 갑자기 팔을 들어올리더니 손에 하얀빛이 한 덩어리 나타났다.
강렬한 빛은 아니었지만 십사 층은 원래 어두컴컴해서 빛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먼 곳에 있던 사령 환수들은 곧바로 연나에게 향했다. 우르르 소리를 내며 몰려왔고, 수많은 해골, 강시, 그리고 썩은 사체 같은 사령 환수들이 울부짖으며 덮쳤다. 수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환수들은 두 방향에서 검게 드리우며 몰려오고 있었으나 아직 더 많은 환수들이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이제 막 파뢰검을 쓰려고 했다.
“가자!”
하지만 연나는 석목을 덥석 잡더니 산맥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우르릉!
두 사람 등 뒤로 수많은 환수들이 쫓아왔다.
둔광이 된 석목과 연나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눈 깜박할 사이에 몇 리나 날아가 산골짜기 위를 날아서 넘었다.
석목은 아래를 바라보았다. 눈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얼굴에 기이한 표정이 스쳤다.
영목신통을 써보니 골짜기 겉에 옅은 빛이 드리워 있었는데, 매우 기이한 은닉 진법이었다. 석목도 영목신통으로 한 줄기 흔적만 발견했을 뿐, 진법 안이 어떤지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이건……”
석목은 옆에 있는 연나를 바라보며 의아한 듯이 물었다.
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조금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서 산골짜기 위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앞쪽 산봉우리를 하나 넘더니 갑자기 석목을 잡고서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 * *
연나가 손을 흔들자 검은빛이 나타나 두 사람에게 드리웠다. 그리고 빛이 반짝이더니 두 사람은 땅속 깊이까지 뚫고 내려갔다. 단번에 십 장 정도 내려가서야 멈추었다.
“연나, 이곳에는 왜 데리고 온 거야?”
석목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수많은 사령 환수들이 땅속 깊은 곳에 숨어있을 게 뻔했다. 땅속으로 들어가면 사령 환수들의 습격을 절대 피하지 못할 터였다.
심지어 밖에 있는 환수들도 두 사람의 기운을 느낀다면 땅을 뚫고서 죽이려 할 게 뻔했다.
“내겐 힘이 필요해. 매우 강력한 힘!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아마 너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어. 만약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일을 끝으로 나는 바로 사령계면으로 돌아갈게.”
연나는 잠깐 침묵하더니 영문 모를 말들만 천천히 뱉어냈다.
“난 너를 믿어.”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흔들며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연나는 깊은 눈빛으로 석목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 들어왔던 곳으로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토둔부를 한 장 꺼내서 몸에 붙였다. 순간 누런빛이 몸을 감쌌고, 이어 그는 곧바로 연나를 뒤따랐다.
연나는 앞으로 한참 걸어갔다. 두 사람의 머리 위가 바로 조금 전에 발견한 진법이 드리운 산골짜기의 입구이리라 석목은 추측을 했다.
연나는 손에 검은빛을 반짝이더니 검은색 네모난 물체가 하나 나타났다.
연나가 취선대를 꺼내는 걸 본 석목은, 연나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연나는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고, 취선대에서 검은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한 줄기 얇은 그림자가 검은빛에서 튀어나와 취선대를 감고서 위쪽으로 날아갔다.
* * *
산골짜기에 놓인 진법 아래로 제자들이 백여 명 모여 있었다. 제자들은 뚜렷하게 세 대열로 갈라져 있었다. 제자들 소매에 새겨진 문양을 보면 진뢰관, 감수관, 건천관의 제자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바깥 상황을 한 눈에 내다볼 수 있었다. 저 멀리 황야에는 수많은 사령 환수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산골짜기 위에도 수많은 환수들이 날아다녔는데 전부 석목과 연나가 도망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세 도관들의 제자들은 얼굴에 전부 웃음꽃이 피었으며 유유자적하게 혼잡한 바깥 광경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막 형과 수 사매가 세운 계획은 정말 대단하군. 바깥에 있는 무식한 환수들을 이용해서 나머지 도관의 제자들을 현궁탑 밖으로 내쫓다니. 조금 전 두 사람은 아마 길을 헤매다 여기까지 온 걸 거야. 보아하니 다른 도관 사람들은 거의 다 해치운 것 같군.”
진뢰관의 대표 제자 만호종이 눈에 빛을 반짝이고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 두 사람은 토둔술로 도망을 치려는 것 같은데, 현궁탑의 기묘한 힘을 모르는 것 같군요. 현궁탑에서 나오는 사령 환수들이 다른 사령 생물들과 같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추개가 말했다.
“허허, 두 사람은 이제 곧 선택한 걸 후회하게 될거야.”
수봉월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해. 우리는 아직 시련을 받는 중이니까 이 기회를 빌어 잘 쉬어 두자고.”
막린우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네!”
세 도관의 제자들이 대답했다.
* * *
석목과 연나가 산골짜기 위에서 날아갔기 때문에 수많은 사령 환수가 그 뒤를 쫓아서 몰려오고 있었다. 산골짜기 안팎으로 사령 환수들이 득실거렸다.
썩은 새 시체가 수백 마리나 하늘 위에서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석목과 연나가 남긴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산골짜기 위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시 사체와 백골 사령 수천 마리는 산골짜기 곳곳에서 어슬렁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해골 환수의 두 눈에서 혼화가 반짝였고, 마치 땅속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이 울부짖으며 손에 든 뼈망치를 땅 위에 격하게 내리쳤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돌이 터져버렸다.
탱!
땅속에서 검은색 칼 한 자루가 땅 위로 튀어나와 돌까지 부숴버렸다.
이어서 산을 이루는 돌들이 부서지며 검은 갑옷을 입은 채 수정처럼 투명한 빛을 뿜어내는 검은 해골 무사 한 마리가 땅속에서 기어 나왔다. 바로 연나의 든든한 부하인 무야였다.
이때, 해골 환수가 뼈망치로 다시 한번 땅을 쳤다. 펑! 소리와 함께 무야가 검은색 칼로 망치를 막아냈다. 이어서 무야가 해골 환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자 환수는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무야는 또 다른 손으로 취선대를 꽉 쥐었다. 취선대 속에서 검은 기운이 줄줄이 올라오더니 반짝이며 땅속에 스며들었다.
이어 주변 땅 위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고, 사체들이 땅속에서 기어 나와 소리 없이 사령 군대 속으로 몰려갔다.
지금 땅속에서 기어 나오는 사령들은 연나가 사령계면에서 몇 년 동안 기르던 사령 군대였다. 수련을 한 경지가 천위에 도달한 숫자는 많지 않았으며 대부분 지계 수준이었지만 그 숫자가 만 구 이상 이었다.
그리고 연나가 부른 사령과 사령 환수는 겉모습부터 풍기는 기운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사령 대부분은 석목과 연나를 쫓아오던 무리 속으로 섞여서 엄청나게 많은 사령 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또 적잖은 사령들이 땅속에서 기어 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고, 몰래 다른 사령 환수들 무리에 섞였다.